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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61화 (161/209)

161. 증명해야죠

트레인 황자는 제국 동부에 위치한 외가로 피신할 계획이라 했다.

이미 그의 저택까지 암살자가 들이닥친 상황.

암살이 실패했으니, 곧 제국 정보부가 황도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할 터였으니까.

“그대들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가 의문이었는데, 이것 참…….”

황도 출입문.

트레인 황자는 완전히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이 아직도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만져보고 있었다.

“그저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사술 정도로만 생각했거늘,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이야….”

“활용하기 나름이죠.”

액토플라즘.

영체가 소멸한 자리에 생성되는 부산물이자, 도플갱어의 신체 구축에 쓰이는 물질.

대상의 형태를 모방하는 도플갱어의 습성처럼, 이 물질은 마기를 담는 것으로 그 형태를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

지금 트레인 황자가 뒤집어쓰고 있는 얼굴은 하층 거주구에 널브러진 부랑자의 얼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추레한 행색이었다.

“자네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잘 알았네. 내 힘닿는 데까지는 해보도록 하지. 헌데….”

황도를 나가기 전, 내 쪽을 돌아본 트레인 황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다.

“그대는 정말로, 성혈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생각인가?”

“예.”

망설임 없이 답하자, 트레인 황자는 잠시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쉽지는 않을걸세.”

그렇게 말한 황자는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황성 중심부에는 황족 전용 거주구인 ‘별의 궁전’ 이 있네.”

“별의 궁전.”

천천히 그 이름을 되뇌자, 트레인 황자는 다시금 말했다.

“황제의 직계 혈통,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최정예 기사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이지.”

“…….”

“제국으로 들어오는 성혈의 대부분은, 그곳에 모여있다네.”

그의 말에 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그곳에 있는 황족들은….”

“모두가 성혈을 먹고, 그 힘을 취하고 있지.”

그렇게 말하는 트레인 황자는 주먹을 쥐었다.

“성인식을 치른 황족은 그날 이후,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그 액체를 마시게 되네.”

성혈.

황가의 일원으로서, 그는 그 존재와 그것이 주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황자님은….”

“난 먹지 않았네.”

그렇게 말한 그는 피식 코웃음 치며 양팔을 벌려 보였다.

“난 사생아거든.”

자신을 사생아라 말하는 트레인 황자는,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천한 것이 어딜 들어오려 하느냐면서, 어릴 적부터 황성 밖으로 쫓겨났었지.”

“…….”

“그게 너무나도 분하고 서러워서, 정말 치열하게 정치질을 해 왔다네.”

사생아라는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준히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았다.

“아군을 만들고, 세력을 키우며, 황족으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지. 그렇지만….”

제국의 황족들은 황성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황성 바깥의 일은 관료와 귀족들에게 일임한 채, 호화롭기 짝이 없는 황성에서 부와 권력을 누릴 뿐.

그렇지만, 제 2황자, 트레인은 달랐다.

제국의 남부 원정에서 공적을 세우고, 현지 장군들을 진두지휘하며 능력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결국, 태자로 책봉된 건 밀레드였어.”

그때를 떠올린 듯, 트레인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 당연하겠지.

- 황제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아니라, 새로 입을 옷이었으니 말이야.

두 언데드가 말을 얹었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치 그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덤덤하게 말했다.

“그 억하심정으로 황족들의 뒤를 파헤쳤더니, 성혈이라는 존재가 나오더군.”

“…….”

“그것이 무엇인지, 뭐로 만들어졌는지. 그것을 알게 되고 나선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더군.”

천천히 올라간 그의 시선이 저 높이 세워진 건물에 닿았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뻗은 황궁의 첨탑.

호화로운 금빛으로 장식된 그 건물을 노려보며, 그의 목소리에는 점점 노기가 담겼다.

“저들과 같은 황족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야.”

“…….”

그렇게 해묵은 감정을 토해내던 것도 잠시.

“나 원 참, 궁지에 몰리니 내가 별소리를 다 하게 되는군.”

자신이 냉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챈 듯, 한숨을 털어낸 트레인 황자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잘 알 것이라 믿네.”

“…….”

“성혈은 이미 제국 깊숙한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네. 그에 연루된 인간들도 상상을 초월하겠지. 만약 그걸 끄집어낸다면.”

“성혈에 연관된 모든 이들이, 단번에 이빨을 드러낸단 말이죠?”

내 말에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가의 일원인 내 힘으로도 그들을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했네. 뿌리 뽑기는커녕, 그 반작용만 늘어났지.”

황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추레한 행색.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조차 모르는 불안.

실시간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암살자들까지.

“황가의 일원인 나조차도 이럴진대, 다른 이들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밀레드, 아니, 황제가 트레인을 죽이려 한 이유.

단순히 후환을 없애기 위함이 아닌, 입막음이었던 것이다.

“한때 남부의 군권을 장악한 나조차도 그들의 술수에 놀아나 몰락했지. 헌데, 북부가 그걸 파헤치려 한다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날 만류하는 듯한 황자의 말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성혈을 파헤치고 싶어 하는 게, 북부뿐만은 아니거든요.”

폴와이번을 장악했던 헬리안은 내전을 일으키고, 괴물이 되어 폴와이번의 고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엘프란 아일라시스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영지민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온갖 마법실험을 자행했다.

황제의 뜻이 아니었다며 꼬리를 잘라도.

모르는 일이라 발뺌을 한다 해도, 그 사실은 지워질 수 없는 법.

그들이 뿌려놓은 원한의 씨앗은 이미 대륙 전체에 퍼져,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들에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증명?”

“제국을 상대로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증명.”

제국을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을 보여주는 순간, 그 분노는 단번에 폭발한다.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난 등을 돌려 황도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네, 어디 가는 건가?”

갑작스러운 내 행동이 의아한 듯, 트레인 황자가 물었다.

“제국군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뭐?”

첨탑에 배치해두었던 도플갱어들의 반응이 사라졌다.

말인즉, 이안이 사라졌다는 것이 들통난 상황.

그렇게 설명하는 내 말에 황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네. 지금이라도…!”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빠져나가십시오. 지금 간다면 늦지 않을 겁니다.”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같이 황도 밖으로 나가야…!”

그렇게 말하며 후드를 둘러쓴 황자에게 말했다.

“같이 나가면 잡힐 겁니다. 한 명은 남아서 시간 좀 끌다가 빠져나가야죠.”

“시간을 끌다니, 여긴 제국 수도한 말일세! 제국군 중심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김에 또 한 가지.”

그의 말을 끊은 난 발걸음을 재촉했다.

“증명해야죠. 제 계획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

그렇게 말하는 사이, 걸어가는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파츠츳-!

얼굴을 뒤덮은 변장이 벗겨지고, 원래의 머리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울.”

촤륵-!

부풀어 오른 아울의 날개가 잠시 몸을 뒤덮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추레한 여행복이 아닌, 라인란트의 문양이 찍힌 인장과 검은 망토.

허리춤에 채워진 두 자루의 검 역시, 예기를 잃지 않은 채 빛나고 있었다.

“어, 어어?”

“야, 잠깐만. 저거……!”

내 모습을 본 경비병 몇몇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수배지에 그려진 것과 똑같은 얼굴.

제국 수도에 라인란트 공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두두두두두-!

수도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날 향하는 발소리의 수는 점점 많아졌다.

경비병 몇 명이 몇십 명이 되고, 몇백 명이 되고.

이윽고 하층 중앙에 위치한 광장에 다다랐을 때엔, 내 사방에 병사들이 쭉 깔려있었다.

“크, 클라인 라인란트…!”

“혼자인가? 아니, 그럴 리가….”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당황한 듯, 경비병들은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촤앙-!

마력을 가득 머금은 검 수십 자루가 동시에 내 목을 겨눴다.

“클라인 라인란트 공자.”

“…….”

병사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기사들.

서슬 퍼런 눈으로 날 노려보는 그들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안 라인란트를 빼내고, 제국의 기사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그들의 시신까지 모욕하다니……!”

“죄인은 어디에 있나. 말하지 않으면 당장에…!”

“칼 치워.”

분기탱천한 기사들의 말을 끊자,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칼 치우라고 새끼야. 죽기 싫으면.”

“……!”

목에 수십 자루의 검이 겨눠져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

부웅-!

뿌득, 하고 이를 갈아붙인 기사는 말없이 검을 휘둘렀다.

경로는 측면, 노리는 건 목이 아닌 어깨.

팔다리 하나 정도 날리면 주제 파악을 할 거라 생각한 듯 했다.

그렇지만.

카앙-!

내 팔을 잘랐어야 할 검은, 허공에 멈춰있었다.

“뭐, 뭐야…!”

“마력장? 아니, 보고에 따르면 클라인 공자는 마력이…!”

한 명의 공격이 막히자, 기사들이 즉각 반응했다.

동시에 몰아쳐 방어를 깨부수겠다는 의도.

제국 검술 특유의 패도적인 마력이 내 몸을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카카아앙-!

동시에 휘두른 기사들의 검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멈춰있었다.

“난 분명 경고했다. 죽기 싫으면 검 치우라고.”

어으, 닭살.

아무리 시선을 끌기 위함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폼 잡는 건 역시 성미에 맞지 않는다.

‘이 정도로 이목을 끌었으면, 황성에 처박힌 근위기사들도 반응할 테니….’

슬슬 시작해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난, 내가 서 있는 곳 바닥에 그려진 소환문에 마기를 흘려보냈다.

츠츠츠츠츠……!

영체 상태로 숨겨져 있던 형체가 점점 드러나자, 기사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무, 뭐야 저건…!”

“갑자기 어디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

두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시퍼런 안광.

그리고, 사람 키의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

아키몬드 군단 제 1선봉장, 타이탄이었다.

- 2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금 전장에 선 거인에게 명하니.

망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을 감싸던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 방어가 뚫렸다! 지금이라면…! 크아악?!”

몇몇 기사들이 그 틈새를 찌르려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검은 레이븐과 키예스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쿠르르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망치.

망치머리에 조각된 늑대의 형상은 한때 북부를 호령한 옛 왕국의 상징이었다.

쿵-!

무장을 갖춘 거인이 기사들을 마주했다.

오래된 숙적을 다시 마주한 듯, 무감정한 그 눈빛에 투지가 깃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 모습을 덤덤히 눈에 담으며, 난 단 한 마디의 명령을 그에게 내렸다.

- 부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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