201. 제국의 몰락(2)
“마, 말도 안 돼.”
황도 북부 전구, 제국 제 2집단군 주둔지.
대륙을 호령하는 제국군의 위명과는 걸맞지 않게, 이곳에 주둔해 있는 병사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쿵- 쿵-
남부 연방의 정예병을 상대하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제국군의 중장보병.
그렇지만 저 앞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망자의 군대는, 용기나 기백 따위로 견뎌낼 수 있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저게 다 언데드라고……?”
“반란군 놈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병사들의 체력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남부 주둔지에서 이곳 황도까지.
장장 2주일 동안 이어진 강행군 덕분에 중장보병들의 태반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쿨럭-! 쿨럭-!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남부 지방과는 달리, 황도가 있는 중부지역은 습하고 눅눅한 날씨.
군량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썩어들어가기 시작했고, 행군 중 생겨난 물집과 상처들 역시 더욱 쉽게 곪아가기 시작했다.
상한 음식과 갑작스레 낮아진 기온. 그리고 소독되지 않는 상처.
어느새 군영에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개중 몇몇은 몸을 가누지조차 못한 채 병동에 틀어박힌 상황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멸망한 남부 연방군의 잔당이 계속해서 습격을 해대는 통에 수면도 부족한 상황.
“이 지경이 됐는데도 철수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다니, 도대체 중앙에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인간의 몸으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병사들.
그런 그들에게 용기나 기백 같은 것을 기대하는 건, 적어도 이곳 지휘관인 할버트에게는 무리였다.
“보내주겠다던 지원군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전투마법사 부대는?! 기사단은 어째서 황성에서 나오지를 않는 것이란 말이야-!”
- 사, 사령관님. 그게…….
통신용 마력 수정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그 너머에 있는 행정관의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부탁이니 중앙에 다시 한번 요청을 해 주게!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단 말일세…!”
- 이미 몇 번이나 해봤지만, 똑같았습니다.
황도에 보고를 넣고 있는 그 역시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이를 악문 채 대답하고 있는 것이었다.
- 제 2집단군은 현 위치를 유지할 것. 후퇴는 허가하지 않는다.
- 황제 폐하의 대업을 위해, 영광스러운 제국의 군인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라.
- 제국은 그대들을 영웅으로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 ……이상입니다, 사령관님.
콰장창-!
결국 참지 못한 할버트는 수십 번째 같은 말만 반복하는 마력수정을 집어던졌다.
산산이 박살 난 수정 조각은 한편에 세워진 제국 깃발에 쏟아져, 금색으로 수놓아진 문양에 흠집을 남기고 있었다.
“뭐가 영광이냐. 뭐가 영웅이냔 말이다……! 제대로 된 지원도 계획도 없이, 여기서 개죽음 당하란 말이냐?!”
머리끝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지휘관은 어깨에 채워진 인장을 잡아 뜯으며 고래고래 욕지거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기사단도, 마법사도! 심지어는 각 부대에 있던 고참병들까지 차출해놓고, 부상병과 신병들은 소모품 취급이라니! 군사를 이따위로 다루는 자가 대관절 어디에……!”
그렇게 계속해서 소리치던 것도 잠시.
“제 2 집단군 사령관, 할버트 노우만.”
허공에 대로 미친 듯이 소리치던 할버트의 등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면담을 신청한 병사는 없던 걸로 아는데.”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할버트였지만, 그는 애써 자세를 고쳐잡았다.
지휘관은 병사들을 책임지는 자.
섣불리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간, 안 그래도 불안한 그들의 머릿속에 불을 끼얹는 꼴이다.
저벅- 저벅-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쇳소리가 동반된 발소리를 듣자 할버트의 눈이 단번에 가늘어졌다.
‘기사갑주에 사용되는 금속 각반. 지금 우리 부대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검은 갑옷을 갖춰 입은 기사 한 명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대는?”
“근위기사단 기사, 베릭트 프란이오.”
벌떡-!
근위기사.
그 말을 들은 할버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위기사는 지근거리에서 황제를 경호하는 황제의 최측근.
만일 자신이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면, 결코 자신 혼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화, 황성에서 오셨다고 했소?”
“…….”
별다른 지적이나 추궁이 없는 걸 보니, 다행히도 듣지 못한 것인가?
그렇게 판단한 할버트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안 그래도 기사 전력이 절실한 차였는데, 이렇게 지원군이 와주다니.”
“난 지원군이 아니다.”
단호한 한마디에 할버트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온 것이오.”
아니꼽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할버트가 그렇게 물었다.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난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권력 서열은 황제에게 가까울수록 높아지는 것.
변방 군대의 사령관인 자신과 최근거리에서 황제를 경호하는 근위기사.
아무리 일개 기사라 해도 황성에 있는 한, 자신과 저 기사 사이엔 어마어마한 벽이 존재할 젓이다.
“우수한 병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그대의 부대에서 선별했으면 하는데.”
“정말 미치겠군! 또 차출이라니?!”
고저 없는 기사의 목소리에 질렸다는 듯 할버트가 소리쳤다.
“이미 2 집단군은 껍데기만 남았소! 기사단과 전투마법사 부대가 빠져나가고, 기병대도 전부 차출해가지 않았소!? 이제 이곳에 남은 건 신병과 부상병들뿐이란 말이외다!”
지금 자신의 부대는 군대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젓는 할버트였지만.
“알고 있다.”
갑옷으로 몸을 둘둘 말아놓은 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할버트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할버트가 다음에 할 말을 고르던 순간.
푸욱-!
아랫배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기괴한 감각에, 할버트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보았다.
“……어?”
박혀있었다.
건틀렛을 낀 기사의 손이.
마치 찰흙 더미에 어린아이의 손이 들어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이보시오. 지금 무엇을…….”
처음 저 남자를 만난 순간 느꼈던 위화감이 할버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투구 속에 감춰진 얼굴.
흰자위가 없이 새카맣게 물든 눈을 바라본 순간,
구룩, 구루룩-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괴한 감각에, 할버트는 흠칫 몸을 떨었다.
“어, 어어어……?”
기분 탓인가?
아니, 아니었다.
점점 통제를 벗어난 채, 제 멋대로 움직이는 팔다리.
애써 시선을 돌려보자, 더 이상 자신은 인간의 몰골을 하고 있지 않았다.
쿠당탕-!
관절의 구조마저 변해버린 듯, 걷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그 순간.
“싸울 힘도, 의지도, 방법도 없는 채, 그저 머릿수를 채울 뿐인 가치 없는 버러지들.”
그렇게 중얼거린 기사가, 이젠 완전히 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을 향해 그 시커먼 눈동자를 들이밀었다.
“그런 너희들을 우리 기사들과 같은 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그게 도대체 무슨, 크으으?!”
할버트의 비명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키이이이…….”
야수? 벌레? 뱀?
도무지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흉물스러운 괴물들이, 2집단군 주둔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제국의 기사로서 그대들에게 폐하의 말씀을 전하노라.”
할버트가 이제는 말하는 법조차 잊은 채, 크게 뜬 눈으로 기사를 바라본 순간.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제국의 승리를 위하여 봉사하라.”
철퍽-!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 던진 기사는, 촉수로 뒤덮인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천천히 검을 뽑았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
“사람을, 괴물로 변이시킨다는 말입니까?”
언데드 군단이 제국을 포위한 지도 일주일.
기사단을 주축으로 한 첫 공세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원탁에 모인 기사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싸우던 도중 기사들을 뿌리치더니, 전장에서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 사람을 습격하더군.”
“그리고 녀석들에게 당한 마을 주민들이, 같은 괴물로 변이했다?”
내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하인켈을 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벤 주민들의 얼굴이 떠오른 듯 침통한 표정이었다.
“성혈을 사용하여 자기 몸을 괴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설마 그런 식으로 폭주하다니…!”
“폭주가 아닙니다, 전하.”
그렇게 말하며 회의장으로 들어온 것은 집사장 버크만이었다.
“첩보원들이 보낸 정보입니다. 황도 수비군이 거주구에서 제국민들을 데려가고 있다는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본 그건……?”
“성혈이 폭주한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사람을 괴물로 변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기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분노에 치를 떠는 자들도 있었고, 꼴 좋다며 쓰게 웃는 기사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이게…. 이것이 정녕 한 나라의 군주가 저지를 만한 행동입니까?”
이를 악문 채 그렇게 말한 것은 델라인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전쟁을 이긴다 해도, 그 뒤엔 도대체 뭐가 남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겠지.”
서신에 기재된 황성의 모습을 확인한 난, 차가운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모아둔 성혈을 생각한다면, 제국이라는 나라 따위는 아무 짝에 쓸모 없을 테니까.”
연령별로. 혹은 마력 보유량별로 분류하여 황성 중앙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리고 황성 중앙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연기.
지금 황제는, 황도에 사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가공하고 있었다.
- 하지만, 너무 많지 않은가?
거기에 의문을 표한 것은 앙헬이었다.
- 200년 동안 축적해 온 성혈에, 지금 수집하고 있는 시체와 영혼까지.
“확실히, 한 존재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힘이야. 어설프게 개조한 몸으로는 받아먹지도 못할걸.”
성물로 강화한 신도 4만의 생명.
반신의 몸을 얻어낸 브리간테는 그 힘의 절반도 감당하지 못했다.
하물며 필멸자의 몸을.
그것도 제 것이 아닌 후손의 몸에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텐데.
“클라인….”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라이아가 허공을 본 채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에 그렇게 물었다.
철퇴로 사람을 짜부러트리는 완력의 소유자가, 겁에 질린 듯 창백한 안색이라니.
“밖에, 하늘을 봐요.”
그렇지만 그렇게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내 물음에 답하는 라이아의 등 뒤로, 시커먼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
하늘 위로 솟아오른 커다란 그림자.
태양빛을 반사하며 드문드문 빛나는 황금빛에, 난 그것이 무엇인지를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지반 째 들어 올려져, 하늘 위를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땅덩이.
그 위에 얹혀있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제국의 중심.
멜디르 제국의 황성이었다.
구륵, 구륵…!
그리고 그 지반 틈새에서 땅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 성혈.
“저기, 아래를 보십시오!”
기사 중 한 명의 외침에 공중에 뜬 성 아래를 보았다.
- 크워어어어어…….
- 크르르르르……!
황금색으로 빛나는 공중요새.
그곳에서 쏟아져나오는 성혈과, 그에 오염되어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렇지만 내가 이토록 떠는 것은, 그 압도적인 모습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 너도 어지간히 가지고 싶었나 보구나.”
황성 중앙에 위치하여 힘을 뿜어내는 거대한 심장.
그리고 그것과 동조하여, 무한에 가까운 힘을 휘두르는 저 구조.
“멜디르 알펜, 삼류 네크로맨서 새끼가.”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저 황성의 구조는, 북쪽 끝에 있는 내 본거지와 같은 형태.
성혈로 재현하여 하늘에 띄워놓은, 얼음성의 모조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