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82화 (182/209)

182. 다시 그곳으로

“그러니까 공자님에 관한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염장고기와 흰 빵으로 단촐하게 차려진 식탁.

주린 배를 채운 여운에 잠길 틈도 없이 흘러나온 내 말에, 코락스의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

물론, 그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내 발언뿐만이 아니었다.

- 애석하게도 사실일세. 그리고 덕분에 내가 까마득한 후배님과 만날 수도 있는거고.

큰까마귀 기사단의 시초가 된 기사, 베르켈의 첫 번째 기사인 레이븐.

대선배이자 기사단의 시조와 직접 대면하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탓이었다.

“게다가 교국의 침공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는 게….”

“얼음성을 재가동시켜서, 무인지대에 있는 언데드들을 제어하는 거지.”

내 입으로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큰까마귀 기사단.

베르켈 라인란트의 첫 기사인 레이븐 폴드링 경의 유지를 받들어, 장벽에서 뛰쳐나온 언데드를 막는데 한평생을 바친 기사들.

그리고 난 지금 그런 자들에게, 장벽을 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벽을 열고, 한평생 그곳을 위협해 온 언데드를 안으로 들이라고.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알아, 정신 나간 계획인 거.”

점점 언성을 높혀가는 코락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바로 납득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지.”

“…….”

한 번에 납득할 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됐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다는 건 알아줬으면 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난 뜻을 굽히지 않은 채 말했다.

“……그렇군요. 여기서 지체한다면, 교황이 먼저 얼음성에 당도할 테니까요.”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내 표정을 보자, 코락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키몬드의 환생에게 얼음성으로 가는 길을 허하느냐, 아니면 교국의 창칼에 짓밟힐 것이냐…….”

그렇게 말한 코락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키몬드에 교국이라니.

직접 입 밖에 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었다.

“처음 오셨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오실 때마다 바람 잘 날이 없으십니다.”

“적어도 이번엔 점쟁이 짓은 안하잖아?”

예전 일을 상기시키며 그렇게 말하자, 코락스는 재미있다는 듯 큭큭댔다.

일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족히 수 년은 된 듯 아련한 기분이었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공자님을 이곳에 보낸 것이 본가의 뜻이라면, 라인란트의 일원으로써 그것을 막을 수는 없죠.”

결정을 내린 듯, 한결 편한 표정의 코락스가 날 보며 말했다.

“장벽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걱정 마. 얼음성까지 함께 하자고 할 생각은 없어.”

‘좋건 싫건, 맨정신으로 그곳에 갈 수 있는 건 나 하나 뿐일테니까.’

무인지대에 들어갔던 아키몬드 교단의 네크로맨서.

원혼들의 광기에 미쳐 스스로 자멸해가던 그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옛 아키몬드의 영토, 무인지대.

200년 전에 형성된 그 빙상지대는, 대륙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마굴이었다.

살을 에는 대장벽의 추위를 아득히 능가하는 혹한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눈보라.

그리고 그 극한의 땅을 배회하는 수많은 원혼들까지.

대륙에 남아있는 네크로맨서들은 북부의 혹한을 뚫을 수 없고.

사령술을 다루지 못하는 자들은 그곳에 떠도는 원혼들을 감당해낼 수 없다.

그곳을 무사히 거닐 수 있는 것은, 북부에서 나고 자란 네크로맨서 뿐.

그리고 그런 네크로맨서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너흰 날 데려다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잖아. 안그래?”

그가 할 말을 대신하자, 코락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교황의 병사들을 막아줘야지.”

“…….

제국과의 전쟁 때문에 가문의 병력 대부분이 제국과의 전쟁에 집중되어있는 지금.

2만이 넘어가는 교황의 진군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공자님을 위해 병력을 소비한다 해서, 수십 년간 지켜온 이 장벽이 뚫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

“그렇지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코락스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집무실 한편에 난 창문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끝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장벽.

수십 년간 지켜온 철의 방벽을 바라보며, 그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가 언데드가 아닌 인간이라면…. 감히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코락스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키몬드 교단의 습격.

언데드 침공을 틈타 땅굴로 양동작전을 걸었던 그때, 그는 장벽의 한계를 직감했을 터였다.

“…뭐, 날 보내주는 대신이라고 하긴 뭣한데.”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코락스.

그런 그를 향해, 난 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증원군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증원이라구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코락스가 그렇게 말한 순간.

“다, 단장님!”

부관인 보란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부단장. 대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지시했을 터인ㄷ…….”

그렇게 말하며 코락스가 뭐라 호통치려는 순간.

“포, 폴와이번 기사단이 입구에서 대기 중입니다!”

이어지는 보란의 외침에, 그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폴…. 와이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코락스가 그렇게 말한 순간.

파아아앗-!

장벽 입구에서, 한 줄기의 마력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공자님, 도대체 이게 무슨……?”

“말했잖아. 증원군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뜬 코락스의 모습을 감상하며, 난 창밖에 몸을 내밀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라이아의 요청을 받아 집결한 폴와이번 기사가 백 명, 폴와이번 원로들이 지원한 석궁수가 수천 명.

그리고 시엘의 명령을 받아 공간이동으로 도착한 전투마법사 부대까지.

철컥-!

창밖에 몸을 내밀 날 향해, 증원군들이 일제히 예를 표했다.

행렬의 정중앙에 서 있는 것은 라이아의 집사 고든.

그리고 내 서신을 들고 분주하게 뛰어다닌 직속 기사, 듄켈이 있었다.

***

끼이익-

증원군으로 투입된 이들이 코락스와 인사를 나누던 사이.

가느다란 소리와 함께 요새에 마련된 개인실의 문이 열렸다.

예전에 이안과 함께 연금되었던 방.

이곳까지 날 안내한 것은 정말 공교롭게도, 그때 내가 기절시켰던 두 명의 기사들이었다.

“그땐 정말이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겁니다.”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갑자기 허공에서 언데드가 튀어나오더니, 라인란트 검술을…….”

그렇게 지난 사건의 회포를 풀던 것도 잠시.

“스텔라?”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스텔라를 보며, 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 당신 방은 분명 옆방이었을 텐데…….”

그렇게 묻는 것도 잠시.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확인한 난, 하던 말을 멈춘 채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그런 내 신호를 이해한 듯, 기사들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서둘러 방을 나섰다.

찰칵.

주변을 확인한 뒤, 방 문을 걸어 잠갔다.

엿듣는 이도, 보는 이도 없는 상황.

재차 그것을 확인한 난, 스텔라를 보며 말했다.

“이제 물어볼 마음이 생긴 겁니까?.”

“……!”

핵심을 찌르는 질문.

이에 황급히 내 시선을 피한 스텔라였지만, 난 짧은 한숨과 함께 계속해서 말했다.

“자는 척할 거면 좀 티 안 나게 하십쇼. 교국에서는 잘만 자던 인간이 왜 그리 어색하게 연기합니까?”

“…치, 뭐야. 다 알고 있었네.”

짧게 농을 건네자 맥이 풀리기라도 한 듯,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그녀의 어깨가 늘어졌다.

“아린 양이 이것저것 말해줬어요.”

“…….”

쉴새 없이 긁어댄 듯, 손톱자국이 남아있는 목덜미.

그것을 응시하는 사이, 스텔라의 목소리가 내 귀를 흔들었다.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크리펠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 되었는지.”

그녀의 말을 들은 난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크리펠.

그녀에겐 악몽과도 같았던 그곳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아이에게 생명을 줬다는 것까지요.”

거기까지 말했는데도 대답이 없자, 스텔라는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크리펠에서 나고 자란 거. 진작에 알고 계셨죠?”

“…짐작은 했습니다.”

섣불리 입 밖에 내는 건 실례라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

크리펠이 어떤 곳인지를 아는 인간이라면, 응당 그렇게 할 것이다.

“크리펠에 있었던 당신이 아린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이고 아린을 데리고 나온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는 서서히 미간을 좁혔다.

“그 아이는,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써서 만들어진 존재에요.”

“알고 있습니다.”

“교단의 계획을 위한 연구재료로써, 크리펠에 갇힌 사람들을 먹이로 삼아 자라났죠.”

말하는 와중에도 스텔라의 손은 계속해서 떨렸다.

목덜미로 가져가려는 손을 애써 억누른 채, 스텔라는 차가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런 존재를, 왜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거예요?”

잠시 동안의 침묵.

그녀의 질문에 섣불리 바로 답하지는 않았다.

“…….”

그녀의 질문에 애써 답하기보단, 난 반대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썩은 모판에서 돋아난 싹은, 꽃을 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겁니까?”

“……뭐라고요?”

한층 더 냉기를 더해가는 스텔라의 목소리.

지금껏 함께 다니면서 이토록 분노한 그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질서와 정의의 신을 신봉하는 자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세상을 쥐고 흔들려 합니다.”

“…….”

“옛 제국의 압제에 저항하던 자들은, 새로운 압제가 되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죠.”

찬란한 대의와 선의를 외치던 끝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추악한 괴물로 전락한 자들.

대전쟁 시기에 평화를 외치던 신흥종교, 케르시아스 신성교단.

아이신기오르 황가의 폭주에 항거하여 일어난 혁명가, 초대 황제 멜디르를 일컫는 말이었다.

“자신들이 정의라 부르짖던 이들은 힘에 취해 선을 져버렸고, 끝내는 선을 넘었습니다.”

이단이라는 낙인 아래에 짓밟힌 북부의 생명들.

대륙의 공적이라는 멍에에 유린당한 북부의 땅.

내 고향을 유린한 그자들을 떠올리며, 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그가 판단하여 내리는 선택, 그리고 행동.”

잠시, 아린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골격을 비틀고, 장기를 짓이기며 사람의 형태를 빚어내던 모습.

내 피가 각인된 쿠키, 성체를 씹어 삼키며 식인욕구를 참아오던 모습.

‘잘 참았어요! 저 잘했죠! 히히!’

인간의 피를 취하고도 미치지 않은 채,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하던 그 모습을.

“그리고 아린은, 적어도 그릇된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

결연한 내 대답에, 스텔라의 표정은 더욱 살벌해져 갔다.

“그러니,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어쩌면, 원치 않은 산제물로서 잉태한 아린에 대한 호소.

어쩌면, 아키몬드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채 태어난 클라인 라인란트를 향한 변호.

“악의 속에서 태어난 존재는, 선을 추구할 기회조차 주어져서는 안 되는 겁니까?”

차분한 울분이 내 입을 타고 그녀에게로 전해졌다.

짐시 동안의 침묵.

그녀의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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