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72화 (172/209)

172. 대행자들(2)

“이게 다 뭐야……?”

오랜만에 돌아온 라인란트 저택.

지난 여행의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난 내 방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으하하하! 침대 겁나 푹신푹신해!”

“클라인 형 진짜 도련님이었구나?! 개털이라고 한 거 취소!”

왜냐고? 왜긴 왜야.

고아원 애들이 내 방을 숙소 삼아서,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놨으니까지!

“어릴 적부터 후원하던 곳이라고 들었기에, 저택에 들이는 걸 허락했어요. 교국을 벗어나는 동안 노고가 많았던 모양이구요.”

내 침대를 놀이터 삼아 뛰노는 아이들을 포며 프리실라가 말했다.

“다른 곳도 많은데, 이 녀석들을 굳이 제 방에 놓은 이유는요…?”

내 연구자료와 실험 술식들이 종이비행기가 되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며 그렇게 묻자.

“이 방 말고는 전부 사용 중이거든요.”

라고 말하며, 맞은편에 있는 다용도실 문을 열어줬다.

“우와, 저게 다 뭐야….”

내부를 본 스텔라가 혀를 내둘렀다.

여분의 갑옷, 철괴, 밧줄, 병장기, 마법도구와 약재에, 그 외 기타 등등….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것들을 가져왔는지도 모를 수많은 전쟁물자를, 저택에 있는 모든 방들을 빼곡하게 메꾸고 있었다.

“3년 치 전쟁물자를 한 번에 마련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아직도 수량 파악에 한창인 듯, 프리실라는 방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의 개수를 세고 서류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보급창고만으로는 다 보관할 수 없고, 새로 짓자니 시간이 걸리죠. 차후 옮기긴 할 테지만, 급한 대로 가격이 높은 물자들은 우선 저택에 보관하고 있어요.”

군용 물자가 있는 곳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덧붙이는 프리실라의 말과 함께, 다른 방들의 모습도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델라인의 방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하인켈의 서재까지.

유일하게 멀쩡한 것이 내 방이라는 게,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왜 줄줄이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아이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녀석한테 그렇게 묻자, 등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왜긴 왜냐? 먹여주고 재워준 놈이 황도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교국에서 어떻게 붙어먹고 살겠어?”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오랜만에 보는, 그렇지만 마냥 반가운지는 잘 모르겠는 얼굴이 날 보며 히죽대고 있었다.

“미리암 수녀님.”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등 뒤에 선 거한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계속해서 말했다.

“겸사겸사 이놈도 같이 데리고 왔고 말이지.”

“…….”

그녀의 말에, 그림자에 가려진 두 눈이 날 내려다봤다.

“오랜만이야, 망할 신부.”

개리슨 비어크만.

내 인사가 불쾌한 듯, 눈썹을 위로 들어 올린 그였지만, 이전처럼 곧바로 죽이겠다 들이닥치지는 않았다.

“자, 잘 지냈어요 아빠?”

녀석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등 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스텔라에게 향해있었으니까.

“…….”

“아, 그, 그게에에…….”

보기만 해도 어색함이 감도는 분위기.

그나저나, 저 개리슨에게 ‘아빠’라니.

나름 친근한 호칭을 보아, 그렇게 강압적인 육아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스텔라.”

“히끅?!”

아니, 방금 한 생각 취소.

한참 만에 개리슨이 입을 열자, 흠칫 어깨를 떤 스텔라가 내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아니 그건 그렇고, 이 수녀는 아까부터 왜 자꾸 날 방패로 쓰는 거지?

나 언데드 없으면 쟤 못 막는데?

“내가 널 클라인 공자와 동행시킨 이유는, 감시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말한 개리슨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원초의 화로에서 녀석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보고, 필요하다면 직접 제거하라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교국에서 그 재판 같지도 않은 청문회를 마치고, 원초의 화로로 향하는 날 따라나선 스텔라.

교단에서 붙인 경호원이라 했지만, 실상은 날 감시하기 위함이었지.

“그런데 임무를 내팽개친 것도 모자라, 성직을 버리다니? 게다가 클라인 공자의 전속 신관?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으, 으으……!”

개리슨의 분위기를 참지 못한 듯, 스텔라가 황급히 내게 도움을 청해왔다.

“고, 공자님이 대신 뭐라고 말 좀 해주면 안 돼요?”

“제가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게 귓속말하는 스텔라의 모습을 보자, 개리슨에게서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이 한층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저 인간이 저한테 뭔 짓을 했는지 알고도 저한테 도와달라는 소리가 나옵니까?”

“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거니까?”

허허, 이 수녀 말하는 것 좀 보게.

어림도 없지.

“어디서 물귀신처럼 절 끌고 다녀요? 알아서 하십쇼.”

“아아아~!”

내가 두 팔을 올린 채 참전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자, 스텔라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쿵-!

그렇게 계속되던 나와 스텔라의 말싸움은, 개리슨이 뿜어낸 신성력의 파동에 잠시 휴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얘기 아직 안 끝났단다, 스텔라.”

시커먼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개리슨의 두 안광.

그것을 본 아이들은 재빨리 분위기를 파악한 뒤 내 방을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우와~ 신부님 빡친 거 오랜만이다.”

“도망가자 도망. 여기 있으면 우리도 휘말려.”

“아까 보니까 마당 엄청 컸어! 거기서 놀자!”

우르르르-!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미리암은 그런 아이들에게 ‘멀리 나가면 다시 던져버릴 줄 알아!’라며 소리쳤다.

긴장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니면 자기 일 아니니 상관없다는 건지.

분노에 찬 개리슨을 보면서도 아이들은 전혀 겁먹는 기색이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종종 있었나 본데?’

아이들과 미리암의 반응을 보며 그리 생각할 무렵, 스텔라는 내 어깨를 쥔 채 개리슨을 향해 말했다.

“그, 그럼 어떡해요! 이미 이단심문소가 저도 같이 죽이겠다고 덤벼드는데, 뭔 수로 교단에 돌아가요!”

음. 백번 맞는 말이다.

맞는 말 하는 김에, 내 어깨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것들이 널 노린다고 해서 네가 얌전히 당해줄 실력이냐?”

“윽.”

신변의 위협으로 항변하는 스텔라였지만, 개리슨의 한 마디에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거기다가,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를 찾아오거나 도움을 청해야지. 왜 내게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생면부지인 이 자를 따라나선 거냐?”

“엑.”

“저 자에게 씌워진 혐의가 무엇인지는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느냐?”

저것도 맞는 말이다.

교단의 성직자들이 자신을 노린다면, 그 교단의 교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개리슨에게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다.

저 인간의 성격상, 한 번 거둔 아이는 절대 버리지 않으니까.

아마 교황청을 뒤집던 이단심문소를 뒤집던, 스텔라를 보호할 수 있었겠지.

“으, 그, 그게에…….”

개리슨의 말에 대답할 말이 없는 듯, 스텔라가 우물쭈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 공자님이 나 책임져준다고 말했어요!”

고개를 숙인 채 내 얼굴을 힐끔거리던 스텔라는 다짜고짜 내 쪽으로 화살을 돌렸…….

….

…….

……….

아니 잠깐만.

말이 좀 이상한데?

“스텔라,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떻합니ㄲ……!”

쿠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공할 신성력이 온 공간을 짓눌렀다.

“책임이….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개리슨의 안광이 한층 더 흉흉하게 빛났다.

7년 넘게 저 신부에게 물고문당해 온 경험에 비춰봤을 때, 지금의 그는 임계상태.

건드리면 터질 폭탄과 같은 상황이었다.

“아니,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저까지 끌어들입니까?! 저 인간 빡친 거 안보여요?!”

“그러니까 공자님이 도와줘요! 화로에서 분명 저 책임져준다고 했잖아요!”

“아니, 제가 먼저 한 게 아니라 그쪽이 먼저 저한테……!”

쿠우우우-!

내게 귓속말하는 스텔라의 모습을 보자, 개리슨에게서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이 한층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와 씨, 미치겠네.’

개리슨의 얼굴을 본 난 확신했다.

이미 저 인간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오해는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라고.

“한창 재미있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그런 상황을 보고 있던 프리실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클라인도 도착했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은데요.”

“…….”

그 말에 개리슨은 내 쪽을 흘겨본 후,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본론.

그 말을 들은 난 개리슨이 이곳에서 내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교단에서 대숙청이 벌어지고 있다고?”

“……그래.”

그 말에 개리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판 이후, 수많은 성직자들이 크리펠과 같은 시설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재판 당시 내 진술에 치를 떨던 신관들.

개리슨 역시 그들을 떠올린 듯,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지.”

태양신, 케르시아스를 강림시킨다.

의지를 지운 채, 자신들의 명령을 따르는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교단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수백 년 전부터 계획이 진행되어왔음은 확실했다.

내가 감금되었던 크리펠 이단심문소 역시, 그 연구를 위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으니까.

“제국과 교단의 합작으로 이뤄진 인체실험, 그리고 수많은 실종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암투에 몰락한 귀족.

제국에 반기를 들려 한 혁명가.

부당한 명령에 맞서 상관을 죽인 군인.

힘없는 변방의 영지민들까지.

그들은 이렇듯,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집요하게 쫓아, 그들의 연구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었다.

누구도 알 수 없도록, 은밀하게.

단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회에서 그것을 밝히며 성직자들이 반발한 순간…….”

“숙청이 시작되었겠군.”

으득-

진상을 조사하라 명한 것은 교황 브리간테의 함정.

녀석은 내 재판을 이용해 자신에게 반하는 성직자들을 추려내, 그 자리에서 전부 제거한 것이다.

“교국 내부에선 피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를 아는 자는 많지 않다.”

“대륙의 관심은 전부 제국의 전쟁에 집중되어 있으니 말이지?”

끄덕.

“후우…….”

여우같은 새끼.

브리간테 교황의 수를 짚은 난 그렇게 생각했다.

대륙에 불어오는 거대한 격류를 틈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술수.

교단의 교주라기보단, 노련한 정치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걸 알리고자 이곳으로 온 건가요?”

이야기를 들은 프리실라가 개리슨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유감이네요. 라인란트는 지금 전쟁 중이에요. 교단까지 신경 쓸 겨를은…….”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개리슨이 프리실라의 말을 끊자, 그 말을 받은 것은 미리암이었다.

“브리간테 놈은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교국에서 놈을 막을 인간은 없어”

그렇게 말한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내 쪽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 녀석이 가장 얻고 싶어하는 것은 뭘까?”

“…….”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교황이 아닌 다른 얼굴이었다.

성혈의 구조를 지적하자, 열광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던 성직자.

팔리만, 엘의 얼굴이.

“교단이 제 지식을 원하는군요.”

“그렇지. 겸사겸사 교단의 치부를 까발린 앙갚음도 하고 말이야.”

내 추론에 맞장구친 미리암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아마 머지 않아서…. 손님이 찾아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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