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식사시간(2)
“허어…. 크, 크으……!”
도망치는 황제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언데드들을 빼앗았다 한들 황제의 옆에 있는 저 진이라는 기사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안의 체력은 한계에 달한 상황이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이 싸움의 승기는 확실히 잡아냈다.
“난리도 아니야. 그렇지?”
빙글빙글 웃으며 한 내 말에 데이먼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몸은 이미 독이 잔뜩 들어찬 송곳니에 찔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가져온 언데드는 전부 데스나이트에 의해 소진된 상황.
마기를 빌리는 것도 무한한 것은 아니었는지, 데스나이트들과의 계약도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크으-!”
숨을 몰아쉬던 데이먼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언데드의 독액에 의해 다리가 썩어들어간 탓이었다.
“말도 안 돼…. 나, 나는……!”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며 그가 뭐라 입을 달싹이던 순간.
뿌득-!
“?”
그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털썩!
그 소리가 무엇이었을지 가늠해보기도 전에, 데이먼의 몸이 허물어졌다.
싸늘하게 식은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끝난 거냐?”
황제가 도망친 방향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이안이 내게 다가왔다.
“사령술의 진의니 뭐니 소리치던 것 치고는, 초라한 죽음이구만.”
그렇게 말한 이안은 숨을 내쉰 뒤 검을 집어넣었지만.
“아뇨.”
그의 시체를 본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뭐라고?”
내 말에 이안이 의문을 표하는 순간.
뿌득-!
방금 전, 데이먼의 몸속에서 들렸던 기괴한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까득! 우드득-! 꾸득-!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데이먼의 몸은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요동치듯 이리저리 꿀렁이고 있었다.
“야, 조카놈아. 저거…….”
“말했잖습니까. 아직 안 끝났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계속해서 꿀렁거리던 데이몬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크, 크어, 커어어……!”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채, 이따금씩 목소리만을 흘리는 처참한 몰골.
사람이 아닌, 좀비와도 같은 몰골이었다.
“뭐야, 하다 하다 자기 자신까지 언데드로 만든 거야?”
“아니요. 저건 황제가 한 짓입니다.”
“황제?”
눈살을 찌푸린 이안이 내게 되물었다.
“예. 데이먼을 향해 뭔가 말을 하더군요.”
싸우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내내 황제를 향해있었고, 그렇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난간에 올라가 있던 황제가 뭐라 입을 달싹거리자, 데이먼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을.
“저건…….”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떠올린 것은 폴와이번 내전 당시였다.
‘자결하라.’
페트리우스의 몸을 뒤집어쓴 황제는 당시 제국군 지휘관이었던 귀족에게 그렇게 말했고.
‘아, 안돼…! 제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몸은 충실하게 단검을 목으로 가져갔었지.
마치 그의 몸이 다른 존재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뭔가 이상한데.”
물론, 다른 이에게 행동을 강요하는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일부 마법사들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정신계 마법은 플리시안에서 대대적으로 감시하는 사회문제고.
연금술로 만들어진 갖가지 약물들도 즐비하다.
심지어 나 같은 네크로맨서들도 망자의 목소리를 통해 산 자의 의지를 주무를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데이먼의 몸 상태에 의문을 표한 것은, 그 방식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니, 뭐가?”
“사람을 조종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 방향이 좀 다릅니다.”
폴와이번 내전의 마지막.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신계 마법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의지를 지배합니다. 충성심을 억지로 새기거나, 감정을 증폭시키거나, 상식을 뒤집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입으로 직접 말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폴와이번 내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황제의 명령을 받은 자들의 의지는 왜곡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또렷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었죠.”
황제가 썼던 것이 정신계 마법이었다면, 자결을 명받은 사령관은 기쁘게 그것을 수행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때의 사령관은 싫다고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베어버렸지.
‘마법이 아니다. 오히려 이건, 다른 물리적인 방법을…….’
그렇게 가설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찰나.
“크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데이먼의 몸에서 웅혼한 마기가 쏟아져나왔다.
“야 이 미친…!”
성혈을 통해 한계까지 강화한 그의 마기.
그렇지만 마기의 양이 늘어났다 한들, 그릇의 크기는 변하지 않는다.
품에 맞지 않은 힘을 탐한 대가는 그의 몸으로 치르게 되니.
지금 그의 상태는 말 그대로,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도 같았다.
“키이이-!”
새하얀 흰자를 까뒤집은 눈을 번득이며, 데이먼이 손을 뻗었다.
- 크어어어……!
- 커어, 크워억-!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를 받은 데스나이트들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적어도 두 배는 비대해진 육체.
데스나이트, 아니, 이젠 그렇게 부를 수조차 없는 괴물들은 그렇게, 나와 이안을 둘러싼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적어도 이거 하나는 인정해야겠는데.’
성혈의 기초이론을 창안한 것은 나다.
제조법도, 안정화시키는 방법도 모두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인정할 수 있었다.
황제 녀석이 발전시킨 성혈은, 경이로운 진화를 이룩해냈다고.
‘수단이 사람의 혼만 아니었다면, 찾아가서 칭찬이라도 몇 마디 해줄 텐데 말이야.’
경탄과 구역질을 동시에 느끼면서, 내 손은 곧바로 수인을 맺었다.
- 타이탄!
내 망자의 목소리가 타이탄의 귓가에 들어가자, 흉포한 야수처럼 으르렁대던 타이탄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쿵-!
- 명령 확인. 소환자 직접 제어로 전환.
마치 다른 존재인 양 달라진 차분한 분위기.
- 크워어어-!
- 캬아악-!
그런 타이탄을 향해 데이먼의 마기로 강화된 데스나이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보인다.’
열 명의 기사들.
그들이 내지르는 공격.
그것이 만들어낸 궤적과 경로, 그리고 그 수많은 선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어있는 틈새 하나.
촤르륵-!
내 의지에 따라 레어메탈로 이루어진 타이탄의 형상이 변화했다.
손에 든 무기는 거대한 망치에서 날카로운 검으로.
육중한 철갑과 근육질의 몸은, 유선형의 갑옷과 날렵한 몸체로.
그리고 데스나이트들의 협공이 이뤄지는 것과 동시에, 타이탄의 거체가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쿠콰아아아앙-!
웅혼한 마력이 담긴 수많은 검.
수만 몬스터의 혼으로 빚어낸 거신의 강격.
두 힘이 맞부딪히자, 정원에 피어있던 꽃들이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며 비산했다.
“이제야 좀 네크로맨서들 싸움같아졌구만!”
빈틈을 명확히 잡아낸 일격이 데스나이트들을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충격에 의해 계약자와의 연결이 한층 약해진 상황.
난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계약문에 내 마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푸른 기운이 흩어진 기사들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도 잠시.
- 크으-!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을 장악해가던 내 마기가 움직임을 멈췄다.
“크르르르르…….”
그 이유는 보다시피, 내 앞에서 짐승마냥 으르렁거리는 데이먼.
“쯧, 다 죽어가는 놈이.”
이미 육신은 한계에 달해, 죽은 것과 진배없는 몸.
완전히 미쳐버린 그는 힘에 대한 욕망과 독점욕만을 남긴 채 움직이는 괴물이요, 황제의 인형이었다.
“200년 만에 이 짓거리를 해보네.”
그렇게 말하며, 난 몸에 갈무리했던 마기를 단번에 풀어냈다.
투화악-!
“우와악?!”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
그것이 보일 리가 없음에도, 스텔라는 자신의 몸을 엄습해오는 한기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키기기기긱……!
넘실대는 붉은 마기와 차분히 가라앉은 푸른 마기.
서로에게서 뿜어져 나온 상반된 두 기운이 좌중을 반으로 갈랐다.
서로의 언데드를 빼앗기 위한 네크로맨서들의 쟁탈전.
이른바,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크아아-! 크아아아-!”
“새끼가 아까부터 시끄럽게.”
성혈의 힘으로 강화한 것도 모자라, 모종의 이유로 폭주까지 해대는 상태.
노도처럼 흘러들어오는 마기가 사방을 엄습하기 시작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내 머릿속은 차가워졌다.
“출력이 쎈 건 인정 하겠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한 그다음 순간.
팟-!
한 곳으로 집중시킨 마기가 앞으로 뻗어 나가고, 나 역시 그 궤적을 따라 몸을 날렸다.
“클라인!”
이안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한, 서로의 언데드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두 네크로맨서들 사이의 끊임없는 소모전.
진 자는 망자가 되어 혼을 복속당하고, 이긴 자는 마기를 전부 끌어 올린 부작용으로 탈진하게 된다.
승패는 있지만, 득은 없는 진흙탕 싸움.
그게 네크로맨서의 싸움이었고, 데이먼을 희생시켜 날 잡아내려는 황제의 술수였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
네크로맨서가 소모전에 응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난 네크로맨서임과 동시에 검사.
서로의 언데드가 멈춰 있는 상황이라면, 내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크으?!”
데이먼의 몸이 지척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몸 상태는 더욱 처참했다.
양팔은 축 늘어진 채 꿈틀거릴 뿐인 데다가, 복부는 이미 활짝 열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었다.
까득-! 까득-!
일어서있는 그의 몸을 파먹는 커다란 벌레.
그것을 본 난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찬 수정검을 뽑아 들었다.
스스스스스…!
한기를 내포한 설화수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검신에 닿은 공기가 얼어 새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휘두르는 궤적이 어긋나기만 해도 부러져 버리는, 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유리 조각.
스걱-!
그렇지만 그 투명한 검은 그대로 데이먼의 몸을 갈라, 그 혼을 완전히 베어냈다.
사아아아아-
베어진 부위가 하얗게 일어난 것도 잠시.
그곳에서 뻗어 나간 하얀 기운이 데이먼의 몸을 점점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꺼어어어……!”
마른 숨을 내뱉는 것을 마지막으로, 데이먼의 몸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퍼석-!
수정검은 육신이 아닌, 혼을 베어내는 검.
마기의 근원인 혼을 잃어버린 데이먼의 몸은, 석고처럼 굳어버린 채 쓰러져 산산이 부서졌다.
파아앗-!
주인 잃은 언데드들의 통제권을 빼앗는 것은 간단한 법.
움직임을 멈춘 데스나이트들을 보자, 이안은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났군.”
“그렇죠.”
그런 그의 말에 답하면서도, 내 눈은 쓰러진 데이먼의 시체를 향해있었다.
꾸득, 꾸득.
죽은 육체를 비집고 나온 한 마리의 벌레.
그것은 내 안색을 살피듯 날 돌아본 뒤, 재빨리 기어가 하수구 속으로 몸을 던졌다.
‘벌레 같은 놈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벌레였을 줄이야.’
하수구 속으로 도망친 벌레, 아니, 데이먼을 보며, 난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아린.”
일렁이는 그림자를 보며,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식사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