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책임이다
“젠장, 침입자다! 클라인 공……!”
스걱-!
이 기사들은 이안을 고문하러 온 것.
내가 이곳에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리춤에 찬 검을 찾았지만, 그곳에 채워진 것은 죄수 통제를 위한 채찍.
이미 검을 뽑은 날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 크억?!”
“뭐야! 어디서 침입, 으읍?!”
최상층에 있던 다른 기사들의 처지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탑의 그림자에 스며든 아린의 촉수.
순식간에 기사들의 입을 휘감은 그것은, 꿀렁거리는 그림자 속으로 기사들을 집어삼켜, 그대로 폐부를 갈아버렸다.
까득, 까득.
퉤!
입안에서 생선뼈를 발라내듯, 그림자가 무언가를 뱉었다.
피 한방울까지 핥아먹어 반질반질해진 기사의 갑옷.
이윽고 그림자 속에서, 정갈한 하녀복 차림을 한 아린이 걸어 나왔다.
“다 먹었어요 도련님!”
“어, 그러냐.”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마치 강아지처럼 헤실헤실 웃는 아린.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할 말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보던 이안은 완전히 조용해진 감옥탑 최상층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안을 구출하기 위해.
이안을 구출한 이유는, 그가 이런 돌발행동을 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 되물음에 이안은 피식 웃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동안 차고 있던 구속구가 썩 답답했는지, 한결 가벼워진 몸짓이었다.
“어디까지 유추했지?”
“숙부님이 황제를 죽인 게 거짓이라는 것, 황태자와 죽은 선황제가 동일인이라는 것.”
그렇게 말하자 이안은 잠시 놀라는 눈치였다.
“첫 번째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는 어떻게?”
“폴와이번 내전때 황제를 직접 봤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난 팔짱을 낀 채 덧붙였다.
“200년은 족히 된 영혼이 눌러 앉아있더군요.”
진혼을 업으로 삼는 네크로맨서는, 외양이 아닌 영혼으로 사람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사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방법을 강구하던 패이기도 했다.
“숙부님이 황궁에 돌입한 이유는, 그 증거를 잡기 위해.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벌인 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 대답이 어떻지를 짐작하면서도, 난 이안을 향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까?”
“성공했지. 그러니 놈들이 날 죽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
예상대로.
그는 이 전쟁을 뒤집을 카드였다.
“황궁 지하에 밀실이 있다. 놈은 그곳에서 황태자를 부른 뒤…. 자신과 황태자의 영혼을 갈아끼지.”
“…….”
“그다음, 새 몸을 얻은 황제는 황태자의 얼굴로 자신을…. 제 아들을 죽이는 거다.”
- 허.
- 직접 들으니 더 어처구니가 없군.
두 언데드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선황제 멜디르가 후손의 몸에 자신의 혼을 빙의시키고 있다….”
“알려진다면, 황실의 근간이 흔들릴 거다.”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멜디르 제국은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국.
그것을 유지하는 근간은, 강력한 군대뿐만이 아니다.
광활한 영토와 그 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인종도, 민족도, 심지어는 언어마저 다른 그들을 전부 품기 위해선, 좋건 싫건 타협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후궁들이 나서겠죠.”
“그렇겠지.”
각 지역에서 모인 황제의 여인들.
그들은 황제의 여인이기 이전에 수많은 지역을 대변하는 상징이요, 제국과 그 땅이 혼인으로써 맺어졌다는 증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국에 속한 이들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벌여온 궁중 암투와 계승권 경쟁. 그 모든 것이 부정될 테니까.”
황실의 외척이 될 수 있다.
제국 정치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제국에 충성함으로써, 대륙을 휘두를 수 있다.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그런 수많은 이들의 욕망.
황좌를 좆는 야망이 이 제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초대 황제의 계획이었다면.
“황태자를 포함한 왕위계승권자들, 황족. 그것이 초대 황제 멜디르가 만들어낸 인간목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제국은 무너진다.”
설사 무너지지 않는다 한들, 라인란트를 치는 명분은 완전히 지우고도 남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명분없는 전쟁은, 수많은 제국을 무덤으로 끌고갔지.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반역자의 헛소리 아닙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닌, 사실을 납득시킬만한 증거.
“그러니까 내가 직접 황궁으로 쳐들어간 것 아니냐.”
“……?”
내가 의문을 품자, 이안은 이제는 멀어버린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흐리멍텅한 그의 눈.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마력에, 내 눈이 찌푸려졌다.
“이런 미, 친……?”
그의 눈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투명한 무언가.
안구 정중앙에 위치한 그것은…….
“안구에…. 기록용 수정을 박아넣은 겁니까?”
“정답이다.”
덤덤하게 내뱉는 것과 달리, 난 머리에서 피가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플리시안에서 오래 죽치던 보람이 있었지. 불법시술이라 좀 아프긴 했는데, 생각보다 견딜 만하더라고.”
“…뭐요?”
북부 장벽에서 헤어지는 날.
플리시안으로 떠난다며 등을 돌리던 때가 생각났다.
단순히 제국의 뒷조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엘프란의 서고에 간 게 결정적이었다. 덕분에 황제놈이 일을 저지르는 시기를 알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마법 도구를 인체에 이식하는 멍청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마법사는 어째서 서클을 형성해 마력을 저장하는가?
검사는 어째서 단전에 마력을 모아, 정해진 혈도에 순환시키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 의외의 신체에 마력을 노출시킨다면, 그 부위는 붕괴하기 때문이다.
“앙헬!”
마법도구는 네크로맨서가 아닌 마법사의 전문 분야.
곧바로 리치인 앙헬을 불러 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 기록수정과 시신경을 억지로 이어붙여 놨군. 기록자가 사망하는 순간, 다른 수정으로 영상이 전송되도록.
“그럼 그 불법시술이라는건?”
- 영상 전송을 위한 마법각인일세. 수술부위를 보니 두개골을 열어서 시신경에 직접 각인했어.
“……!”
할 말을 잃었다.
술자의 몸에 마법을 새기는 마법각인.
몸에 직접 새겨진 술식은 술자의 마력 회로와 일체화되고, 그것을 파훼하거나 해주하기 위해선 술자의 마력 회로 전체를 역설계해야 한다.
인체를 분해하여 역순으로 짜맞춰야 하는 난이도.
황제의 비밀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보호하기에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
“이 미친 노친네가 진짜……!”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대가.
마법각인은 그 효과만큼이나, 부작용 또한 크다.
아니.
애초에 신체 내부에 마력을 품은 물질을 이식한 시점에서, 어떤 반동이 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죽을 겁니다.”
“그러냐?”
초연하게 답하는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시신경부터 시작해서, 조만간 뇌까지 잠식합니다. 어쩌자고 이런 미친 짓을…!”
“크하하! 말년에 벽에 똥칠 좀 하겠구만?”
자신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저 태도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증스러웠다.
“야, 제자놈아.”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망할 노친네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내게 손을 뻗었다.
“술.”
“망할 노친네, 이 상황에서 술 소리가 나옵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이안은 말없이 내게 손을 뻗은 채였다.
“다 죽어가는 인간이, 하여튼!”
그렇게 탄식하면서도, 난 품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40도가 넘는 높은 도수의 술이었지만, 이안은 그것을 맹물인 양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고통을 잊기 위함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마시는 술맛이 그리웠던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힘없이 마른 숨을 내뱉는 노인을 향해, 이유를 물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집요하다거나 철저하다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집착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안배.
그는 이 한 번의 침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것이었다.
“복수입니까? 원한입니까? 아니면 또 그 같잖은 영웅심 때문입니까?”
악문 이빨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힘없이 주저앉은 저 노인의 모습은, 200년 전 내 눈앞에서 사라진 그 사람의 모습과도 같았다.
“도대체 왜 하나같이……!”
대의를 위해. 선의를 위해. 미래를 위해.
그 확실치도 않은 가능성에 매달려,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이들.
대중은 그 희생에 감복하고, 그의 삶을 찬미하며 잘난 듯 떠들어댄다.
그는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이었다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 현인이었다고.
정도(定道)를 위해 한 몸 바친 선인이었다고.
웃기지 마라.
영웅? 현인? 선인?
그따위 입바른 소리로 감히 그들의 죽음을 미화하지 마라.
그와 함께하는 이들은 친구를 잃은 것이다.
그로 인해 구원받은 이들은 보답하고자 하는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의 등을 바라보며 걸어가던 자들은 목표를 잃은 것이다.
칭송해 마지않는 영웅의 시체.
남겨진 자들의 비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비웃으며, 다시금 꽃피는 악.
“결국,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잖아…!”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는 회귀.
200년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고통의 굴레.
그걸 견딜 수 없어 일어섰건만,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래, 아무것도……!
따악-!
“아윽?!”
상념이 계속 이어지려던 순간, 눈앞에 불똥이 튀었다.
욱신거리는 이마를 감싸며 돌아보자 그곳에는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이안이 있었다.
“나 아직 안 죽었다 이놈아! 새파랗게 어린놈이 뭔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 지랄이냐 지랄은….”
내 시선을 받은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복수심도 있고, 원한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야.”
“……?”
“영웅심은 뭐, 집안 종특인지라 어쩔 수 없지만 이건 별도고. 진짜 이유는….”
그렇게 말을 흐린 이안은 푸후, 하고 술기운을 뱉어낸 뒤 한껏 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있기 때문이다.”
“……!”
확신에 찬 그 한마디에, 난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귀찮다고, 지겹다고 말하며 눈앞까지 다가온 재앙을 방관했었다.”
그렇게 말한 이안은 고문으로 삐걱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상태임에도, 그는 또다시 검을 들 생각이었다.
“그 대가로써 수많은 이들을 잃었음에도, 그 수많은 죽음을 책임지는 것조차 두려워서…. 이날까지 살아왔던 거다.”
그렇게 말한 이안은, 전에 없던 진지한 눈빛으로, 날 향해 말했다.
“그렇지만 널 보니…. 이제야 용기가 생겼다.”
“……!”
“하늘날개 기사단의 단장이자 마지막 단원으로서, 마지막 책임을 다 할 용기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킨 이안은, 감옥 밖으로 앞서서 걸어갔다.
“…….”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이안의 시선이 한순간, 내 등 뒤에 선 키예스를 향했다.
- …….
흐린 안광으로 이안을 응시하는 키예스.
그의 낡은 갑옷을 잠시 바라보던 이안은,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모든 일이 끝난다면 그때는…. 너희들의 죽음을 슬퍼해도 되는 걸까?”
간절한 청이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의 인격은 대부분이 지워져 껍데기만 남았으니.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키예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 …….
그러나 그 순간.
철컥.
갑옷 소리와 함께 키예스의 영체가 움직였다.
명령하지도 않은, 처음 보는 자세를 취하며.
흔적밖에 남지 않은 옛 기사는, 이안을 보며 예를 취하고 있었다.
“고맙다.”
한참 만에 이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안은 등을 꼿꼿이 편 채, 감옥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