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니들은 이유가 있었냐?
“헉…. 헉……!”
아린이 붙잡은 문신돼지는 마른 숨을 헐떡이며 앞장섰다.
아린의 그림자는 이미 그의 귀를 파고들어 뇌를 노리고 있는 상황.
정신없이 달려간 그의 앞에, 보초로 보이는 조직원 한 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밖에 나와 있어야 할 놈이 왜…….”
창백한 문신돼지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그렇게 말하려던 그 순간.
푹-!
시커먼 그림자로 이루어진 송곳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꺼, 꺼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채 깨닫지 못하던 그 순간.
“좋아, 좋아. 들키지도 않았고, 보는 눈도 없군.”
먼저 보내놓은 아울의 신호를 확인하며, 난 그의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 잠들어라.
“……!”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망자의 목소리.
이해를 벗어난 상황에 공포를 느낀 듯, 보초의 눈은 금세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
- 그대로 가라앉아 안식해라. 내가 곧 그리 해 주마.
이걸로 혼은 완전히 제압된 상태.
난 지체 없이 그의 머리에 마기를 주입해 그의 머릿속을 살펴보았다.
“으극! 윽…! 끅……!”
부하를 견디지 못한 듯, 얼굴이 몇 차례 경련했지만, 이 시점에서 그의 몸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입구는 삼중, 보초는 다섯. 내부 인원은 열일곱에 머리는 따로 마련된 밀실.”
순식간에 정리된 정보를 곱씹으며, 난 밴시가 띄운 영혼 지도의 내용을 갱신했다.
망자의 혼과 생령을 감지하는 밴시의 눈.
거기에 더해, 난 보초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낸 은신처의 지형을 덧씌운 것이다.
“수도나 플리시안이나, 니들 사는 곳은 어떻게 달라진 곳이 없냐?”
어두컴컴한 하수구의 구조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제국 황도나 플리시안 수도나 세워진 지 수백 년은 넘어간 도시들.
건축양식이나 도시 구조가 다르다 한들, 하수구 같은 기반 시설은 같은 구조였다.
“으우우, 짐승 냄새 다음은 하수구 냄새….”
후드로 얼굴을 두른 스텔라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하긴, 보름 동안의 강행군에 더불어 지하 탐방이니.
힘든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굳이 이렇게 숨어 들어갈 필요 없이, 공자님 언데드들로 밀어붙이면 되지 않아요?”
“수녀라는 사람이 뭔 살벌한 소리를….”
어처구니가 없어 말을 흐렸다.
어떻게 수녀라는 인간이, 사람 사는 도시 아래에 언데드를 풀어놓자고 제안하냐?
신앙심은 쥐뿔도 없는데 신성력은 어떻게 쓰는 거야?
‘뭐, 풀어놓을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한편에 치워둔 채로, 난 허물어진 보초의 몸을 하수구에 내던졌다.
첨벙-!
“다른 곳이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여긴 좀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예.”
그렇게 말한 난 내가 걷고 있는 하수구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동업자가 좀 많아서요.”
200년 전 아키몬드 사변 이후, 제국은 국가 단위로 네크로맨서를 육성한 유일한 국가.
그런 만큼 이 제국 곳곳에는,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동업자라면, 제국의 네크로맨서?”
“정답.”
옅은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한 난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엘프란을 습격할 때 기억납니까? ”
“그거야 뭐.”
그렇게 답하는 스텔라에게 난 계속해서 말했다.
“기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던 네크로맨서들은 어느 정도 전투준비가 되어있었죠.”
네크로맨서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버러지들.
생각할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올랐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이미 죽고 사라진 놈들인데, 분노한들 득 될 게 없었으니까.
“확실히 그랬네요. 원래 같았으면 철창에서 언데드를 꺼낼 시간도 없었을 텐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스텔라.
그 모습을 보며 난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사용하는 영혼 지도 같은 게 없다 해도,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른 네크로맨서는 영혼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네크로맨서에 비하면 한참이나 격이 떨어지는 떨거지들.
“저처럼 마기를 받아들인 네크로맨서의 혼은 더욱 눈에 띄고요.”
그러나 그런 멍청이들 역시, 내 언데드를 감지할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떨거지들도 제 언데드들을 알아챘는데, 수도에 깔려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오죽하겠어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게다가 내 경우에는 훨씬 더 위험했다.
혼을 묶어, 고정시키는 반혼을 업으로 삼는 그들.
혼을 풀어, 환원시키는 진혼을 업으로 삼는 나.
서로의 영역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만큼, 그들이 내뿜는 마기와 내 마기는 아예 다른 힘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차이가 있었으니까.
그만큼 혼의 파장 또한 다르니, 훨씬 눈에 잘 띌 것이다.
“사령술이 막힌 마당에, 도시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말이죠.”
국경 경비대나 검문은 피할지 몰라도, 제국 정보부의 눈은 피할 수 없다.
머리와 눈의 색을 바꾸고 화상자국을 덮어 위장한다 한들, 그들의 감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냄새를 맡는 순간, 그들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낼 것이다.
“그러니 일을 벌이기 전까지, 우린 도시 위로 올라가선 안 됩니다. 눈에 띄는 순간 추적이 시작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는 이제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공자님이 방금 사령술을 사용한 것도, 엄청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거네요?”
“증~말 빨리도 알아채셨네.”
당연한 소리다.
눈에 들어오기만 해도 내가 네크로맨서인 걸 알아볼 텐데, 거기에 더불어 사령술까지?
‘위쪽에 사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제국군이 지하수로에 들이닥칠 것이다.
난민에 섞여 암약하는 낙엽의 잔당을 처리하겠단 명목으로 말이지.
“그러니까, 우린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튀어야 하는 겁니다. 알겠죠?”
그 말과 함께, 난 내 손에 담긴 영혼지도를 스텔라에게 건넸다.
“두목이 사용하는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먼저 그곳에 가서 대기하세요.”
“…공자님, 정말로 괜찮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스텔라의 시선은 내가 아닌 아린에게 향해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몰라도, 아린 양은 평범한 하녀잖아요? 그런데 왜…….”
평범한 하녀지.
그림자에서 촉수도 나오고, 가시도 나오고, 이빨도 나오고….
아마 여기 있는 우리가 다 덤벼도, 이 평범한 하녀 하나를 못 이길걸.
“섣불리 혼자 내보냈다가는 인질이 됩니다. 혹을 떼러 왔다가 하나를 더 붙일 순 없잖아요?”
우리들의 목적을 상기시키자, 스텔라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갔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팍! 팍! 팍!
바닥이 아닌 벽, 천장 등을 밟으며 쏘아져 나가는 스텔라를 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저 속도만큼은, 전생부터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전사보다 빠르다고.
***
“정문 보초와 연락이 안 된다니, 뭔 소리야?”
제국 수도 하수구, 중앙 지하수로 심층부.
2번 출입문을 경비하고 있던 보초의 보고에, 커크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정기 보고를 들으러 1번 관문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말한 커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정보부가 이곳을 알아챘군.”
황제 직할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전운이 돌고 있고, 대륙 각지에서 난민들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
황도의 모든 치안이 그곳에 집중된 이상, 하수구에 숨어든 자신을 구태여 추적할 조직은 그들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꿍꿍이속일까요?”
“별거 아니다. 공개처형이 얼마 안 남았으니, 쓸데없이 어수선하게 하지 말라는 거겠지.”
공개처형 얘기를 꺼내자, 다른 조직원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황궁은 이미 이안 라인란트의 공개처형을 표방한 상태.
황제 시해범을 즉석에서 처단하지 않은 것은, 라인란트 측 인간을 꾀어내기 위한 황제의 노림수다.
“라인란트가 이안 라인란트를 구하려 한다면, 그건 자신들이 반역자라고 광고하는 꼴이지.”
황제 시해범을 구하고자 황도를 습격한 공작.
이안을 숨겨준 젓만으로도 제국군이 전진 배치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지금 당장 황제의 이름으로 대전쟁을 선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만일, 오지 않는다면요?”
그나마 말귀가 밝은 조직원이 묻자, 그는 잠시 신난 듯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이대로, 라인란트를 말려 죽이면 된다.”
치익-! 소리와 함께 담배에 불이 붙었다.
후우- 소리와 함께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
그것을 바라보던 커크는 계속해서 말했다.
“현 황제는 충분히 젊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어.”
라인란트의 공작과는 달리, 새 황제에게는 시간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생겨난 셈.
현 라인란트 공작인 하인켈에게는 너무나도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 국면을 뒤집으려면, 황제 시해범이라는 과오를 덮을 만한…. 그야말로 거대한 악이 필요할 테고.”
이 말을 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목소리.
곧바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검은 머리를 한 소년, 그리고 그 옆에 달라붙어 있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가.
혼란을 정리하려 눈을 돌린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뭐야?!”
죽어있었다.
방금 전까지 보고하던 보초도, 자신의 뒤를 지키던 쌍둥이도.
그 모두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벽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짓을……!”
분개한 얼굴로 일어서려는 찰나.
소년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 그는, 소년의 정체를 짐작해낼 수 있었다.
“클라인, 라인란트?”
“허이구. 변장한 게 다 헛수고였네.”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자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이안 라인란트를 구출하려는 건가?”
“정답.”
“미쳤군.”
그렇게 단언한 커크가 말했다.
“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국이 원하는 바다. 그걸 네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자신의 부하가 전부 살해당한 상황.
그렇지만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뒤, 클라인과 같은 위치에 서고자 했다.
‘공자와 충돌이 있었던 것은 이전 대장. 내 쪽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이 난리를 쳐 놓은 것은 일종의 기선제압.
판단을 마친 그는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이안 라인란트는…. 황도 남동쪽에 자리한 첨탑 꼭대기에 갇혀있다.”
“허이구, 무슨 탑 속에 갇힌 공주님도 아니고.”
가벼운 이죽거림이 있었지만, 그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칼자루는 클라인의 손에 들어간 상황.
섣불리 움직인다면 언제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으니까.
“공개처형은 사흘 뒤. 황도 중앙광장에서 진행된다. 경비 규모는….”
구미가 당기는 정보를 두 개.
지금부터는 거래의 영역.
그렇게 생각한 커크가 고개를 들던 순간.
“……어?”
그의 시야에 담긴 것은, 머리를 잃은 채 쓰러지는 자신의 몸이었다.
“웬만하면 들어줄까 싶었는데, 역시 안 되겠다.”
그렇게 말하는 클라인을 보며, 부릅뜬 커크의 목이 뻐끔거렸다.
‘도대체, 왜……?’
다짜고자 우릴 죽이는 이유가 뭐냐.
우린 당신을 해치려 했던 일파와는 아무런 관계없다.
“왜냐고?”
그렇게 항변하는 듯한 커크의 목을 보며, 클라인은 피식 비웃을 뿐이었다.
“그럼 내가 반대로 묻겠는데.”
그 말과 함께, 클라인의 손이 커크의 시야를 감쌌다.
그곳에 담겨있는 짙은 마기.
죽어가는 커크는 그 손을 보며, 깨달았다.
“니들은 이유가 있어서 돈 받고 사람을 죽이고 다녔냐?”
그는 애초에,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