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63화 (163/209)

163. 야, 오랜만이다?

구구우웅…….

천장에서 들려오는 진동에 하수도를 달리던 스텔라가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무슨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무슨 공성추라도 들고 온 건가?”

타이탄의 발소리를 공성추로 착각한 듯 이안이 말을 보태자, 스텔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설명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을뿐더러,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까.

“왔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두 사람이 달리던 길에 근육질의 언데드가 나타났다.

나타난 것은 철판으로 몸을 두른 제국군 네크로맨서들의 언데드.

기간트였다.

“오, 전에 플리시안에서 본 거랑 비슷해 보이는데요?”

“그것보다 훨씬 수월할 거다. 그건 특수제작품이고, 이건 군용이거든.”

최소 생산단가로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거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 두 사람은, 미리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달려들었다.

- 크워어억-!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에게서 위협을 감지한 듯, 기간트가 포효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터질 듯 부풀어오른 근육.

시커먼 몸체를 두른 거대한 철판.

검을 휘두른 들 흠집조차 낼 수 없으며, 제 아무리 버티려 한들 연약한 인간의 몸 따위는 단숨에 찢어버릴 것이었다.

아마 기간트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스걱-!

이안의 허리춤에서 뽑힌 검이 기간트가 내지른 주먹을 세로로 갈라버렸다.

- 크워억?!

기간트는 대규모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언데드.

그렇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시커먼 거구가 움찔했다.

고통은 없다 한들, 당혹감은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텔라가 그 찰나의 순간을 파고들었다.

촤륵!

섬광과 함게 기간트의 목이 떨어져나갔다.

그 짧은 순간에 뒤로 돌아간 스텔라가 두 자루의 단검으로 목을 도려낸 것이었다.

- 커어어어---!

쿵-!

잘려나간 머리가 아직도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듯, 입을 뻐끔거렸다.

목이 떨어졌다 한들 투쟁본능은 남아있는 몸체.

그렇지만 이안이 한번 더 검을 휘두르자, 육중한 기간트의 몸은 순식간에 장작 쪼개듯 세로로 쪼개져버렸다.

“급한데 쓸데없이 힘 빼게 하기는.”

첫 번째 언데드를 간단히 쓰러졌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쿵-! 쿵-! 쿵-!

건너편 하수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그것을 들은 두 사람은 숨 고를 새도 없이 무기를 고쳐잡았다.

한두 명이 아니다. 적어도 수십.

이 만한 수의 언데드를 다룬다면, 술자 역시 대여섯 정도는 될 터였으니까.

“황도 병력은 다 끌어모은다고 하더니, 지하에 있는 놈들도 몰려오는 건가?”

“어차피 돌아갈 길은 없어요. 뚫고 가죠.”

그 사이 하수구의 구조를 파악한 듯, 스텔라가 단언했다.

굳게 쥔 단검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떨림.

그것을 감지했지만, 이안은 일부러 아는 체 않은 채로 선두로 내달렸다.

“침입자가 저기에 있…! 뭐, 뭐야?!”

“이안, 라인란……!”

기간트 수십을 내세운 네크로맨서들은 두려운 것이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악귀와도 같은 이안의 얼굴을 목도하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신감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비켜라 이 버러지들아-!”

키이이잉-!

고함소리와 함께 이안의 검에서 마력광이 터져나갔다.

쿠콰아아아앙-!

이전까지 이안이 쓰던 검과는 확연히 다른 강격이 터져나왔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마력광에 어두운 후구가 한 순간 환하게 밝혀졌다.

“우, 우와아…….”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하수구를 보며 스텔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봐 온 성기사들, 혹은 클라인이 사용하던 검술과는 근본부터 다른,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심지어 그걸, 예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 내지르다니.

“저, 이백만 골드 님?”

이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듯, 스텔라는 다시 한번 이안의 현상금을 불렀다.

“…….”

떨떠름한 눈으로 그걸 본 이안은 ‘그놈 참, 주변 여자 중 정상이 없냐 정상이….’라고 구시렁댄 뒤 입을 열었다.

“왜 불러.”

이름을 알려줘봤자 입만 아프지.

어차피 제대로 부를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묻자, 스텔라는 쑥대밭이 된 하수구를 내달리며 물었다.

“라인란트 기사들은 다 이래요? 방금처럼 막 한 번에 다 날려버리고?”

“…그랬으면 우리가 얌전히 북부에 처박혀 있었겠냐.”

잠시 스텔라의 질문을 생각하던 이안은 달려가는 와중에 입을 열었다.

“내가 특이한 거다. 내 검술은 라인란트 계파가 아니라, 제국 검술 쪽에 더 가까우니까.”

라인란트 검술의 특징은 연비와 전투 지속력, 그리고 안정성이다.

혹한의 기후와 불안정한 지형을 극복하고, 혼자서 최대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기에 라인란트의 검은 생존을 위한 도구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혹한의 땅이, 그들의 검을 그렇게 단련시킨 것이었다.

그에 반해, 이안의 검은 북부가 아닌 제국의 검.

그리고 제국에게 있어 검이란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닌,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병기였다.

대륙의 정중앙을 차지한 채,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벌여 온 제국의 역사.

앞을 막아서는 이방인들의 방진을 마주한 그들은 언제나 원정대요, 언제나 도전자였다.

문화에 따라, 기후에 따라, 그 역사에 따라 수십가지로 변화해온 그들의 무(武).

정복할 야만의 영역은 너무나도 많았고, 제국의 기사들에겐 그 수많은 변수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니 제국 기사들은 생각했다.

힘으로 압도하자고.

짧은 시간에 모든 힘을 몰아쳐, 변수를 만들 새도 없이 찍어눌러야 한다고.

제국의 검은 그 생각을 기조로 발전해왔고, 그 결과 지금의 패도적인 형태로 연단된 것이었다.

“…그럼 제국 기사들은 엄청 쎈거네요?”

“전투 시작 후 15분 정도는 그렇지. 그렇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힘이 빠지는 거고.”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뽑아내, 단기결전으로 적을 압도하는 것이 제국검술의 기초.

“그러니 반대로 말하자면, 공격에는 적합하지만 방어에는 맞지 않는 검술이란거지.”

“아아~.”

그렇게 말하는 이안의 설명을 들으며, 스텔라는 자신이 느낀 바를 가감없이 말했다.

“제국 검술이라길래 엄청 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좀 조루 같은 방법이네요.”

“쿨럭-! 커, 커흠!”

가감 없는 열다섯 소녀의 말에 이안은 황급히 헛기침 소리를 냈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걸까.

저게 정녕 수녀라는 인간의 입에서 튀어나와도 되는 발언인가?

수많은 생각을 거친 이안은 한층 더 떨떠름해진 표정으로 스텔라를 향해 물었다.

“……너, 클라인한테 입 좀 어떻게 해보라고 자주 듣지?”

“오!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잠깐 같이 다니는데도 이런데, 순례길 내내 같이 다녔으면 오죽하겠냐?

이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저을 뿐,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저쪽이에요!”

그러는 사이, 스텔라는 수없이 갈라져 있는 미로 같은 하수도를 정확히 짚어나갔다.

‘아무리 트레인 황자가 지도를 줬다고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나아갈 줄이야….’

경력 있는 탐사원조차도 길을 잃어버리는 이 복잡한 지하 수도를 스텔라는 제집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둡고 폐쇄된 공간을 꺼리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듯 움직이는 발걸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안의 눈이 깊어졌다.

‘이런 곳을 다니는 게 처음이 아니다. 적어도 몇 년 이상은 비슷한 환경에서….’

늙은이의 연륜으로 그 기묘한 부조화를 읽어낸 이안은 하수도를 뛰어가는 스텔라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의 삶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스텔라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

“여기에요!”

먼저 도착한 스텔라가 문을 열자, 눈 부신 빛이 하수도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파아아앗-!

오물과 벌레, 병균이 들끓는 쥐들로 뒤덮인 하수구.

그렇지만 문을 열고 나오자,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찌 시간에 맞추긴 했군.”

각양각색의 꽃과 아름다운 초목으로 이뤄진 정원.

이안과 스텔라가 도착한 곳은 황성 내부에 조성된 황족 전용 거주구.

별의 궁전의 정중앙이었다.

“황성이 지하수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이안은 지난날을 되짚어보니 허탈하다는 듯, 탄식했다.

“진짜 기운 빠지네, 난 뭐하러 정문으로 쳐들어갔던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황족이나 한 두명 알아 둘걸.

트레인 황자의 머리에서 나온 수많은 정보를 떠올리며 이안은 계단을 올라 중앙 정원으로 나아갔다.

“우와아아…….”

지금까지 봐온 황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듯,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

앞장선 이안을 따라 올라가던 중 그것을 둘러본 스텔라가 탄성을 내지르던 순간이었다.

“허허허허, 이거 아주 걸작이구만 그래!”

정원 한편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한 번 실패한 습격을 다시 시도할 만큼 멍청할 줄이야. 게다가 제 손자까지 미끼로 삼아서! 흐하하하!”

금실이 새겨진 검은 로브 차림을 한 노인.

후드 속에 감춰진 얼굴을 알아본 듯, 이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데이먼 엘프란드……!”

“어이쿠, 표정 좀 풀게 이 친구야. 저리 살벌해서야, 나 같은 늙은이는 눈빛만으로도 지려버리겠어.”

애써 겁먹은 척 연기하는 데이먼은 그렇게 말하며 이안을 조롱했다.

“이 개자식이……!”

평소와는 다른 격한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안의 앞으로,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잡을 수고를 덜어 다행이오. 이안 단장.”

노인과 같은 빛을 띤 갑주 차림의 기사.

2미터가 넘는 거구의 흑기사, 진이 이안의 앞을 막아섰다.

“클라인 공자가 난동을 피우는 사이 배후를 쳤다고 생각했겠지만, 폐하께서는 전부 예상하고 계신 일이오.”

진이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이안의 시선은 그 둘이 아닌, 그 위쪽에 마련된 테라스에 닿아있었다.

마치 검투경기장의 관람석처럼, 위층에 마련된 호화로운 의자.

그곳에는 그가 죽여 바라마지 않던 존재가 다리를 꼰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질리지도 않고 다시 찾아오는군. 이안 라인란트.”

“멜디르……!”

오랫동안 그를 기다린 듯, 나른한 눈빛의 황태자.

그런 황태자를 향해 예를 표한 데이먼은 마치 무대를 준비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마기를 뿜었다.

파츳-!

클라인의 푸른 빛이 아닌, 검붉은 빛으로 새겨지는 룬어.

이리저리 뒤틀린 기괴한 룬이었지만, 이안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고위 언데드를 불러낼 때 쓰이는 계약문.

- 자. 그때 못다 한 인사를, 마저 나눠 보자꾸나.

쿠우-!

기괴한 형태의 계약문에서 연기가 뿜어나왔지만, 이안은 그것을 보고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

오히려 그의 표정을 싸늘하게 식은 채, 천천히 계약문에서 솟아난 이들의 얼굴을 눈에 담을 뿐.

철컥- 철컥-

이윽고 연기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한 무리의 데스나이트들이었다.

이곳저곳이 부서진 낡은 갑주와 그 갑주와 일체화된 육체.

제국의 인장으로 얼굴을 덮은 기사들의 가슴팍에는, 오래된 날개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엔 잘 좀 해보게. 이전처럼 옛 부하들이라고 살살 했다간, 정말로 죽여버릴……!”

“그렇게 사람을 아래로 깔아보니까 중요한 순간에 실패하는 거야, 툴린 가 뒷골목 버러지 새끼야.”

조롱하듯 그렇게 말하는 데이먼의 말을 끊고, 이안이 입을 열었다.

“2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뭐라?”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묻는 데이먼은 아랑곳 않은 채, 그는 고개를 들어 황제와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전해달라 하더이다. 멜디르 황제.”

“전하라고?”

“누가…?”

이안이 그렇게 말하자, 진과 데이먼은 고개를 돌려 황제가 앉은 곳을 바라보려 했고.

우당탕-!

황제는 갑자기 경련이라도 한 듯,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 이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폐하?”

황제의 표정을 본 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주군이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모습.

마치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 황제의 안색은 이미 새파래져 있었다.

“그, 그 말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묻는 황제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이안은 품에서 꺼낸 스크롤을 꺼내 들었고.

쫘아악-!

그것을 찢은 이안의 얼굴엔, 회심의 미소가 담겨있었다.

파아아아앗-!

스크롤에 저장된 마법이 발현하고, 눈 부신 빛이 그들을 휘감은 것도 잠시.

쿵-!

굉음과 빛무리 속에서, 금속질로 이루어진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타이, 탄……!”

있어선 안 되는 것을 봤다는 듯, 황제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 순간.

“야, 오랜만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은색 머리칼 사이로 빛나는 푸른 눈.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과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마기.

20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황제는 그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키, 몬드……!”

라인란트의 문양을 두른 채, 거인의 어깨 위에 선 소년.

“멜디르 알펜”

“……!”

클라인은 약간의 조소가 섞인 눈으로 황제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X같은 뒷골목 시궁쥐 새끼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