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95화 (195/209)

195. 궁지에 몰린 쥐새끼

“전부…. 알고 있었다고?”

내 말에 교황의 한 손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계획한 신의 강림의식은, 200년 전에 이미 실패한 계획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아키몬드의 손에.

‘엄밀히 말하자면, 전부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경악에 찬 브리간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생각했다.

윈터폴을 감싸는 방어술식의 중추로써 설계된 얼음성.

그리고 그 거대한 구조를 가동시키는 성의 심장.

동료들과 선배, 그리고 내 스승의 혼이 녹아든 저것은, 그야말로 끝이 없는 힘을 내포한 존재였다.

이름 그대로, 신의 심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당시 교황이었던 프라한은 그 힘을 감지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제국의 침공을 용인한 것이었다.

아니, 단순히 용인만 한 것이 아니었지.

북부왕국 윈터폴을 이단으로 선포하고, 그 마지막 생존자인 날 대륙의 공적으로 선포하며 그 존재를 지워버리려 했으니까.

“그렇다면, 나와 교단은 처음부터……?”

브리간테 교황.

그나마 저 멍청한 애송이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하나.

제 신도와 부하를 산 채로 언데드화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점뿐이었다.

‘모를 일이지. 단순히 지식이 없어서 하지 않은 것일지도.’

지금은 죽어 없어진 쥐새끼, 교황 프라한의 상판이 떠올랐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네가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거지.”

“……!”

내 말을 들은 브리간테 교황이 헛숨을 들이키는 순간.

쿠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교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네, 이놈……!‘

방금 전까지 보이던 여유는 간데없이,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으르렁대는 교황.

“가면을 벗어던지니 좀 낫군. 브리간테.”

그런 교황의 말에 답하는 것은, 그의 머리를 향해 엔릴을 내려친 개리슨의 입이었다.

“병력의 절반은 언데드 군단에게, 나머지 절반은 의식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주변에 대기 중인 거인들이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안 그래?!

쿠콰아아앙-!

선봉으로 달려오던 거인의 가슴팍에 검은 불꽃이 작렬하는 동시에, 언데드 리치 앙헬의 마법이 거인을 옭아맸고.

- 검로는?

- 횡으로 두 번, 반격이 올 수도 있으니 박자는 조금 뒤틀어보지.

스걱-!

마력으로 이뤄진 사슬을 끊어내려 발버둥 치는 순간, 마력을 동조시킨 두 데스나이트의 합격기가 거인의 목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 밀집대형으로 이동 중인 적 다섯 구 발견. 제재하겠음.

쿠우우웅-!

후속으로 다가오던 거인들은 은빛 몸체를 지닌 거인에 의해 가로막혔고.

- 현 위치, 마법 지원 요망.

- 그리하지.

그곳에서 들려온 포효소리와 함께, 사하크의 몸에 새겨진 술식들이 한 번에 집중되어 작렬하기 시작했다.

쿠쿠쿵-!

한 번의 방어로 쓰러진 거인, 열셋.

개리슨이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교황의 옥좌를 세 번 내리치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크으?!”

수십, 수백 줄기의 성물이 줄줄이 꽂혀있는 제단.

그 꼭대기에 위치한 교황의 좌.

그곳에 군왕처럼 앉아 내내 사태를 관망하던 브리간테였으나, 이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관객이 아니었다.

“드디어 당신을 끌어내리게 되는군. 이교도.”

개리슨, 네놈이…!

그는 이제 관망하는 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

가장 위태로운 이 순간. 그에게는 자신의 죄를 떠넘길 인형도, 제 대신에 손에 피를 묻혀줄 도구도 없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지성 한 줌 없는 검은 괴물과 20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공포.

그리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번쩍이는 교단의 성물들이었다.

콰직-!

다섯 번의 망치질 끝에 교황의 보호막에 금이 갔다.

앞으로 세 번.

아니, 두 번이면 술식은 완전히 붕괴할 터.

‘전열이 무너진다면, 그때를 노려 궁병으로 처리시키면 그만이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난 성검을 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한때 저것과 비슷한 위치에 섰던 난 알 수 있었다.

놈은 지금,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고.

쿠콰아아아아앙-!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보호막을 깨던 엔릴의 마지막 일격이 내리쳐지는 것과 함께, 신성력으로 이뤄진 거대한 기운이 브리간테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크으?!”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난 개리슨이 내 옆에 착지했다.

놈의 방어막을 깨부순 것인가?

아니,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저 충격파는 브리간테가 직접 내보인 것.

저 몸 안에 쌓아놓은 거대한 힘의 편린이었다.

“놈이 뭘 하려는 거지?”

내 쪽으로 눈을 흘기며 그렇게 묻자, 난 착잡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최악의 선택.”

구구구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빙원의 얼음바닥이 쉴새 없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이런……!

먼저 이변을 알아챈 것은 마력을 보는 마법사, 앙헬이었다.

털썩-!

쿵-!

교황을 둘러싼 거인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몸체가 새하얗게 질린 채, 서서히 부서져 가는 모습.

힘을 전부 소진한 거인이 서서히 소멸하는 광경은, 마치 다 타고 남은 잿더미가 무너지는 듯했다.

- 저 자가 하려는 짓이 설마….

“네가 생각한 게 맞을 거야.”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언데드 스물을 부수면 마흔이 튀어나와 앞길을 막아대고.

그 틈바구니를 파고든 고위 언데드들은 착실히 거인의 수를 줄여가고 있었다.

수적 우위, 전술, 전투 지속 능력.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싸움은 교황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끝끝내 믿고 있던 마지막 한 수가 남아있다는 거겠지.’

그런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충격파로 이뤄진 연기에서 서서히 걸어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 기어코 내가 불완전한 강림을 하도록 만들었구나.

새하얀 갑옷을 두른 채, 연기를 헤치로 걸어오는 거대한 존재.

그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자욱이 깔려있는 망령들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저것이 두른 힘은 영혼을 소멸시키는 태양의 힘.

- 그러나,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야.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두려웠던 악마의 군세가, 지금은 한 줌 무지렁이들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야.

본래의 계획과는 한참 멀어진, 반쪽짜리 강신.

그렇지만 그가 이곳까지 오면서 먹어치운 신성력.

그리고 이 자리에서 먹어치운 수많은 혼은 반쪽짜리라는 오명이 무색할 정도로 고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 현세의 신으로 군림하기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브리간테.

아니, 케르시아스는 전투에 한창인 검은 거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크륵?!”

“크워어어-!”

그의 존재를 눈치챈 검은 거인들이 곧바로 그를 보좌하듯 도열했다.

- 신앙의 첨단이여, 나의 충실한 하수인이여.

지속된 전투로 인해 남아있는 거인의 수는 약 천.

그렇지만 그의 발 앞에 모인 저들은 지성 없는 야수처럼 움직이던 이전과는 달리, 질서와 절도가 잡힌 모습이었다.

- 내 병사로써, 그 사명을 다할 때가 찾아왔노라.

철커덕, 철컥.

마치 왕이 기사에게 검을 내리듯, 검은 거인들의 몸에 갑주와 무기가 주어졌다.

신성력으로 이뤄진 빛나는 갑옷과 태양 십자의 문양이 새겨진 창.

쿵-! 쿵-!

바닥을 두어 번 찍는 동시에, 일제히 들어올려진 창끝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먹구름을 헤치고 내리쬐는 태양빛.

그 태양빛 아래에 선 갑옷을 두른 태양의 신.

그리고 그 발아래에서 무기를 치켜든, 십자가를 짊어진 성스러운 군대.

“그야말로, 성전의 재림이로군.”

개리슨이 중얼거렸듯, 그 모습은 마치 성화의 한 장면.

타락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벌하기 위해 내려온, 신의 천벌을 그린 성화.

자신이 그 성스러운 현장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을 만끽하는 듯, 브리간테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환희에 가득 차 보였다.

- 망자의 군대가 세상을 덮으려 하니, 그 죄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로구나.

그렇게 내뱉은 브리간테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안에 응집되는 거대한 신성력.

그리고 곧이어서.

키이이이이잉-!

극한으로 응집된 신성력은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땅을 뒤덮은 언데드 군단을 일직선으로 그어버렸다.

쿠콰콰콰쾅-!

선이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폭발.

거기에 휘말린 언데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성력을 이기지 못한 채 소멸하고 있었다.

- 그렇지만 그 죄도, 오늘로 끝이다. 네놈의 군단도 내 힘 앞에…….

“풉-!”

케르시아스의 화신이 눈앞에 강림한 상황.

“푸하하하하하-!”

그렇지만 난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대신,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 뭐냐.

인상을 찡그린 브리간테의 말에 내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 뭐가 그렇게 웃기지?

“……?”

옆에 선 개리슨마저도 영문을 모른 채, 내 얼굴을 바라보는 상황.

그렇지만 난 도저히, 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 네놈은 결국 내 의식을 막지 못했고, 난 신의 권좌에 올랐노라.

“권좌…! 권좌래……! 푸하하하하!?”

- 네놈 같은 필멸자 따위, 지금 당장이라도……!

승리감과 힘에 도취한 브리간테가 뭐라 더 지껄이려던 순간.

“남의 제단에 들어와서, 남의 심장으로 그 모습이 되었는데, 그 힘이 네 것일 리 있겠냐?”

내가 툭 하고 내뱉은 한 마디에, 브리간테의 말이 중간에 멈췄다.

- ……뭐라?

얼굴이 굳은 그가 뭐라 더 입을 열려는 순간.

따악-!

내가 손을 튕기는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빛나던 제단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 강신의 성소가 빛나고 있다고? 의식은 이미 끝났을 텐데, 어째서……?

“의식이 끝나?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말한 난, 나와 동기화된 얼음성의 중추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

거대한 첨탑이 돌아가고, 성벽이 움직이며, 그곳에서 뻗어 나온 술식들이 온 공간을 잠식해갔다.

브리간테가 사용했던 성소는, 그렇게 움직이는 수많은 기물 중 하나.

쿵-!

이윽고 움직임을 멈춘 얼음성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변해있었다.

성벽으로 둘러쳐진 요새가 아닌, 창살로 이뤄진 감옥.

외부의 적을 거부하는 성의 형상을 한 그것은 이제, 안에 들어온 죄수를 가두는 투명한 감옥이 되어있었다.

“고생 끝에 드디어 제물을 준비했는데, 이제 ‘진짜’ 의식을 시작해야지.”

내 말을 들은 교황의 몸이 흠칫 떨렸다.

- 진짜, 의식이라고?

하늘 위에 떠 있는 그였기에 볼 수 있었던 광경.

반구형으로 자신을 가둔 이 거대한 새장의 중심에, 무엇인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히히!”

하녀복 차림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

그 옛날, 자신들이 굴복시킨 신의 육체에서 흘러나온, 부산물에 불과했던 존재.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 !!!!

그리고 그 순간, 브리간테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신의 육신과 가장 가까운 것이 누구인지.

언데드의 몸에 신성력을 채워 기워놓은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의 육신과 가까운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제물인가?

그토록 갈망했던 신은 누굴 먹이 삼아, 누굴 향해 깃들 것인가?

“아린.”

시시각각 절망해가는 교황의 모습을 지켜본 난, 언제나 그랬듯이 아린 녀석을 향해 말했다.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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