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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81화 (181/209)

181. 나의 고향, 나의 사람들

덜그럭, 덜그럭.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달릴 때마다, 나와 일행을 실은 마차는 계속해서 덜컹거렸다.

북쪽 끝 설원지대를 넘어, 혹한의 땅 한가운데에 위치한 얼음성.

그곳에 도달하는 최단경로는, 북부 땅의 최북단을 가로막고 있는 대장벽 정 중앙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아린, 스텔라를 실은 마차가 향한 목적지는 큰까마귀 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북부 대장벽.

예전에 봤던 풍경이 다시금 펼쳐지니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

차창 밖으로 펼쳐진 깎아지른 설산과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장벽.

온대기후인 교국 출신이라 그런지,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스텔라는 경치 구경에 정신이 없는 듯했다.

“…….”

아니.

사실 거짓말이다.

라인란트 저택을 출발해서 지금까지, 스텔라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평소였으면 도로가 뭐네 밥맛이 뭐네 재잘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이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어제 있었던 나와 개리슨의 전투 때문일 것이다.

“커흠, 크흠.”

그렇게 생각하며, 난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말을 걸었다.

“얼음성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입 다물고 있을 생각입니까?”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제야 반응을 하는구만.

그렇게 생각한 난 다독이는 말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그 신부놈과 어떻게 만났는지, 크리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간헐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버릇을 떠올렸다.

목 주변을 긁거나, 폐쇄된 곳에 있을 때 보이는 두려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미리암의 고아원 출신이었으니까.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도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을…….”

난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레 스텔라의 얼굴을 마주했고.

“코오오오…….”

……

………

- 자네.

- 자는군.

- 그것도 숙면이야. 적어도 20시간은 잔 것 같은데?

말이 없는 줄 알았던 그녀는, 마차 창문에 얼굴을 기댄 채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

“인장 확인! 클라인 공자님이다! 문 열어!”

쿠르르르르-!

문지기의 함성소리와 함께 대장벽의 철문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처음 올 때랑은 완전히 딴판인데.’

이안과 함께 이곳에 왔었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의 난 개리슨 녀석에게 한 망 먹인 뒤 장렬히 기절했고, 이안이 기절한 날 업고 들어왔었지.

병실에서 눈을 뜬 것이 장벽과의 첫 만남인 셈이니, 지금 내 눈앞에서 열리는 철문은 나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우으으으….”

“…….”

그렇게 새삼스러운 눈으로 거대한 장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볼멘소리에 내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는 사람 얼굴을 그렇게 꾹꾹 눌러대요?”

“시끄럽습니다. 곧 마중 올 테니 눈에 붙은 눈곱이나 떼세요.”

아직도 욱신거리는 듯, 이마를 매만지는 스텔라를 보며 말했다.

“으으으 추워……!”

북부의 날씨가 아직도 적응이 안 된 듯, 하얀 털옷을 껴입은 스텔라.

“공자님, 잠깐만 리치 좀 꺼내주면 안 돼요? 화염구 작은 걸로 하나만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 이야~ 하다하다 이젠 이동식 난로 취급이구만 그래?

- 수녀가 언데드를 꺼내달라 부탁한다니, 교단도 아주 갈 데까지 간 모양이군.

어처구니없어하는 앙헬과 똑같은 표정으로 허허 웃는 레이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걸 보면 교단 놈들도 좀 억울해하지 않을까.”

현현한 앙헬이 건네는 불꽃을 받아들자 추위에 떨던 스텔라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걱정한 내가 바보지.”

저 둘의 말대로, 어딜 가나 변치 않는 한결같은 성품이었다.

뭔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던 방금 전의 내가 너무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뭐, 언젠가 기회를 잡아서 말해주긴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성문을 걸어가고 있던 때.

“클라인 공자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문 안쪽에서 한 무리의 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벽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클라인 공자님.”

“그 짧은 사이에 키가 꽤 크셨습니다. 몇 년만 지나면 몰라보겠는데요?”

내게 한 마디씩 건네는 기사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난 웃는 낯으로 응했다.

“그러는 너흰 예전이랑 변한 게 없고 말이지.”

“하하하하!”

“나중에 거주구에도 들러주세요. 그때 점 봐주신 글레드 녀석이 이번에 애를 낳았습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것은,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이야기.

그것들을 듣고 있자니 문득,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겪었던 일들이 겹쳐 보였다.

‘그때 난 반쯤 적군 취급이었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그랬다.

오자마자 별실에 연금되질 않나.

우리 일에 참견 말라며 선을 그어대질 않나.

그랬던 장벽의 기사들이, 지금은 마치 제 가족인 양 날 환영해주고 있다니.

그래도 장벽에서 했던 그 개고생이 헛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원체 한결같은 녀석들이다보니, 변변한 환영식도 하지 못하는군요.”

기사들과 해후에 한 장이던 와중, 등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코락스, 보란.”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자님.”

대장벽을 지키는 큰까마귀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

라인란트식 장검이 아닌 대검을 등에 멘 그의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어, 그쪽은?”

“어어!”

그들을 먼저 알아본 것은, 함께 사막을 누볐던 스텔라였다.

사막에서 맞붙었다가 끝내는 동료가 되었던 사막의 유목민, 푸른 다리 부족.

감시자의 장비를 입고 있는 남자는 그들의 족장인 티무르였다.

“사형! 그리고 수녀님까지!”

동료들과 함께 달려온 티무르가 대표로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

반가운 얼굴들이 연달아 나오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럼에도 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북부에 정착했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그게 대장벽이었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다.

평생을 사막에서 지내던 부족이, 하필이면 북부 최고의 혹한지대에 정착했다니?

아무리 대장벽이 인력부족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하하! 제가 공작 전하께 특별히 부탁드렸죠!”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드리는 티무르의 목소리에, 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부탁했다고? 왜?”

그러자 대답이랍시고 한다는 것이.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가장 혹독한 땅으로! 무를 단련하기 위해, 가장 우수한 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

물론, 그렇게 외치는 것은 족장인 티무르뿐.

그의 뒤에 선 다른 부족 전사들은 제발 살려달라는 듯 날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추워요. 공자님, 여기 너무 춥습니다…!’

‘훈련이 너무 빡셉니다. 공자님, 제발 후방으로! 편안한 후방으로……!’

족장의 권위에 눌린 가련한 부족민들의 호소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불쌍하긴 한데, 안된단다.’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하자, 부족민들은 절망한 듯 입을 벌렸다.

아니 근데, 진짜 방법이 없다.

다른 데로 배치받아봤자 여기만큼 추울 테고.

후방인 부켄하임 영지는 지금 전쟁 중이거든.

‘헌데, 그건 그렇고….’

맑은 웃음으로 그들의 간청을 외면하는 동시에, 난 장벽 기사들의 옷차림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새 장비가 많이 바뀌었군.’

레어메탈제 무기와 마법부여가 완료된 흑색 가죽갑옷.

보온 처리가 되어있는 망토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라인란트의 보급상황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선 들어가시죠. 상황이 상황이라 성대하진 않지만,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뒀습니다.”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배고파 죽을 거 같았는데….”

코락스의 환대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잠깐만, 코락스 너.”

망토 사이로 슬쩍 보인 그의 팔을 보자, 내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왼팔이……?”

“아아, 이것 말씀이십니까?”

내가 지적하자, 코락스는 멋쩍은 듯 웃으며 왼팔을 드러내 보였다.

철컥-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달려있는 것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의수.

엉성한 골격에 갖가지 야전 도구가 부착된 모습은, 저것이 단순한 의수가 아닌 전투용 무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일라시스에서 지원받은 물건입니다. 좀 투박하긴 해도, 썩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까?”

“괜찮기는 무슨!”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하는 코락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큰까마귀 기사단이 한쪽 팔을 잃을 정도의 사건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근래 들어, 무인지대에서의 언데드 출현이 급증했습니다. 최근엔 대규모 침공까지 있었는데, 그때 실수가 좀 있었죠.”

“…….”

부쩍 늘어난 언데드들의 남하.

그 원인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음성 중추에 있는 심장이 반응한거다.’

언데드의 침공은 얼음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얼음성은 이미, 교황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었다.

“그렇게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자님.”

그러는 사이, 내 표정이 심각해진 것을 눈치챈 탓인지 코락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원래 공자님께 잘라달라 부탁한 팔이지 않습니까. 잃는다 한들, 아까울 것이 없지요.”

“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렇게 반박하려 했지만, 코락스는 단지 허허 웃어넘길 뿐이었다.

“진짜, 변한 게 하나 없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서가는 기사들의 등을 보았다.

기사에게 있어, 한쪽 팔을 잃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성취가 한순간에 어그러진 절망 속에서, 무던히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

그것이 라인란트.

나의 고향, 나의 사람들.

그러니, 내 어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휴우.”

극북 지방의 혹한이 불어치는 장벽 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과 그 위로 펼쳐진 색색의 은하수.

거기에 감시자들이 피운 횃불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선을 그리자, 칙칙한 장벽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절경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그런 장벽 한편에 선 스텔라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할 기분이 아니었다.

“역시, 제대로 물어볼 걸 그랬나?”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클라인.

그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 그녀는 그의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니, 그렇지만….”

떠올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추위 때문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각인된 공포가 만들어낸 떨림.

차가운 동굴 바닥의 감촉과 목에 걸린 족쇄의 감각이 되살아나자, 스텔라는 서둘러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그러던 순간.

“도련님한테 뭘 물어봐요?”

“우와악?!”

코앞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스텔라가 뒷걸음질 쳤다.

“아, 아린 양?”

“언니 안녕! 이제 기운 났어요?”

그러고 보니, 아린도 클라인을 따라왔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스텔라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얼버무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거 아니에요. 장벽 사람들이란 사이가 좋아 보이길래,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그러나 그 순간.

“거짓말.”

짧은 아린의 한 마디에, 스텔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거짓말, 이라뇨…?”

“상처를 후벼파기 싫어서, 억지로 참고 있는 거잖아요? 사실은 알고 싶은데.”

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

그렇지만 그녀가 입에 담은 말은, 이전처럼 해맑지도, 순진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크리펠은 왜 만들어졌을까? 언니와 가족들은 왜 그곳에 갇혔을까? 지하에서 사람들을 잡아먹던 괴물은, 어디로 갔을까?

천진한 표정의 아린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스텔라는 방금 전까지 보이던 바깥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대신 알려줄게요. 그러니까….”

공간을 뒤덮은 어둠의 근원은, 눈앞의 소녀에게서 뻗어나온 그림자.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희미하게 웃은 아린이 스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도련님, 미워하지 말아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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