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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59화 (159/209)

159. 뛰세요

점액질이 꿀렁이는 소리와 함께 회백색의 액토플라즘이 점점 형태를 갖춰갔다.

“언데드라는 게 원래 다 저런 식으로 만드는 거냐?”

“보통은 영체로 만드는데, 위장용이면 말이 다르죠.”

그렇게 말하며 가공을 마친 기사들의 혼을 집어넣자, 흐릿하던 형태가 점점 분명해져 갔다.

“허, 진짜 똑같잖아?”

이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새로 만들어진 도플갱어들을 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몸의 비율, 생김새, 심지어는 어릴 적에 생겼던 흉터까지.

내가 만든 도플갱어는 생전 그들의 모습을 완전히 재현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들은 참, 별걸 다 할 줄 아는구만?”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이렇게까지 활용하는 건 이제 저뿐이라고.”

그렇게 말하자 이안은 의아한 듯 물었다.

“제국이나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아예 못하는 거냐?”

“못합니다.”

그렇게 단언한 난 지난번에 상대했던 아키몬드 교단의 네크로맨서들을 떠올렸다.

“혼을 다루는 것만 같지, 그걸 제외하면 아예 다른 분야에요.”

제국 네크로맨서들이 사용하는 사령술은 내가 사용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극단적으로 반혼술에 특화된 마기 운용.

영혼의 의지를 지워 그 힘만을 추출해 내는 방식.

혼의 구조와 술식이 아닌, 시체 가공에만 치중한 기괴한 연구방식까지.

내 기준에서 따지자면,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사령술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

“정확히는, 제국이 인위적으로 변질시킨 거죠.”

본래 네크로맨서의 업은 전투가 아니다.

네크로맨서란, 미련을 가진 채 현세에 얽매인 망자들을 불러 그 이야기를 듣는 자.

그들의 못다 한 한을 풀고,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환원시키는 것.

시체를 염하고, 장례를 주관하며, 산 자와 망자의 세계를 중개하는 것.

그것이 네크로맨서다.

망자를 되살려 권속으로 삼아, 전쟁질이나 해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망자를 위로하는 기술을, 시체를 일으키는 사술로 변질시켰다?”

“그렇죠.”

지금의 사령술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멜디르 제국.

대륙을 뒤흔든 아키몬드의 군세를 보고 그 힘에 매료되어, 사령술을 전쟁을 위한 도구로 변질시킨 것이었다.

“호오…….”

뜻밖의 역사강의였지만, 이안은 그것이 퍽 흥미로운 듯했다.

“그렇다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제국이 사령술에 몰두하는 그 계기를 제공한 것 역시, 아키몬드가 되는군.”

“…….”

“강대한 적을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적을 모방하고 보강하는 것이니까.”

이안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대로, 제국이 사령술 연구를 시작한 원인은 나였으니까.

“대륙 전체를 휩쓸 정도로 강대한 힘을 보였으니, 거기에 매료될 수밖에.”

망자를 일으키는 내 사령술을 ‘모방’하고, 전쟁통으로 남아도는 시체를 사용하여 경제성과 생산성을 ‘보강’한 형태.

아키몬드 교단, 제국의 네크로맨서, 그리고 성혈.

그 모든 연구가 나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을 부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아, 아아아…….”

“끄으으으….”

그렇게 이야기하던 사이.

내부 장기 형성이 끝난 듯, 완성된 도플갱어들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껍데기는 완성됐고.”

그렇게 말한 난 마기를 손에 집중시켰다.

새파란 룬어가 뱀처럼 그들의 몸을 휘감고, 이윽고 초점 없이 흐릿하던 그들의 눈에 하나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 나는…….”

“으으….”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부여잡는 도플갱어들.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난 아린이 한곳에 모아놓은 갑옷을 가리켰다.

“정신 차렸으면 저걸로 갈아입어. 할 일이 뭔지는 알고 있지?”

“…….”

“……….”

내 말에 비척비척 걸어간 도플갱어들은 능숙한 솜씨로 죽은 시체에서 갑옷을 벗겨냈다.

철컥.

이윽고 내 앞에 도열한 이들의 모습은, 내게 습격당하기 전의 기사들을 완벽히 재현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외관이 아닌 내면이지.

“좋아. 이름은?”

내 질문에 기사들, 아니, 기사들을 본떠 만들어진 도플갱어들이 입을 열었다.

“티크 웨스트시안. 출신은 중서부 웨스트시안 영지다.”

“제인 로스콜러요. 로스콜러 자작가의 차남.”

“드레인 오르펠트일세. 오르펠트 남작의 사생아로서….

줄줄 흘러나오는 개개인의 신상정보와 이야기, 심지어는 어린 시절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혼에서 뽑아낸 기억이 제대로 정착한 걸 확인한 난 고개를 주억거리며 물었다.

“자, 그럼 오늘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지?”

내 물음에 기사로 위장한 도플갱어들은 곧바로 답했다.

“수감동에는 아무 이상 없었다.”

“심문을 위해 고문을 몇 번 해보았지만, 죄수는 조용하더군. 아무래도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아.”

“폐하를 모독한 죄, 죽어서도 사죄하게 만들어 주지.”

분개한 듯, 나른한 듯.

각자의 성격에 맞춰 말하는 도플갱어들을 보며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합격.”

기초공사는 성공.

지금은 좀 어색해 보이긴 하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생전의 인격을 완벽히 모방하여, 본인처럼 행동할 터였다.

“어으, 진짜 소름 돋는구만.”

확인작업을 마친 난 그들을 각자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마치 방금 전 습격은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광경.

언데드가 사람을 대체하는 광경을 본 이안이 표정을 구겼지만, 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 정도는 버틸 겁니다.”

제국의 네크로맨서가 보면 그 순간 들통나겠지만 말이지.

그렇게 말한 난 방 한구석에 놓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휘오오오-

옥상을 지키는 경비병은 애저녁에 제압해 둔 상황.

아무도 없는 감옥탑 옥상에 오른 날 향해 이안이 물었다.

“뭐야,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

“예? 뭔 소리입니까?”

그렇지만 의아한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탑 아래층에 깔린 병력이 얼마인데, 그걸 뚫고 갑니까? 뚫는다 해도 금방 증원이 올 텐데.”

“아니, 그럼 어쩌자고?”

“어쩌긴 뭘 어째요.”

그렇게 묻는 이안을 향해, 난 시큰둥한 표정으로 감옥탑 아래를 가리켰다.

“뛰십쇼.”

***

황도의 땅을 다 팔면 제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제국의 수도인 이 도시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를 뜻하는 말.

그렇지만 그런 동시에 이 말은, 수도와 그 외의 도시들이 얼마나 큰 격차를 갖는지를 반증하는 자조 섞인 농담이기도 했다.

단칸방 하나의 가격이 변방의 장원과 맞먹을 정도.

그러니 어지간히 지체 높은 명문가라 할지라도, 황도에서 저택을 갖는다는 건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끼이익-

그런 황도의 중심가.

중심가에 위치한 온갖 호화로운 저택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대저택.

이곳은 멜디르 제국 제 2황자, 트레인의 저택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국 왕위 계승권 2위.

제국의 남부 확장정책의 선봉에 선 야심가.

그렇지만 저택에 들어오는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황족은 귀족 전용 거주구에 살지 않는다.

그들이 생활하는 곳은 황성 내부에 마련된 전용 거주구.

대부분의 황족들을 그곳에서 남 부러울 것 없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니까.

“남부의 장군들도 줄타기를 해대다니, 여기까지 와서 1황자 편에 붙어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황도의 사회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그중에서도 으뜸인 것은 역시, 황위 계승권을 얻기 위한 궁중 암투일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트레인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제국이 한창 전쟁을 벌이는 남부.

그곳에서 명성을 드높임과 동시에 새로 등용될 남부의 장군들을 필두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력을 키워낼 청사진.

그 모든 계획이 이제 막 결실을 맺으려 한 그때, 사건이 터졌다.

제국의 공적, 이안 라인란트.

그가 황궁에 침입하여, 현 황제 페트리우스를 시해하는 대사건이 터진 것이다.

“전하, 황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알고 있네. 황권을 휘두르게 되었으니, 놈에게는 절호의 기회겠지.”

제국 황태자, 밀레드.

어울리지 않는 황태자라는 짐을 짊어져, 혹독한 궁중암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자.

그는 온화한 학자의 삶을 꿈꿨으나, 황족의 피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의 불우한 인생을 지켜본 자로서 한때는 그를 동정했고, 무시했었지만…. 그것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설마 한평생 동안 연기를 해오며, 뒤에선 내 목줄을 죄고 있었다니……!”

황제가 시해된 그 순간, 황태자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황성 내부를 빠르게 평정하고, 죽은 황제를 대신하여 황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반발하는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재물과 권력, 이권을 휘둘러 빠르게 회유, 혹은 숙청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 올라온 소식부터가, 끝까지 2황자를 후원하겠다 밝힌 케일란 백작이 저택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단 소식이란 말이다!

“도대체, 도대체 언제부터……?”

유약하고 선한 성품이라 알려진 황태자.

그 품성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무력한 황자.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그리 생각했고, 그렇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를 얕잡아본 덕분에, 자신부터가 지금 지지하던 세력의 태반이 등을 돌린 상태이지 않은가!

“다른 이들에게 연락하게. 30분 뒤에 이곳으로 모이라고.”

“알겠습니다. 전하.”

크레인의 말에 금발을 빗어넘긴 집사가 자리를 떠났다.

“후우…….”

분노하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어서 남은 이들을 모아, 대책을 세워야 했다.

황도에 남아있는 매 순간순간이, 자신에게는 목에 칼이 들어온 것과 진배없었으니까.

‘우선 외가로 가서 은둔한다. 때를 노리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 기회가….’

그렇게 생각하며 트레인 황태자는 자신의 방문을 열었고.

“오, 왔다.”

자신의 방에는, 푸른 머리를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잠시, 정적.

조용한 현장과는 정반대로, 트레인 황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여기 깔려있는 경호원이 몇 명인데?’

‘아니, 들어온 건 둘째고, 어째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

‘설마 이 저택 안에 있는 이들도 전부……?’

수많은 생각과 가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물들이던 것도 잠시.

“…밀레드 녀석이 보낸 것이냐?”

“…….”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던 트레인은 체념한 듯 어깨를 떨궜다.

“후우….”

이 저택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어릴 적부터 자신을 보좌하던 이들.

그들마저 포섭되었다면, 자신의 계획은 정말로 끝이었으니까.

“즉위식 전에 후환인 자신을 제거할 생각이겠지. 훌륭한 수다.”

그렇게 말하며 트레인은 자신의 방 문을 닫았다.

아무리 몰락했다 한들, 제국의 황좌를 넘보던 자.

목숨을 구걸하다 꼴사납게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남동부 변경지대에 로자라는 여인이 있네. 날 죽이거든, 부디 시신은 그녀에게로….”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으려던 순간.

“에? 뭔 헛소리에요 지금?”

그를 맞이한 푸른 머리의 여인, 스텔라는 얼굴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그대는, 날 죽이러 온 게….”

“죽이긴 뭘 죽여요? 기껏 죽을 뻔한 거 살려줬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스텔라.

황망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2황자는, 그제서야 그녀가 붙들고 있는 시신들에게 시선이 갔다.

“저들은…?”

“문단속 좀 잘하세요. 오자마자 다섯 명이 달려드는데, 여기 사람들은 안 잡고 뭐 하고 있었대?”

방이 어두웠기에 하인들이 살해당한 줄 알았지만, 그 반대였다.

서슬 퍼런 암기와 독.

이들이 자신을 암살하려 잠입한 이들이었고, 눈앞에 있는 여인은 이들을 역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목숨을 살려준 것에는 감사를 표하겠네.”

경계심이 뚝뚝 묻어나는 태도였지만, 트레인 황자는 예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나 그에게 안도감을 느낄 시간은 없다.

제국에서 자신의 위치는 끈 떨어진 풍선.

그런 자신을 돕는 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을지, 그로서는 짐작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 죽어가는 황자의 감사 인사나 받자고 이런 번거로운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네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이 여인의 등장은 자신도,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한 밀레드 황태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라는 것을.

“밀레드 녀석이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 믿지. 그렇다면, 날 구한 이유는 뭔가?”

자신의 암살을 막았다는 것은, 황태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

주도권은 이미 상대에게 있었다.

어쭙잖은 술수는 오히려 독이다.

“으으음….”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프휴~!”

더 이상 못해 먹겠다는 듯,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말주변도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건지….”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성큼성큼 걸어와, ‘자요!’라며 대뜸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북부에서 보내는 편지. 이렇게 말하면 알아서 알아먹는다면서요?”

“……!”

북부.

그 말을 들은 트레인은 황급히 편지를 받아들었다.

“북부라면, 라인란트? 도대체 누가….”

그렇게 물으며 돌아봤을 때, 스텔라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기척조차 없이 사라진 여인.

황자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 정도의 정치공작을 걸만한 인간은…. 내가 알기론 프리실라 공후뿐이다. 북부에서 왔다면, 날 살린 것은 그녀의 명령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트레인 황자는 편지를 뜯어 빠르게 읽어 내려갔고.

“무, 무슨……?!”

그곳에 적힌 내용에, 그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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