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83화 (183/209)

183. 죽으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후우…….”

공기를 내뿜자, 새하얀 연기가 훅 하고 뿜어져 나왔다.

혹한을 넘어,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북부 대장벽.

두 번의 삶을 이곳에서 지내왔건만, 이곳의 추위만큼은 조금도 적응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끼이익-

“여긴 언제 와도 그대로구만.”

탐사 한계선 끝자락에 위치한 감시초소.

레이븐을 만날 때 들렀던 허름한 오두막은 내가 떠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니, 저번에 왔을 때 버려뒀던 가죽끈이 그대로 남아있을 수준이니까.

“흐어…! 허, 커헉!”

“도, 도착했다……!”

두터운 털가죽을 두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며 오두막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털썩-!

안전지대에 들어온 순간 긴장이 풀린 탓인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누지 못한 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안내는 개뿔, 내가 다 업어왔네.”

뒤이어서 들어온 난 지체없이 등에 메고 있던 짐을 오두막 한 편에 벗어놓았다.

“빨리 일어나서 짐부터 풀어. 감시자가 나보다 먼저 뻗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난 나보다 먼저 퍼져버린 두 명의 안내자들을 바라보았다.

모름지기 감시자란, 혹독한 설원을 제집처럼 누비는 자.

행동 하나하나에 오랜 경험이 깃들어있던 이들과는 달리, 이번에 날 안내한 감시자들은 행동 하나하나에 인간미가 돋보였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흘 밤낮을 쉬지도 않고…!”

“선배님들도 이렇게까지 굴리진 않으셨는데….”

앞서 말한 경력있는 감시자들을 선배라 칭하는 모습.

그리고 북부계 특유의 흰 피부가 아닌, 동부 사막 특유의 적갈색 피부까지.

이들은 원래 이곳에 주둔하던 감시자들이 아니라, 티무르의 부족 출신들이었다.

“너희들을 이렇게 굴리라고 주문한 게 그 선배들이다. 잔말 말고 일어나.”

그렇게 말하며, 난 오두막 한편에 마련된 화로에 마른 장작을 던져넣었다.

화륵-!

불붙인 부싯깃을 집어넣고 바람을 불어넣자, 장작불은 금세 화로를 가득 메웠다.

불의 열기가 올라올수록 얼음장같던 오두막 안에 열기가 돌고, 그제서야 함께 온 이들의 몸이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오, 오오! 불이다!”

“어후, 이제 좀 살겠습니다.”

“그러냐.”

그렇게 짧게 말한 난 저들의 모습에서 예전에 날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땐 내가 저런 몰골이었다 이거지.’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땐 힘에 부쳐 헉헉대던 쪽이 나였고, 그런 날 보며 낄낄대던 감시자들이 있었지.

그랬던 것이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으니.

새삼 이전에 비해 성장했단 사실이 실감이 났다.

“손 가까이 대지 마, 갑자기 불에 닿으면 이따 복귀할 때 더 고달프다.”

“아, 예!”

툭 하고 던진 조언을 경청한 감시자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체력을 열의로 채우는 저 모습.

영락없는 신입 대원들의 모습이었다.

‘코락스. 어째 순순히 보내준다 싶더니.’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난 이들을 나와 동행시킨 장본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설원을 주파하는 김에 겸사겸사, 신입 교육을 나한테 떠넘겼다 이거지?’

장장 4일 동안의 강행군.

쉴새 없이 설원을 주파하는 와중에도, 난 저 신입 감시자들이 버벅대는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줬다.

지도 보는 법, 별의 위치를 통해 방향을 판단하는 법, 설원지대에서의 사냥과 은신처 제작까지 가르쳤으니까.

“알려준 거 잘 숙지하고, 당분간은 여기 날씨에 익숙해지도록 해. 돌아가면 장벽이 따뜻하다고 느낄걸?”

그렇게 말하자, 초소에 당도하기 전을 떠올린 듯, 감시자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예, 정말 그랬죠….”

“장벽보다 추운 곳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에 비하면 봄날입니다.”

아마 이들에겐 더 혹독한 환경이었을 터다.

타는 듯한 더위, 그리고 메마른 모래.

그런 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이들이, 이제는 설원을 누벼야 하는 상황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 채 적응하지 못한 이 녀석들에게 있어, 이 나흘간의 여정은 꽤 좋은 교육이 되었을 터였다.

‘하여튼, 사람 놀리는 일이 없단 말이지.’

이 녀석들을 붙인 장본인, 큰까마귀 기사단장 코락스.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자기들 사람 취급이어도 그렇지, 자기네 신입 훈련을 나한테 맡겨버리는 게 말이 돼?”

“그만큼 신뢰하고 계시는 겁니다.”

감시자 중 한 명이 내 푸념에 허허 웃으며 답했지만, 그것을 듣는 내 표정은 그리 편치 않았다.

“신뢰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장벽의 인원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런 뭐….”

“교국의 침공이 코앞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이들은 타오르는 화롯불에 시선을 옮겼다.

기량이 미숙하기에, 동료들과 같은 전장에 설 수 없다는 망연함.

그 기분이 어떨지는, 200년 전에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렇지만, 한시가 급한 와중에 과거 회상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생각을 정리한 난 아직도 누워있는 한 사람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어딜 은근슬쩍 자려고 합니까? 빨리 가서 식량 좀 꺼내와요.”

“우으으.”

발로 몇 번 흔들자, 방한 장비에 파묻히다시피 한 푸른 머리칼이 뽁, 하고 튀어나왔다.

“힘없는 수녀에게 발길질이라니, 이건 역시 악덕귀족의 횡포….”

“이쪽은 반란군이고, 그쪽은 파문당한 거 아닙니까? 범죄자는 고발권 없어요.”

“으에에에….”

쓸데없이 박식해.

그렇게 중얼대는 그녀를 가차없이 일으켜 세우자, 스텔라는 흐느적거리면서 자신이 메고 온 등짐 쪽으로 걸어갔다.

“아, 아무리 그래도 스텔라 수녀님은 그대로 둬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본 한 감시자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고, 옆에 앉아있던 감시자 역시 그에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저희라면 몰라도, 수녀님께서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하, 놀랍기는 무슨.”

걱정스러운 눈으로 스텔라 쪽을 보던 감시자들을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니들은 저게 탈진한 사람처럼 보이냐?”

그렇게 말하며 스텔라 쪽을 가리키자, 스텔라를 본 감시자들의 눈이 단번에 커졌다.

“어, 어어?”

“저걸 어떻게 한 손으로?”

나와 감시자들, 그리고 스텔라가 각각 메고 온 배낭들.

각종 병장기와 무구로 이루어진 그것의 무게는, 이들의 몸무게를 가볍게 넘어간다.

몸무게의 두 배가 되는 짐을 지고, 4일을 주파하는 여정.

그렇지만 스텔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손으로 배낭 두 개를 한 번에 들어 올렸다.

“파문당하긴 했어도, 교황청 직속 전투수녀다. 적어도 너희 둘보단 쌩쌩할걸?”

“에, 예?”

“말도 안 돼…….”

교황청 직속 전투수녀임과 동시에, 다음 세대 대행자의 유력한 후보였지.

그것도 교단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개리슨의 후계자로.

“원래 같았으면 추기경이든 대행자든, 교국에서 한자리 톡톡히 해먹었을 거야.”

“그랬던 게 지금은 공자님 덕분에 백수 신세고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사이, 터벅터벅 걸어온 스텔라는 나와 감시자들에게 식량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공자님.”

감사 인사와 함께 그것을 우물거리는 것도 잠시.

한 것 심각해진 감시자들이 경고하듯 재차 내게 물어봤다.

“이 능선 초입만 해도, 산짐승들은커녕 몬스터들도 피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깊숙이 오신 것도 모자라서, 무인지대까지 가신다니….”

“무인지대가 아니야. 예를 들면….”

감시자들의 우려 섞인 조언에 답하며, 난 창 너머로 펼쳐진 빙원을 보았다.

“여긴 윈터폴의 외곽마을, 플렘빌이 있던 자리.“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킨 지점은, 깨진 빙상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쪽은 경비초소가 있었지. 당직 서던 친구놈이랑 시시콜콜 잡담하는데, 그땐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훅 가버렸어.”

다음으로 본 곳은 약간 경사진 언덕.

솟아오른 얼음 위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말이 좋아 무인지대지, 원혼들을 제외한다면 남부에 있는 빙원과 똑같은 곳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거리낌 없이 저곳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이유.

“예전에, 신물이 나도록 돌아다녔던 땅이지.”

“…….”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더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감시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찰나.

“자, 그럼 슬슬 준비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킨 난, 곧바로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고, 공자님?!”

“방한기구도 없이 어쩌시려고!”

당황한 감시자들이 급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살을 에는 추위가 덮쳐올 것이 분명한 상황.

그렇지만 그들을 돌아본 난, 마치 그런 추위는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듯 미소지었다.

“말했잖아, 신물이 나도록 돌아다닌 땅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쿠우-!

저 멀리 뒤에 위치한 검은 안개 속에서,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우, 우와악?!”

“잠깐만, 저기서 진동이 느껴졌다는 건…….”

북쪽 끝 무인지대.

그 중심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을 떠올린 감시자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좀 믿을 생각이 드냐?”

그렇게 말한 난 피식 웃으며 그들과 함께 나온 스텔라를 바라봤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

방금 전과 같은 나른한 표정이 아닌, 딱딱하게 굳은 얼굴.

그런 그녀를 보며, 난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녀석이 오면,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전해주고요.”

그 말과 함께 난 등을 돌려 무인지대로 걸어갔다.

“히히, 이제 우리 둘뿐이네요?”

초소가 저 멀리 멀어질 때쯤, 내 옆에 나타난 아린이 그렇게 말하며 찰싹 달라붙었다.

“둘은 무슨. 여기 부엉이 한 마리 있잖아.”

“꾸꾹!”

내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두 존재.

아린, 그리고 아울.

크리펠 지하에서 잉태한 두 생명이 얼음성으로, 그 안에 잠든 신의 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어떤 사태를 일으킬지.

그건 아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을 테지.

***

“200년 전, 북부 왕국인 내 조국 윈터폴에서 대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

출발 전, 장벽에 마련된 내 숙소.

내 질문에도 한참 동안 대답이 없던 스텔라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제국이 북부에 뿌린 역병. 그것이 북부인들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죠.”

기억하는 이 없는 잊혀진 역사.

아는 이 없는 잊혀진 왕국.

그렇지만 그 잊혀진 이야기를 하는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천에 깔린 것은 억울하게 죽은 북부인들의 혼과 피, 고름, 그리고 악취….”

눈을 감으면 지금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신.

그 한가운데에서 절규하는 나와, 등 뒤로 솟아오르는 얼음성의 거체.

“그런 북부인들의 복수를 위해서 난…. 힘이 필요했어요.”

200년 전, 윈터폴.

쩍은 시체와 굳은 피. 그리고 그곳에 창궐한 역병 속에서, 난 제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내 손에는….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낸 심장이 있더군요.”

망자들의 청에 화답했다?

그런 말로 합리화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내 의지였으니까.

“우리들을 죽인 제국에게 죽음을.”

“이단이라 낙인찍으며 우리의 고통을 정당화한 교단에게 복수를.”

“한 줌 욕망을 위해, 우리들의 비명을 외면한 대륙에게 그 대가를….”

그래.

그렇게 외치며, 난 얼음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승님과 동료들의 마지막 작품을…. 복수를 위한 도구로 만든 것이다.

“수십만, 수백만에 달하는 원혼들이 기꺼이 성혈에 자신들의 혼을 담았습니다.”

“…….”

“상실감과 원한에 미친 나 역시, 그들의 한을 기꺼이 심장에 담았고…. 그곳에서 성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혼의 정제,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부산물.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낸, 아키몬드 사변의 진상.

“그렇게, 네크로맨서 아키몬드는 괴물이 된 겁니다.”

“…….”

“오직 복수만을 외치며 달려나가서, 마음 가는 대로 싸우다 보니….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 되어 있었죠.”

그렇게 말한 난 흐린 눈으로 개리슨을 보았다.

그때의 나와 같이, 복수에 대한 열망에 자신을 내던진 자.

“그러니 스텔라.”

그런 그에게 사죄하듯,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둘러싼 불행의 근원은 아린이 아닙니다. 그건….”

“아린 양이 아니라, 당신이다. 이 말인가요?”

내가 할 말을 먼저 내뱉은 스텔라는,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 쉬었다.

“누구는 도련님 미워하지 말라 하고, 누구는 전부 내 탓이라고 난리고. 이러면 나만 나쁜 사람이잖아요?”

툴툴거리는 어투.

그렇지만 그와는 반대로, 손의 떨림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그때 아린 양이랑 같이 제대로 사과하러 와요.”

그 말과 함께, 스텔라는 평소와 같은 웃음을 띤 채 날 바라봤다.

“죽으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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