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48화 (148/209)

148. 영웅과 예언가

“좋아! 역시 우리 아들!”

“으억?!”

내 결정에 클레어 공후가 팔짝 뛰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아니, 갑자기 뭐 하는…!”

“지 아빠 닮아서 우유부단한 쭉정이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시원시원하잖아? 기특해서 그렇지!”

‘쭉정… 뭐?’

자기 남편을 두고 하는 평가가 신랄하기 짝이 없다.

하인켈이 이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반응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녀는 흐뭇한 얼굴로 내게 외쳤다.

“좋아, 합격!”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는 투명한 눈.

기괴한 마녀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단순한 사념체도 이렇게 종잡을 수가 없는데, 생전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클레어 공후의 사념체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로 다가왔다.

“이걸로, 미래가 바뀔 가능성이 생겼네.”

흐뭇한 표정을 한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난 피식 웃으며 답했다.

“겨우 가능성뿐입니까?”

내 입장에선 나름 큰 결심이었는데, 가성비 참 안나오네.

그렇게 중얼대며 툴툴대자, 그녀는 큭큭거리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엄마 앞에서 툴툴대는 건 누굴 닮아서 이런담?”

“적어도 아버지는 아닐 것 같은데.”

“뭐야 그럼. 나 닮은 거라고?”

슬쩍 비꼬자 클레어 공후는 곧바로 볼을 부풀렸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도 호구처럼 착해빠지기만 했지, 누구한테 툴툴댈 만한 성격은 아니에요.”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네.”

가벼운 말싸움과 함께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대화.

1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어머니와의 재회는…. 글쎄.

썩 나쁘지는 않다.

“좋아! 슬슬 충분하겠네.”

“충분하다니요?”

내가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눈을 맞췄다.

내 것과 같은 빛의 푸른 눈.

수정과도 같은 투명한 두 보옥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네 눈이 가지고 있는 힘.”

“아.”

“이제 제대로 쓸 수 있어야지. 안그래?”

그렇게 말한 클레어 공후는 내 눈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 다른 방식으로 발현했구나.”

“다른 방식?”

내 질문에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엿다.

“이 푸른 눈은, 유스티아 가문에 흐르는 예언자의 증표.”

그 다음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두드렸다.

“하지만 네 경우는 거기에 라인란트의 피가 결합되어서, 독특한 방식으로 발현되었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잠시 빛나는 듯 했다.

“영웅인 라인란트와 예언가인 유스티아. 두 능력이 섞인 결과물이지.”

설명을 마친 클레어는 잠시 날 바라보더니, 알았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예를 들면 글쎄…. 검술같은 무예를 눈으로 보면, 그걸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다던가?”

“……!”

“오, 맞췄나 보네?”

단 번에 내 능력의 정체를 파악했다.

애써 놀란 마음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써 오던 그 힘의 본질은, 나와 같은 예지의 힘이야.”

그렇게 말한 클레어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차이점은 한 가지. 내 눈은 미래의 사건을 보는 데 치중되었고, 네 눈은 상대의 움직임을 보는 데 특화된거지.”

“…….”

그녀의 말을 듣자, 묶인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지닌 이 이질적인 힘의 근원.

설마 재능이 아니라, 이능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전 이미 이 힘을 제대로 쓰고 있는데요.”

난 그렇게 말하며 검손잡이를 두드렸다.

이안이 가르쳐 준 검술에, 그간의 여행으로 배운 수많은 기술들.

이미 대부분의 검술을 습득했으니, 이 능력을 더 발전시킬 일은 없을 터.

“아니, 넌 아직 네 힘의 절반도 다 못 쓰고 있어.”

그러나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양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잠시 후.

파츳-!

순간, 그녀의 눈 속에서 푸른 불빛이 일렁였다.

“크?!”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정체 모를 이물감.

풀썩-!

균형을 잃은 몸이 휘청이더니, 결국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전투 중 상대의 검술을 읽을 때와 똑같은 감각.

아니,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였다.

“뭐야, 갑자기, 왜……!”

“놀라지 마. 제대로 반응하고 있는거니까.”

안 놀라게 생겼냐.

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올리자, 클레어 공후의 얼굴이 보였다.

우우웅-!

설원 속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두 눈동자.

아마 내 눈 역시, 저것과 비슷할 정도로 빛나고 있겠지.

“능력을 깨우는 김에 한 가지. 중요한 장면을 보여줄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클레어 공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요한 장면…?”

“내가 보는 분기점은, 미래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

짧게 답한 그녀는 쓰러지는 내 몸을 받아들어,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눞게 했다.

“200년 전, 지금의 널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분기점을 보여줄거야.”

“……!”

“그걸 보고 어떻게 할지는…. 말 안해도 알지?”

내가 직접 판단하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내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검게 물드는 시야.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얼굴은, 뭔지 모를 뭉클한 감각을 전해주고 있었다.

***

고오오오….

정신을 차리자, 익숙한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얼음으로 이뤄진 벽면에, 곳곳에 박힌 술식.

이 곳은 얼음성의 중심부.

나와 베르켈이 마지막으로 싸웠던 공간이었다.

- 이건 또 뭐야.

허탈하게 내뱉은 난 발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게, 내 송장 치우던 순간?

언젠가 느껴봤던 기묘한 부유감.

네크론이 이전에 나에게 그랬듯, 내 의식은 과거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영상이 시작한 시점에, 난 이미 목이 날아가 있다는 것 정도?

“베르켈! 이게 무슨 짓이오!”

그리운 얼음성 중앙 공동.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은 베르켈에게, 한 신관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키몬드를 죽일 때는 반드시 성검으로 숨통을 끊으라는 명이 있지 않았소! 그런데 어째서…!”

얼굴이 창백해진 채 소리치는 신관은 마치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 했다.

“그래, 그런 말도 있었지.”

그렇지만 신관의 표정과는 별개로,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베르켈 라인란트.

날 죽인 영웅의 손에는, 노르드빈트가 쥐어져 있었다.

내 숨통을 끊은 자의 애검.

그리고 지금은 내 허리춤에 채워진 검이었다.

- 그러고 보니….

그제서야 난, 내가 죽을 때의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내 심장을 꿰뚫은 것은 저 노르드빈트가 아닌, 교단의 성검.

교단이 준비한 물건이라면, 개리슨이나 팔리만이 사용하는 성법기에 준하는 물건일 터였다.

- 하지만 놈은 굳이 내 심장에서 성검을 뽑고, 노르드빈트로 마무리를 했어.

그 긴박했던 상황에, 무기를 고를 여유는 없었을 텐데.

어째서?

“교단의 명령은 성검으로 아키몬드를 죽이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고맙게도 노발대발하던 신관이 주절주절 부연설명을 해댔다.

교단의 명령.

그 말에 베르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혼을 완전히 없애, 후환을 없애야 한단 말이오!”

- 허허, 교단놈들 철저한 것 좀 봐라.

그 말에 난 교단 놈들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신성력의 성질은 환원이 아닌 소멸.

저들은 저 성검으로 내 숨통을 끊어, 윤회조차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영상을 보고 있다는 건, 그 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이고.

“이 불충을 어찌할 생각이오. 베르…!”

“불충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거지?”

노발대발한 신관이 거기까지 말했을 무렵.

“미안하지만, 난 윈터폴의 기사로써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오.”

“……뭐?”

윈터폴.

연합군의 기사가 담아서는 안될 이름을 되뇌는 것과 동시에.

푸욱-!

신관의 심장을 뚫고, 두 자루의 검이 솟아올랐다.

“어, 어어……?”

- 뭐야?

신관의 숨통을 끊은 것은 베르켈과 함께 한 열두 시가 중 두 명.

그중 한 명은 내 기억에도 있던 놈이었다.

- 로드릭?

붉은 수레 기사단의 시초가 된 기사.

내 제1심복인 타이탄을 혼자서 작살 낸 정신 나간 놈이었다.

“이게…. 무슨…?

“반 정도는 우리 왕가를 작살 낸 너희 교단에 대한 복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렇게 말을 하다 만 로드릭은 그의 심장에 박아넣은 검을 뽑았다.

철퍽-!

피 웅덩이 속에 처박힌 신관을 보며, 로드릭은 검을 휘둘러 그곳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우리의 마지막 왕, 레빈 폐하의 명령이시다.”

그렇게 말한 로드릭을 뒤로 한 채, 베르켈은 노르드빈트를 검집에 갈무리했다.

“이걸로, 아키몬드의 영혼은 노르드빈트에 담겼다.”

- …잠깐, 뭐라고?

노르드빈트가 혼을 품는다니.

수정검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

“여기까진 폐하의 계획 대로군요.”

“그렇지.”

이어지는 대화에 내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 내 혼을 담는 게…. 계획?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되묻는 순간.

"이것으로 내게 맡겨진 임무는 끝났다."

그렇게 말한 베르켈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인 거지.”

검은 방패 기사단의 시조, 데릭이 거들자 베르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이 검에서, 아키몬드의 혼이 풀려날 것이다.”

-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성검이 아닌 노르드빈트로 내 숨통을 끊은 이유.

그게, 내 혼을 담기 위해서였다고?

“족쇄를 풀고, 세상을 구할 영웅으로서 바로 서겠지.”

“흥! 그건 두고 봐야죠.”

낯간지러운 호칭이 들려오는 것도 잠시, 로드릭이 잊지 않고 딴죽을 걸었다.

“폐하의 판단에 이의는 없지만, 저도 불안하긴 합니다.”

데릭 역시 로드릭의 말에 공감하는 듯 맞장구쳤다.

“대륙의 절반을 파괴한 네크로맨서가, 제국과 교국의 야망을 저지한다니….”

그들이 말하는 폐하가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북부 왕국, 윈터폴의 마지막 왕.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의문이었다.

죽은 레빈 폐하께서, 날 봉인하라 명하셨다고?

“아니, 난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베르켈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언제 봐도 어이가 없는 선함이었다.

자길 죽이려 달려든 네크로맨서에게.

심지어 자신의 동료 절반을 죽음으로 내몬 인간을 믿느니 뭐니 지껄이다니.

“생각해봐라. 아키몬드, 그리고 그 동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얼음성을 만들었는지.”

“…….”

“……….”

잠시 말이 없던 기사들은 짧은 한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대장?”

툭 하고 내뱉은 로드릭은 베르켈에게 말했다.

“놈들은 우리가 아키몬드와 공멸하길 바랬을 텐데요.”

“일이 잘못된 걸 안다면, 교단이나 제국이나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다른 기사들이 그렇게 말하자 베르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겠지. 어떻게든 북부를 빼앗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다.”

정확한 예측이었다.

실제로 전쟁 이후, 제국은 계속해서 북부를 노려왔으니까.

말 그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베르켈의 영웅담도 대부분은 잊혀졌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한 뒷맛을 삼키던 도중.

“그러니, 우리가 지키는 거다. 아키몬드의 혼을 담은 이 검도, 그가 한 일의 진실도.”

그렇게 말하는 베르켈의 한 마디에, 내 눈이 커졌다.

“북부의 맹주, 라인란트로서.”

라인란트의 일원으로 태어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었다.

라인란트 공작은 북부의 맹주.

북부의 땅은, 라인란트가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로 맹세하지 않았나.”

“…하, 그렇긴 하죠.”

“이의 없습니다. 대장.”

베르켈의 말에 다른 기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수호자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여야만 하겠군요.”

“제국, 교단, 그 외의 모든 것들로부터 저 녀석을 지켜야 하니 말이죠.”

- ……!

그래.

그랬기 때문에, 라인란트는 출신과 성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재능있는 자들을 가문에 들인 것이다.

신분에 관계없이, 합당한 자질을 증명한다면 누구나 기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

얼음성 벽에 걸터앉은 베르켈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공을 보는 그의 시선은 마치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 결연한 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운을 뗀 베르켈은, 나와 시선을 맞춘 채 희미하게 웃었다.

“북부의 수호자, 라인란트 공작은…. 언제나 대륙 최고의 기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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