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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98화 (198/209)

198. 반격

“저, 전하! 각 지역 검문소에서 서신입니다!”

길튼 요새에 마련된 라인란트군 본영.

집무실을 찾아온 전령의 말에 다음 수비전략에 골몰하던 하인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언데드의 대군이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다고?!”

“예! 그런데 그것이……!”

자신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말을 흐린 전령은 곧바로 품 안에 든 서신을 꺼내 보였다.

자기조차 믿을 수 없는 말이 쓰여있으니, 입 밖에 내는 것보단 직접 보여주는 것이 빠르다 판단한 것이었다.

“…….”

서신을 보낸 것은 프리실라.

그리고 각 지역의 치안을 맡은 기사들에게서 보내져온 것들이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의 언데드가 진형을 갖춘 채 북부 산맥을 수직돌파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

“백만이 넘는 군대가, 사흘 만에 북부 영지의 절반을 종단했다고?”

병력 운용의 상식을 통째로 뒤흔드는 내용이었지만, 언데드의 군대라고 하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언데드는 피로를 느끼지 않고, 먹지 않으며, 자지 않는다.

진흙, 강, 산맥과 같은 지형을 깡그리 무시한 채, 휴식 없이 최대 속도로 이어지는 행군.

그럼에도 단 한 명의 낙오도, 전열의 흐트러짐도 보고되지 않는다.

산 사람의 군대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국이 그토록 언데드 연구에 열을 내던 게 이해가 갈 것 같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헌데….”

그렇지만 하인켈이 충격을 받은 부분은 그것이 아니었다.

[언데드들은 행군 과정에서 어떤 습격, 약탈도 저지르지 않은 채 영지민들을 무시하고 걸어갔으며, 개중 몇몇은 병력이 차출된 영지에 노동력을 제공함.]

[몇몇 언데드는 ‘200년 전 여기가 내 집이었다’ 말했으며, 영지민 중 몇몇은 언데드과 교감하는 것을 관측.]

[확인 결과 언데드들은 전원 가슴팍에 라인란트 인장을 달고 있었으며, 자신의 주인을 클라인 라인란트 공자라 밝혀…….]

“전하.”

“그래, 알고 있네.”

북부에서 내려오는 언데드는 클라인의 군대.

200년 동안 이어진 라인란트의 숙원이, 하필이면 자신의 대에 와서 이뤄질 줄이야.

“데, 델라인 공자님! 저, 저기…!”

“저게 뭐야?!”

그러는 와중, 창밖에서 보초병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눈을 돌리자, 성 안에 있는 병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는 것이 먼저 보였다.

물론, 하늘을 바라보는 자신의 표정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만은 않을 것이다.

후우우우우-!

공간을 가르며 창공에 나타난 거대한 형체.

용살자의 가문이라 불리는 폴와이번의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었다.

“요, 용……?”

“말도 안 돼. 저거, 본드래곤이잖아……?”

언젠가 기사소설의 삽화에나 나올법한 존재가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제, 젠장! 제국 놈들이 기어코……!”

“아니야! 저기!”

활시위에 화살을 재던 동료를 만류하며 병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마치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듯 천천히 요새 상공을 도는 거대한 골룡.

가슴팍에 푸른 마력광은 그들에게 보란 듯, 라인란트의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쿵-!

이윽고 뼈로 이뤄진 용의 거체가 요새 중앙에 위치한 빈공간에 착륙했다.

촤르르륵-!

이곳은 라인란트 공작인 하인켈이 기거하는 요새.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기사들이 골룡을 포위했지만, 용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 북부의 기사들은 변치 않았군. 올곧고, 고집 있는 자들이야.

다만 미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혼잣말할 뿐.

“궁상떨 기력이 있냐? 좋겠네. 이쪽은 멀미 때문에 돌아가실 지경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골룡을 향해 윽박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 기사들 몇몇이 술렁거렸다.

“잠깐만.”

“저 목소리…?”

반응을 보인 것은 주로 본가에서 근무하는 호위기사들.

그들의 추측에 힘을 싣듯, 골룡의 등 부분에서 한 번 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으니까 빨리 마리 좀 내려봐! 스텔라가 니 목에다가 토하는 거 보고 싶냐?!”

- 어이쿠, 그건 안될 일이지.

그 말과 함께 서둘러 몸을 낮추자, 몇 명의 인영이 비틀거리면서 골룡의 몸을 내려왔다.

“주, 죽는 줄 알았, 우욱…!”

“저기 가서 토하세요. 기사들 다 보는 데 수녀가 부끄럽지도 않나.”

“도련님! 저 용 아저씨 한 번만 더 타 보면 안 되요?! 엄청 재밌었는데!”

요새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활기찬 목소리.

저 좌충우돌을 십수 년 동안 봐온 기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클라인, 공자님……?”

검은 망토를 두른 채 골룡의 등에서 내린 소년.

“버크만”

“예, 전하.”

클라인의 얼굴을 본 하인켈은 옅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등 뒤에 선 친구에게 말했다.

“델라인과 기사단 단장들을 소집해주게.”

책상 위에 놓여진 전도를 잠시 바라보던 하인켈은 그것을 한편에 치워둔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내 방어만 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질 참이지 않은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인 채 버크만이 집무실을 나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동생의 귀환을 축하하는 델라인과 기사들의 모습.

그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하인켈은, 곧 자신의 검을 쥔 채 집무실을 나섰다.

***

“한 시간 후에 회의실로 오면 돼. 원래 같았으면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할 텐데…….”

“여유 없는 거 아니까 걱정 마. 이따 보자고.”

형제간의 짧은 재회를 끝마친 난 몸속에 내재된 마기를 가늠해보았다.

“전성기 수준. 아니, 그 이상인데.”

얼음성과 육체를 동기화 시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술자의 육신을 얼음성의 단말로 재구축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사령술을 사용함에 있어, 내 최대 약점은 미숙한 육체.

그렇지만 빈사 상태에 다다른 몸을 얼음성의 일부로 구축하며, 더 이상 그런 제약에 연연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얼음성에 코가 꿰인 상태가 되었다는 거고 말이지.’

얼음성이 존재하는 이상, 이 몸 또한 영원할 것이다.

사실상, 지금 난 영생을 손에 넣은 것이나 진배없다는 뜻이었다.

지금 라인란트를 위협하고 있는, 멜디르 황제가 바라마지 않던 그 영생을.

‘그러니 내가 왔다는 걸 알게 되면, 놈은 직접 나설 거다.’

제국과 교국이 합심해서 끌어내린 신, 케르시아스.

유일했던 그의 의지가 아린에게 먹힌 이상, 황제는 브리간테처럼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국은 신의 의지를. 그리고 제국은 그의 육신을 취했다 했었지.’

아린에게 먹힌 브리간테의 시신을 통해 알아낸 사실.

‘하지만, 지금까지 황제는 그 육체를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교황 브리간테는 신의 의지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어 스스로 신이 되려고 했다.

그 의식을 위해 수만 명의 신도를 희생, 그들의 언어로 치환해서 ‘순교’시켰지.

그렇지만 황제가 원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황제 멜디르는 자신의 의지를 신의 육체에 담아, 몸을 통째로 빼앗을 심산이었다.

성혈로 신의 육신을 재현하고 신격 자체를 노리던 브리간테와 달리, 황제는 신의 육신을 통한 영원한 삶을 원한다.

그가 혈족의 몸을 갈아타는 것조차도, 언젠가 신의 육신에 들어가기 위한 연습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몸을 옮기는 것에 수반하는 거부반응. 그것을 없애기 위해 성혈을 연구해 온 것이겠지만…….’

그렇게 내가 생각에 몰두하고 있던 찰나.

“브웨에에에…….”

요새 구석에서 들려온 구토소리에 난 하던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저기 스텔라 언니 봐봐요! 입에서 무지개가 부와아악 하고!”

“설명하지 마라. 밥맛 떨어진다.”

난 측은한 눈으로 입에서 무지개를 쏟는 스텔라를 바라봤다.

사하크의 등에 올라탄 채 하루 종일 비행.

근처 평원에 내려 6시간 취침 후, 곧바로 다시 반나절 동안 비행.

“우으으, 용 같은 거 다시는 안 탈 거야…….”

하늘을 나는 경험도 난생처음일진대, 이런 강행군을 버텼다면 몸 상태가 어떨까.

언데드보다도 더 언데드 같은 몰골이 된 스텔라를 보며 난 물통에 넣어뒀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내 사과하지. 200년 만의 비행이라, 나도 모르게 설렜었나 보군.

멋쩍은 듯 몸을 낮추는 사하크의 모습에 난 별말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용이란 무릇, 창공을 누비며 만물을 굽어보는 존재.

그렇지만 언데드가 된 사하크는 200년이라는 세월을 얼음성 내부에서 지냈으니, 어지간히도 답답했을 터였다.

“다음엔 좀 살살 날아. 나도 죽을맛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난 한 마리의 신성 좀비가 된 채 흐느적흐느적 다가오는 스텔라에게 물병과 사탕 몇 개를 쥐여줬다.

“으어어어…….”

와 저 몰골 좀 봐라.

물리면 진짜 좀비 되는 거 아냐?

“근데 신부님은 엄청 멀쩡하셨는데요?”

“나도 그게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마지막으로 내려온 개리슨이었다.

아무리 목석 같은 놈이어도, 하늘을 나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개리슨을 바라본 순간.

“아아, 주신 케르시아스여….”

표정 없이 몇 걸음을 걸어간 개리슨은 그대로 몸을 엎드려 땅에다가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제게 생명을 허하시고, 다시 대지와 재회하게 해 주신 것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

멀쩡하단 말 취소.

저 신부놈이 우리 중 제일 겁먹었었다.

아니, 그리고 케르시아스한테 기도하는데 왜 하늘을 보지?

걔는 지금 아린 뱃속에 있는데?

“빨리 좀 오지 그랬냐, 망할 조카놈이.”

그러는 사이, 등 뒤에서 나타난 검집이 툭, 하고 내 머리를 두드렸다.

“이래 봬도 최대한 빨리 뛰어온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자, 오랜만에 만난 이안이 날 보며 짓궂게 웃고 있었다.

“한 마디도 안 지는 건 여전하구만? 이럴 땐 그냥 예예 하고 넘기는 거다 이놈아.”

툭툭 하고 내 머리를 두드리는 검집을 치운 난 이안과 비슷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그러는 삼촌은 기사 시절에 상관한테 그렇게 했습니까?”

“나?”

그 말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랄, 그냥 닥치고 들이받았지.”

“…….”

계약문 안쪽에서 하늘날개 기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 광경이 떠올랐다.

노친네, 그때나 지금이나 성질 더러운 건 똑같았나 보네.

“아, 그러고 보니.”

회의실에 모이기까지 약 30분 남짓.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던 중, 난 사하크의 등에서 본 광경을 떠올리며 물었다.

“남쪽 평원에 뭔 일 있었어요? 땅이 다 뒤집혀있던데.”

단순히 땅만 뒤집혔으면 말을 안 한다.

수만 명은 되어 보이는 혼령이 들판을 자욱하게 채운 것이.

나중에 가서 위령이라도 해 줘야 할 판이었다.

“퇴각하던 제국군을 통째로 짓뭉개버렸지. 마법 한방에 말이야.”

“저 범위를 한번에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말한 이안은 푸우, 한숨을 쉬며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만한 짓을 할 사람이 달리 누가 있겠냐.”

“……아.”

그 말과 함께 등줄기에 찾아온 서늘한 감각.

심호흡과 함께 이안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클라인!”

그녀가 있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띤 채, 내게로 달려오는 인형 같은 소녀.

내 약혼녀, 시엘 라 아일라시스.

와락!

다시 만난 것이 감격인 듯, 시엘이 곧바로 내게 안겨 왔다.

그 뒤에선 부루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라이아의 얼굴이 보였지만, 지금 난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무사해서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클라인!”

마치 영웅소설의 히로인이라도 된 양 촉촉한 눈으로 그리 말하는 시엘의 모습.

“아, 예…….”

솔직히 그저께 싸웠던 브리간테보다, 난 이 여자가 몇 배는 더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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