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내 목표였는데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물과 악취 가득한 하수구에서.
시궁쥐 한 마리를 얻겠다며 서로 다투는 이웃이라는 인간들에게서.
그리고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들과 똑같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내 부모라는 작자들에게서.
탁탁탁-!
누군가의 심심풀이로 매를 맞을 때도.
한 줌 빵에 팔려 어딘지도 모를 곳에 팔려왔을 때도.
미치광이 귀족의 노리개가 되어 온몸을 유린당하던 때도.
난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을 견디고 또 견딜 뿐이었다.
“형제들이여,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남고자 흘러들어온 곳이 이곳이었다.
남서부 난민 거주지에 찾아온 종교집단, 아키몬드의 손.
검은 로브로 온몸을 두른 채 외치는 교주의 종교의 교리를 설파하는 신도라기보단, 그저 되는대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붓는 광인에 가까운 자였다.
“위대하신 아키몬드님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미치광이가 교주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린 수많은 난민들.
제국의 정복 전쟁을 피해 도망친 이들은 빵 한 조각, 포도주 한 모금에 기꺼이 아키몬드의 열렬한 신도를 자청했다.
“아키몬드 님, 아키몬드 님……!”
“아아 위대한 분이시여, 제발 이곳에 임하시어 우리를 구하고서…. 제발…!”
당장 살길이 없는 자들에게 먹이를 주고, 목을 축여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모여든 난민들을 향해 말했었다.
돌아온 아키몬드가 우리 모두를 구할 것이라고.
전쟁으로 죽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있지도 않은 신에게 외치는 삼류 네크로맨서의 말.
그렇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그 말에 환호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제 피붙이를 선뜻 건네는 것이다.
그렇게 하수구 속 부랑아였던 내가 이곳에 흘러들어왔다.
내 옆에 웅크려 앉은, 저 녀석 또한, 그런 이유로 팔려온 것이겠지.
“아키몬드….”
어두운 지하 감옥.
창살 속에 갇혀있는 내 또래의 아이는 텅 빈 눈으로 그 이름을 되뇌고 있었다.
아키몬드.
아키몬드.
아키몬드.
마치 잠결에라도 그 이름을 잊지 않도록.
그 녀석은 끊임없이 되뇌고, 또 되뇌이고 있었던 것이다.
“야 너.”
어느 날.
실험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며 매를 맞고 돌아온 뒤, 난 그 녀석에게 물었었다.
“왜 계속 그렇게 외우는 거야?”
또래 아이가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던 것일까.
그 녀석, 개리슨 비어크만은 퀭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본 채 읊조렸다.
“기억해뒀다가, 죽여버리려고.”
“죽이다니, 무슨 수로? 아키몬드는 200년 전에 죽은 사람인데?”
이해가 가지 않아 그렇게 묻자, 개리슨은 그게 아니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말했었어.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흔적까지 죽는 건 아니라고.”
“흔적?”
그렇게 되묻자, 개리슨은 시선을 들어 한창 교리를 설파하는 교주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키몬드를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저놈들을…. 전부 없애버릴 거야.”
“……!”
몸 안에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본디 아이가 인식하는 세계란, 자신을 낳은 부모의 테두리 까지.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요, 부모의 말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을 ‘제물’이라며 팔아넘긴 것이, 다름아닌 그들의 부모.
부모에게서, 자신이 인식하는 세상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곧,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저 시체처럼 명줄만 붙잡고 있을 뿐.
“그다음에는 아키몬드와 관련된 모든 걸 부수고, 아키몬드와 비슷한 놈들도 전부 죽여버릴 거야.
하지만 이 녀석, 개리슨은 달랐다.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대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에게 복수하겠다 다짐하는 모습.
“…그럼, 나랑 같이 도망갈래?”
“뭐?”
그 모습을 보았기에, 팔리만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제물 보관소를 벗어나, 계속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좋아. 신성교단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거지?”
계획은 별 것이 없었다.
날 때부터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케르시아스의 신성력.
이것을 이용하여, 근처에 있는 신성교단의 신관들에게 신호를 보내자는 것.
“난 개리슨. 개리슨 비어크만이다. 네 이름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탓인지, 개리슨은 선뜻 내게 이름을 물어왔다.
“……팔리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목표를 지닌 자.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난 녀석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팔리만, 엘.”
***
쿠르르르르…….
“………아아.”
전투가 끝난 얼음성 내부.
연기가 자욱하게 낀 공동 한가운데에서, 바람 빠진 팔리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툭, 투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서, 그리고 성검.
두 성법기가 공명하며 동시에 빛을 발한 순간, 자신의 의식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곳까지 데려온 언데드들은 반응이 없고.
성혈을 복용하며 형성해온 자신의 신체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쿨럭!”
기침과 함께 울컥 차오르는 피.
팔리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패배했다는 것을.
‘신체는 아직 복구할 수 있다. 마무리를 내지 않은 것을 보니, 클라인 공자 쪽도 손실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기량, 전략, 얼음성에 숨겨둔 마지막 한 수 까지.
팔리만의 완벽한 패배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음 대책을 생각했다.
교단에 몸담은 뒤, 지금까지 계속 인내해온 세월.
그 결실이 눈앞에 있으니,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
“포기해라. 팔리만 엘.”
“?!”
등 뒤에서 들려온 낮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신부복 차림의 산적과 같은 남자.
음영 속에 가라앉은 얼굴은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했다.
“개리슨….”
자신과 함께 그 지옥을 탈출한 자.
그의 삶에 있어서, 유일하게 친우라 칭할 수 있는 인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숙적이라 여기던 자의 이름이었다.
“자네가, 여긴 무슨 일인가?”
“교황을 죽이러 왔지. 곧 이곳으로 올 테니 말이야.”
난 안중에도 없었다는 건가.
매정한 친구 같으니.
울컥 솟아오른 핏덩이가 그렇게 말하려는 것을 틀어막았다.
“성하를, 죽이겠다라….”
교황 브리간테.
단 한번의 배신을 위해 평생을 모셔온 늙은이.
팔리만은 허탈한 듯 마른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
교황의 본대가 어떤 상황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장벽에서 이뤄진 예상 밖의 저항에 주춤했지만, 단지 그뿐.
“처음 계획한 대로, 성기사들은 성물의 영향으로 검은 거인으로 변이했네.”
“…….”
“그들은 얼음성의 방어를 뚫고, 뒤이어질 강림 의식을 위한 제물로써 사용될 테지.”
자신이 다루던 것들에 비해 성능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수천 구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규모.
만신창이가 된 클라인에게 개리슨이 가세한다 한들,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성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 있다.”
단언하는 개리슨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많이 아프세요?”
머리맡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팔리만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당, 신은……?”
“히히!”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
그녀를 본 팔리만의 눈이 커졌다.
그간의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하녀복.
그리고 투명한 유리바닥을 서서히 잠식하는 검고 탁한 기운.
팔리만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아이, 인간이 아니라고.
“…허.”
그렇게 생각하며 팔리만은 시선을 밑으로 내려, 바닥을 짚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헛웃음을 흘린 것은 자신의 손 때문이 아니었다.
꾸득, 꾸드득.
그림자에서 솟아난 수많은 이빨과 군침을 흘리는 혀.
그와 함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미 그림자에 절반 정도 먹혀버린 자신의 몸이었다.
“그런 것이었나?.”
반신의 경지에 다다른 자신의 육체를 먹는다.
그 사실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이었다.
“저 소녀는, 크리펠 지하에 잠들어있던 그것이로군.”
점액질처럼 땅에 들러붙어, 그저 주어지는 먹이만을 먹어대던 짐승.
실패작이라 생각하여 처분한 그것은, 기어코 사람의 형태를 스스로 빚어내어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클라인 공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클라인을 보며 팔리만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당신을 죽였다 한들, 교단의 계획이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로군요”
처음부터 실패할 계획이었다?
아니, 그것 이상이다.
저 소녀는 교단이 만들어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무결에 가까운 신의 육체.
그리고 그것은 지금, 자신의 몸을 양분 삼아 그 형태를 완성시켜가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
자신은 싸움에 임하기 이전부터, 그에게 패한 것이었다.
“개리슨.”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대답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말하고, 개리슨은 들을 뿐이었으니까.
그 뒤 목을 조르든, 무기로 위협을 하든.
개리슨이 판단할 일이겠지.
“내 계획을 일그러트린 사람은, 결국 자네일세.”
“…….”
탐욕스러운 쓰레기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반목을 부추겼다.
그들의 파멸을 음미하며, 그 잔해에서 힘을 얻고자 했다.
그렇게 물밑에서 힘을 끌어모으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자네를 크리펠로 보낸 그때, 모든 균열이 시작되었단 말일세.”
그의 인생을 알고 있기에 크리펠로 보낸 것이었다.
아키몬드의 환생이라 불리는 아이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것을 쳐 죽일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모든 균열의 시작이었으니.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팔리만은 그간 묻어두었던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왜 그때…. 클라인 공자를 살렸나?”
“…….”
“아키몬드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죽여 없애겠다 맹세한 자네가, 왜 그 환생을 감싸며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온 것인가?”
흐릿한 의식 속에서 가까워지는 죽음.
그런 와중에도 팔리만은 그 이유를 듣고자 했다.
“다른 이도 아닌 자네가, 어째서 그를…….”
“그곳에서 놈을 보았을 때, 진작에 깨달았기 때문이겠지.”
그의 말을 끊고 들려온 개리슨의 대답에, 팔리만의 눈이 흔들렸다.
“내 인생을 망가트린 것은 아키몬드가 아니라, 그 위업에 현혹되어 창궐한 악의라는 것을.”
그렇게 말한 개리슨이 팔리만에게 보인 표정은, 측은한 동정이었다.
“아키몬드의 손, 교단, 그리고…. 네놈이 품었던 악의 말이야.”
“……하하, 알고 있었나?”
그깟 버러지들과 자신을 비교하다니.
잠시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래, 같았지.”
“…….”
“내 인생을 나락으로 처박은 그 자들과 같은 길을 선택했어.”
반신의 경지에 올라, 얼음성을 취하려 했다.
직접 만든 언데드를 수족으로 다루며, 무한한 권능으로 대륙을 호령하고자 했었지.
200년 전 이 자리에 선 네크로맨서가 그리했던 것처럼.
이유는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채.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데…. 참 개탄스러운 일이지.”
점점 초점을 잃어가는 눈으로, 팔리만은 고개를 돌려 클라인이 쓰러진 곳을 바라봤다.
“내 삶을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키몬드는, 어째서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단 말인가?”
“……!”
그 말에 개리슨이 헛숨을 들이켰다.
뭐라 더 물으려 한 개리슨이었지만, 그 순간에도 아린의 그림자는 시시각각 팔리만의 몸을 잠식해갔다.
스스스스……!
얼굴만 남은 채 파묻혀가는 그의 육신.
종국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녹아들어, 이 그림자의 양분으로 화할 테지.
혼조차 구제받지 못하는 완전한 소멸.
그 사실을 직감하자, 낯선 감각이 그를 엄습했다.
“하, 하하….”
교단에 몸담은 뒤, 처음으로 느낀 감정.
“설마 내가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건가……?”
그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그림자는 그의 얼굴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며, 개리슨은 눈을 내리깐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적이자, 그의 벗이었던 남자. 팔리만 엘.
그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