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실험 하나 해보자
“진짜 교단 새끼들 성질 급한 것하고는!”
카앙-!
언제 검을 뽑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순간에 쇄도해 온 금침이 내게 서른여섯, 개리슨에게 서른.
미리 예측하지 않았다면, 금침의 존재를 눈치챈 순간 고슴도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흐하하?! 그걸 전부 쳐냈다고요? 개리슨 신부님이라면 몰라도, 저 어린 풋내기 공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 듯, 케이런이라 불린 금발의 눈이 단박에 커졌다.
기습이 간파당한 마당에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무래도 이놈의 몸뚱이 덕분에 초장부터 단단히 얕보인 모양이었다.
쿠콰아아앙-!
옆에서 들려온 폭음을 들어보니, 굳이 시선을 돌릴 필요도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싸워보는군, 개리슨 신부.”
“레오노르……!”
저 금발 홀쭉이 옆에 서 있던 시커먼 퉁퉁이.
레오노르라 불리던 거한이, 개리슨의 정면으로 달려들어 주먹을 갈긴 것이었다.
투웅-!
사람의 몸을 쳤는데, 무슨 가죽 갑옷이라도 두들긴 마냥 둔탁한 소리가 났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이었을 강권.
그렇지만 개리슨은 그 강권을 팔로 막은 채, 이글거리는 눈을 거한을 향해 부라리고 있었다.
“네놈은, 네놈들은 그 참상을 보고도, 교황의 개 노릇을 계속할 셈인가-!”
그 말과 함께 주먹을 막지 않은 다른 한 손이 빛났다.
이전 싸움에서 그가 꺼냈던 성법기, 엔릴이었다.
부웅-!
어디서 솟아났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찬연히 빛나는 망치가 허공을 갈랐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개리슨 신부.”
공간을 통째로 찢어발기는 파공음.
그렇지만 레오노르는 그 거대한 몸을 곧바로 뒤로 빼 그 공격을 피해낸 뒤였다.
“대행자는 교단의 검이요, 망치입니다. 신성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쳐부수는 무기입니다.”
그러는 사이, 금침을 조종하던 케이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무기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루를 쥔 자의 의도에 따라, 눈앞에 있는 적을 쳐부수면 될 일이지요.”
“……!”
그 말을 듣자, 개리슨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 직접 한 말이지 않았습니까? 대행자 개리슨 비어크만.”
그것을 알아챈 듯, 케이런이 개리슨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따라 지금껏 수많은 이단을 쳐 죽이고, 수많은 이교를 쳐부숴 온 주제에…. 품 안에 든 알량한 생명은 지키고 싶었나 보죠?”
“……!”
입을 열면 열수록, 개리슨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미묘한 비웃음이 쌓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전투 중이라, 여기서는 구토를 할 수가 없군요.”
그 말에 망치를 휘두르던 개리슨의 손이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꽤 느려졌군, 개리슨 신부.”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오노르는 양손을 가슴으로 모은 채 개리슨의 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
거대한 망치의 장점이자 단점은, 그 기다란 리치.
틈을 보인 순간, 레오노르의 주먹이 개리슨의 안면을 두들겼다.
퍼버버벅-!
순식간에 네 번의 주먹을 내지르는 연타.
손에 끼워진 건틀렛에서는 시뻘건 피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아, 아ㅃ……!”
“어디서 한눈을 팔고 계십니까, 스텔라 수녀?”
개리슨이 공격을 허용한 모습에 스텔라가 발끈한 순간.
피잉-!
“크으?!”
순식간에 날아온 금침이 스텔라의 목을 꿰뚫으려 했다.
팍-!
가까스로 피해낸 덕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그와 동시에 뻗어온 금침들이 그녀의 몸을 스쳐, 몇 가닥의 상흔을 만들어냈다.
“……!”
그 광경에 개리슨의 시선이 잠시 스텔라가 있는 곳을 향하고.
“날 앞에 두고 잘도 한눈을 파는군. 개리슨.”
그 말과 함께, 레오노르의 주먹이 개리슨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어……!”
올려친 레오노르의 주먹을 견디지 못하고, 개리슨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쿠콰콰쾅-!
포탄처럼 쏘아져 나간 그의 몸은 경로에 있던 동상 다섯 개를 부수고 나서야 겨우 멈춰서,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쨔잔-!”
개리슨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퍽 자랑스러운 듯 금발 홀쭉이, 아니, 케이런이 익살스럽게 큰 소리를 냈다.
“이것 보십시오! 가족이 휘말리면 이렇게 쉬워지지 않습니까?”
“……쯧.”
그렇지만 레오노르는 그렇게 속절없이 나가떨어진 개리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혀를 찰 뿐이었다.
“자, 더러운 배신자는 이걸로 한동안 나가떨어져 있을 테고.”
그렇게 말한 케이런은, 금침에 포위되어있는 날 보며 입맛을 다셨다.
“슬슬 적응이 되시는 것 같은데, 패턴을 좀 바꿔볼까요?”
촤르륵-!
그 말과 함께, 침들의 배열이 단숨에 뒤바뀌었다.
한순간에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방향에서 차례대로 쏘아지는 형식으로.
캉-! 카캉-!
‘어떻게든 쳐내고는 있지만, 이대로면 언데드를 소환할 수 없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침들을 받아내니, 놈의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소수정예의 천적은 절대다수의 포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저 녀석은 네크로맨서인 날 집중적으로 방해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유지시키면서, 내 체력을 소진시키고, 그 틈에 다른 이들을 정리할 생각이군.’
말 그대로,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정석과도 같은 방법이었다.
“계속 밀어붙이십시오! 그러는 사이, 전 클라인 공자를……!”
그렇게 레오노르에게 지시를 마친 케이런이 내 쪽을 바라봤을 때.
키리리릭-!
“날 뭐 어쩌겠다고?”
난 금침의 포위망을 뚫어낸 뒤, 놈의 목을 향해 노르드빈트를 찔러넣고 있었다.
“뭐야, 어느새?!”
“이미 늦었어. 새끼야!”
데스나이트 비자르의 검술 중 하나, 가시나무.
검로를 비틀어 상대를 교란하던 흉사와는 달리, 압도적인 속도로 적의 급소를 도려내는 속검이었다.
이미 내 검은 놈의 목 언저리까지 다가온 상황.
아무리 빠르게 대처한다 한들, 이미 늦었다.
키이이이이---!
…
……
………
…라고 생각하던 내 표정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보호막을 보자 단번에 구겨져 버렸다.
“하, 하하…! 설마 벌써 이걸 쓰게 될 줄이야…!”
“X발, 미치고 팔짝 뛰겠네.”
코앞에 다다른 노르드빈트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익숙한 형상의 보호막.
그 중심에 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성법기, 성서 타나크였다.
“팔리만, 엘.”
내게 이놈들을 보낸 놈의 얼굴이 절로 떠오르며, 그 준비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공격이 막힌 짧은 순간.
“방심하지 말라던 것이 허언은 아니었군,”
내게로 다가온 레오노르의 손이 내 얼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부웅-!
몸을 트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의 거대한 팔이 내가 있던 자리를 낚아챘다.
눈에 깃든 힘이 아니었다면, 저것에 붙잡힌 채 목이 꺾여버렸겠지.
“피했…. 다고?”
한편, 레오노르는 내가 자신의 기습을 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 듯했다.
“기척은 완전히 지웠다. 끝까지 알아챈 기색은 없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공을 잡았던 손을 쥐었다 펴는 시커먼 거한.
파팍!
잠시 동안의 틈을 놓치지 않은 난, 지체하지 않고 놈의 안면을 차올렸다.
“같잖은 수를.”
물론, 그 망할 신부놈을 날려버린 괴물이 내 발차기에 끄떡할 리 없지.
그렇지만 그가 내게 반격하기 위해 손을 휘두른 순간, 난 그 팔을 발판삼은 채 뛰어올랐다.
‘자, 미끼는 던졌고. 입질이 오느냐 마느냐인데…!’
공중에 떠오른 몸을 바로잡으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공중에 떠올랐다면 피할 길이 없죠!”
케이런이 지팡이를 뻗어 수십 가닥의 금침들을 쏘아 보냈다.
곳곳에 퍼진 금침들의 공격이 내게 집중된 한순간.
‘그렇게 나와 줘야지!’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약문에 미리 준비해 둔 마기를 불어넣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금침을 한순간 멈출 수 있는 방법.
확신은 없었지만, 이게 먹히지 않는다면 어차피 끝이다!
“앙헬!”
파지지지직-!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뻗어 나가는 사슬 번개.
“그 짧은 순간에 언데드를!”
그렇게 말하며 눈을 부릅뜬 케이런이었지만, 그는 이윽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폭소했다.
“풉, 푸하하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법을 쏘아낸 언데드 리치 앙헬.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앙헬의 머리인 해골이었다.
“머, 머리만 소환해서…! 마법을…! 푸하하하하!”
200년 묵은 리치의 마법을 보고서도,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은 역시, 저 금침.
앙헬의 사슬번개가 작렬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맞은 금침은 움직임을 잠시 멈췄을 뿐이었다.
“이야~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모처럼 좋은 광대놀음이었는데.”
그렇게 말한 케이런은 큭큭거리면서 허공에 표류하는 금침들에게 손을 뻗었다.
“아쉽게도 제 무기인 ‘리벳’은, 마법으로 부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케이런의 말과 함께, 금침들은 흔한 생채기도 하나 없이 계속해서 내 몸을 노렸다.
“끝입니다, 클라인 공……!”
그렇게 승리를 확신한 케이런이 금침을 다시 제어하려는 순간.
“니 무기 박살 낼 생각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이 멍청한 새끼.”
그렇게 말하는 내 발밑에는, 수십 개의 계약문이 새겨져 있는 상태였다.
“사령술식?! 어느새……!”
뒤늦게 그것을 본 케이런이 그렇게 외치는 것도 잠시.
방금 전 전격을 되짚어본 그는 곧바로 눈을 부릅떴다.
“그 전격 마법으로, 사령술식을 새겼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순간.
“정답이다.”
내 양손은, 이미 바닥에 새겨진 계약문에 마기를 한껏 불어넣고 있었다.
“제길, 레오노르!”
“치잇!”
투웅-!
뜻밖의 상황에 레오노르가 곧바로 날 노렸다.
사령술을 사용한다면 움직임이 제한될 터.
그사이 내 몸을 붙잡아 기절시킬 심산이었겠지.
그렇지만.
- 이미 늦었다.
내 망자의 목소리와 함께, 돌진해오던 레오노르를 향해, 거대한 마력의 파도가 짓쳐 들었다.
쿠콰아아아앙-!
폭음이 온 저택을 뒤흔든 것도 잠시.
“크으으?!”
검격을 못이겨 날아간 레오노르가 곧바로 몸을 일으키자, 연기를 헤치며 두 기사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예나 지금이나 교단 놈들은 바뀌지가 않는군. 그렇지 않나 자네?
베르켈의 첫 번째 기사, 레이븐.
- 방심하지 마라. 놈은 아직 건재하니.
그리고 기억을 되찾은 하늘날개 기사단의 부단장, 키예스였다.
“방금, 그 기술은……!”
자신이 밀려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레오노르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마력 파장을 동조시켜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두 기사의 합격기.
개리슨을 패퇴시킨 기술이, 이번에는 그의 몸을 날려버린 것이다.
“칫!”
상황을 파악하자, 케이런의 움직임이 금세 다급해졌다.
촤르르륵-!
곧바로 경로를 바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금침들.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주변에서 몸을 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날 잡는 건 글렀으니, 대신 인질이라도 잡아보겠다 이건가?”
대행자라는 새끼들이, 치졸하게 구네.
그렇게 말한 난 피식 웃으며 앙헬에게 신호했다.
- 전격이 먹히지 않는다고 떠들어대던데, 그럼 이번엔 열로 지져볼까?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로브를 두른 해골이 양손에 마력을 보았다.
쿠구구구구구……!
지축을 뒤흔들 정도의 웅혼한 마력.
늘 헛소리만 해대서 그렇지, 이 껄렁한 리치는 이래 봬도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대제국의 궁정마법사였다.
- 앵화(櫻花).
화륵-!
그의 언령과 함께, 천장에서 시뻘건 화염이 마치 금침을 받아내듯 꽃잎을 피워냈다.
화염 계통의 고위 마법 중, 순수한 온도로는 최정점에 달한다는 마법, 앵화.
금속의 천적인 열을 가하자, 금침 중 몇몇이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제아무리 신성력으로 강화했다 한들, 그 본질은 열에 약한 금속.
치이이익……!
하나둘 녹아내리는 금침을 보며, 난 케이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타나크라고 했던가? 그 성서.”
로브 자락에 숨겨져 있던 반대편 손.
그곳에 쥐어진 책의 이름을 말하자, 보호막으로 보호받던 케이런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모처럼 좋은 기회인데, 실험이나 하나 하지.”
그렇게 말한 내 주변으로 하나둘, 그림자들이 늘어났다.
연기처럼 피어오른 그림자들은 각자의 무장을 갗춰, 날 중심으로 하나의 군집을 형성했다.
촤르르르륵-!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물이 넘어가는 수의 데스나이트.
수백 명의 목 없는 기수, 듀라한.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주먹을 들어 올리는 나이트 골렘, 타이탄.
“……!”
언데드 군단이 전부 소환된 모습을 보며, 난 케이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 마기가 먼저 바닥날까, 아니면 저 성서의 신성력이 먼저 바닥날까?”
네크로맨서의 특기는 소모전.
그리고 이 녀석들은, 내게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