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제 선물입니다
“제국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두운 예배당 안.
그림자로 뒤덮인 공간을 비추는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으로 물든 찬란한 햇빛이었다.
“이미 제 2집단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뒤이어 네크로맨서 부대가…….”
“멈추거라, 팔리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팔리만 추기경의 보고를 끊었다.
오색찬란한 색으로 물든 태양빛을 쐬던 브리간테 교황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했다.
“기도 중이지 않으냐.”
기도.
교황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대화였다.
브리간테 교황은 신성교단의 전권을 지닌 ‘케르시아스의 손.’
그가 대화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신, 케르시아스였다.
‘정확히는 우리가 만들어낸 신이지.’
브리간테 교황이 쐬고 있는 빛.
형형색색으로 물든 그 빛을 보며 팔리만은 생각했다.
“태양빛이 어떤 색을 가졌는지 알고 있느냐?”
그러는 사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교황이 물어왔다.
깊이 고개를 숙인 팔리만은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태양은 신성한 것. 그 빛은 감히 사람의 잣대로 단정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아니 되옵니다.”
“네가 옳다. 진정 성자의 현답이로다.”
짧게 치하한 교황이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기뻐서 웃는 것인지, 아니면 비웃음인지.
그것을 가늠하는 사이, 교황은 덤덤히 눈을 떠 자신을 비추는 빛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지금 날 비추고 있는 빛은 무슨 색이냐.”
“성화에 나오듯, 찬란한 빛입니다.”
“그렇지.”
잠시 그의 말을 음미하던 교황이 말했다.
“붉은 유리를 통과한 태양빛은 붉은색으로, 푸른 유리를 통과한 태양빛은 푸른색으로.”
“…….”
“무구하고 순수한 태양빛이,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유리 조각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한다.”
교황의 말을 들은 팔리만은 그것이 은유임을 알았다.
투명한 빛이 유리를 통해 색을 달리하듯.
사람의 뜻에 따라 신의 위광은 형태를 달리하여, 정교하고 아름다운 성화로써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말뜻을 알겠느냐? 팔리만.”
그 물음에, 팔리만은 고민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신의 의지는 절대적이나, 그것을 빚어내는 것은 사람일지니.”
“흠.”
“그리고 신의 의지를 빚어내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성하이옵니다.”
팔리만의 그 말에 표정 없던 교황의 얼굴이 움직였다.
호선을 그린 입가는 방금 전의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다는 반증이었다.
“역시, 내 제자로구나.”
“…….”
“명석하고, 총명하고. 거기에 불경하기 짝이 없는 파계(破戒)로다.”
그렇게 말한 브리간테 교황은 천천히 무릎 꿇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래 교단의 의례에 따르면, 기도를 마친 성직자는 두 발자국 물러난 뒤 일어나야 한다.
바닥을 비추는 햇빛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스윽-
그렇지만 교황은,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보란 듯, 땅에 깔린 색색의 햇빛을 딛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은 마치 케르시아스를 발아래에 둔 듯한 형상이었다.
“…….”
나이 어린 신도라 할지라도 큰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불경.
다른 누구도 아닌 교황이 그런 불경을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논란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팔리만은 깊이 고개를 숙인 채, 브리간테가 하는 양을 지켜볼 뿐이었다.
신을 밟고 선 그의 행동이, 마치 당연하다 여기는 듯했다.
“주신께서 햇빛을 통해 내게 속삭이셨다.”
입을 뗀 교황이 눈을 떴다.
우우웅-
검은 눈동자 안에서 일렁이는 샛노란 빛.
마치 눈동자 안에 불꽃이 깃든 모양새였다.
“제국은 우릴 배신했다. 그들은 계획을 일그러트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어.”
“…….”
“우리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로군.”
제국을 입에 담는 교황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노기가 묻어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페트리우스 황제의 갑작스러운 붕어(崩御).
제국에서 날아온 비보에 교국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성직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황제를 시해한 이안 라인란트를 악마라 매도했고.
교단은 그에 발맞춰 이안 라인란트 본인과 함께, 그와 함께한 인물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이단심문관들을 제국으로 보낼까요?”
“아니, 그걸 필요 없다.”
브리간테 교황은 팔리만의 권유를 딱 잘라 끊어냈다.
성혈과 성체, 그리고 케르시아스의 신령.
그것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교황은 제국 황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고 있었다.
“후손의 몸을 취하며 살아남아 봤자, 결국 한낮 인간일 뿐.”
그렇게 말한 교황은 눈을 가늘게 떴다.
“품에 맞지 않는 과실을 탐했으니,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대가를 치를 것이야.”
자리에 없는 황제를 비웃던 교황이었지만, 그는 곧 표정을 굳혔다.
“우리가 처단해야 할 악은, 제국이 아닌 북부에 있다.”
“…….”
북부.
그 말을 들은 팔리만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제 불찰이옵니다, 성하. 좀 더 신경을 썼어야….”
“아니다. 내 너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교황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자신에게 머물지 않았다.
교황이 팔리만과 이단심문소를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
팔리만은 고개를 숙인 채, 그 원흉인 소년을 떠올렸다.
‘클라인 라인란트.’
이단심문소의 추적을 뿌리친 채, 원초의 화로를 눈에 담은 소년.
살아남고자 하는 그의 발버둥이 자신의 계획을 앞당겼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대행자들을 모두 불러라.”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교황은 고민을 마친 듯 팔리만에게 말했다.
“모두, 말씀이십니까?”
교황의 말에 팔리만은 확인하듯 물었다.
대행자.
교황의 명을 수행하는 세 명의 성직자.
교단이 보유한 최대 전력이며, 한 명 한 명이 요새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닌 인간병기.
그들을 불러모은다는 말에, 팔리만은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셋 모두.”
이례 없는 교황의 결단.
황급히 고개를 숙인 팔리만은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과민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그가 고개를 숙인 것은 교황의 결단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그들을…. 어디로 보내려 하시렵니까?”
잠시 감정을 추스른 팔리만이 물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그였지만, 지금은 최대한 그의 끄나풀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북부. 라인란트 영지로.”
역시.
평정을 유지하는 듯했지만, 교황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제국의 권력 놀음에 희생된 어린아이라 생각했지.”
그 소년을 아키몬드의 환생이라 규정하고 교화소에 수감 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를 대수롭게 여기는 이는 없었다.
여느 귀족이 그렇듯, 대륙의 여느 힘없는 자들이 그렇듯.
대의를 위한 연료로써 크리펠이라는 용광로에 내던져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젠 아니야.”
순례길에서 죽었어야 할 소년이었다.
교단의 진실을 알기 전에.
만신전을 보고 불지기를 만나기 전에 붙잡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어야 했었다.
“그 아이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았고, 봐선 안 될 것을 보고 말았지.”
소년은 교단과 제국이 지금까지 해 온 거래를 알고 있다.
그 거래를 통해, 그 장막 너머에서 이어진 수많은 실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년은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행자들에게 전하거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를 제거하라고.”
“알겠습니다.”
클라인 라인란트는, 교단의 계획을 알고 있다.
라인란트는, 교단의 계획을 알고 있다.
그 말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 듯, 팔리만은 서둘러 예배당을 나갔다.
“후우….”
팔리만이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브리간테 교황은, 등을 돌려 자신에게 빛을 비추던 창을 바라보았다.
“마치, 200년 전의 역사를 보는 듯하군.”
그렇게 읊조린 교황은 눈을 가늘게 떴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고, 거대한 악이 온 대륙을 휩쓸었던…. 그날과 꼭 닮지 않았는가.”
옛 북부 왕국.
그곳에 꽃피운 이단.
그들이 교단에 무슨 짓을 했는지, 자신들의 대의에 무슨 불경을 저질렀는지.
기록으로 전해 들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렇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어 밀려드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냈다.
비수라 한들, 그저 작고 미약한 칼날일 뿐.
지금은 200년 전의 북부 왕국도, 그 심부에서 솟아난 그 불경스러운 성도 없었다.
“모든 것이 계획을 향해 가고 있으니, 문제 되는 것은 없다.”
그는 고개를 들어 형형색색으로 물든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았다.
거룩한 신의 형상이 찬란하게 빛나며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양옆으로 뻗은 세 쌍의 날개.
태양을 형상화한 두 쪽의 수레바퀴와 하늘을 향해 치켜든 거대한 창.
그야말로 신의 성상이었으며, 구원의 형상이었다.
“교단은 이번에야말로,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쿵-
예배당을 나서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복도였다.
교회 안에 건설되어있는 또 하나의 교회.
건물 속에 건물을 짓는 이 거대함은, 대성당의 규모가 얼마다 큰지를 능히 짐작게 했다.
“같은 계획 아래 바라는 결말은 다르니, 갈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지.”
교황과의 대화를 곱씹은 팔리만이 얼굴을 굳혔다.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멍청한 꼭두각시들.”
만약 팔리만을 아는 자가 지금의 그를 봤다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사려 깊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만민을 대하는 성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팔리만 추기경님!”
그러는 사이, 성기사 한 명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성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방금 전에 보이던 무표정이 무색할 정도로 밝은 얼굴.
환한 웃음으로 화답한 팔리만은 성기사를 향해 말했다.
“각 교구에서 대행자들을 소집해주십시오. 성하의 명입니다.”
“…!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의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답하는 성기사.
팔리만은 그를 불러세운 뒤, 품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내밀었다.
“4번 지구에 있는 성 미리암 고아원에, 이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미, 미리암 고아원이라면….”
그 악명을 익히 알고 있는 성기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추, 추기경님. 그곳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일입니다. 개리슨 그 친구에게 요즘 통 연락을 못 했거든요.”
그렇지만 부탁한 것은 추기경.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팔리만 추기경의 부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답한 성기사는 대성당 밖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곧 미리암이, 그리고 개리슨 또한 움직이겠지.
“제가 보내는 작은 선물이라 생각해주십시오.”
교황에게도 알리지 않은 그때의 광경을 떠올리며, 팔리만은 허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키몬드.”
소년의 진짜 이름.
교단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그 이름을 입에 담자, 팔리만의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소년의 눈에서 흘러나온 그 거대한 존재의 편린을 떠올릴수록, 팔리만은 끓어오르는 희열을 참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끝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