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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51화 (151/209)

151.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북부의 독립.

그 말을 듣자, 토호들의 눈빛이 단번에 뒤바뀌었다.

방금 전 내가 했던 불경한 언사는 기억나지도 않는 것처럼.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중한 얼굴로 고민을 거듭할 뿐이었다.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 처음 물어온 것은, 한 쪽 팔을 잃은 토호였다.

이안을 향해서도 존칭을 잊지 않은 남자.

그와 눈을 마주한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영지의 독립을 원하는 것은 북부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운을 떼자, 토호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날 향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시선을 끄는 것은 간단하다.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면 될 일이니까.

“제국이 노리는 것은 라인란트뿐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할 얘기는 감정이 아닌, 이성의 영역.

합리와 근거를 갖춰,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폴와이번 공작가가 좋은 예죠.”

그 말을 시작으로, 난 그들을 향해 설명했다.

“폴와이번은 서부 해안의 무역로를 쥐고 있는 영지임과 동시에, 제국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항구입니다.”

그런 중요한 위치를, 황제가 아닌 공작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

제국으로서는 끝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국은 라인란트만큼. 아니, 라인란트 이상으로 폴와이번을 잠식하고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이것이 폴와이번 본가 출신도 아닌 헬리안이 모든 실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

그녀의 능력도 있었지만, 제국의 지원과 정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전 이후, 판도가 뒤바뀌었죠.”

헬리안과 그 일파는 축출당했고, 라이아가 실권을 장악했다.

영지민들의 지지 또한 높고, 그만큼 제국에 대한 반감은 늘어난 상황.

사태를 파악한 황제는 급히 과오를 인정하고 제국군을 물리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그들은 이미 제국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뒤였다.

“영지민들도, 그리고 폴와이번의 중진들도 독립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의 제안에 응한 거고요.”

“그렇다면, 아일라시스는?”

토호 중 한 명이 물었다.

아일라시스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난 쓰게 웃었다.

“아일라시스는…. 두말없이 협조할 겁니다. 믿으셔도 돼요.”

전대공작, 엘프란이 행해오던 실험.

아키몬드 교단과 협조하기 전까지, 그의 연구재료는 아일라시스의 영지민이었다.

‘당장 시엘부터가 그중 하나였으니 말이지.’

엘프란과 그 휘하 마법사들에 의해 이뤄지는 공포정치.

그렇지만 갑작스런 시엘의 등장이 그 모듯 것들을 짓뭉개버렸다.

비유한 것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짓뭉개버렷지.

‘진짜 놀라운 건 그다음이지만.’

좋은 귀족을 연기하라.

시엘은 내가 했던 그 말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영지민들을 억압해오던 마법사들을 모조리 처형.

영지 경영은 영지민들이 선출한 대표자에게 일임.

부패는 철저히 응징하되, 그들이 세운 정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걸었다.

‘설마, 공작이 자기 권력을 전부 영지민들에게 일임할 줄은….’

거기에 세금은 가문의 서고와 마법 기구들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선.

반발하는 기존 영주들과 귀족은 성째로 파묻어버렸다.

이 모든 과정까지 걸린 시간, 3주.

미쳤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추진력이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일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지만 그 덕분에 시엘에 대한 영지민들의 지지는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으니….

‘시엘 여공작을 여왕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영지 전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시엘 양이 병사를 모집한다면, 예상 가용 병력은…….’

버크만이 귀띔해준 정보들을 입에 올리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측근 귀족이나 충신들도 아니고, 영지민들이 자발적으로 독립을 요구한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근데 그게 내 약혼녀네.

새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제국 3대 공작령 전부에게서 독립에 관련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라인란트는 그걸 억누르기 위한 본보기겠죠.”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난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내뱉었다.

“하지만 만약, 라인란트가 이 제국군을 몰아낸다면?”

“……!”

“허, 허어……!”

내 말에 토호들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어렸다.

제국군의 침공을 격퇴하고, 다른 공작령이 일제히 제국에 반발할 경우.

그 때 그려지는 판도를 셈해본 것이었다.

“만들 그렇게 된다면, 제국이 라인란트를 압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라인란트와 다른 공작령의 병력이, 역으로 제국을 포위하는 그림이 나온다…!”

좋아.

이걸로, 첫 번째는 통과.

이제 그 다음이었다.

“여러분들과 본가 사이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난 목소리를 바꾼 채 입을 열었다.

방금 전과는 달리 정중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본가는 여러분을 외면했고, 여러분은 본가를 무시했죠.”

“흠….”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상기시키자, 토호들 역시 걸리는 게 있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러분이 본가에 협조한다 해도. 이제 와서 본가가 여러분들을 다시 지원한다 해도. 그 골이 쉽게 메워질 수는 없습니다.”

라인란트의 암운은 길고, 또한 집요했다.

북부의 자치권을 외치며 본가의 손을 들어줬던 이들을 지치게 하고, 환멸하게 하여, 끝내는 이 변방으로 몰아낼 정도로.

“하지만 적어도, 우린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원탁에 몸을 기울여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골이 깊다고 해서, 함께 하고자 하는 시도조차 포기한다면.”

“…….”

“우린, 영원히 이 겨울을 이겨낼 수 없을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가 건넨 것은 선택지.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닌 저들이었다.

“……이상, 라인란트 측 대표의 발언이었소.”

내 말을 다 들은 크란츠는 진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라인란트 측 대표.

원탁에 앉은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외손자가 아닌, 본가의 사절로써 날 대하고 있었다.

“본가에 대해서는 이 늙은이 또한 하고픈 말이 산더미처럼 있네만.”

제국 귀족들의 암투에 휘말려, 딸인 클레어 공후가 살해당했다.

클레어 공후 역시 알면서 본가로 온 것이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가 본가에 가진 악감정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해묵은 감정에 매몰되어,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져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는 토호들을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크흠…….”

“쯧.”

크란츠 변경백이 그리 말하자, 다른 토호들 또한 생각이 깊어진 듯 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제국 놈들에게 갚아줄 일이 있지.”

그렇게 말한 것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외팔이 토호, 길테온이였다.

“게다가 이안 경을 구하려면, 좋든 싫든 본가 놈들과 같이 해야할 것 아닌가?”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인 그는 결정을 마친 듯 원탁 위에 주먹을 올렸다.

쿵-!

“바인우드 가문의 가주 길테온! 이안 경의 옛 동료로써, 라인란트의 지원에 응하겠소!”

그 말과 동시에, 다른 토호들 역시 생각을 마친 듯 그처럼 주먹을 올렸다.

“록펠트의 수장, 트웨인. 라인란트와 함께하겠소.”

“나이람 집안의 장손 드라크! 제국 놈들한테 한 방 먹여줘야지!”

“펠리켄 가문도 함께하겠소. 앞으로 바빠지겠군.”

“에잇, 벨키어도 같이 가겠네! 우리만 빠지면 나중에 뭔 소릴 들으려고!”

원탁의 중앙에 모인 다섯 토호들의 손.

그것을 폰 크란츠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피었다.

“다들, 고맙네.”

그렇게 말한 그 역시, 원탁 중심에 자신의 주먹을 올려놓았다.

“유스티아 변경백, 크란츠. 마지막 순간까지 그대들과 함께 하리라.”

그렇게 말하는 것을 끝으로, 크란츠와 다섯 토호들이 날 보았다.

‘나도 끼라는 거구만.’

힘든 결정을 해 줬는데, 이런 건 어울려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난 천천히 다가가, 빈 자리에 내 주먹을 올려놨다.

상처와 세월로 범벅이 된 노인들의 손 사이에, 새하얀 애송이의 손.

그렇지만 그들은 거리낌없이 내 합류를 받아들였다.

“라인란트의 대표자, 클라인.”

공작가 라는 호칭은 일부러 넣지 않았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라인란트는 더 이상 공작이 아니게 될 테니까.

“…….”

“……….”

토호들 역시 그런 내 의도를 알아챈 듯, 피식 웃어보였다.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는 눈빛.

그것을 받아내며, 난 그들을 향해 다짐하듯 말했다.

“여러분들의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승리로써 보답하겠습니다.”

***

뚜벅. 뚜벅.

황금과 보석으로 생식된 호화로운 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복도를 걷는 청년은, 제국 황제의 법복이 어색한 듯 보였다.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폐하.”

“후우!”

시종장의 말에 마른 숨을 내쉰 청년은, 제국의 황태자.

그리고 지금은 황제의 책무를 대행하고 있는, 밀레드 황태자였다.

“아바마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군. 이 바쁜 일정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니….”

“전하께서도 그에 못지 않으십니다. 심려 마시옵소서.”

시종장은 은은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말했다.

페트리우스 황제의 애도를 위해 각국에서 몰려온 사신들.

그리고 진위를 밝혀 제국의 법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귀족들까지.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도 황태자는 침작하게 그들을 응대했고, 제국의 법도가 굳건함을 보였다.

‘유약하신 성품이 단점이었지만, 폐하의 죽음 이후로는 그것도 없어지셨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시종장의 웃음이 짙어지려던 찰나.

“전하가 아니라 폐하시다.”

머리 위에서 들려온 중저음에, 그의 어깨가 흠칫 떨렷다.

“호칭에 주의하도록.”

그렇게 말하는 것은 검은 색 갑옷으로 몸을 감싼 거구의 기사.

페트리우스 황제의 기사였던 진 클라크는, 여전히 변함없는 기백으로 그의 등을 지키고 있었다.

“시, 실언이었습니다 폐하. 부디….”

“아아! 괘, 괜찮네! 염려 말게나.”

밀레드 황태자는 시종장의 사과에 화답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이제 복조를 걷는 것은 밀레드와 진, 두 사람 뿐이었다.

“고, 고맙네 클라크 경.”

무뚝뚝한 그의 태도에 경직된 듯, 밀레드 황태자는 괜시리 쭈뼛거렸다.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시다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

“……제 불찰이었습니다.”

“아, 아닐세! 내 탓하는 것이 아니야.”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황태자는 손을 절레절래 휘저었다.

“아마 아바마마께서도…. 크게 나무라시지는 않을 것일세.”

황궁을 침범한 이안 라인란트.

그의 무위는 그야말로, 검귀나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그대는 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기사생도 중 한 명을 인질로 잡은 그의 행동에, 클라크는 결국 검을 놓을 수 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돌입한 이안은, 황제를 처참하게 살해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술수.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미는 듯, 밀레드 황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폐하.”

그러나 그 순간.

“…이제 보는 눈은 없습니다”

“…….”

그의 한 마디에, 유순해 보이던 황태자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후우, 나 원 참.”

우유부단해 보이던 이전과는 다른, 날카로운 눈빛.

이전까지의 그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아들놈의 성격을 연기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로군.”

그렇게 내뱉은 밀레드 황태자는 쯧, 하며 혀를 찼다.

“다음에 낳는 자식은 성격도 나와 비슷하게 키워야겠어. 바꿀 때마다 이게 무슨 촌극인지….”

진은 그렇게 불평하는 황태자, 아니, 황제를 덤덤히 지켜볼 뿐이었다.

“라인란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나가는 투로 그렇게 묻자, 진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부켄하임 성을 요새화하는 동시에, 기사단을 전진배치 하고 있습니다.”

“빠르군. 마치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황제는, 잠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크으…….”

“폐하. 역시 상처가….”

“호들갑 떨지 말거라. 별것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진을 만류하는 황제였지만, 그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저 미쳐 날뛰는 짐승이라 생각했거늘, 이 따위 수를 숨기고 있었을줄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황제는 후, 짧은 호흡을 내뱉은 뒤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라인란트는 끝이다.”

가증스러운 베르켈의 후손들.

그렇게 중얼거린 황제는, 창 밖으로 펼쳐진 황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영도 아래에, 이 세상은 영원토록 번영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이미 승리한 것처럼 후련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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