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85화 (185/209)

185. 최후의 용

쿠콰아아아앙-!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몸속의 마기가 뭉텅이째 빠져나갔다.

“크으으!”

그저 한 번, 날개를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녀석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데스나이트 두 명을 그대로 역소환시켰다.

- 크워어어어-!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사하크의 머리.

그렇지만 난 레이븐과 키예스의 마력 파장을 동조시켜, 그것을 옆으로 빗겨 쳐냈다.

쿠우-!

받아치는 것도 아니고, 흘려내는 것이 한계다.

정상급 데스나이트 두 명의 합격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 아무리 사하크의 육신이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는군.

- …….

직접 공격을 받아내고도 그 사실이 어이가 없는 듯, 두 데스나이트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입을 열었다.

- 생전의 사하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힘일세. 애당초 그 녀석은…….

“용족들 기준에선 미숙아였지. 나도 알아.”

레이븐의 말에 답하면서, 내 눈은 뼈로 된 사하크의 육신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름 아닌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한 발짝 물러서, 날 내려다보는 녀석의 몸을 보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의 뼈.

죽은 용의 뼈에는 수많은 마법술식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그의 움직임에 맞춰 자동으로 온갖 마법을 뿜어대고 있었다.

쿠콰아아앙-!

열과 빛을 조합한 폭렬마법을 사용하자, 그와 반대되는 속성의 보호막이 자동으로 발현하고.

- 크워어어어어-!

그의 포효에 맞춰, 수십 가지의 자연계 공격주문들이 날 향해 쏟아졌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불속성 마법이.

다리 관절을 움직이면 냉기 속성을 지닌 안개와 고드름.

날개를 펼친다면, 본드래곤의 거체를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일대를 휩쓸었다.

‘역시,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그대로군.’

온 뼈를 뒤덮은 마법술식과, 그 술식을 작동시키고자 남겨놓은 드래곤 하트.

마치 정밀한 기계처럼 짜임새 있게 형성된 본드래곤의 모습은, 정밀하게 만들어진 기계장치를 보는 것과 같았다.

‘기계장치라, 맞는 표현이지.’

타이탄을 불러 내게로 날아드는 마법들을 막아내는 동시에, 200년 전의 상황을 유추했다.

아키몬드가 베르켈의 검에 쓰러진 순간.

적의 수뇌인 나를 제거함으로써, 연합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이는 동시에, 원한과 념으로 점철된 수백만 언데드들이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는 것.

원래같았으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내가 불러낸 언데드들은 각자가 품고 있는 한을 풀고자 사방으로 폭주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 얼음성의 언데드가 폭주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얼음성에 침입하여 언데드들을 빼가려는 시도는 숱하게 있었다.

내가 직접 궤멸시킨 아키몬드 교단.

개리슨의 인생을 망친 종교집단, 아키몬드의 손.

수많은 네크로맨서, 아니.

네크로맨서 흉내를 내는 버러지들은 끊임없이 얼음성에 쌓여 있는 언데드들을 노렸지만, 그들 중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레이븐의 통제권을 얻은 그때 그 녀석 정도였을까.

‘그렇다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 누군가가 얼음성의 언데드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얼음성을 빼앗은 제3자의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해지고자 발버둥 쳤던 이유는, 얼음성을 점거한 그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였지.

그렇지만 내 어머니 클레어를 만나 진상을 들었던 그 순간, 난 얼음성을 점거한 자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수백만 언데드를 통제할 수 있는 거대한 힘.

얼음성의 구조를 알고, 그것을 운용할 수 있는 지성.

그리고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혼들의 의지에 잠식되지 않은 강인한 의지.

각각의 것을 가진 사람은 대륙에 숱하게 있었지만, 그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진 인간은 대륙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이 아닌 자라면.

영원의 세월을 사는 용족의 마지막 생존자라면,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터.

‘설마 언데드가 된 건 예상외였지만 말이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 크르르르르……!

200년의 세월과 수백만 명의 원혼.

그리고 본능적으로 산 자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언데드의 육신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그의 정신은 마모되어, 본래의 그가 지니고 있던 지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과 오갈 데 없는 투쟁본능, 그리고 산 자를 향한 증오뿐.

“그렇다면, 끊어줘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난 계약문을 작동시켜 언데드를 불러냈다.

- 대행자들을 처치한 게 엊그제인데, 쉴 틈을 주지 않는군.

- 위험하다.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존재보다.

레이븐, 키예스.

환생한 이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나와 나란히 섰다.

“앙헬, 그때 했던 것. 기억하고 있지?”

- 몸 함부로 굴리는 건 언제 고칠 생각인가?

등 뒤를 돌아보며 묻자, 리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마력을 보낼 준비를 했다.

“타이탄.”

- 명령 대기 중.

2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 명령을 따르는 강철거인이 그 앞에 버티고 섰다.

- 크르르르……!

이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한 듯, 사하크의 거체가 서서히 몸을 낮췄다.

마법사 십수 명이 함께 사용해도 될까 말까 한 대마법진이 수십 개.

홀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임계상태에 다다른 채 날 노리고 있었다.

“아직 이성이 남아있다면, 들어라.”

거대한 용의 잔해와 맞선 난, 방어태세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째서 얼음성을 지키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면서까지 이 곳을 지키는 집념은, 사람의 감성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한 베르켈의 안배일지도, 아니면 그저 내 잔재로부터 세상을 지키고자 한 네 의지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읊조리며, 난 검집에 꽃인 수정검을 뽑아 들었다.

스스스스……!

얼음성의 토대가 되는 설화수정을 깎아 만들어낸 검.

내 마기를 머금은 투명한 검신은, 얼음성 곳곳에 흩어져있는 다른 수정과 공명하여 점점 빛을 더해가고 있었다.

“네 뜻이 어느 쪽이든, 내게는 널 뚫고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지금의 그가 붙들고 있던 언데드들의 고삐를, 내가 다시 틀어쥐어야 하는 이유.

“교단의 야망을 저지하고, 그들이 붙들어놓은 신을 없애야 한다.”

- …….

“제국을 타도하고, 베르켈의 가문을 부흥시켜야 하고.”

단순히 부흥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된다.

그들은 200년의 세월에 걸쳐, 대륙을 지키고자 인내해 온 자들.

그리고 난 그런 그들을, 북부의 새로운 왕가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 목표의 대전제로써,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

윈터폴의 몰락을 바라보고, 제국의 타락을 보았다.

신성을 외치던 교단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도, 그들이 힘없는 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도 똑똑히 보았다.

두 번의 삶.

그리고 변치 않는 그들의 악의를 보며, 난 마음을 굳혔다.

“신의 심장을, 내 손으로 부순다.”

***

- …….

아이신기오르 제국이 ‘인간의 시대’를 선포한 지 200년이 되어가는 해.

제국의 확장정책과 정복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이종족들의 대가 끊기고, 그들의 터전에는 인간의 도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종의 황혼기.

그리고 그 대륙의 북쪽 끝 설산에, 그가 있었다.

용족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종족전쟁의 패잔병.

흑룡 사하크는 지나가는 세월을 감내하며, 자신의 레어에 웅크려있을 뿐이었다.

“그대가, 최후의 용인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던 어느 날.

자신이 쳐 놓은 수많은 방어술식을 돌파한 도전자가 그의 앞에 섰다.

“내 이름은 베르켈 라인란트. 윈터폴의 기사다.”

- 기사….

검은 비늘이 남아있던 그때의 그는 그렇게 기사라는 이름을 읊조렸다.

기사라…. 그래.

이름은 들은 적이 있다.

마력을 품은 쇠막대기를 들고, 하등한 낙서를 마법이랍시고 새겨넣은 고철을 두른 자들이 있었지.

그리고 그 미약한 자들의 손에, 자신의 종족은 죽음을 맞이했다.

- 그래, 너희들이 그 영웅이라는 자들이군.

인간은 기사를 영웅이라 부른다 했다.

홀로 거대한 용과 맞서는 기사의 이야기.

이 대륙에 번성한 인간이라는 종들 사이에선, 그런 허황된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 그래서, 인간의 영웅이 내게는 무슨 볼일이냐.

그렇지만 그 영웅을 앞에 두고도, 베르켈을 바라보는 사하크의 눈은 평온했다.

- 지성 있는 다른 종족을 전부 멸망시키고, 이제는 같은 종족에게 멸망 당하고 있는 네놈들이, 왜 날 찾는 것이지?

자신과 다른 종족을 전부 멸절시킨 인간은, 그들의 본능을 버리지 못했다.

세계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오자, 그들은 민족, 인종, 국경으로 서로를 구분 지었고, 종국에는 자기들끼리의 전쟁을 반복했지.

그리고 그런 인간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인 인간이 있었다.

- 네놈들은 아키몬드라는 자와 싸우기에도 급급할 텐데 말이야.

“……인간에 대해 꽤 잘 아는군.”

- 잘 알지.

종족의 치부가 들킨 것이 부끄러운 듯, 베르켈이 고개를 돌렸다.

- 윈터폴의 네크로맨서, 아키몬드. 동족의 복수를 외치며, 동족의 혼으로 죽이는 인간.

“…….”

- 너흰 그자의 힘을 두려워하며, 수많은 악명을 붙이고 있더군.

그 악마를 만들어낸 것이 그들 자신인 것은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야.

그렇게 덧붙인 사하크는 자신과 마주한 기사에게 물었다.

- 그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 내 육신이 필요하더냐?

“……!”

인간이 용을 잡는 이유의 대부분이 그것이었다.

용린으로 만든 갑옷은 성처럼 견고하고, 용골로 벼려낸 검은 그 어떤 금속이건 손쉽게 잘라버렸으니까.

그리고 용의 심장으로 만든 마도구는 용을 죽이는 무기로써 다듬어져, 수많은 동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 갑옷에 쓸 비늘이 필요한가? 검에 사용한 뼈가 모자라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너희들의 힘을 키울 심장이 탐나느냐.

그렇게 수많은 동족이 그들의 무기가 되었고, 인간은 그 무기들을 자기들끼리의 전쟁에 사용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동족상잔의 역사.

그것을 오랜 시간 봐 온 사하크였기에, 그는 확언할 수 있었다.

- 내 육신으로 무구를 빚어낸다 한들, 그 미치광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 불가능하겠지.”

그러자 용의 말을 들은 베르켈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네 육신이 아니야.”

- …….

다른 인간과는 다른, 한 치의 흐림도 없는 눈동자.

그곳에 담긴 의지를 가늠하는 사이, 베르켈은 사하크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에겐, 네 도움이 필요하다.”

잠시, 정적.

천천히 그의 말을 곱씹던 사하크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 ……어처구니가 없군.

짧은 모독과 함께, 사하크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용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인간이, 이제 와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인가?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

“나도 알아, 염치없는 말이라는 거.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베르켈이라는 기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죄를 진 것은 우리들이지, 곧 태어날 생명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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