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75화 (175/209)

175. 한 번 뚫어봤거든

“이건……!”

“왜, 일이 뜻대로 안 풀리니 슬슬 열이 뻗치나?”

자신들을 빈틈없이 포위한 언데드의 군세.

그것을 보며 이를 악문 케이런의 얼굴을 보자, 그제서야 답답했던 속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승산은 생겼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전황을 둘러본 난, 결론을 내렸다.

‘불안한 건 매 한가지로군.’

하인켈, 델라인.

그리고 각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급 기사들.

라인란트 공작가의 최대 전력이 그들은 전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택에 남은 것은, 보급 임무에 차출된 견습기사들과 행정관들뿐.

예비병력만이 남은 이 시점에 저택을 공격해, 저 대행자와 싸워 버틸 수 있는 자는 둘 뿐이었다.

나, 그리고 개리슨.

툭, 툭툭.

개리슨이 날아간 방향을 보며, 일정한 간격으로 발을 굴렀다.

그 자식이 방금 전 공격에서 정신을 차렸다면, 내가 보낸 신호가 뭔지는 단박에 알아채겠지.

“케이런.”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을 포위한 언데드 군단의 면면을 둘러본 레오노르가 옆에 있는 케이런을 나지막이 불렀다.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 이렇게 되기 전에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한 두 대행자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건, 엘프란의…!”

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모양의 말뚝.

그것을 본 스텔라의 목소리에, 난 지체없이 앙헬로 하여금 놈들을 멈추도록 했다.

푹-!

그렇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에 앞서, 황금 말뚝이 두 대행자의 심장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컥…!”

“크, 크으……!”

심장을 꿰뚫리는 고통에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잠시.

투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한 차례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이 미친 새끼들이…!”

닿는 것만으로도 영체를 붕괴시키는 언데드의 천적.

그 충격파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하늘 위에 떠오른 수십 가닥의 금침에 신성력을 응집시키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그리고 그다음 순간.

동시에 쏘아져다간 금침이 언데드들을 향해 쇄도했다.

투화악-!

그에 보조를 맞춰 앞으로 튀어 나간 레오노르.

양쪽 모두,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케이런의 금침은 경로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언데드들의 약점인 중심핵을 노리고 있었고.

레오노르의 거구는 날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레이븐, 키예스!”

난 다시 한 번 두 데스나이트를 직접 제어했다.

두 기사의 마력을 동조시켜, 내게 달려드는 레오노르를 향해 합격기를 쏟아냈다.

제국 검술 중 최대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검식, 폭검.

키이이잉-!

새하얀 빛무리와 함께, 미증유의 마력이 레오노르를 향해 쇄도했다.

“이 까짓 걸로!”

그렇지만 그의 주먹에 담긴 신성력이 농도를 더하자, 눈 앞을 가린 빛무리에 균열이 일었다.

파창-!

마력광을 비집고 나타난 레오노르의 거구.

방금 전 같은 기술을 맞고 날아간 것과는 대조되는, 엄청난 기세였다.

- 온다.

- 접근전은 피하게! 언데드는 저 주먹에 맞는 순간 끝이야!

검을 회수하던 두 데스나이트가 뒤로 빠지는 순간, 곧바로 앙헬의 전격이 레오노르를 방해했다.

파지지직-!

“이 죽다 살아난 송장들이!”

전격을 맨몸으로 뚫으며, 레오노르가 고개를 치켜든 순간.

- 빈틈.

짧은 한마디와 함께, 타이탄의 주먹이 그를 향해 정면으로 뻗어나갔다.

쿠콰아아아앙-!

저택 한쪽 벽면이 통째로 터져나갈 정도의 충격파.

레어메탈의 무게와 레어메탈에 담긴 마력은, 폭발마법 수십 개를 중첩시킨 것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 해치운 건가?

그 광경을 본 레이븐이 검을 세운 채 그렇게 말했고.

- 그렇게 말하면 꼭 다음 장면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던데 말이지.

그렇게 응수한 앙헬의 뒤편에서,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연기 속으로 달려들었다.

파파팟-!

언데드의 눈은 형상이 아닌, 혼을 보는 법.

연기 속에서도 레오노르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한 데스나이트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다.

열 명의 검사가 동시에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검로에는 간섭이 일지 않는다.

한순간에 펼쳐진 완벽에 가까운 연계.

“훌륭하다. 그 기개만큼은 칭찬해주지.”

그렇지만 이어진 한 마디와 함께, 커다란 충격파가 그들을 휘어 감았다.

투콰앙-!

- 크으!

연계가 실패하자, 데스나이트들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성력을 응축시켜, 제자리에서 폭발시킨 강권.

인간에게는 그 효과가 미비했으나, 영체 상태인 그들은 충격파를 이기지 못한 채 멀찍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언데드를 다루는 네크로맨서가 신성력을 다루는 성직자에게 정면승부를 걸어오다니.”

그렇게 말한 레오노르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말뚝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 성물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쯧……!”

신성력. 아니, 태양신 케르시아스의 힘.

혼을 소멸시키는 저 힘은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마기와 상극이다.

마기를 뿜어 교란하려 해 봐야 소용없고, 신성력을 응축시켜 공격한다면 영체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지.

게다가 지금은 저 황금 말뚝 때문에 두어 배는 넘게 강화하기까지.

200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교단 놈들과 치고받을 때는 참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크하하하!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말한 케이런은 방금 전 당황한 모습을 부정하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띤 채였다.

얼굴 주변에 떠오른 실핏줄과 붉게 충혈된 흰자위.

저래선 누가 성직자고 누가 악귀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만일 측면이나 뒤를 노리려 병력을 돌렸다간, 저 짐덩이들이 죽어 나갈 텐데 말입니다.”

그들과 대치한 언데드 군단 뒤편.

그곳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케이런이 말했다.

“그렇죠? 클라인 공자.”

“…….”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프리실라를 바라본 그가 슬쩍 눈웃음지었다.

상대의 약점을 자극하고, 평정을 흔드는 심리전.

비겁하다 항변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까부터 저 주둥아리를 갈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저희가 만일 성직자가 아니었다면, 돌파구가 생겼을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이군요.”

그렇게 말한 케이런이 하늘 위로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당신네들 네크로맨서는, 결코 우리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촤르르르륵-!

방금 쏘아낸 것에 추가해서, 또다시 수십 가닥의 금침이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왔다.

케이런의 키보다도 컸던 지팡이, 리벳.

그렇지만 성물로 극한으로 강화된 지금, 그것은 이제 형체조차 남지 않은 채 자신의 몸 전체를 금침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 방진.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듀라한들이 방패를 생성해 벽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본 케이런은 가소롭다는 듯 레오노르를 향해 손짓했고.

쿠콰아앙-!

이윽고 대행자의 돌진에, 방진을 짜던 듀라한들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치이이익-!

레오노르의 몸을 두르고 있던 신성력의 영향으로, 듀라한들의 몸 곳곳이 유실된 것을 확인했다.

이단심판관들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의 힘.

돌진에 휘말린 듀라한들의 손상 부위가 점점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재생하는 속도보다, 영체가 붕괴하는 속도가 더 빨라. 저것도 성물로 강화한 탓인가?’

쐐애애액-!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다른 금침들이 하늘에 뛰어오른 듀라한들을 노렸다.

파파파팍-!

공중에 체공해있던 듀라한을 노린 공격.

황급히 방패를 들어 방어한 그들이었지만, 방패 틈새와 비어있는 등 쪽을 파고든 금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잡졸들은 이걸로 끝이고.”

그 말과 함께, 케이런은 보란 듯 손가락을 튕겼고.

쿠콰아아아앙-!

방패에 꽂힌 금침이 폭발하며, 언데드들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툭, 투툭-!

“포기하고 따라오시죠, 클라인 공자.”

폭발의 여파를 음미하듯, 케이런은 잠시 움직임이 없었다.

“언데드에게 압도적인 상성 우위를 지닌 신성력.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리벳. 거기에 성하께서 하사한 이 성물까지.”

그렇게 중얼댄 케이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우리는 네크로맨서의 천적. 당신은 결코 우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이, 레오노르의 공격은 한층 더 매서워졌다.

“흡-!”

쿠콰아아앙-!

타이탄의 강권과 레오노르의 주먹이 맞부딪혀 충격파를 일으켰다.

성물로 강화된 시점부터, 대부분의 언데드가 레오노르 한 사람을 틀어막기에 급급한 상황.

그것을 본 케이런은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클라인 공자 다음은 당신입니다. 프리실라 공후.”

“…….”

그곳에 위치한 것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프리실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기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남자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원래는 클라인 공자를 발견한 이상, 당신은 별 필요가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연 남자, 케이런의 입가가 올라갔다.

“설마, 제국을 친 것도 모자라 교국까지 건드리려 했을 줄이야.”

전까지 하던 얘기를 전부 듣고 있었던 듯, 내내 여유롭던 그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동토에 처박혀 있던 다 죽어가는 족속들이 교국에, 대륙을 지키는 수호자에게 반기를 들다니.”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분노하고 있었다.

“게다가 뭐? 북부의 이익을 침탈해? 값을 치러야 한다?”

“…….”

“감히 브리간테 성하께서 수호하시는 신성교단에게, 그 더러운 이빨을 들이밀려 했단 말입니까?”

브리간테 성하.

교황의 이름을 힘주어 말하는 그 모습에, 프리실라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마치 무언가를 짜 맞추듯.

눈앞에 있는 인간을 꿰뚫어 보듯.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고통 없이 단칼에 끝내는 것은 불가할 것 같습니다. 이단심문소로 이송해서, 약간의 고문을 거친 뒤….”

그렇게 프리실라를 향해 살벌한 말을 쏟아내던 케이런이었지만.

“아하, 그랬군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프리실라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과 레오노르, 교황에게 버림받았나 보죠?”

프리실라의 한 마디.

스쳐 지나가듯 말한 그 한마디에, 케이런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뭐…. 라고?”

“아까부터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예상치 못한 이유로 전황이 역전되었다면, 지휘관은 그 전투를 중단해야 합니다. 전력을 보존하고,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요.”

“…….”

‘심지어 라인란트는 전쟁 때문에 반격할 여력도 없어, 시간 또한 넉넉하고요.’

그렇게 덧붙인 프리실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클라인이 언데드를 소환한 순간, 성물을 몸에 박으면서 끝까지 싸우려 했어요. 왜일까요?”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는 꿰뚫린 채로 요동치는 그들의 심장을 보며 말했다.

“교국 최대의 전력이자 자신의 심복인 당신들을, 왜 쓰다 버릴 소모품처럼 다룰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죠.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의 다음 한 마디에, 내내 유지되던 케이런의 평정에 금이 갔다.

“당신들이 필요 없어졌거나, 아니면 훨씬 쓸만한 대체품을 찾았다던가.”

“……!”

대체품.

혹시 그 말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이단심문소까지 데려갈 필요도 없겠군요. 프리실라 공후.”

만면에 띈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버린 케이런은 곧바로 손을 들어, 날 위협하던 금침들을 전부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당신을 벌집으로 만들어서, 라인란트 공작의 면전에 그 시체를 던져주면 될 일이니까!”

끼기기기긱-!

프리실라와 미리암,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던 기사들.

그들을 겨냥한 금침들은 단번에 그들을 처리하려는 듯, 계속해서 힘을 모으고 있었다.

“이런 미친……!”

“저희가 막겠습니다. 피하십시오. 공후님!”

그것들을 본 기사들이 황급히 프리실라를 몸으로 감쌌다.

기사들의 마법검을 무시한 채, 자신들을 향해 쇄도하는 금침.

그렇지만, 그것을 본 프리실라는 표정을 굳히기는커녕, 이걸로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뭘 웃고 있는……!”

부아가 치민 케이런은 그렇게 말하던 중, 불길한 예감에 하던 말을 멈췄다.

끊임없이 자신의 신경을 건든 클라인과 프리실라.

그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그는 한 가지의 사실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리슨이…. 없다?”

안색이 창백해진 케이런이 그렇게 말한 순간.

투화악-!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개리슨의 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 넘어트렸다.

“저 성서의 보호막이 여간 빡치는 게 아니긴 해. 근데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그의 눈앞에, 개리슨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와 저 신부 새끼는, 이미 한 번 뚫어봤거든.”

“개리슨…!”

낭패한 기색의 케이런이 그렇게 외치는 것도 잠시.

으직-!

안면이 함몰되는 소리와 함께, 개리슨의 주먹이 케이런의 얼굴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움찔, 움찔!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계속하는 케이런의 몸.

땡그랑-!

그렇지만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금침을 보며,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대행자, 케이런.

그는 방금, 개리슨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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