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69화 (169/209)

169. 떠올려라.

투웅-!

하늘로 튀어 오른 타이탄을 보며, 뒤늦게 몰려온 수비군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크아악?!”

“뭐, 뭐야 저게! 왜 골렘이 저런 속도로……!”

레어메탈로 이루어진 섀도우 골렘, 타이탄.

금속을 주 재료로 사용한 탓인지, 이 녀석의 외관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골렘과 별다를 바 없어 보였다.

‘뭐, 원리를 따지자면 거의 같은 게 맞기도 하고 말이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골렘과 내가 사용하는 섀도우 골렘은 엄밀히 말해,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골렘의 중심핵을 만드는 재료.

마력을 사용하는 그들과는 달리, 난 만 마리가 넘어가는 몬스터의 영혼을 응축해 핵을 구축했다는 말이다.

“노, 놈이 도망간다! 잡아라!”

“골렘 부대! 놈을 막아라!”

아, 때마침 딱 좋은 예제가 나와주는구만.

정원 중심부에서 튀어 오른 타이탄의 착지 지점에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타이탄을 막기 위한 골렘 다섯 대와, 몸체를 부수기 위한 공성마법들.

레어메탈 소재라는 것을 언질 받은 것인지, 그들 주위에는 기사가 아닌 공병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골렘으로 발을 묶고, 공성마법으로 골자를 뒤흔든 뒤 공병으로 직접 해체하시겠다?”

그 짧은 시간에 타이탄을 상대할 방법을 구상하고, 병력배치까지 해낸다니.

훌륭한 임기응변이었지만, 내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계획은 번지르르한데, 세상일이 꼭 뜻대로 흘러가라는 법은 없단 말이지.”

200년 전에 뼈저리게 느꼈던 사실을 상기하며, 난 타이탄의 무장을 전환했다.

촤르륵-!

일반적인 골렘과 섀도우 골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것이다.

처음 설계한 형태를 유지하는 골렘과 달리, 섀도우 골렘은 중심핵의 출력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변화무쌍하게 형상을 교체하는 골렘.

잠시 일렁이던 타이탄의 무기는 이제, 검이 아닌 커다란 철퇴로 변해있었다.

“어, 어어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마법사가 뒷걸음질 치던 것도 잠시.

“늦었어 새끼들아.”

쿠콰아아아앙-!

무게를 한껏 실은 철퇴가 타이탄을 받아내려던 골렘의 가슴팍을 그대로 찍어눌렀다.

쿠구구구구…….

중심핵이 위치한 흉부가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으스러지자, 동력을 잃은 골렘은 굉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쿵-!

“뭐야?!”

“하, 한 방에 박살 나다니……!”

물론, 여기서 멈춰있는다면 남은 두 기에게 붙잡힐 터.

- 타이탄!

내 명령을 들은 타이탄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골렘의 팔을 잡아 위로 올린 뒤, 다른 한 손으로 가슴팍을 꿰뚫어버렸다.

“어떻게 골렘에게서 저만한 속도가…!”

다른 골렘이 채 움직이기도 전에 이루어진 동작.

인형처럼 삐걱대는 골렘들과 달리, 타이탄은 마치 잘 훈련된 격투가와 같은 몸짓으로 두 기의 골렘을 순조롭게 처리했다.

콰득-!

철퇴를 주워 휘두르는 것으로 남은 세 번째 골렘의 머리통을 날려버리자, 타이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사라졌다.

쿵- 쿵-

저 멀리서 증원군이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시간이 남아돈다 할 수 있지.

난 곧바로 타이탄에게 명령을 내려, 눈앞에 서 있는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놈이 성벽으로 돌진합니다!”

“방어막 전개해! 어떻게든 여기서 틀어막아야 한다!”

파아앗-!

성벽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들이 수인을 맺자, 방어마법으로 강화된 성벽에서 마력장이 펼쳐졌다.

“서라 반역자! 네놈이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의 외침과 함께, 대기 중이던 병기들이 일제히 타이탄을 향해 발사되었다.

관통력이 강한 발리스타에, 염력으로 띄워 올린 철창.

타이탄의 어깨에 탄 나와 일행들을 죽이기 위한 독액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 정도 병력이 모였다는 건, 일이 뜻대로 되었다는 뜻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난 입을 열어 망자의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나와서 일해라. 앙헬.

수비군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남겨둔 내 심복.

언데드리치 앙헬.

- 이 친구, 보면 볼수록 송장 부려먹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란 말이지.

볼멘소리와 함께 등장한 로브 차림의 해골이 엄습해오는 병기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불타라.

파츳-!

그의 한 마디와 함께 허공에 전류가 튀어 오르고.

화르륵-!

이윽고 그곳에서 터져나온 푸른 불꽃이 내게로 다가오던 공성병기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 레이븐!

물론, 다른 한 명도 놀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법.

투화악-!

레이븐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눈앞을 새빨갛게 물들인 불꽃이 횡으로 갈라졌다.

다 타지 않았던 공성병기의 탄환들과 철창은, 레이븐의 검격을 버티지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상층 거주구를 습격한 언데드입니다!”

“뭐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수비대장이 침음성을 흘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것도 클라인 공자의 술수였단 말인가?!”

공성병기들은 무력화됐고, 남은 것은 눈앞에 있는 저 성벽 뿐.

이중 삼중으로 방어마법이 덧씌워진 성벽이 가까워져 왔지만, 그것을 보는 난 망설임없이 타이탄의 속도를 높혔다.

“멈추지 않습니다! 놈이 직선으로……!”

“제 발로 죽으려 달려드는군. 이 성벽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인가!”

성벽을 감싸는 마력장을 본 수비대장이 입가를 비틀었다.

“전군! 충격에 대비하라! 놈이 움직임을 멈추면 그 때 포위한다!”

그는 내가 이 성벽을 뚫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겁먹지 마라! 황도의 성벽은 제국의 오랜 역사동안 한 번도 뚫리지 않은 철옹성!”

“엥?”

“플리시안의 대마법이라 할지라도, 이 벽을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한 마디.

그 말을 들은 난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새끼들 이거. 200년 전에 뭔 일이 있었는지는 다 까먹었다 이거지?”

까먹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제국의 성벽이 뚫렸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지웠겠지.

온 대륙을 호령할 제국의 수도가 골렘 한 기에게 뚫렸다는 역사가 전해진다면, 황제 입장에선 꽤 쪽팔릴 테니 말이야.

“그럼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뚫어볼까?”

물론, 지금 내 결정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자금의 나와 내 일행은 라인란트 영지까지 도망가야 하는 신세.

황도를 벗어난다 한들 각지에서 추격자가 따라붙을테니, 왠만해서는 힘을 낭비할 수 없었다.

‘원래 같았으면 그냥 뛰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기고만장한 얼굴.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바뀌었다.

“다시 떠오르게 해 줘야지.”

200년 전의 패배를.

수도가 짓밟히고, 황제가 지하에 숨어 목숨을 구걸하던 그때의 치욕을.

쿵-! 쿵-!

그렇게 생각하며 타이탄을 향해 손을 뻗자, 내 의도를 알아챈 타이탄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 가자, 타이탄! 200년 전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자고!

내 외침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타이탄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눈부시게 빛났다.

- 명령 확인.

짧은 한 마디와 함께, 타이탄은 달리는 속도 그대로 성벽과 충돌했고.

키이이이잉-!

타이탄의 돌진을 막고자, 성벽에 깔린 마력장이 맹렬하게 반응했다.

쿠쿠쿠쿠쿠쿠-!

“어, 어어어……?”

반동으로 지축이 뒤흔들리고, 성벽 위에 서 있던 병사들이 이리저리 휘청이던 순간.

파직-!

술식에 자그마한 균열이 이는 것을 시작으로, 눈부신 섬광이 좌중을 순식간에 뒤덮였다.

그리고 그 눈부신 빛과 함께…….

쿠콰아아아아앙-!

폭음이 온 사방의 공기를 찢어발기고, 황도의 성벽이 터져나갔다.

“으, 으아아악-?!”

“성벽 붕괴! 바, 방어술식이 붕괴했습니다!”

경악과 공포가 뒤섞인 시선이 나와 타이탄을 향했다.

무너진 성벽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수비대장과 눈을 마주친 난 빙긋 웃으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야야야야 조카놈아! 이거 너무 빠르잖아?!”

“우와아아아-! 이거 겁나 재밋어요!”

맹렬하게 돌진하던 타이탄의 어깨에서 상반된 두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 이리 높아?! 늙은이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면 너 천벌 받는…! 우와아악?!”

이런 경험이 처음인 듯, 타이탄의 어깨를 있는 힘껏 잡고있는 이안과.

“더 빨리! 더 빨리--!”

달리는 타이탄의 속도에 중독이라도 된 것인지,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 소리치는 스텔라.

모르긴 몰라도, 양쪽 다 제정신은 아니었다.

투웅-!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타이탄의 거체가 다시 한 번 하늘을 날았다.

성벽을 박살내는 건 한 번이면 족하고.

그 뒤에는 이런 식으로 뛰어넘으면 될 일이었다.

두두두두두-!

수도를 벗어난 타이탄이 전속력으로 들판을 가로질렀다.

황도가 침공당했다는 소식보다도 빨리 북부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멀리 보이는 북쪽 산 능선을 바라보며, 내 눈이 빛났다.

라인란트군의 준비는 완벽에 가깝다.

제국군의 1차 침공 정도는 막아내겠지.

그렇지만 전쟁을 길게 끈다면, 결국 패배하는 것은 우리다.

압도적인 물량 앞에서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200년 전 윈터폴과 같은 결말을 맞을 테니까.

그러니, 한 순간에 몰아쳐야 한다.

대응할 틈도 없이 밀어붙혀, 제국의 중심부를 송두리째 분쇄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얼음성으로 가야겠어.”

***

“제길, 추격대를 소집하라! 당장 저것들을 잡아!”

성벽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여간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수비대장이 병사들을 향해 노발대발했다.

“이, 이미 황궁 벽을 넘었습니다! 지금 달려간다 해도 붙잡을 가능성이…!”

“그럼 황성에 침입한 반역자를 눈 뜨고 놓치라는 말이야?!”

이미 저 멀리 사라져가는 타이탄의 거체를 보며 수비병이 소리쳤지만, 수비대장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황도가 유린당했단 말이다! 황궁이 침공당했다고!”

아니, 그렇게 외쳐대는 수비대장의 모습은 분노하고 있다기보단 공포에 질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정말 모르겠나?!”

북부를 제압하고자 병력을 모으고 있던 차였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흔들리지 않는 권위로.

북부의 죄를 엄중히 물어, 황권이 건재함을 온 대륙에 괴시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이 순간, 그 모든 계획이 반대로 뒤집혀버렸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제국의 권위에 먹칠을 하다니, 황도가 유린당하다니…!”

“……!”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니라, 북부의 둘째 공자한테!”

기사 학잘자, 이안 라인란트는 탈옥했다.

제국의 중심가인 수도에 언데드가 창궐하고, 황도 수비군은 그것들을 막기에 급급했다.

단순히 이것만 하더라도, 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 참사다.

근데 그것도 모자라 황성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탈옥한 죄수가, 황제 폐하의 목에 칼을 들이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대형사고를 터트려놓고, 도망가는 것을 잡지도 못했다고?

쿠르르르르……!

심지어 그 와중에, 황도의 성벽까지 붕괴해?

“여긴 황도다…. 제국의 심장이란 말이다…! 온 대륙의 인간들이 주목하는 상징적인 도시란 말이다!”

전투가 벌어진 이상 숨길 수도 없다.

성벽이 무너진 이상,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수조차도 없다.

제국의 권위가, 말 그대로 땅에 떨어진 것이다.

황제의 분노가 어떨지, 제국군의 사기가 어떻게 될지.

북부와 제국의 전쟁을 지켜보던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였다.

“클라인 라인란트…….”

그런 와중,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 모든 일을 저지른 장본인인 클라인 공자.

이 사건으로 인해, 온 대륙이 그를 주목하게 될 거란 사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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