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삼류
카앙-!
내게 돌진해온 진의 검을 막은 것은 이안이었다.
“이안 단장…!”
“네놈한테 단장 소리 듣는 것도 슬슬 지긋지긋하다, 진!”
짧은 문답과 함께 진의 검을 쳐낸 이안이 역으로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정원에 있던 언데드들이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타이탄!”
앙헬과 레이븐을 포함한 다른 언데드들은 현재 황도 수비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전력은 이 녀석이 유일했다.
- 거점 방어 개시.
짧은 문답과 함께 타이탄의 망치가 지면을 휩쓸었다.
쿠콰콰콰쾅-!
연달아 폭음이 들리며, 수십 구의 언데드들이 하늘을 날았다.
색색의 꽃잎과 시체 조각이 동시에 휘날리는 기괴한 풍경.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감상을 남길 새도 없이, 타이탄의 사각을 노린 기사들이 내 등을 노리기 시작했다.
키이잉-!
등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한 보 앞으로 몸을 뺀 뒤, 검을 세웠다.
데스나이트들의 공격 경로를 예측한 뒤 이어지는 동작.
정면으로 내리치는 데스나이트의 검은, 그대로 빨려 들어가듯 내 검과 얽히기 시작했다.
쿠콰아앙-!
내게로 엄습하는 마력을 받아들여, 그것을 역으로 운용해 되받아쳤다.
상대의 마력을 역으로 운용하여, 되받아치는 검.
자세가 무너진 데스나이트를 지나친 난, 뒤이어 달려오는 언데드를 보며 수정검을 뽑았다.
스스스스스…!
설화수정으로 이뤄진 검신에서 스산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궤적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부러지는 무디고 연약한 검날.
실상 검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검의 형상을 한 유리 공예품.
난 그것을 뽑아 들어, 뼛조각과 질긴 살가죽으로 이뤄진 언데드의 몸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서걱-!
단단한 뼈에 닿자마자 산산이 부서져야 할 수정검.
그렇지만 뒤이어 들려온 것은 유리가 깨지는 파쇄음이 아닌, 깨끗한 절삭음이었다.
- 크어어어어?!
마기를 담은 설화수정이 베는 것은, 육신이 아닌 혼.
처음 느끼는 이질감에 뒤틀린 고깃덩이에게서 당황한 듯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찰나.
언데드의 몸에서 빠져나온 붉고 탁한 기운이 수정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퍼석-!
마치 말라비틀어진 점토 인형처럼, 언데드의 몸이 바스러졌다.
혼과 육신의 완전한 분리.
이렇게 된다면 복구는커녕, 재소환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혼을 빨아들여 검 안에 담아낸다고? 저런 걸 어떻게……!”
데이먼의 탄성이 흘러나오는 찰나, 다섯 구의 언데드를 추가로 베었다.
주 전력인 데스나이트들은 데이먼을 향해 진격하는 타이탄을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그사이 나와 스텔라는 추가로 불러낸 언데드의 수를 최대한 줄일 심산이었다.
“흐하하하하-!”
거인은 기사와, 술자는 언데드들과.
그리고 각 세력의 최대전력인 이안과 진은 서로 대치한 상황.
전황은 백중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데이먼은 그것을 바라마지 않았던 듯, 광소와 함께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야 이 X팔……!”
이윽고 그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너무나도 익숙해 구역질이 나는 물건.
유리병에 담긴 새빨간 액체를 보자, 나와 스텔라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졌다.
“성혈이 있는 한, 우리들의 힘은 무한할지니!”
입을 벌려 성혈을 부어 넣은 순간, 그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마기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크워어어어-!
- 커어어어-!
- 키익! 키이이이---!
술자의 마기에 압도된 듯, 아니면 거기서 느껴지는 힘에 취하기라도 한 듯.
한층 부풀어 오른 언데드들이 괴성과 함께 내게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공자님?! 이거 지금…!”
“압니다. 이대로 가면 말라 죽어요!”
등을 맞대고 선 나와 스텔라는 주위를 포위한 언데드들을 보며 침음성을 삼켰다.
쿠콰아아앙-!
‘타이탄은 잘 싸워주고 있지만, 그쪽도 아마….’
두 구의 데스나이트를 날려버린 타이탄이었지만, 녀석 또한 그 이상 전진할 수는 없었다.
- 다시 일어나라. 네게 새 육신과 힘을 부여할지니.
데이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망자의 목소리.
그것에 반응하여, 주변을 포위하던 살덩이 언데드 세 구가 무너져내렸다.
스스스스-!
이윽고,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너진 언데드의 몸에서 팔다리가 스스로 기어 나왔다.
“우, 우웩?!”
팔다리의 절단면에서 절지동물의 다리가 솟아나, 벌레처럼 땅을 기어 다니는 광경.
그 혐오스러운 모습에 질색한 스텔라가 표정을 구기는 것도 잠시.
까득! 빠드득-!
산산이 부서진 데스나이트의 몸에 조립된 팔다리는, 손상된 데스나이트의 신체 기관을 그 자리에서 복구하고 있었다.
시체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를 즉석에서 복구해낸다니.
그 광경을 본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만.”
시체를 사용한 사령술, 반혼술의 최대 단점은 언데드 그 자체.
마력으로 이뤄진 영체와는 달리, 시체를 일으켜 만들어낸 육신이라는 점이다.
마력을 보충하면 중심 설계대로 복구되는 영체와는 달리, 시체를 사용하는 언데드는 육신이 망가진다면 새 몸을 구해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데이먼은 그 약점을 보강해냈다.
서로 등을 맞댄 나와 스텔라를 포위한 언데드들을 보며,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것들 전부가 데스나이트의 몸을 보강하기 위한 대체품이라는 거로군?”
수십 개의 팔다리, 그리고 내장기관이 얽혀있는 형태.
저것은 한 구의 언데드가 아니라, 수십 수백 구의 언데드를 뭉쳐 만들어 낸 덩어리였다.
“어떻소 아키몬드? 이것이 내가 만들어 낸 언데드 군단의 힘이오!”
자신의 발명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데이먼은 양팔을 벌린 채 자랑스레 외쳤다.
“성혈은 내게 끝이 없는 마기를! 내 권속인 데스나이트들에게는 수없이 대체할 수 있는 몸을! 남은 대체품들은 병력으로써 활용할 힘을!”
마기가 떨어질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성혈을 복용한다.
데스나이트의 몸이 무너진다면, 도처에 널린 언데드를 끼워 맞춰 새 육신을 구축한다.
그는 미리 만들어 낸 언데드들과 성혈을 이용하여, 죽지 않는 기사단을 만든 셈이었다.
쿠콰아앙-!
타이탄이 서 있던 곳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려왔다.
그가 휘두른 망치가 아닌, 가슴팍에서 난 소리였다.
쿠웅-!
한 걸음 뒤로 물러선 타이탄.
데이먼의 앞을 가로막은 데스나이트들의 진형은 더욱 견고해져 있었다.
“쯧, 슬슬 익숙해지는군.”
한층 정교해진 데스나이트의 진형을 보며 혀를 찼다.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하죠. 이대로 가면 저것들한테 파묻힐 판인데.”
세 구의 언데드를 날려버린 스텔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관적인 상황이었지만 스텔라는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저을 뿐, 전투를 포기한 기색은 아니었다.
“돌아가면 생명수당 달라고 볶아댈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공자님.”
“돈은 챙겨줄 텐데, 전처럼 도박한다고 날려 먹으면 저도 가만 안 있습니다.”
파앗-!
서로를 향해 농담을 던지던 사이, 타이탄을 상대하던 데스나이트 중 한 명이 내게로 쇄도했다.
거인을 막는 것이 슬슬 익숙해지니, 술자인 날 노리는 편이 현명하다 생각한 것이겠지.
그것이 자충수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야.
‘놀라운 방법론이고, 노력한 흔적도 보인다만…. 이놈들은 역시 경험이 부족해.’
네크로맨서간의 전투에서, 술자의 사정권에 언데드를 들이밀다니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난 수정검을 집어넣은 뒤 노르트빈트로 무장을 전환했다.
쐐애애액-!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데스나이트의 검이 내 어깨를 노리던 그 순간.
촤륵-!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인 내 검은, 마치 거울 속의 환영인 양 데스나이트의 검을 역방향으로 재현했다.
카앙-!
데스나이트의 마력을 되받아친 덕에, 힘의 총량은 같다.
작용점, 강도, 방향. 심지어는 검을 휘두를 때 생기는 사소한 잔버릇까지.
모든 것을 반대로 뒤집어 펼친 검격에, 두 공격이 완전히 상쇄되었다.
- ?!
당황한 듯 주춤하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눈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열기는, 어머니에게 받은 힘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줬다.
‘예상이나 예측이 아니야. 예지하는 거지.’
한 번의 검격.
그것이 보여준 한 조각의 편린.
우우웅-!
그 한 동작에 담긴 검의 의(意)를 파악하는 동시에, 예언의 힘은 그 검이 내보일 수많은 분기점을 만들었다.
‘검의 기초는 제국검술.’
‘검로와 타이밍은 이안의 것을 차용.’
‘거기에 동부의 변형된 엇박자 검을 가미.’
다음 동작을 취하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눈으로 좇으며, 그의 검술을 역순으로 분해했다.
그가 내보일 수 있는 다른 검술.
그가 살아 있었다면 도달했을 경지.
그가 성장했었다면 이뤄낼 수 있었던 의.
내 눈에 담긴 예지의 힘은 한 검사의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을 목도하여, 재현한다.
키이이잉-!
나와 대치한 망자의 이름은 하늘날개 기사단의 기사, 비자르 란.
생전의 그가 도달하지 못했던 검술이, 내 손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퍼석-!
데스나이트의 검을 쳐내고, 다음 동작을 준비해야 할 타이밍.
그렇지만 내 검은 그 자리에서 검로를 비틀어, 다섯 번의 속검으로 이어졌다.
- ……!
팔다리가 전부 떨어져 나간 데스나이트의 몸에, 노르드빈트가 박혔다.
쿠우-!
검을 타고 흘러간 내 마기가 그의 몸을 뒤덮고, 그의 육신을 얽매고 있는 계약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냈다.
“중심핵에 낙인을 새겨 종속계약을 이뤄냈군. 인격은 지우고, 생전에 사용했던 검술만을 재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그렇지만, 뭔가가 이상해.”
그의 혼에 새겨진 계약을 살펴본 난, 곧바로 밴시의 령을 황성 지하로 보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힘.
그것을 이용해 만들어 낸 수많은 언데드와, 그 몸을 끼워 맞춰 끊임없이 부활하는 데스나이트.
그렇지만 이 데스나이트를 확인한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분에 맞지 않는 언데드를 쓰고 있군. 그것도 엄청난 수를.’
수십 명의 데스나이트에 더불어, 결손 된 신체를 대체할 저만큼의 언데드.
적어도 저 모자란 것의 마기로는, 이것들 전부를 동시에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약의 주체는 본인이지만, 이들의 몸을 유지시키는 마기는 그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제공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하에 보낸 밴시에게서 반응이 왔다.
시야를 전환하자, 밴시의 눈이 담은 것은….
꾸륵, 꾸르륵-
마치 크리펠에서 지하에서 기어 다니던 것과 같은, 거대한 살덩이가 꾸물거리는 모습이었다.
혼을 보는 밴시의 눈이 내게 전한 영상.
그 고깃덩이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혼은, 내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헬리안.’
뒤틀린 야망의 끝은 이리도 비참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난 타이탄과 대치하고 있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너, 데이먼이라고 했던가?”
“……?”
처음 만났을 때 물었듯이, 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타이탄과 대치 중이던 그가 얼굴을 찌푸린 채 내 쪽을 돌아봤고, 난 그런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실격이다.”
한 마디.
선배 네크로맨서의 신랄한 한 마디에, 내내 유지하고 있던 그의 여유에 균열이 갔다.
“풋, 헛소리를.”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그대의 사령술은 대단한 경지이긴 하나, 전세는 내 쪽으로 기울었소. 남은 건 그대를 붙잡아서……!”
자신에게 유리한 전황을 파악한 듯,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날 조롱하기 시작했다.
파츳-!
내게 붙잡힌 데스나이트, 비자르와의 계약을 해제한 순간까지는 말이지.
“?!”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데이먼이 눈을 찡그렸다.
“어째서 계약이…?”
“네 것이 아닌 힘으로 낙인을 찍어서 영혼을 복속시켰지?”
내 말에 흠칫한 듯, 데이먼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어떻게……!”
“남에게서 빌려온 힘으로 혼을 굴복시켜, 그 통제권만 얌체같이 처먹으려 했겠지. 덕분에 계약은 결속을 잃고, 손쉽게 파훼 되는 거다.”
그렇게 말한 순간, 비자르의 몸에 이변이 생겼다.
“제힘을 키울 생각은 않은 채, 편법에만 매달리니 이렇게 되는 거라고.”
파스스-
“망자와 직접 대면할 용기도 없어 대리인을 내세운 주제에, 내 지식을 후세에 전해? 날 이겨? 지나가던 개가 웃지.”
“뭐, 라고……!”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육신.
끼워 맞춘 살덩이를 벗어던진 그 자리에, 검은 그림자로 이뤄진 인영이 서서히 구축되고 있었다.
“똑바로 서라, 삼류(三流).”
이윽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새롭게 태어난 데스나이트, 비자르였다.
“이 아키몬드가, 진짜 네크로맨서가 뭔지를 똑똑히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