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53화 (153/209)

153. 타이탄

저택에 있던 기사들은 델라인과 함께 전선으로 떠난 상황.

훈련으로 늘 북적였던 저택의 연무장은 전에 없이 한산했다.

쿵-!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짐수레에 한가득 실려있던 레어메탈을 옮기기 시작하자, 넓은 공터는 거대한 창고가 되어있었다.

- 키이이-!

“어, 그래. 고생 많았다.”

모양 빠지게 마지막 임무가 짐꾼이냐.

그렇게 항의하는 스켈레톤에게 인사하며, 그들의 혼을 환원시켰다.

“오랫동안 버텨줬으니, 말년은 좀 편하게 가라는 뜻이었는데. 네크로맨서의 이 깊은 뜻을 몰라주네.”

- 편하게 보내주고 싶었으면 일을 시키질 말았어야지.

염동력으로 짐을 옮기던 앙헬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 원래 마지막 날에 일시키는게 제일 나쁜거 모르나?

“그러니까 계약문 잘 읽어보라고 한거 아니냐.”

그렇게 앙헬과 티격대던 사이.

가지런히 정리되어가는 레어메탈 더미를 보며, 버크만이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토호들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부탁하는 나도 이 정도라고는 생각 못했어.”

토호들이 지키는 북서부 장벽.

그 너머에 형성되어있는 설산지대는, 대륙 최대 규모의 레어메탈 매장지다.

그런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제국이나 방계가 손대지 않은 이유는, 특유의 폐쇄성과 지리 때문.

현지인이 아니면 돌아다닐 수도 없는 극한 환경에, 몬스터까지 득실거리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뭐, 그쪽도 우리만큼 쌓인 게 많다는 거지.”

그렇지만 순순히 포기할 제국이 아니다.

그들은 지방 토호들을 직접 수탈하는 대신, 본가를 집어삼켜 그들을 고립시키기로 했다.

그 설원으로 기사들을 보내는 것보다야, 그쪽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물론, 내 덕에 그 결과는 실패였지만!

내 덕분에 말이지!

“우와아.”

수북히 쌓여있는 레어메탈들을 보자 스텔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게 전부 다…. 레어메탈인 거죠?”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데, 맞습니다.”

순도높은 마력을 머금고 있는 금속, 레어메탈.

강철을 만들 때 섞음으로써, 철제 무기에 온갖 마법을 각인하게 하는 물건이다.

“가장 구하기 힘들었던 물자가 해결되었군요.”

그렇게 말한 것은 레어메탈을 확인하고자 따라온 버크만이었다.

“자금이 있다 해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국한테 찍힌 마당에, 이걸 내 줄 나라가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그 성질에서 알 수 있듯, 레어메탈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마법검, 갑옷, 마법사들의 지팡이 몸체, 공간이동 게이트…….

인챈트나 각인이 들어가는 무구라면 예외 없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금속이었으니까.

단순히 귀한 금속이 아닌, 국가의 군사력에 직결되는 전략자산.

그렇기 때문에, 이 금속은 철저히 국가의 통제 아래에 유통되고, 그 가치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높다.

“그러면 만약에, 이걸 남부 연합 같은곳에다가 팔면…?”

“라인란트 저택 정도는 우습게 살 수 있을겁니다.”

내 말에 스텔라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금보다 귀한 거…. 이거 하나가 내 일 년 치…….”

수녀라는 인간이, 저 탐욕에 찬 눈빛을 봐라.

재물과 사치를 멀리하는 게 성직자의 미덕 아니었나?

“아린.”

“네!”

“저 수녀님 헛짓거리 안 하나 잘 감시해. 알았지?”

“네!”

음, 역시 착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버크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방에 서신과 함께 1차 인도분을 보냈습니다. 곧 있으면 레어메탈제 장비가 나오겠죠.”

“아마 난리가 났을걸. 하늘에서 레어메탈이 툭, 하고 떨어진 격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아주 신이 났을 거다.

내 너스레를 들은 버크만은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만 하면, 라인란트 최대의 약점을 해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버크만은 연무장 한편에 구비된, 라인란트식 장검을 바라보았다.

곡선은 찾아볼 수 없이 곧게 뻗은, 십자 모양의 검.

투박한 만큼 견고한, 라인란트 기사단의 상징이었다.

“라인란트 기사들은 대체로, 지구전에 특화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버크만이 검을 잡아보았다.

“제국 기사들의 강격이 날아들어도, 거기에 밀리지 않고 버텨낼 수 있죠.”

그 말을 들은 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버텨내는 것 이상은 힘들지.”

“맞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버크만은, 자신이 잡은 검을 뽑아보였다.

“제국 기사를 상대하는 전법은, 상대의 체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리는 것. 효율적이지만, 전투의 주도권은 항상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라인란트는 제국 기사들과 같은 폭발력이 없다.

혹독한 기후를 버텨내고, 적은 마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뽑는 마력 운용법.

거기서 나오는 전투 지속능력은 북부 기사들 최대의 장점이자, 최대의 약점이었다.

“그렇지만.”

손에 쥔 검을 바라보던 버크만이 말했다.

“기사들에게 레어메탈제 장비를 보급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은, 연무장에 쌓여있는 레어메탈을 향해있었다.

“마법 부여를 마친 장비로 보완한다면….”

“제국 기사에 버금가는 출력으로, 몇 날 며칠을 싸워대는 괴물들이 튀어나오지.”

제국 기사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레어메탈 합금으로 만들어낸 갑옷에 원기 회복 마법을 각인해서 쓰고 있지.

마법이 각인된 무기로 떨어지는 전투 지속능력을 보완하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하나. 어떤 마법을 부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가인데….”

애석하게도 라인란트는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

어떤 마법을, 어떻게 부여해야 할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아, 그거.”

물론, 내가 우리 가문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

“아일라시스에게 연락해 봐.”

“아일라시스, 말입니까?”

내 말에 버크만이 미심쩍은 듯 되물었지만.

“전대 공작이었던 엘프란은 마력 증강이나 마력회로 이론의 일인자였지.”

이어지는 내 말에 흡,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놈이 만들어낸 술식은 전부 아일라시스 가문 서고에 있을 테고.”

인위적으로 마력을 증강시키는 술식.

인체에 시술하는 건 당연히 허락할 수 없지만, 그에 준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아일라시스에서 마법사를 보내달라고 해. 마법부여가 가능한 인원이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답한 버크만은 마음에 걸리는 듯 말했다.

“시엘 공녀님께서 공작위에 오르신 건 맞지만, 가문의 마법을 그리 쉽게 공유할지…….”

“아, 그거…….”

그렇게 말을 흐리는 버크만이었지만.

“하아…….”

난 깊은 탄식과 함게 확답할 수 있었다.

“내가 ‘특별히’ 부탁한다고 말해. 다시 만났을 때 원하는 건 뭐든 해 주겠다고.”

“……?”

“그렇게 말하면 별 말 없이 줄거야.”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시엘은 뭐든 다 내주려고 한다는 것을.

- 지금을 위해 미래를 팔았군.

- 이걸 빌미로 뭘 부탁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진짜 이 망할 송장들.

심사가 뒤틀릴 때마다 한 마디씩 얹어대니,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그럼 레어메탈은 공방으로 운송하겠습니다. 헌데….”

“여기 모아놓은 건 어디에 쓸 거냐고?”

내 말에 버크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내 입가에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제국으로 가는데, 아무 준비 없이 갈 수는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파츳-!

푸르게 빛나는 선이 연무장 가운데에 쌓인 레어메탈을 감싸듯 원을 그렸다.

우우우우웅-!

레어메탈을 감싼 원 주위로, 여섯 개의 룬이 생성되었다.

200년 만에 불러내는 언데드.

기억을 더듬어, 그때 완성시켰던 설계를 복원하고, 또 그것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어, 저거!”

스텔라의 목소리에, 버크만의 눈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

치이이이익-!

레어메탈의 강도는 강철 이상.

녹이는 데에도 특수제작된 용광로가 필요한 금속이다.

그렇지만 그런 금속이, 술식에 반응해 녹아내리는 것이다.

“용광로는커녕,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째서…!”

그러고 보니 버크만은 내 사령술을 보는 게 처음이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감각은 레어메탈을 가공하는 데에 집중되어있었다.

“좋아. 순도도 높고, 반응도 훌륭하네.”

흡족한 얼굴로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스스스스스……!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레어메탈은, 완전한 액체로 변해 공중에 떠올랐다.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는 금속이, 마치 얼음이 녹듯 흘러내려, 거대한 물방울로 변해있었다.

- 얽혀라.

그렇게 말하자, 공중에 떠오른 레어메탈에서 선이 뽑혀 나왔다.

수십, 수백, 수천 가닥의 레어메탈 철사.

그것들은 이윽고 서로 묶이고, 얽히고, 꼬이며 거대한 형상을 차근차근 조립해나갔다.

꾸드드드득-!

뼈대부터 시작해서, 근육과 혈관.

그리고 그 몸을 두르는, 견고한 외골격까지.

- 놀랍군…!

술식에 적혀있는 온갖 기호들과 선들.

그 배열을 눈치챈 앙헬이 탄성을 내질렀다.

- 근육 한 가닥, 골격 마디마다 술식이 새겨져 있어. 이렇게 정밀한 작업을 즉석에서…!

“그동안 치운 시체가 몇인데, 이 정도를 못 할까 봐.”

별 감흥 없이 그렇게 말하며 조립을 이어갔다.

골자밖에 없던 골렘의 몸.

레어메탈로 된 근육이 그 골격을 지탱하고, 수십 겹의 철판이 비늘처럼 그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쿵-!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내 앞에 부복한 거인.

이것으로, 기본적인 몸체는 얼추 완성된 셈이다.

“다음은 이거지.”

그렇게 중얼거린 난, 고개를 숙인 거인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우우웅-!

땅에 새겨진 여섯 개의 룬이 빛나고, 그곳에서 수많은 혼들이 뿜어져 나왔다.

코볼트, 오우거, 리클링, 고블린.

북서부 장벽에서 토벌했던 몬스터들의 혼이었다.

- 한데 모여, 핵이 되어라.

인간의 혼과는 달리, 그들의 혼에는 의지가 깃들지 않는다.

지성이 옅은 종족이 죽는다면, 남은 것은 백지처럼 순수한 혼뿐.

한데 뭉친 거대한 혼에, 내 마기를 주입해 가공했다.

키이이잉-!

수만 개의 작은 빛이 모여, 두 손에 담길만한 광구가 완성되었다.

의지없는 혼의 집합.

그것을 가공하여 만들어낸, 골렘의 핵.

손에 모여든 그것을, 난 지체없이 골렘의 심장부에 박아넣었다.

그 순간.

화륵-!

골렘의 거대한 몸에 불길이 올라왔다.

열은 느껴지지 않는, 푸르고 차가운 불.

골렘의 핵이 완전히 정착했다는 증거였다.

쿵-! 쿵-!

라인란트 연무장 한 가운데에서 거대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푸른 불길에 휩싸인 거인.

그것은 다시 만난 날 보자, 녀석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 망자의 왕에게 영광 있으라.

으, 닭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호칭을 날 부른 거인은 다시 한 번, 이번엔 자신의 의지로 내게 부복했다.

- 제1심복 타이탄. 명령 대기중입니다.

딱딱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고저없는 목소리.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녀석이었다.

- 황제 놈이 보면 아주 기겁하겠군.

“그렇지?”

녀석을 보며 중얼대는 레이븐의 말에 맞장구쳤다.

아키몬드 군단 선봉장, 제 1 심복. ‘타이탄.’

제국 수도를 함락시킨 유일무이한 존재가, 200년의 시간을 넘어 부활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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