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50화 (150/209)

150. 직업병이라고 하자. 그게 좋겠어

“아버지! 저기!”

“왔군.”

유스티아 영지, 목책성 망루.

멀리서 다가오는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자이프가 큰 소리로 날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쿠르르르르….

목성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날 마중했다.

테런, 자이프.

그리고 크란츠 변경백이었다.

텁-!

“말도 안 하고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하여튼 제멋대로인 건 지 엄마나 아들이나 아주…!”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다가온 자이프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 내 어깨를 흔들어댔다.

“외삼촌, 그, 알겠으니까 어깨좀……!”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난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반나절 동안 걷느라 몸이 녹초인데, 팔이 내 허리만한 거한이 어깨를 흔들어대니.

와, 미치겠네.

이러다 탈골되는 거 아니야?

“거기까지 해라 자이프.”

“아 형님!”

“애 팔 빠진다.”

테런의 만류에 자이프가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손을 땠다.

어깨가 얼얼한 게, 듄켈 녀석한테 마사지 받을 때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무사히 돌아왔으니 나무라지는 않겠다만, 다음번엔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지는 말거라.”

“아, 예에…….”

테런 역시 걱정이 많았는지, 내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이프 보다 그쪽이 더 어색합니다만.’

술에 취해 잔뜩 망가졌던 사람을 맨정신으로 다시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크, 크흠!”

지긋이 쳐다보는 내 눈빛에, 테런은 겸연쩍은 듯 눈을 돌렸다.

아, 이 인간.

술 취해서 헛소리 한 거 다 기억하고 있구나.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쪽팔릴 일도 없는데 말이지.’

내가 그렇게 약간의 연민을 느끼는 사이, 크란츠 변경백은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이야기는 잘 마쳤느냐?”

“…….”

그의 물음에 호들갑을 떨던 두 외삼촌 역시 조용해졌다.

내게 방울을 주고, 설산으로 인도한 이들.

내가 누구와 만나 이야기를 했는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

그렇게 말하는 내 눈가에서 미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어머니는 제게 힘을, 그리고 제 존재에 관한 진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는지는 차치하고 말이지.

“이것들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 확답할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말하자 크란츠 변경백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죽고 없어진 딸에 대한 그리움인지.

전부 알고 있었음에도 입을 다물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침중한 그들과는 반대로, 천천히 입을 여는 내 입은 옅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 멋대로 희생하고, 자기들 멋대로 기대하고.

하여튼 막무가내였다.

어머니도, 그리고 베르켈 그 새끼도.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요.”

윈터폴의 기사로서 끓는 마음을 뒤로, 미래의 내게 모든 걸 맡긴 베르켈.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 안배하고자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어머니.

‘태어날 생명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던가?’

날 막아선 베르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남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기꺼이 내던지는 멍청이.

그리고 난 그런 멍청이한테 설득당해, 복수를 내팽개친 악당놈이라는 것을.

“그러니 전, 그 모든 희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국과 교단.

정확히는, 그들의 이면에서 암약하고 있는 자들을 처단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낼, 그 끔찍한 것을 죽임으로써.

“원치 않은 과업을 떠맡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말한 크란츠 백작은 허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네게 이 모든 것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잠시 그의 눈빛이 아득해졌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글쎄.

아무도 모를 일이겠지.

“그럼에도 네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딱히 감동했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희생이니 명예니, 전 그런 영웅심리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아요.”

나랑 내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미래를 지킨다?

인류를 위해?

200년 전에도 지금도, 난 그런 닭살 돋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가 지금 내린 결정은 무엇 때문이냐?”

내게 그렇게 물어온 것은 테런이었다.

손해보는 건 질색인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

글쎄, 굳이 말하자면….

“직업병이죠 뭐.”

“……?”

“직업병?”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날 둘러싼 이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예. 직업병. 그게 맞겠네요.”

혼자 그렇게 결정지은 난 아직도 오묘한 표정을 한 세 사람에게 말했다.

“망자의 염을 받았는데, 네크로맨서가 이걸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 직업병.

난 직업병 때문에, 이들의 편에 선 것이다.

“…그래, 결정했다면 우리도 움직여야지.”

내 대답을 곱씹던 크란츠 백작은, 고개를 주억거이며 그렇게 말했다.

“움직이다니요?”

내가 그렇게 되묻자, 테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제국에서 급보가 왔다.”

제국.

그 말에 내 얼굴 또한 딱딱하게 굳었다.

‘명색이 제국 귀족이라지만, 크란츠 백작가는 변경 중에서도 변경.’

이곳까지 전해질 정도로 급한 소식이라면, 여간 중요한 일이 아닐 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크란츠 변경백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고.

“페트리우스 황제가 시해되었고.”

이어지는 한 마디에, 난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범인인 이안 라인란트가…. 황성 지하에 구금되었다고.”

***

“크란츠!”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야?!”

크란츠 백작가의 목성.

응접실로 들어서자, 낮선 노인들이 목소리를 모았다.

“서부 장벽을 경비하는 다섯 토호들이다.”

테런이 옆에서 귀띔해 준 덕에 그들의 신원을 알 수 있었다.

검은 곰 가죽을 망토처럼 두른 노인들.

하나같이 나이는 지긋했지만, 그들이 풍기는 기백은 도저히 노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황제가 죽은 것도 모자라, 그 범인이 라인란트라니!? 이건……!”

“경거망동하지 말게. 그것을 논의하고자 이 곳에 모인 것이니.”

단호한 크란츠의 한 마디에 웅성대던 토호들이 말을 멈췄다.

그들을 진정시킨 크란츠 변경백안 천천히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우선, 그 라인란트에게서 온 내용부터 말해야겠군.”

그 말과 함께 턱짓하자, 고개를 숙인 테런이 그에게 서신을 건넸다.

라인란트의 봉인이 찍힌 문서.

내가 다녀오는 사이 하인켈이 보낸 것이었다.

“페트리우스 황제는 황궁으로 쳐들어온 이안 라인란트의 손에 살해되었소. 지금은 황태자인 밀레드가 황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

“황궁 내부의 암투일 가능성은?”

날카로운 눈빛의 노인이 그렇게 물었지만, 크란츠는 고개를 저었다.

“황태자는 이전부터 황제에게 충성하던 인물이오. 황궁 내부의 암투였다면, 그가 아니라 제 2황자인 드웨인이 보위에 올랐을 테지.”

그렇게 말하자 토호 중 한 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안 그자가 황제를 죽였다 그 소리요? 말도 안 돼!”

“맞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팔짱을 낀 채 맞장구친 토호는 수염이 덮수룩한 곰 같은 풍채를 지닌 노인이었다.

“황궁을 경비하는 기사가 수백에, 단장급 기사가 수십이오. 게다가 황궁에는 그의 전속 기사인 진 클라크가 있지.”

진 클라크.

그 이름을 담은 토호의 눈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그 인간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푹 주저앉아있는 왼쪽 어깨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과거에 그와 검을 맞댄 적이 있었겠지.

“그에 반해 이안 경은 노쇠한 데다가 두 눈까지 잃은 상태. 홀로 침입한다 한들 자살행위였을 것이오.”

기사 학살자라는 악명과 함께 파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안을 향해 존칭을 잊지 않았다.

그런 토호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난 천천히 입가를 비틀었다.

‘멜디르 이 개새끼, 몸을 갈아탔군.’

페트리우스 황제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은, 제국 초대 황제 멜디르.

그리고 이번엔 자신의 죽음을 연출하여, 라인란트를 칠 명분을 얻고자 한 것이다.

비밀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우습기 짝이 없는 촌극.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제국 정보부라면 3대 공작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잡아냈겠지. 어떻게 대응할까 싶었는데, 설마 먼저 쳐들어올 줄이야.’

황제 시해라는 명분이 있는 한, 제국군의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러게 왜 혼자 황성에 튀어가서는….’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가 없는 노인네였다.

이번에는 특히나 더.

엘프란을 잡고 홀연히 사라지더니, 황궁 지하에 갇혀?

이런 대형사고를 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던가!

“후우….”

그렇게 한숨을 쉬는 사이, 크란츠는 자신을 바라보는 토호들을 향해 말했다.

“이미 제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소. 라인란트 공작가가 지속적으로 이안 라인란트를 숨겨줫다는 명목으로 말이지.”

“……!”

“그들이 뚫린다면, 변방에 위치한 우리들 또한 무사하지 못하겠지.”

쾅-!

그렇게 말하자 분에 찬 듯, 토호 중 한 명이 책상을 쳤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대형사고를 친 게야!”

와 이거 시작이 좋네.

나랑 생각이 똑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야.

“망할 본가 놈들! 어쩌자고 제국을 들쑤셔서 이런 말도 안되는 사태를……!”

“아무런 계획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아, 이건 나와 생각이 좀 다르군.

안타까운 마음을 접어둔 채 입을 열자, 토호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이 아이는…?”

“클라인…! 클레어의 아들이 아닌가!”

이 사람들도 날 알아보네.

아니, 정확히는 어머니를 알아보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래, 소개가 늦었군.”

그렇게 말문을 연 크란츠는 내가 이곳에 온 경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어머니에 대한 부분은 빼고, 정치적인 이유로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토호들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그 말을 꺼내자 예상대로 반발이 튀어나왔지만, 장벽 외곽에서 내가 한 일을 들려주자 그들의 눈빛이 금세 달라졌다.

“허, 허어…!”

“언데드 군단에 대해서는 나 또한 전해 들었네만, 그것이 저 아이가 한 일이었다니…….”

중부 대장벽을 침공한 아키몬드 교단 때문에, 동토지대의 몬스터들은 서부로 몰려들었다.

나 때문에 내려온 놈들을 처리한 거니, 내 입장에선 내가 싼 똥을 치운 격.

그렇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수 개월동안 안고 있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놀라운 성과이긴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다 한들 늦었다.”

그렇지만 토호들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던 대로.

본가에 대한 그들의 골은 깊었다.

“애초에, 온종일 제국에 놀아나기만 한 것이 라인란트가 아니더냐? 그런 자들이 어떻게 제국을…!”

방금 전 보았던 외팔이 노인의 물음에 난 곧바로 반문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대로 얌전히 앉아 제국이 칼을 들이댈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뭐라?”

단숨에 얼어붙은 공기에 테런과 자이프의 얼굴이 파래졌다.

그렇지만 난 개의치 않은 채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제 목을 제국에게 바치고 꼬리라도 흔드시던가.”

“……!”

“저, 저……!”

예상외의 내 태도에 토호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전 여러분들의 푸념을 듣고, 협력를 구걸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들이 뭐라 말하기 전에, 대화의 흐름을 가로챘다.

“제국은 이미 쳐들어오고 있고, 우리에겐 시간이 없죠.”

끊임없이 몰아쳐,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했다.

“이 상황에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

그들이 우릴 내버려둘 수 없도록.

“이대로 계속해서 제국에게 엎드릴 것인가.”

매력적인 물건을 제시해야지.

“함께 북부를 독립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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