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70화 (170/209)

170. 이유

쿵-! 쿵-!

쉴새 없이 흔들리는 거인의 등.

하늘 높이 뛰어오른 그 어깨에 매달린 와중에도, 이안의 시선은 멀어지는 황도에 못 박혀 떠날 줄을 몰랐다.

“…….”

눈을 잃은 그가 계속해서 황도를 바라보려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황실 모독이라구요?!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것이 어째서 황실을 모독한 것이 되는 겁니까?!’

‘이 처우는 부당합니다! 이것이 충성에 대한 제국의 보답입니까?!’

한때, 그곳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

‘가세요. 대장! 저희가 막겠습니다!’

‘반드시 알려야 합니다! 황성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때, 자신이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

‘대장. 살아남으십시오.’

그리고 끝내 추악한 손에 붙잡혀, 자신 대신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

그것을 떠올리기가 두려워 시력을 포기했음에도, 그 참상을 목도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 세상을 보는 빛을 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영원히, 그때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쿵--!

육중한 거인의 몸이 우거진 수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륙 중심부에 있는 평원지대를 넘기 위해 쉴새 없이 달린 것이 한나절.

이제 일행은 황제의 직할령을 넘어, 중부와 북부 사이를 가로지르는 삼림지대에 도착했다.

“정지.”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이 일행의 키를 잡은 그의 제자는 돌연 이 수해에 멈춰 섰다.

“여기서 잠시 쉬죠.”

“쉰다고? 제국군이 들이닥칠 텐데?”

제자이자 조카, 클라인의 말에 이안이 되물었다.

황도를 들쑤신 이상, 제국군의 추격은 집요할 터였다.

체력이 남아있는 한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야 할 터.

“지친 건 알겠는데, 여기서 우물쭈물할 시간 없다. 한시라도 빨리 북부로 돌아가야……!”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이안이 몸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풀썩-!

그 자리에서 쓰러지려던 이안의 몸을, 클라인이 받아들었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진짜. 누가 누구한테 지쳤네 뭐네 헛소리입니까?”

자신의 몸을 붙잡은 클라인은 그대로 이안을 일으켜 나무기둥에 걸터앉도록 했다.

“보름은 넘게 고문당한 몸으로 그 난리를 쳐 놓고는, 몸이 남아날 줄 알았습니까?”

“아니 그…….”

“야영지 만들 테니까 누워계십쇼. 여기서 더 강행하면 도착 전에 지쳐 죽을 판입니다.”

착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 클라인은 곧바로 수인을 맺었다.

파츳-!

보조용으로 남겨둔 스켈레톤 몇몇이 그의 지시에 따라 숲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을 돌려보낸 클라인은 후, 하고 숨을 내쉬며 땀을 훔쳤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이, 그 역시 여간 지친 것이 아닌 듯했다.

‘역시, 무리가 컸던 게로군.’

당연한 일이었다.

도플갱어로 감옥탑을 교란하고.

언데드 군단을 일으켜 수비군과 격돌하고.

공간이동 마법을 이용한 반작용을 맨몸으로 견뎌냄과 동시에, 황성으로 들어가 격전을 치렀다.

심지어 모든 일행들을 데리고 황성을 탈출하기까지.

다른 이들의 조력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는 사살상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낸 것이다.

몸 상태가 정상일 리 만무하지.

“그리고 또 하나, 못다 한 인사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사?”

그렇게 말하는 이안의 눈앞에 클라인의 계약문이 나타났다.

우웅-!

푸르게 빛나는 술식.

원형으로 이뤄진 빛무리에서 한 무리의 그림자들이 하나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검은 연기를 일렁이는 영체들.

클라인 특유의 검은 갑옷을 갖춰 입고 있었지만, 이안은 그들이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희들…….”

흉갑 가슴팍에 새겨진 날개 문양은 클라인이 새긴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데스나이트의 근원이 되는 망자의 의향.

스스로 자신의 영체를 구현한 그들이 굳이 이 표식을 남긴 이유를, 이안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 세월이 무색하구만. 이안 라인란트가 새치 가득한 노인이 되어버리다니.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데스나이트 한 명이 투구를 벗었다.

그가 생전에 그리했듯, 날카로운 인상의 젊은 기사가 그를 보며 씁쓸히 웃고 있었다.

“비자르.”

하늘날개 기사단의 선봉을 맡았던 기사.

기억 속에 남겨둔 이름을 부르자, 늙은 노인의 눈가가 파를 떨렸다.

- 이것 봐라, 우린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까?

- 섭섭합니다 대장. 아무리 술친구였다고 해도 그렇지, 나머지는 뒷전이라 이거에요?

듬직하게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며 여기사 한 명이 껄껄대자, 그와 비견할 만한 덩치의 거한이 그 말을 받았다.

“조안, 겔리메르.”

곳곳을 둘러본 이안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길시언, 투리안, 리나, 헤무르, 라르크….

그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데스나이트들은 멋쩍게, 누군가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안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푸후-!”

그제서야 한숨을 내쉰 클라인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공자님, 괜찮아요?”

“안괜찮습니다. 뒤지기 직전이에요.”

주저앉으며 그렇게 말한 클라인은 한데 모인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말했다.

“영체 구축과 계약까지는 완료했는데, 오래 유지는 못해. 보다시피 마기가 거의 동났거든.”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말하는 클라인을 보자, 이안은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너……!”

데스나이트가 된 하늘날개 기사단의 수는 스물.

스켈레톤 같은 하급 언데드도 아니고 이런 고위 언데드를 동시에 구축해낸다면, 네크로맨서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얼마나 될까.

- 평생 제자는 안 둔다고 그리 호언장담해대더니, 무지막지한 놈을 키웠군그래?

클라인을 보며 한 비자르의 말에 이안은 뭐라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니, 도망가는 와중에 왜 이런 일을….”

“뭐긴 뭡니까.”

나무에 등을 기댄 클라인이 말했다.

“직업병이죠 뭐.”

네크로맨서란 망자의 한을 풀어, 혼을 인도하는 자.

그리고 클라인이 받아들인 저 기사들이 지닌 한은, 하나같이 이안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새로 계약한 언데드가 계약자는 나 몰라라 하고 삼촌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어떡합니까?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줘야죠.”

그렇게 말하자, 기사들을 대표하듯 비자르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됐다면서 클라인이 손을 휘젓자, 그들은 웃는 낯으로 이안에게 다가왔다.

- 제자분 덕에 기회가 생겼으니, 짧게 말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이안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을 애써 그들에게 맞추려 했다.

추호도 불편함이 없다 여겨왔던 맹인의 삶.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모습을 담을 수 없는 이 눈이 너무나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 고맙습니다 대장.

그 말에, 이안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어.”

잊고 싶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안이 입을 열었다.

“결국 난, 진실을 알리지 못했다. 너희들을 찾는 것도, 너희들의 명예를 지켜주지도 못했어.”

회한, 자신에 대한 원망.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채, 그는 고해하듯 속에 있는 것을 토해냈다.

“너희들의 복수를 하겠다 결심한 것 마저도, 이리 늦어버렸단 말이다…!”

혼자 남았을 때, 그가 느낀 것은 분노가 아닌 공포였다.

반평생을 비루하게 도망 다니며 핑계 속에 숨어지냈을 뿐이었다.

후일을 기약하자고.

준비가 모자라다고.

그렇게 대륙을 도는 사이, 그의 몸은 노쇠하여 힘을 잃었고.

지금은 이렇듯, 제 한 몸 가누기조차도 힘든 노인이 되어버렸단 말이다.

“그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너희들을……!”

- 다 하셨습니다.

자신의 말을 끊고 들어온 친구의 한 마디에, 이안의 시선이 올라갔다.

- 한평생을…. 저흴 위해 살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

울컥, 하고 치밀어오르는 감각에 이안은 고개를 떨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지금 자신이 지은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충분해?”

그것을 보며 푸우, 한숨 쉰 클라인이 묻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남은 해후는, 천천히 풀어나가면 될 일이지.

- 그럼! 언데드도 됐겠다, 대장이 죽을 때 까지는 계속 나불댈 수 있잖아?!

- 흐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을 마지막으로, 기사들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소환은 유지하는 클라인의 마기가 끊긴 탓이었다.

“좋은 사람들이네요. 친구분들.”

“……그래. 좋은 놈들이지.”

클라인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보는 것은 이리저리 산란한 노을의 붉은 빛 뿐.

“자랑스러운 놈들이고 말이야.”

그렇지만 이안은 이 흐릿한 하늘빛이,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경치보다도 아름다워보였다.

***

“으음~”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합니까?”

한밤중.

모닥불을 보며 멍하니 있던 클라인이 묻자 잠시 생각하던 스텔라가 소리쳤다.

“아, 아린 양!”

클라인의 전속 하녀, 아린.

그녀를 떠올리자, 스텔라가 벌떡 일어나 호들갑을 떨었다.

“황도 여관에 두고 왔잖아요?! 왜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

설마 붙잡힌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 여기 있어요!”

“으꺄악?!”

기괴한 외침과 함께 두어 걸음 물러서자, 깔끔한 하녀복 차림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허공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것 같은 그 모습에, 스텔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부터요!”

“어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린의 옷차림이었다.

이곳은 수해.

죽은 나뭇잎과 축축한 흙, 그리고 온갖 벌레들이 한가득 들어찬 곳이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저런 새하얀 앞치마는 금세 더러워질 텐데, 어떻게 저렇게 말끔할 수 있지?

잘 닦고 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방금 만들어낸 것 같잖아?

“도련님이 왕자님이랑 같이 나가 있으라고 했어요! 전 방해될 거라면서!”

환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아린은 클라인을 바라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쵸, 도련님?”

“…그래, 그러라고 했지.”

아린의 말에 답한 클라인이 마저 보충 설명했다.

“이 숲은 2황자님이 황도를 빠져나갈 때 사용한 탈출 경로입니다. 표식을 남긴 걸 보니, 그쪽도 일이 잘 마무리된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클라인은 손가락을 들어 나뭇가지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말한 대로, 그곳에는 비단 재질로 이뤄진 하얀색 띠가 묶여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것까지 얘기해뒀어요?”

“예, 뭐. 탈출계획을 세우는 사이 겸사겸사요.”

슬며시 스텔라의 눈을 피하며 그렇게 말하는 클라인.

그 얼굴을 본 스텔라는 알아챌 수 있었다.

“…….”

“……뭔데요?”

말없이 뚫어지게 쳐다보자, 클라인이 되물었다.

“공자님. 거짓말 진짜 못한다는 거 알아요?”

“에, 예?”

이것 봐라.

말까지 더듬는 거.

“하아…….”

내가 알면 안 되는 사실이란 걸까.

아니면 아직 날 믿지 못하겠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스텔라였지만, 굳이 더 캐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는, 이렇게 한숨이나 쉬고 있을 수밖에.

“도련님! 저 착하게 잘 기다리고 있었죠! 그쵸!”

게다가 저렇게 방방 뛰며 클라인에게 다가간 아린의 모습을 보니, 뭐 어떻나 싶기도 하다.

제국 수도로 쳐들어간다는 막무가내식 작전에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일을 마쳤으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어, 아린 양?”

“네 언니!”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한 눈으로 아린을 보던 찰나.

“입가에 뭐가 묻었네요? 새빨간 게…….”

“이리 줘요.”

그녀의 입가에 얼핏 보인 뭔가를 가리키자, 곧바로 클라인이 그녀에게 다가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뭐 먹을 때 흘리지 말라니까, 언제까지 내가 도와줘야 하냐?”

“우으으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수건으로 아린의 입가를 닦아주는 클라인.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듯,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아린 역시 익숙한 듯 목소리를 냈다.

“이 녀석 가방에는 항상 과자를 넣어두거든요. 아마 거기에서 잼이 흘러나온 걸 겁니다.”

“아, 그래요……?”

이것도 거짓말.

황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방금 전보다 더 당황한 모양새였다.

‘그건 잼 같은 것보단 꼭…….’

피와 같은 빛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려는 찰나, 스텔라는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그래도 이번엔 안 남기고 다 먹었지?”

“네! 덕분에 지금 엄청 배불러요!”

해맑게 웃으며 클라인에게 달라붙는 아린을 보며 스텔라는 피식 웃음 지었다.

‘나도 많이 긴장했나 봐. 별생각이 다 드네.’

“히히!”

저 순수해 보이는 아이가 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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