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66화 (166/209)

166. 식사시간(1)

“이, 이런, 이런 일이…!”

언데드와의 계약이 끊어진 것을 느끼자 데이먼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 새로 계약한 데스나이트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새 몸은 좀 쓸만한가?”

간단한 인사임과 더불어, 어느 정도까지 인격이 보존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

- 좋군.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 난 안심할 수 있었다.

키예스처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 더 이상 저놈의 손에 놀아나는 것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육신을 저주할 일도 없으니 말이야.

쿠우우우….

그의 영체는 키예스 때와 같이 갑옷으로 가려진 상태.

투구에 가려진 얼굴이 어떤 모습일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마력의 움직임.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쐐애애액-!

그 순간, 정체불명의 물체가 날 향해 날아들었다.

카앙-!

내게로 날아든 것은 독액과 고름을 가득 머금은 살 조각.

그것을 쳐낸 것은 내가 아닌 데스나이트, 비자르의 검이었다.

촤륵-!

군더더기 없는 동작과 빈틈없는 회수.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간결해진 동작까지.

데이먼의 지휘를 받던 시절보다 월등히 나아진 움직임이었다.

“마력 운용도 개선됐고…. 그사이 내 검술까지 훔쳐봤구만?”

눈을 가늘게 뜬 대 그렇게 묻자, 비자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눈앞에 다음 경지가 있는데, 취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내 말이 틀린가?

“좋네. 이번 신입은 무뚝뚝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초면에 능글맞게 내 말을 받아넘기는 비자르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평했다.

레이븐 녀석, 돌아오면 말동무가 생겼다며 좋아라하겠구만.

키예스야 뭐, 워낙에 말이 없었으니까.

“아직, 아직이다……!”

그렇게 간단히 데스나이트의 정보를 파악하는 사이.

얼굴이 새파래진 데이먼이 내 주변을 언데드로 감싸기 시작했다.

“접근전을 시도하면 언데드를 빼앗기니, 원거리에서 독에 절여 죽여버리겠다?”

저열한 사령술 답지 않게 합리적인 상황판단.

군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이래서 까다로운 법이다.

“근데 이 새끼 이거.”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난 기고만장한 비웃음과 함께 계속해서 그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파츳-!

날 중심으로 뻗어 나간 푸른 선들이, 날 포위한 언데드들의 살덩이를 감싸기 시작했다.

- 크륵?!

- 크워어억-!

성대가 형성되어있는 몇몇 언데드들에게서 침음성이 흘러나온 것도 잠시.

“뭐, 뭐야.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언데드를……!”

날 공격하려는 동작 그대로 굳어버린 언데드들은, 더 이상 데이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아키몬드 사변 이후, 우리 네크로맨서들은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날 포위한 언데드들을 그대로 날 둘러싼 벽이 된 격.

그것을 확인한 난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저술한 서적은 불태워지고, 옛 역사가들은 매장되었으며, 그들의 존재를 알리던 시인들은 혀가 잘려나갔지.”

혼과 소통하고, 그들을 인도하는 네크로맨서의 계보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너희들은 사령술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했고, 조금이나마 복구한 사령술을 독점했다.”

아키몬드 교단, 그리고 제국의 네크로맨서.

“그 덕택에 숱한 전쟁에서 이기고, 또 이득도 실컷 봤겠지만….”

그들을 겨냥한 내 말에 데이먼의 얼굴이 굳었다.

“그 지식을 독점한 덕에, 너희들은 같은 네크로맨서와 싸우는 법을 몰라.”

“……!”

그 말을 하는 동시에, 난 수인을 맺은 손가락을 천천히 돌렸다.

철퍽-! 철퍽-!

완전히 제어권을 빼앗긴 언데드들이 등을 돌려, 데이먼을 향해 뼛조각을 겨누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네크로맨서끼리의 싸움은 언데드 쟁탈전이다. 계약한 언데드는 적을수록, 비어있는 계약문과 마기는 많을수록 유리하지.”

난 한때 아이신기오르의 왕궁에서 4만 명의 혼과 계약했었고, 그들 중 태반은 이미 환원된 상태였다.

고작 해봐야 천 구 정도를 다루는 저 녀석에 비하면, 물웅덩이와 호수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뜻.

“게다가 이 하위 언데드들을 만든 마기도 네 것이 아니잖아? 그렇지?”

“……!”

“안 그래도 계약자와의 연결이 약한데, 상대 네크로맨서는 네 언데드의 신체 구조를 완전히 해석했다.”

내가 영체의 구조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단순한 장인정신 때문이 아니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그런 이유로 인체를 통으로 구현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생각해 봐.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

네크로맨서가 언데드의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일종의 보안장치.

적 네크로맨서에게 제어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방어수단 중 하나였다.

“……!”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데이먼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서렸다.

“이해가 빠르니 좋군.”

학습능력이 좋은 수강생을 보며 뿌듯해하던 것도 잠시.

“죽지 않는 기사들과 그들을 위한 스페어 파츠, 영원히 복구되는 불사의 기사단. 좋은 설계라는 건 내 인정하지.”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내용을 입에 담으며, 난 후련한 기분으로 웃어 보였다.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어.”

따악-!

내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정원 전체를 포위하던 살덩이들이 일제히 데이먼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안돼……!”

자신의 포진이 송두리째 무너졌다는 것을 깨닫자, 데이먼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윽고 이어진 것은, 시체가 시체와 싸우는 내부 분열.

이른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

‘언데드를 빼앗은 건가? 아니, 그것보다 저 소년은….’

이안과의 전투에 한창이던 진이었지만, 그는 잠시 눈을 돌려 클라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저 음험한 사령술사들이 시체를 어떻게 가지고 놀던, 그의 알 바는 아니다.

본래라면 그들이 어떻게 나오든, 자신은 황제를 지키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한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시선에 들어왔다.

마치 거울로 뒤집은 듯,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반대 방향으로 펼친 소년.

그리고 그 뒤에 소년이 펼친 제국식 검술은, 그조차도 본 적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소년은 마치 그가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행동했다.

예측? 웃기는 소리다.

언데드라고는 하나, 처음 만난 검사의 첫 공격.

검의 궤적, 간격, 공격형태, 마력의 파장, 휘두를 때 이뤄지는 힘의 배분까지….

그 모든 것을 예상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자신과 싸우는 이안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 소년은 뭐란 말인가?’

그렇기에 진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클라인 공자가 처음 본 검술을 재현한다는 것은 들은 바가 있다. 그렇지만 이건….’

클라인이 펼친 무위가 단순히 그 정도 수준이었다면, 그 또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륙은 넓고, 그만한 천재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가 경악한 것은, 그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번의 검을 나눈 뒤, 상대의 검술을 스스로 발전시켰다. 그 짧은 시간에…….”

클라인이 펼친 검술은 라인란트식 검술이 아니었다.

그와 대치하던 데스나이트의 것을 재현한, 같은 계통의 검.

그렇지만 저 소년은 단순히 그 검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경지의 검을 선보였다.

만일 저 데스나이트가 수십 년 동안 성장했다면 선보였을,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의 검을.

‘검의 편린을 보는 것만으로 그 검술의 전부를, 심지어 그 위의 경지까지 구현한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한눈팔 시간이 어디 있나, 진 클라크-!”

그의 지척까지 다가온 이안의 검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크으!”

카앙-!

찰나의 순간 이뤄진 방어라 그런지, 동작에 군더더기가 보인다.

그것을 잡아낸 이안의 검이 곧바로 검로를 비틀어 찌르기로 전환했다.

스걱-!

얕은 절삭음.

시선을 돌리자 이안의 검이 그의 목덜미를 살짝 스쳐, 색색의 정원에 빨간 선혈을 흩뿌렸다.

“칫, 얕았군.”

“……!”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이안을 보자, 검을 잡은 진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굳이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전투 중 한눈을 판 것은 자신이었고, 이안은 그 틈을 노릴 만한 검사였으니까.

“아까부터 얌생이마냥 뭘 자꾸 옆을 흘겨보고 있는 게야? 엉?”

진의 동요를 감지한 듯, 이를 드러낸 이안이 그렇게 이죽거렸다.

“저 소년은….”

“우리 제자놈 말이냐? 끝내주지? 이제 마력 없으면 나도 쟤 못 잡는다.”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이안이 그렇게 말하자, 진의 눈빛이 한층 더 열기를 띄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만일 저 소년이 그런 능력을 지녔다면….

‘내가 이안과 싸우는 이 순간마저도……?’

“뭐 하고 있나, 진-!”

“……!”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혼란한 머릿속을 휘젓는 것도 잠시.

“당장 저 반역자들을 죽여라! 저것들을 내 눈앞에서 치우란 말이야!”

등 뒤에서 들려온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

정황상, 데이먼은 언데드의 제어권을 빼앗긴 상황.

진형이 무너진 이상, 저쪽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원래는 이안을 죽이고, 저쪽에 가세할 생각이었지만….’

이안의 안색을 살핀 진은 생각했다.

패색이 짙은 저쪽과는 달리, 자신과 대치한 이안은 전성기가 지난 늙은 검사다.

게다가 지금의 그는 장기간의 수감생활, 그리고 고문으로 몸이 온전치 않은 상황.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의 검은 한치 흔들림이 없었다.

‘이안을 죽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다음이 문제로군.’

판단을 마친 진은 이안에게 달려들어 최대 출력의 마력을 쏟아부었다.

쿠콰아아앙-!

“크윽?!”

공격을 받아낸 이안이 뒤로 물러난 순간, 진은 곧바로 몸을 날려 황제의 옆에 다가섰다.

“뭐하는 건가 진! 난 분명 저들을 죽이라 명하였……!”

“고정하십시오. 폐하.”

윽박지르던 황제의 말이 도중에 멈췄다.

“……!”

“냉정을 되찾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자 황제의 눈이 곧바로 좌중을 살폈다.

데이먼의 언데드가 빼앗기고 있는 상황.

“……후우.”

그것을 확인한 황제는 깊은 한숨을 내뱉은 뒤, 이를 악물었다.

“그래, 흥분이 과했군.”

그렇게 말한 뒤, 황제는 자신을 등진 데이먼을 바라보았다.

“시간 벌이나 하라지. 쓸모없는 놈.”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황제의 입이 움직였다.

그를 향해 뿜어져 나온 황제의 언령.

저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효과를 낼 것이다.

“흠.”

짧은 숨소리와 함께 황제가 등을 돌리자, 진은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위화감이 들었다.

데이먼이 틀어막고 있는 저 금속질의 거인.

그리고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클라인 공자.

이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자신의 주군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소년이 무엇이길래?’

항상 냉정하게 상황을 관조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제국을 이끌어온 존재였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거침없이 타파해 나간, 철혈의 군주였다.

그랬던 그가, 왜 지금은 저리도 두려워한단 말인가?

“잘~ 도망가보시오! 황제 폐하!”

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안은 우렁찬 목소리로 황제의 등을 향해 외쳤다.

“그때의 치욕을 어떻게든 지워보겠다 동분서주했는데, 다 헛것이 되어버렸지 않았소이까?”

“……!”

그 말에 황제가 잠시 걸음을 멈췄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 때의 치욕…?’

이안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가지.”

그 말과 함께 황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 폐하.”

그렇지만 진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황제의 얼굴이,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분노에 휩싸여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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