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잘 먹겠습니다!
스스스스…!
어둡고 축축한 하수구를 기어다니는 것이 있었다.
사람의 팔뚝만한, 커다란 벌레.
수십 개의 다리를 움직이는 그것은 하수구를 타고 내려가 지하로, 더 깊은 지하로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었다.
착-!
이윽고 그 흉물이 도달한 곳은, 거대한 실험실.
갖가지 수술도구와 흉물들로 점철된 그곳에 도착하자, 벌레는 곧바로 실험실 한 구속으로 기어갔다.
쿠르르르르……!
벌레의 움직임을 감지하자, 석실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누워있는 것들은 시체.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보존된, 그의 새 몸들이었다.
푸욱-!
벌레는, 아니, 데이먼은 그중 하나를 골라 심장 부근을 파고 들어갔다.
까득-! 까드득-!
심장 부위로 들어간 커다란 벌레가 몸 안에서 똬리를 틀자, 축 늘어진 시체의 관절이 이리저리 뒤틀리기를 수십 번.
“아극, 아, 우으……!”
성대와 입을 몇 번 달싹인 뒤, 시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말도…. 말도 안돼……!”
늙은 노인의 몸이었던 지난 번과는 달리, 지금의 그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젊은 육체가 무색하게도, 데이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으스스 떨고 있었다.
“저것이 아키몬드…. 내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것은 도대체……!”
완벽한 포진이었다.
언데드의 편성, 데스나이트의 완성도, 심지어 작전이 어긋났을 때를 대비한 예비까지 준비했었다.
한 평생 연구해온 자신의 집대성.
그렇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갔다.
쿨럭-!
분노를 곱씹을 새도 없이 데이먼의 몸이 허물어졌다.
가습팍에서 느껴지는 시큰한 통증.
“이럴, 이럴 때가 아니야…!”
시간이 없었다.
이 몸은 마기라고는 추호도 받아들이지 못한, 비상용 육체.
“다시 마기를 모아서, 새 군단을 만들어야 해.”
쓸만한 혼을 찾아서, 시체를 찾아 재조립하고.
끊어진 계약을 복구하고 술식을 가다듬어서, 어떻게든 기존의 언데드 군단을 복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제길-!”
콰앙-!
분에 못 이겨 내리친 탁자가 산산이 부서졌다.
단순히 패퇴했다면 차라리 낫다.
전략이 미흡해 패배했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다시금 힘을 가다듬어, 한 번 더 도전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뭐란 말인가?
빼앗기다니.
한 평생 쌓아온 자신의 군단을, 술식 하나로 송두리째 빼앗아가다니!
“아키몬드.”
이전 육체에서 탈출해 하수구로 도망치던 순간.
그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던 클라인의 얼굴을 떠올린 탓이었다.
“감히…. 감히 날 그따위 눈으로……!”
클라인은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그는 사령술도, 검술도 출중한 자.
자신이 도망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단지 하찮은 미물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볼 뿐.
그 모습은 말 그대로, 벌레처럼 하찮은 것을 보는 듯 했다.
쾅-! 쾅-!
연달아 책상을 내리친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그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자신을 패퇴시킨 상대에 대한 분노인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욱 강한 언데드를 만들어서…. 다음에는 기필코……!”
그가 이렇듯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함이 아닌, 공포를 감추기 위해.
방금 전 패배를 통해 느낀 무력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안색이 창백해진 데이먼이 허공에 대고 미친 듯이 소리치던 와중.
쿠르르르르…….
그의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한 듯, 실험실 한 가운데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철퍽! 철퍽!
고름과 핏물이 곳곳에서 뿜어져나오는 거대한 살덩이.
천천히 기어나온 그것의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얼굴이 붙어있었다.
“아아, 아아아……!”
“쯧, 그 사이를 못참고 기어나왔나?”
불어터진 살덩이를 보며, 데이먼은 자신에게로 걸어온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헬리안.”
헬리안 라인란트.
폴와이번 공작가를 집어삼킨 여인이자, 성혈 유통망의 일익을 담당하던 자.
북서부 해안지역을 총괄하던 황제의 수족이,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다.
“끄어어어……!”
옆으로 꺾인 채 혀를 빼문 모습에서는 이전의 기백과 이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혈을 과다복용하여 변이된 육체.
스스로 성혈을 만들어내는 괴물로 변한 그녀는 지금, 데이먼의 언데드 군단을 지탱하는 중심핵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 계약이 약한 것이 문제라고 했었지?”
그런 헬리안의 모습을 본 데이먼이 입가를 비틀었다.
“남에게 빌린 힘으로 군단을 만들어 봐야, 아무 짝에 쓸모 없다고. 이전처럼 빼앗길 뿐이라고. 그렇게 말했었지.”
분노하는 동시에, 데이먼은 경탄했다.
처음 겪는 네크로맨서들끼리의 싸움.
언데드 군단을 부딫히는 것이 아닌, 그 통제권을 빼앗기 위한 싸움.
마기를 이용한 줄다리기.
클라인 공자.
아니, 아키몬드가 그에게 보여준 사령술은 늙고 정체된 그의 사령술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진보시킬 것이다.
푸욱-!
데이먼의 손이 부풀어오른 살덩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까득, 까드득.
“자, 먹어라 헬리안. 식사 시간이다.”
“아, 아아아……!”
수십 개의 이빨이 팔을 파고드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데이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구를 위해 이 괴물을 묶어놓는 것도 여기까지.
먹이와 함께 자신의 본체를 헬리안의 몸 안에 집어넣어, 이 거대한 성혈단지 자체를 자신의 몸으로 만들 속셈이었다.
“한 병의 성혈을 복용한 것만으로도, 한순간은 그를 압도했었다.”
방금 전 전투를 곱씹으며 데이먼은 확신했다.
이 패배를 교훈삼아 한층 더 보강한다면.
그리고 더욱 많은 성혈을 활용한다면, 자신은 아키몬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아키몬드의 몸을 취하게 된다면 난 그 곳으로 향할 수 있다…….”
북쪽 끝에 위치한 망자의 땅.
그 어두운 극한의 땅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악몽의 요새.
아키몬드의 최종 거점, 얼음성.
“그곳에 닿는다면, 그 거대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기대에 한껏 부푼 데이먼이 그렇게 외치던 순간이었다.
“우와~! 엄청 크다!”
“?!”
천진난만한.
그렇기에 더욱 이질적인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리자, 데이먼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너, 는……?”
실험실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자아이였다.
갈색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쓴 소녀.
입고있는 깔끔한 하녀복은 피과 시체로 점철된 이 공간과 대조를 이뤄, 마치 그녀만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도련님 엄청 쎄죠?”
“도련, 님…?”
“네!”
그 말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데이먼은 정보부에서 제공한 클라인 공자의 신상정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동행은 두 명.]
[스텔라 라프탈리아. 전 신성교단 소속 전투수녀.]
[아린. 라인란트 공작가 하녀. 신원 미상.]
신원 미상.
대륙 전체를 감시하는 제국 정보부가 그런 표기를 한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여느 난민 고아들과 다를 바 없어서?
너무 흔해빠진 나머지 상세한 정보를 기록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덕분에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됐잖아요!”
“!!!”
선생님.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아린의 말에, 데이먼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착각일 거야……!’
“히히!”
“……!”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저 작은 얼굴에 맑은 웃음이 피어오르는 순간, 데이먼은 분노로 한껏 달아올랐던 피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말도…. 안, 돼……!’
새하얗게 질린 데이먼의 눈이 바닥을 훑었다.
굳은 피와 실험기구, 잔해들로 뒤덮인 바닥이 이제는 새카맣게 물들어있었다.
사아아아아…….
바닥 뿐만이 아니었다.
벽면, 천장, 심지어는 자신과 융합되고 있는 헬리안의 몸체 일부마저.
아린이라는 하녀의 치마 속에서 나온 그림자가, 그 모든 것들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아직 살아있는 것이냐……!”
저 그림자를 처음 보는 이였다면, 단순한 환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단순한 언데드. 혹은 유령 같은 정신체의 한 종류라 생각하겠지.
“네가, 어째서……!”
그렇지만 데이먼은 아니었다.
그는 제국 최고 위치의 네크로맨서.
제국이 윤용하는 사령술과 그것을 이용한 성혈 생산.
그리고 교국과 공조하여 건설한 수많은 연구시설.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연구를 총괄하고 있었으니까.
“크, 크리펠에서 진행하던 연구는 오래전에 중단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저것이 무엇인지 안다.
저 소녀, 아니, 소녀 흉내를 내고있는 저 괴물이 본래 무엇이었는지를!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리펠 지하에 잠든 그 검은 것은, 분명히…!
“분명 그 대행자가, 그곳에 있던 실험체도, 자료도, 남김없이 없애버렸단…!”
크리펠.
그 이름을 입에 담던 데이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주신 케르시아스를 강림시키기 위한 첫 번째 실험장.
실험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써 이송한 수많은 불순분자들.
쓰다 버릴 소모품들의 명단 속에서, 데이먼은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그와 동시에 데이먼은 크리펠을 깨부수고, 클라인 공자를 빼낸 교단의 대행자의 이름 또한 떠올렸다.
[개리슨 비어크만.]
크리펠에 갇힌 아키몬드의 환생.
그 크리펠을 부수고, 자신들의 첫 계획을 엎어버린 대행자.
두 가지의 조각이 맞물리자, 데이먼은 곧바로 사건의 전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사건을 계획한 것은 대행자가 아니라…. 클라인 공자였단 말인가?”
마치 자신이 깨닫기를 기다려주듯 움직임 없이 웃고 있는 소녀.
그런 그녀를 보며 중얼대는 데이먼의 음성은, 분노라기보단 거의 체념에 가까웠다.
“대행자를 포섭하고, 첫 번째 강림을 막고, 계획의 중심이었던 ‘그것’을 빼앗는 것까지…….”
일곱 살 어린아이의 몸으로, 그 모든 일을 해냈다.
제국과 교국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하던 계획이, 일곱 살 어린아이의 손에 산산이 부서졌다.
제국이, 교국이, 교단이.
그 모든 이들이, 그자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클라인 라인란트.
아니, 아키몬드의 손에!
“생각 다 하셨어요?”
턱을 덜덜 떨고 있는 데이먼을 보며, 아린은 웃는 얼굴 그대로 한 발자국을 내밀었다.
“히, 히익?!”
이미 헬리안의 육체와 그의 몸은 대부분 융합된 상태.
아마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데스나이트 한둘 정도는 곧바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지 마, 오지 마……!”
그렇지만 데이먼은 그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투쟁심과 열의에 휩싸인 머릿속이, 지금은 무력감과 공포로 점철되었다.
데스나이트가 둘이건, 수십이건, 수천이건.
지금 저것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저것은, 현세에 강림한 신을 먹어치웠던 괴물인데!
“히~!”
아린의 입이 벌어지는 동시에, 그가 서 있는 공간 전체가 입을 벌렸다.
수십 개의 입, 수만 개의 이빨이 군침을 흘리며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부탁이다…. 제발, 제발……!”
애원하듯 울부짖는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잘 먹겠습니다아아-!”
아린의 외침과 함께, 그림자의 파도가 데이먼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