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당신뿐이었습니다
“2황자한테 다 말했다고?!”
황도 하층의 시장은 상층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갈한 건물과 고급스러운 양장점, 마법도구점이 즐비한 상층.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과는 달리, 황도 하층의 상업 구역은 각지에서 모인 상인들과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목소리 낮추세요. 변장한 거 다 들키겠네.”
“아니,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그런 시장 한구석.
추레한 행색의 여행자 둘은 노점에서 산 꼬치구이를 우물거리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들이 누구냐고? 당연히 나랑 이안이지.
“당장 나 같아도 증거를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었는데, 2황자가 그걸 믿을 거라고 생각하냐?”
“아뇨. 생각 안 합니다.”
이안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며, 난 마지막 남은 꼬치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고기도 양념도 하나같이 싸구려.
그래도 뭐, 시장바닥에서 파는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쪽이 우리 이상으로 절박한 상황이라는 건 확실하죠.”
그렇게 말하는 사이, 나와 이안은 어느새 북적이는 상업 구역을 지나 거주 구역에 도착했다.
“이야, 이건 뭐 닭장도 아니고.”
값싼 목재로 얼기설기 지어진 건물이 특징 없이 주르르 늘어선 모습.
도시의 풍경이라기보단 감옥에 가까워보였다.
“우습게 보지 마라. 이 닭장 한 칸이 라인란트 시 2층집보다 비싸거든.”
“…정말로요?”
“그럼 내가 헛소리 하겠냐?”
퉁명스레 내뱉은 이안이었지만, 얼굴을 보면 그 역시도 기가 차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제국의 돈 많은 놈들은 전부 이곳으로 모이면, 그들이 가진 돈도 이 곳으로 모이지. 그렇게 된다면….”
“기반 없는 도시민들 입장에선,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바로 그거지.”
새삼 황망한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닭장을 바라보았다.
황도 땅값이면 대륙 전체를 산다는 말이 마냥 헛소리인 줄 알았더니.
“왔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붙박이처럼 붙어있는 목조건물들 사이에서 스텔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짐승 냄새 풀풀 나는 가죽가방은 이미 벗어놓은 지 오래.
수녀복이 아닌 가벼운 여행복 차림의 그녀는 내게 다가와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고기 냄새.”
……이야, 귀신이네 귀신이야.
그걸 바로 알아맞힌다고?
“누구는 경비병들 뚫고 실컷 싸우다가 왔는데, 그쪽은 팔자좋게 뭐 먹고 온……!”
듣고 있으면 끝이 없다.
“아린.”
“언니도 먹어요! 아~!”
“으읍!”
곧바로 아린을 불러 입을 틀어막았다.
말하던 입에 꼬치구이 세 개가 한 번에 들어가자, 스텔라는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장소는 이쪽 맞죠?”
“읍, 으으으읍.”
“이 건물 세 번째 방. 여기서 기다리고 있단 말이죠?”
‘뭔 수로 알아듣는 거야?’라며 의아해하는 이안을 뒤로 한 채 걸었다.
평범한 목조건물의 구석진 방.
프리실라 공후의 정보원들이 사용하던 안전가옥이었다.
끼이익-
“…….”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자, 선명한 금발을 뒤로 올려묶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대는……?”
눈을 게슴츠레 뜨는 황자의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아 맞다. 변장 중이었지.”
그렇게 말하며 난 얼굴에 두른 액토플라즘을 벗겨냈다.
화상으로 뒤덮인 흉측한 얼굴과 머리칼을 물들인 검을 색이 사라지고, 원래의 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클라인 공자? 프리실라 공후가 아니었단 말인가?”
내 얼굴을 알아본 그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먼저 입을 연 것은 그가 아닌 나였다.
“호위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일부러 데려오지 않았네.”
고저 없이 내뱉은 말에 정신을 차린 듯, 트레인 황자가 답했다.
“그들이 이 대화를 듣는다면, 내 목숨 하나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겠지.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면서도 난 방 한구석에 선 스텔라에게 눈짓했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그가 말대로, 이곳에는 황자를 호위하는 이도, 감시하는 이도 없었다.
“먼저, 감사를 표하는 것이 먼저겠지.”
그렇게 운을 뗀 트레인 황자는 날 향해 정중히 예를 표했다.
“암살자들에게서 날 보호해 준 것. 그리고 이렇게 은신처를 제공해 준 것까지.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일세.”
제국 귀족 특유의 우아한 몸짓과 미사여구.
그러면서도 날 보는 그의 눈은, 계속해서 날 탐색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정말로 하고자 하는 얘기는 뭔가?”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낼 수는 없다고 판단한 듯, 트레인 황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보내드린 편지에 적혀있을 텐데요.”
“헛소리.”
덤덤한 내 대답에 그는 거친 언사로 맞받아쳤다.
역시, 편지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고는 믿지 않는 듯했다.
“초대 황제이신 멜디르 폐하께서 후대 왕의 몸을 취했다고? 그것도 2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직접 말하면서도 진저리가 나는 듯, 트레인 황자는 얼굴을 찌푸린 채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만나기 전에 상하 관계를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장난질이 도를 넘었어.”
“…….”
그의 허리춤에 채워진 검이 의자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음매와 무게중심이 형편없는, 의장용 검.
아마 긴박한 와중, 호신용으로 아무거나 집어온 것이겠지.
“날 불러낸 진짜 목적을 말해라, 북부의 반역자. 계속 헛소리를 하며 황족을 모욕할 생각이라면, 난 당장에……!”
“자결하시겠다고요?”
자신의 뒷말을 예상한 것이 퍽 놀라운 듯, 트레인 황자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황자님 저택 어딘가에 위치한 마법이 발동할 테고.”
“…….”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안 제국군 정보부가 황도 전체를 뒤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제아무리 숨어다닌다 한들 꼬리가 잡힐 것이다….”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상대를 압박한다.
옛날 생각이 절로 나는 방법이었다.
팔리만 그 새끼 앞에서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괜찮네요. 그 짧은 시간에 협박거리도 챙겨올 줄 아시고.”
“……!”
내 말이 조롱이라고 생각한 듯 황자의 얼굴이 벌게졌지만, 지금 난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내부 협력자를 구하는데, 헥토르 같은 머저리 새끼가 나타나 봐라.
시작도 하기 전에 다 공친 거지.
“그렇다면 반대로 제가 묻겠습니다만.”
탐색을 마친 난 눈을 가늘게 뜬 채 그에게 질문했다.
“황자님께선 정말로, 그 편지의 내용이 허튼소리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뭐라?”
질문? 아니, 질문이라기보단 확인에 가까운 말이지.
죽어버리겠다 호언장담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곧바로 검을 뽑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황권이 교체되면서도, 황성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죠.”
“……!”
이안의 난리로 인한 황위 계승,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대숙청.
“마치 선황제의 암살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모든 일이 막힘없이 진행되었고요.”
선황제 페트리우스가 붕어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이상하리만큼 매끄러웠다.
“이 상황에 가장 큰 위화감을 느낀 건, 분명 황자님이었을 텐데요. 제 말이 틀립니까?”
“…….”
황족으로서 살아온 세월, 그리고 그간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
그렇지만 그것들을 잠시 치워둔다면 분명,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
“….”
한동안 침묵이 이어진 것도 잠시.
“그래,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먼저 입을 연 것은 트레인 황자였다.
“날 살리고, 내게 이런 걸 알려주는 이유는 뭔가?”
편지의 내용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
내 말이 진실이건 아니건, 그에게는 뒤가 없으니까.
“프리실라 공후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선황제 붕어 이후, 남부 귀족들이 대거 황태자 쪽으로 돌아섰다고.”
그는 현재, 자신을 지원하던 세력에게서 팽당한 상황.
내 말에 정곡을 찔린 듯, 황자의 표정이 굳었다.
“황태자가 황자님을 노린 것 또한, 남부 귀족들이 황자님을 외면했기 때문이죠.”
“…….”
“그런 황자님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상황을 타파할 명분과 황자님의 뒤를 지원해줄 새로운 세력이라 생각합니다만.”
내 말을 짐작한 듯, 트레인 황자는 침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북부가, 날 돕겠다고?”
“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국을 공격할 명분은 이미 있습니다. 황위 계승권 2위인 황자님께서 협조하신다면, 정변을 일으킬 수 있겠죠.”
“명분? 이 되지도 않는 편지가 명분이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말이 안 되죠.”
“그렇다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황자가 더 말하려는 순간.
“편지 내용은 당신 같은 황족들을 설득할 수단. 북부가 제국을 치는 명분은, 제국의 네크로맨서가 북부에서 벌여온 인체실험입니다.”
웃음기를 싹 뺀 내 한마디에, 트레인 황자는 곧바로 하던 말을 멈췄다.
“성혈.”
“……!”
”황가의 일원이신 황자님께서, 그 존재를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젊음을 연장시키고 마력을 증진시키는 붉은 액체.
성혈은, 황제의 은총이라는 명목으로 황족과 그 측근들에게 공공연히 전해지고 있었다.
물론, 실상은 은총을 빙자한 임상실험.
헬리안은 그 중 특히 반응이 뛰어난 실험체였을 뿐이다.
“성혈의 제조법과 재료는 파악했습니다. 그걸 만들기 위해 교국과 제국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그 증거도 확보했죠.”
“…….”
“이번 침공을 막아낸다면, 라인란트는 그간 희생된 북부인들의 목숨값을 받아낼 겁니다.”
스산한 감정이 섞인 한 마디.
“그렇다면, 그대들이 날 찾은 이유는 명확하군.”
그 말을 곱씹던 트레인 황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이 끝나면 황좌를 줄 테니, 난 너희 편에서 내부를 흔들어라. 그 뜻인가?”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트레인 황자 역시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곧바로 내게 물었다.
“왜 나인가?”
마지막 질문.
그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다.
“황위 계승권이 높아서? 지지하는 세력도, 힘도 없는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다.”
자신의 혈통을 거론하는 황자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가 부끄러운 듯했다.
“힘이 없으니 다루기 편할 것 같았나? 미안하지만 난 얌전히 그대들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없어.”
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거론하는 황자의 눈에는, 자긍심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에 황족이기만 하면 누구든 상관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인가?”
재차 이어지는 질문에, 난 트레인 황자의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당신뿐이었으니까.”
잠시 침묵.
그렇지만 난 그를 향해, 계속해서 말했다.
“성혈에 관련되지 않은 것도, 황성이라는 사육장에 안주하지 않은 것도.”
“자네…….”
날 보는 트레인 황자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그가 보인 반응 중, 가장 격렬한 반응이었다.
“이 비틀린 제국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한 사람은, 당신이 유일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