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87화 (187/209)

187. 성전?

대장벽 맞은 편.

태양 십자군 본영.

임시로 지어진 천막이었지만, 그 내부는 마치 교회를 통째로 옮겨놓기라도 한 듯 정갈하고 깨끗한 모양새였다.

“…….”

“……….

그렇지만 그 깨끗한 외관과는 달리, 높은 의자에 앉아있는 교황의 얼굴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교황의 옆에 선 다른 고위 성직자들은 그 압박에 눌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의 목표는, 하루 안에 장벽을 돌파한 뒤 동토지대로 향하는 것일 터인데….”

그러던 중, 한참만에 열린 교황의 입에서 스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 성하…….”

그 목소리를 들은 성기사단장이 뭔가 대답하려 했지만, 감히 교황의 말을 도중에 끊을 수는 없는 법.

“헌데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장벽은 아직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어지는 질책에 성기사단장 주스틴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소, 송구스럽습니다. 성하. 그, 그것이……!”

북부의 동장군보다도 더욱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교황 브리간테와 그와 함께하는 성직자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주스틴은 이를 악문 채 되뇌었다.

‘말해야 한다…. 말해야 해…!’

이 전쟁은 잘못되었다.

애초에 시작해선 안 되는 전쟁이었다.

그렇게 되뇌인 끝에, 주스틴은 가진 용기를 전부 쥐어짜 냈다.

“상대의 방어가 너무나도 견고합니다. 예상치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되는 병력이 장벽 내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교국의 정보원이 파악한 장벽의 수비군은 두 종류뿐이었다.

큰까마귀 기사단.

그리고 감시자.

그렇기에 이 전쟁을 기획한 교황과 추기경들은 짧은 판단을 내렸다.

‘기사들은 성기사가 맡는 사이 성물로 강화한 심판관들과 괴수를 투입한다면, 성벽은 오래지 않아 붕괴할 것이다.’

북부 전력의 태반이 부켄하임 성에 집중된 사이 이뤄진 기습.

이 원정은 본래, 적의 증원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계획이었다.

“확실히, 두 공작가에서 증원을 보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지.”

그렇지만 수비군이 장벽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촤르륵-!

성벽을 뛰어넘은 괴수를 맞이한 것은 폴와이번 기사들의 창이었고.

화륵-!

뒤이어 성문을 공략하려던 자들에게는, 아일라시스 학파의 전매특허인 화염구가 쏟아졌으니까.

“아무리 예상치 못한 증원이라 한들, 우리 병력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일 터.”

그런 상황을 똑똑히 보았음에도, 추기경들은 납득한 기색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또한 돌발상황을 대비하여,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성물의 은총을 부여한 것이 아니더냐.”

“로한 추기경의 말이 맞소!”

“성물을 준비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갔는지……!”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괴수를 더 만들 걸 그랬습니다. 이리 시원치 않아서야…….”

추기경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다른 추기경들도 그에 맞장구쳤다.

“…….”

신관이라는 자들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망언.

그 말을 들은 주스틴은 이를 악물었다.

‘병사들의 안위보다도, 그들의 몸에 박아넣은 성물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주스틴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아니, 사적인 감정은 일단 치우자.’

지금의 그는 휘하 수만 명의 병사들을 책임진 자.

사사로운 감정으로 부딪혀 봤자, 오히려 일을 그르칠 것이다.

그는 설득해야 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교국에서 이곳까지의 강행군으로, 병사들은 이미 한계에 달했습니다.”

단순히 진군하는 것뿐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장벽에 도착한 뒤 사흘.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이뤄진 공성전은 일반 병사들을 완전히 탈진시켰고, 북부의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는 지친 병사들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고 갔다.

현재 원정군 전체에서 발생한 동사자만 5천.

심장에 박힌 성물의 과부하로 몸이 터져나간 자들만 2천이었다.

“게다가 한 무리의 감시자들이 남하하여, 보급부대를 급습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왔습니다.”

폴와이번의 기사단, 큰까마귀 기사단, 그리고 아일라시스의 전투마법사.

수성에 특화된 이들이 빈틈없이 성벽을 지키면서, 감시자들 역시 숨통이 트였다.

성 밖으로 나간 그들은 그간의 특기를 살려 숲속으로, 산속으로 이동하며 교국의 보급부대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었다.

주스틴이 받은 보고는 그 정보의 편린에 불과할 터.

사실상 원정군의 보급선은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점령지를 관리하지도 않고, 그저 진군하는 것만 생각했으니 이 사달이……!’

그렇게 생각하는 주스틴이었지만, 그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은 전황이 아니었다.

“그까짓 보급이 없다 해서 싸움을 거부하다니….”

“말세입니다. 빵 조각 하나 때문에 성전이 불가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도대체가, 신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태입니다. 교단의 법도가 언제 이렇게 땅에 떨어졌는지….”

교국에서 이뤄진 대숙청은 수많은 고위 신관들을 형장의 이슬로 만들었다.

숙청된 신관들의 태반은 재무, 군사 등 교국의 핵심적인 실무를 맡던 중진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보다시피 이런 쭉정이들이었다.

“성하, 이대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면면을 둘러보던 주스틴은 이내 결심한 듯 교황을 향해 간언했다.

“지금은 공격하는 것보다 병력을 재정비하고, 보급선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부디 청컨대 다음 공격은 사흘, 아니, 일주일 뒤로 미루시어……!”

“어디 성기사단장이라는 자가 그따위 약한 소리를 지껄이는가!”

그런 주스틴을 향해 추기경 중 한 명이 호통쳤다.

“아무리 전황이 암울하다 해도, 그것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성의 첨병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

병법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그저 정신론만 지껄여대는 무지렁이들.

그렇게 생각한 주스틴이었지만, 추기경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었다.

이들은 군사가 아닌 신관.

군사적 이점과 실리보다는 신앙의 깊이와 충성심으로 무장한 이들이었으니까.

정확히는, 교황 브리간테를 향한 충성심에.

“애초에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알고는 있는 것인가? 북부의 악마를 처단하고, 신의 위상을 현현시키는 성전이란 말이다!”

“성하께서 아량을 베풀어 위대한 과업에 함께하는 영광을 베풀었거늘, 저 유약한 자들은 그것조차도 버티지 못하다니!”

추기경들의 그 말에 부복해있는 주스틴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았다.

“성전? 성전이라고요?!”

남아있던 한 줌 인내심이 끊어지고, 봇물 터지듯 그간 억눌러왔던 것이 쏟아져나왔다.

“후방에서 이뤄진 급습으로 보급선은 진작에 붕괴했고, 병사들의 태반은 성물의 부작용과 추위 때문에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지닌 신성력이 방출되며, 주스틴의 음성이 추기경들을 압도해나갔다.

“무고한 이들의 시체를 짓밟고 나아가는 것이 성전입니까? 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목숨을 허비하는 것이 어딜 봐서 영광이란 말입니까?!”

“뭐가 어쩌고 어째?!”

“저, 저저……!”

예상하지 못한 강한 어조에 추기경들이 반발했지만, 주스틴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하고자 일어선 우리 신성교단이, 어째서 무고한 이들을 전쟁에 들이미는 것입니까?! 도대체 이 성전이 무엇이길래요?!”

그렇게 외친 성기사의 시선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교황을 향해 쏟아졌다.

“대답해 주십시오 성하! 우린 왜 이곳에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까?!”

“…….”

교황을 향한 질문에 추기경들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

이윽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교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는 참으로, 생명을 위하는 성기사로구나.”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든 교황의 표정은 미소였다.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무고한 생명을 지키며, 케르시아스 님의 위대한 뜻을 받드는 기사.”

“…….”

“그대는 참으로, 성기사의 귀감이라 할 수 있는 자야.”

마치 성자와도 같은 인자한 미소.

그런 미소와 함께 자신을 치하하자, 주스틴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감돌았다.

“주, 주제넘은 발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성하. 그렇지만 전….”

“알고 있느니라. 의문이 많았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가간 교황은 슬며시 그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싸우는가? 북쪽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야.”

그렇게 읊조리던 교황은 슬며시 그와 눈을 마주했고.

“그리고 그대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예?”

푸욱-!

그 말과 함께, 주스틴의 어깨를 잡은 교황은, 비어있는 한 손으로 그의 심장에 무언가를 박아넣었다.

“어, 어억……?!”

저 늙은 몸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완력.

거기에 놀라기 전에, 주스틴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서, 성하…! 갑자기 이게 무슨……!”

“성기사란 신성의 첨병이요, 교단의 창날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그의 심장을 찌른 브리간테의 손이 빠져나갔다.

떨리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본 주스틴.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것은, 금빛이 아닌 검은 빛으로 물든 말뚝이었다.

“아아…! 아아아……!”

“그러니 그대들은 생각해선 안 되고, 판단해선 안 되며, 고민해선 안 된다.”

자신의 몸에 무엇이 들어왔는가.

그것을 눈치챈 주스틴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검은 말뚝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몸을 유린했다.

검은빛으로 물들며 점점 거대해지는 팔.

공성전에서 본 적 있는 그 형태에, 성기사 주스틴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교황을 바라보았다.

“공성전에 사용된 괴수들, 설마 그것을 만드는 재료가……?”

숙청당한 것은 신관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교황의 방침에 반대하던 성기사들.

그리고 그들을 제압해 감옥에 처넣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주스틴 자신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에 고통받았으니, 이제는 편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는 사이, 얼굴 전체를 감싼 검은 기운은 주스틴의 뇌를 침범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가 가져왔던 의문, 걱정, 번뇌가 사라지고, 끝없는 투쟁본능만이 그의 정신을 잠식해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사람? 아니지.”

마지막 단말마로써 입을 연 주스틴이었지만, 교황은 덤덤히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난 곧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지고, 신의 권좌에 앉을 몸이니라.”

“……!”

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도 잠시.

“크워어어어어어어---!”

성기사 주스틴.

아니, 과거에 주스틴이었던 검은 괴수는 괴성과 함께 천막을 뛰쳐나갔다.

“전임 사령관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뿐이로군.”

그렇게 말한 교황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성기사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부디 이번 전투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네.”

“모, 목숨을 걸고 장벽을 뚫어 보이겠나이다!”

그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교황이 천막 밖으로 나갔다.

“크르르……!”

“캬아아악-!”

성물의 힘에 미쳐, 야생동물처럼 으르렁거리는 병사들.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자들.”

교황은 그런 그들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대들이야말로 정녕 나의 검이요, 나의 병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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