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54화 (154/209)

154. 소음공해

“거기, 정지.”

제국 황도, 도시 검문소.

깐깐한 표정을 한 검문관이 도시 내부로 들어가려는 한 무리의 남녀를 가로막았다.

“방문목적, 그리고 얼굴을 보이시오.”

“통행증은…. 제시했을 텐데….”

선두에 선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북부인들은 특히 주의하라는 황명이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지나가는데, 왜 우리만….”

철컥-!

눈을 가늘게 뜬 경비대장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허리춤에 찬 검집을 툭, 하고 건드렸다.

“불복시 구금하겠소. 얼굴을 보이시오. 당장.”

“…….”

황명이라는 말을 듣고도 말대꾸라니.

이러니 북부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고하자, 후드로 얼굴을 가린 소년이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후드 속에 감춰진 검은 산발.

그와 동시에, 그림자에 숨겨진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북부 출신인 줄 알았는데, 동부였나?

그렇게 생각한 경비대장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보시다시피, 저흰 보부상입니다. 북부 삼림에 다녀오느라 거길 거쳐갔던거고….”

그렇게 말한 소년의 얼굴을 본 순간, 경비대장은 불쾌한 듯 얼굴을 팍 찡그렸다.

‘뭔 놈의 얼굴이……!’

눈가를 전부 뒤덮은 끔찍한 화상자국.

방계와 내전이 있었다던데, 거기에 휘말린것일까.

사연이 어떻든 별 관심은 없었다.

저런 흉측한 몰골을 더 보고싶지 않을 뿐.

거기에 추가로, 그의 불쾌감을 자극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북부 삼림에서 잡히는 담비 모피를 팔러 왔습니다. 전쟁통에 북부 도시에선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구구절절 주절대는 소년이 등짐을 풀자, 그 안에서 코를 찌르는 짐승냄새가 풍겨왔다.

“어우! 뭔 냄새가……!”

“푸흐…! 이딴 게 고급 옷감이란 말이야?”

담비 가죽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던 경비병들이 대번에 코를 부여잡았다.

북부에 서식하는 눈담비가 천적을 쫒아내기 위해 온 몸에 뭍히는 분비물.

저것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최고급 모피인 눈담비 가죽은 냄새나는 오물에 불과했다.

“됐소! 당장 집어넣으시오!”

의심을 완전히 걷어낸 경비대장은 알아들었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다른 이유보다도, 등짐과 몸에서 풍기는 짐승냄새를 더 참기 힘들었던 탓이다.

“통과!”

경비대장의 외침에 일행들을 가로막던 병사들이 길을 열었다.

상처입은 얼굴이 부끄러운 듯, 소년은 황급히 후드를 두른 채 일행과 함께 도시 안으로 달려갔다.

“쯧, 황도에 거지들만 늘어나는군.”

폴와이번 내전에, 뒤이어 일어난 라인란트 내전.

거기에 제국이 남부에서 벌이고 있는 정복 전쟁까지.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통에 제국 수도에는 난민들이 물밀 듯 들어오고 있는 상황.

거기에 황제 시해사건까지 발생한 터라, 황도 하층의 치안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저것들도 어디 뒷골목에서 빌어먹으려나?”

“보부상이라잖아. 깡패들한테 털리고 쫒겨나겠지.”

“아니면 심부름꾼이나 하던가.”

하층민들이 사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보며, 경비대 병사들이 수군거렷다.

안 그래도 공개처형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도시 출입 관리까지 떠맡기다니.

“개 같은 새끼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끝끝내 가슴 속에 눌러 둔 채로, 경비대장은 성문에 가득 모인 외지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

“으으…. 이제 슬슬 이거 벗으면 안돼요?”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 조금만 참아요.”

스텔라의 볼멘소리에 그렇게 답하며, 난 황도의 뒷골목을 걸었다.

흔해 빠진 여행복 차림에 짙은 갈색 망토.

등에 멘 배낭에는 북부지역 특산물인 담비 가죽이 한가득 들어있다.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어디 있는 건지.’

등짐에서 시큼하게 풍겨오는 냄새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지만, 위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우으으…….”

“그리고 그쪽은 저처럼 번거로울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난 괜히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15년 동안 지겹도록 봐온 은색 머리칼이 아닌, 시커먼 색의 머리칼.

거기에 행여 누가 알아볼까 얼굴의 절만을 액토플라즘으로 뒤덮어야 했다.

그런 상태로 장장 보름 동안을 걸어왔으니.

몸도 마음도 쉬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이, 거기 애새끼들.”

그렇게 뒷골목을 걷는 사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대여섯 명은 되어보이는 거한들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에요?”

“맞는 것 같긴 한데, 까 봐야 알죠.”

그렇게 말하는 내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양아치 무리.

그들을 거느리는 남자.

그가 두른 문신.

‘어, 맞네.’

문신에 그려진 낙엽 문양을 본 난 결론을 내렸다.

뒷골목 시궁쥐가 냄새를 맡은 것이라고.

“내가 뭔 말 하려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싸구려 문신으로 몸을 덮은 남자가 그렇게 이죽거렸다.

어느새 일행을 둘러싼 거한들.

눈을 부라리는 걸 보자니 공포에 앞서 짜증이 먼저 몰려왔다.

“잘 모르겠는데.”

“허?”

“이 새끼,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내 대답에 거한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킥킥대며 비웃는 놈이 있는가 하면, 허공에 곤봉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놈까지.

정정한다.

이단심문관이니 몬스터니 하는 것들만 상대하다가 이제 와서 양아치들을 마주치니.

이젠 짜증보단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내가 피곤하긴 한가 보네.

“길게 말 안한다. 등에 맨 거, 몸에 지닌 거. 전부 내놓고 꺼져.”

그렇게 말한 문신돼지는 내 등 뒤에 선 두 명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뒤에 있는 여자 둘 까지 포함해서.”

“으엑.”

그 말에 스텔라가 역한 듯 혀를 뺐다.

그 와중에 여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 걸 보니, 괜히 뒷골목 깡패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이 새끼가 귀에 X박았나, 왜 대답이 없어?”

참을성 없는 거한 한 명이 날 향해 눈을 부라렸다.

“형님, 어떻게 하죠?”

그렇게 말한 거한이 시선을 돌리자, 문신 돼지는 푸우,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사내새끼는 죽여. 나머진 씻겨서 팔아야지.”

그 말에, 내 앞에 선 거한은 망설임없이 곤봉을 휘둘렀다.

부웅-!

별다른 망설임도 없이 휘두르는 걸 보니, 이런 짓이 한두번이 아닌 모양.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씨.’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검게 물들인 눈에 푸른 빛이 일렁였다.

내 머리를 내리치는 곤봉의 움직임.

진짜 공격이 아닌, 내 눈이 예언한 저들의 공격경로였다.

턱-

힘만 믿고 들이대는 단순무식한 공격.

기술이니 뭐니, 힘을 빼고 싶지도 않았다.

“어?”

팔꿈치를 쳐 공격 방향을 비틀고, 발목을 차올려 균형을 무너트렸다.

저 정도 덩치라면 이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거든.

콰직-!

균형을 잃어버린 거한이 그 자리에서 꼴사납게 넘어졌다.

“이 새끼가!”

그러는 동시에 달려드는 한 명.

그쪽으로 눈을 흘긴 내가 슬쩍 몸을 피하자, 그가 휘두른 곤봉은 넘어진 동료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뻐억-!

“꺼어……!”

다른 건 몰라도 완력에는 일가견이 있었는지, 뒤통수를 맞은 거한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뭐, 뭐야?!”

균형을 잃고 쓰러진 동료를 제 손으로 후려친 셈.

갑작스런 이변에 당황한 그의 관자놀이를 검집으로 후려쳤다.

빠악-!

골을 울리는 충격이 거한의 정신을 뺀 순간.

빠각-!

스텔라의 발차기가 남자의 안면을 내려찍어, 그의 안면을 완전히 함몰시켰다.

“오오.”

발차기에 감정과 힘이 가득 실린 게, 팔아넘기니 뭐니 지껄이던 대가인 듯했다.

털썩-!

순식간에 거한 둘이 쓰러진 상황.

문신돼지를 포함한 거한 셋은 그제야 뭔가가 잘못된 것을깨달은 듯 했다.

“씨, 씨발……!”

입으로는 욕지꺼리를 내뱉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선 더 이상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힘 하나 안들이고 둘을 해치운 것을 봤으니, 평범한 보부상이 아니라는 건 눈치챘겠지.

그렇게 남은 세 사람이 슬슬 뒷걸음질을 치던 그 순간.

콰득-!

“?!”

“뭐, 뭐야 이건!”

뒷골목이 만들어낸 짙은 그림자가 그들의 다리를 잡아 찍어눌렀다.

“가운데에 있는 건 먹으면 안돼. 알지?”

“네!”

힘찬 대답과 함께, 아린의 그림자가 남은 두 괴한을 덮쳤다.

“자, 잠깐만!”

“사, 살려……!”

그들이 뭐라 단말마를 내지르기도 전에.

으적-!

아린의 그림자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들을 삼켜버렸다.

“이번 언데드는 뭔가 좀…. 소름돋네요.”

그 광경을 본 스텔라가 그렇게 말을 보탰다.

으적, 으적.

시커먼 몸체에서 솟아난 이빨이 거한들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골목 전체를 뒤덮은 그림자 탓인지, 스텔라는 저것이 아린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씨발…! 이게 뭐야!”

눈앞에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마지막 남은 문신돼지가 고개를 휘저었다.

“이 새끼들 다 어디 간 거야?!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것을 본 난 몰래, 아린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준 뒤, 그를 향해 걸어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자, 이걸로 도망갈 생각은 못 할 테고.”

그렇게 말하자 녀석의 시선이 날 향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날 보는 시선엔 공포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너, 너 이새끼……!”

“이제 슬슬 상황 파악이 되나?”

방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돌려주며, 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삼 너네도 참 애절하다. 안그래?”

“……?”

그렇게 운을 뗀 내 얼굴엔 비웃음을 가득 담겨있었다.

“천하의 낙엽이, 이젠 빈민가에서 사람들 피나 빨아먹는 처지라니 말이야.”

“뭣……!”

낙엽.

헬리안과 만날 때부터 순례길까지, 계속해서 날 추적해오던 지하조직.

“뒤진 니네 두목이 이 꼴을 보면 참 좋아하겠어. 안 그래?”

생각해보면 그 두목이라는 놈도 아린의 배 속에 있으니, 어쩌면 봤을 수도 있겠다.

이름이 뭐였더라?

도통 기억이 안나네.

“너, 너 뭐야.”

날 향해 묻는 목소리에선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낙엽을, 아니, 그……!”

“너희들이 누굴 쫓다가 아작이 났지?”

그 말에 문신 돼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서, 설마……?”

“정답.”

그렇게 말한 난, 얼굴에 뒤집어쓴 위장을 해제하고, 본래의 얼굴을 보였다.

은발에 푸른 눈.

그리고 몸 속에 갈무리된 짙은 마기까지.

“클라인 라인란트…!”

“이렇게까지 해도 방해가 없으면, 정보부 놈들은 여기까진 안 오나 보지?”

내 말에 문신 돼지가 흠칫했다.

제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황제 시해 사건.

그 범인의 가문인 라인란트가, 제국 수도에 나타났다는 사실까지.

자신이 지금 얼마나 큰일에 휘말렸는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제, 제국군! 제국군을 불러야…! 으읍?!”

공포에 질린 그가 발악하듯 소리지르려는 순간, 아린의 그림자가 그의 입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

“읍! 으, 으읍-!”

“에헤이, 소리 좀 그만 질러라. 동네 시끄럽게 진짜.”

그렇게 중얼거린 난 그의 머리채를 들어 올렸다.

“자, 선택해. 순순히 네 윗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던가, 아니면 이대로 간식거리가 되던가.”

“흐……! 흐으………!”

입이 틀어막힌 채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 난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정겨운 기분.

역시 난 악당들이랑 어울려야 마음이 편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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