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73화 (173/209)

173. 대행자들(3)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동부 검문소로부터 정기보고가 올라오지 않고 있어요.”

“역시…….”

저택 중앙 로비.

전령이 가져온 정보에, 프리실라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갔다.

교단이 날 노리고 있다.

미리암이 경고한 대로, 이미 라인란트 곳곳에서 그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비 병력은 어느 정도였죠?”

“기사 세 명과 경비병 3개 소대였습니다. 만일을 위해서 퇴로와 연락망도 준비해뒀습니다만….”

“그걸 사용할 새도 없이, 한순간에 전멸했다는 말이군요.”

행정관 중 한 명의 보고에 프리실라가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동부 검문소에 배치한 기사들은 붉은 수레 기사단의 정예입니다. 그런 이들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말은, 그만큼 강대한 힘을 지녔다는 뜻이겠죠.”

“교국이 대대적으로 병력을 파견한 걸까요?”

부관 중 한 명이 그렇게 물었지만, 프리실라는 고개를 저었다.

“북부에는 보는 눈이 많아요. 검문소를 정면으로 습격했다면, 어떤 경로로든 본가에 소식이 전해졌을 겁니다.”

신성교단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초소 하나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프리실라가 주목한 것은 그 방법.

기사 셋과 경비 병력, 그리고 예비대까지 포함한 모든 이들을 한순간에, 동시에 소리 없이 처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현재 다가오고 있는 적은 한 명에서 두 명 정도의 소수정예로군요.”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라인란트의 정예 기사 셋을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라고 봐야겠죠.”

뒤이어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개리슨이었다.

“적어도 당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닌, 그런 사람을.”

“…….”

그 말에 개리슨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교국이 제 소재를 알고 있다 생각하는 겁니까?”

“예.”

그렇게 단언한 프리실라의 시선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향했다.

“당신은 혼자서가 아니라, 저 아이들과 함께 탈출했잖아요?”

동행이 많을수록 행적을 감추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것이 훈련된 인간이 아닌,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해서, 저 아이들을 교국에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당연하죠.”

‘혼자서 라인란트에 왔다면 받아주지도 않았을걸요?’

은은한 웃음과 함께 프리실라가 그렇게 말하자, 개리슨의 표정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자, 어쨌든 교단은 당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요.”

그 변화가 어떤 것인지 알아볼 새도 없이, 프리실라는 개리슨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교단 최고의 인간병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주 자신 있게 사람을 보냈죠.”

“…….”

“교국 내에서 그만한 전투력을 지닌 인물이라면, 누가 떠오르나요? 개리슨 신부.”

물어보기 위해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개리슨은 대행자.

오직 교황만이 쥘 수 있는 교국 최대의 전투력임과 동시에, 살아있는 인간병기이다.

교국에서 그런 그와 대등한 힘을 지닌 존재란, 한 가지밖에 없었으니까.

“대행자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입니까?”

“정답이에요.”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대행자라니….”

“교국에서 최대의 무력을 지닌 성직자들 아닌가…!”

대행자.

케르시아스 신성교단이 창설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

그 오랜 시간 동안, 교단은 수많은 이교의 도전을 맞닥트려야 했다.

중부 평원지대에서 제창된 신격, 페룬을 섬기는 천둥교단.

바다와 소용돌이를 숭상하며, 해적들로부터 기원한 레비아탄교.

심지어는 죽은 내 이름을 팔아 만들어낸 아키몬드 교단까지.

그런 수많은 신앙들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세력을 키워, 시시각각 신성교단의 지위를 위협해왔고.

교단의 성직자들은 그 선봉에 서서, 신성교단의 권위를 위협하는 모든 이교도를 쳐부수며 교단을 지켜왔다.

대행자란, 그런 성직자들에 정점에 선 자들.

그 옛날 세 괴수를 쓰러트린 성직자 가울의 무구를 이어받아, 수만에 달하는 이교의 군대에 맞서 교단을 지키는 최대 전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행자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날 노리고서.

“저였다면 두 명을 파견했을 것 같군요. 한 명은 당신을 틀어막고, 그사이에 다른 한 명이 우리를 없애버려야 하니까요.”

“고, 공후님……!”

강대한 적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리실라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전혀 겁먹은 기색은 없으시군요.

개리슨 역시 그 사실이 이상한 듯, 프리실라에게 물었다.

“대행자 둘이 이곳에 오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알죠. 영지 하나를 홀로 초토화시키는 인간병기가 이곳으로 들이닥치고 있다는 걸.”

하나도 아니고 둘이 말이지요.

그렇게 덧붙이자, 부관들이 프리실라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급박한 상황입니다. 저택에 남아있는 병력으로는 도저히 대응이….”

“지금이라도 부켄하임 성으로 거처를 옮기시죠. 은밀하게 준비한다면, 놈들의 눈을 피할 수도….”

대행자라는 말을 들은 이들은 마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이 기정사실인 양 말하고 있었다.

“아뇨.”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프리실라는 손을 들어, 계속 이어지는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전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공후님…!”

부관들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프리실라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전선에서 오는 모든 정보는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어요. 제가 자리를 비운다면, 라인란트 전선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겁니다.”

“그, 그것은……!”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의 시선은 저택을 가득 채운 보급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있는 보급품들은 전선에 나가 있는 이들의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이것들을 내팽개치고서 어딜 도망간다는 말이죠?”

그 말에 부관들은 단박에 아연실색했다.

“지, 지금 보급품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계속 이곳에 남아있다가 공후님의 신변에 위해라도 간다면……!”

“간다면, 전쟁에서 지기라도 하는 건가요?”

간절하게 외치는 부관들의 말에, 프리실라는 되려 미간을 좁혔다.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상 전 제국의 귀부인도, 귀족도 아닙니다. 반역자의 편에 선 여인 한 명에 불과할 뿐이죠.”

“……!”

“그리고 난, 그 여인 한 명의 목숨이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들의 생명줄보다 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략이란,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얻는 것.

그리고 눈앞에 있는 프리실라의 전략은, 무엇보다도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최소한의 손실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는 계산.

그리고 지금, 프리실라는 자신의 목숨을 넣은 채로 계산을 마친 것이다.

“고, 공후님……!”

“크으……!”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은 주먹을 쥔 손에 힘을 더해갔다.

‘힘없는 여인이 이렇듯 결의를 다지고 있는데, 우린 어찌 공포에 떨고만 있었는가!’

…라는 둥, 한창 자기반성 중이시겠지.

척 보면 안다 새끼들.

“…그리고, 마냥 희생할 생각 뿐인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프리실라 역시 그런 분위기를 알아챈 듯, 표정을 한껏 푼 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대행자 두 명이 오는 것과는 별개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도 그리 만만치는 않잖아요?”

그렇게 말한 프리실라는 개리슨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교단의 대행자 중 최고라 불리던 성직자, 개리슨 비어크만.”

“…….”

“그리고 홀로 제국을 뒤집어놓은 불세출의 네크로맨서, 클라인 라인란트.”

어우, 어우 씨!

잘 가다가 갑자기 저 닭살 돋는 호칭은 뭐야?

프리실라의 감언이설에 내가 몸서리치자, 그녀는 그 광경이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린 채 큭큭댔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정도 전력…. 잘만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어요.”

프리실라의 그 말에, 개리슨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두 명의 대행자를, 이곳에서 쓰러트리겠단 말입니까?”

“정확히는 한 명이죠.”

개리슨의 말에 답한 프리실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같은 대행자라면, 한 명 정도는 제압할 수 있으실 거잖아요?”

“…….”

프리실라가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미리암이 말을 얹었다.

“말인즉, 먹여주고 재워준 값을 치루라는 말이지?”

이곳에 온 이상, 밥값을 해라.

그렇게 말하는 안주인의 선언에, 미리암은 재밌다는 듯 킥킥댔다.

“맞는 말이긴 하지. 무작정 교국에서 도망 나온 턱에, 저 많은 입을 다 먹일 수도 없었고 말이야.”

와아~!

마당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프리실라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근데 대행자를 잡는 건 잡는 거지, 기회는 또 뭐야?”

그렇게 말한 미리암의 질문에, 프리실라는 평이한 목소리로 답했다.

“개리슨 신부님은 이곳에 계시고, 대행자 둘이 사라진다면…. 교국의 최대 전력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지금 전쟁 중인 제국이 아니라, 교국을 겨냥한 말.

그 말에, 미리암은 기가 질린 듯 프리실라에게 물었다.

“뭐야, 라인란트는 교국과도 한판 해볼 생각인가?”

“글쎄요.”

그 물음에, 프리실라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제국과 적극적으로 공조한 덕에, 교단이 북부에서 가져간 것이 좀 많아야지 말이에요.”

직접적으로 교단과 대적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프리실라의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제국을 꺾고 독립에 성공한다면, 교단에게도 청구할 것이 꽤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 거죠.”

“허어…….”

그 말을 들은 미리암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외골수인 하인켈과는 달리, 프리실라는 노련한 정치가.

흐름을 탄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고자 할 것이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라인란트에게는 힘도, 명분도 충분할 테니까.

“어쩐지, 전쟁물자가 과하게 많다 생각했건만….”

제국과의 전쟁은 일 년을 넘지 않는다.

그 안에 황도를 함락시킨다면 라인란트의 승리요, 그때까지 뚫지 못한다면 어차피 말라죽을 테니까.

시작된 이상,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인란트는 그렇게 판단한 뒤, 이 전쟁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 자네의 행동에 온 가문의 안위가 달렸다라…. 어깨가 무겁겠군 그래?

이미 죽었으니 다른 세상 얘기라는 듯, 레이븐이 그렇게 말을 붙였다.

“그러게. 삐끗하면 베르켈 놈 후손들이랑 손잡고 지옥으로 떨어질 판이야.”

라인란트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방의 몰락귀족이 아닌, 북부의 주인으로서 바로 서기 위해.

그리고 이 행동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중압감에 이를 악물었지만, 그것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까짓거, 해보지 뭐.”

계획은 있다.

수단도, 방법도.

남은 것은, 조건을 충족하는 것뿐.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을 다잡으려던 순간.

“이야~ 뜨겁네요! 무슨 영웅소설이라도 보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하-!”

저택 입구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나와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케이런…. 레오노르……!”

호리호리한 금발의 남자와 온통 시커먼 피부의 거한.

두 사람의 등장에, 개리슨은 나지막이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졌다면서 벌벌 떨면, 죽이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남자는 로브 자락 속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무지팡이.

그것을 본 개리슨이 전투태세를 취하자, 검은 거한이 그에 맞서듯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인사 나눌 정도로 좋은 사이도 아니니, 바로 시작하죠.”

금발의 남자, 케이런은 그렇게 말하며, 내 쪽을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다.

“열심히 발버둥 치다 뒤져주십시오, 아키몬드.”

촤륵-!

그 말과 동시에,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가닥의 금침이 쇄도했다.

교단의 대행자 둘.

그에 맞서는 네크로맨서와 파문당한 신부.

카앙-!

쇳소리와 함께, 저택에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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