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처음부터?
“오오오~”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의 재회.
그렇지만 그 만남에는 눈물도, 처음 만난 부모에 대한 어색함도 없었다.
“진짜 우리 아들이네? 눈은 나랑 닮았는데 입가는 하인켈을 닮았고, 키는….”
한달음에 달려온 클레어 공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주물러댔다.
“이에 지그 머하느거니끄….”(이게 지금 뭐하는겁니까)
“아 맞다 맞다. 우리 아들은 날 처음 보는 거였지?”
그렇게 말한 클레어 공후가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래서, 어때 클라인? 처음 본 엄마 얼굴?”
자식을 만난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난 떨떠름한 기분으로 질문에 답했다.
“생각보다 훨씬…. 젊으시군요.”
“아하하하!”
내 말에 뭔가 대답하는 대신, 클레어 공후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외양은 이미 완숙한 여인이었지만, 마치 어린 소녀와도 같은 천진난만함.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곤란해 하던 차에, 클레어 공후가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이건 스무 살 때 모습을 재현한 거거든!”
“……재현?”
코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심코 발을 뒤로 뺐다.
재현.
클레어 공후를 만났을 때 부터 느꼈던 위화감.
그제서야 그 기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사념체였군요.”
“정답!”
이 여인은, 엄밀히 말하자면 클레어 공후가 아니다.
같은 기억과 감정을 지닌, 일종의 언데드.
아마 살아생전에, 그녀가 만들어 둔 것이겠지.
“역시 우리 아들! 한번에 알아챘네?”
내 말이 기쁜 듯 방방 뛰던 클레어 공후.
“잠깐만.”
그렇지만 난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스무 살 때의 어머니라면.
이 상황은 더더욱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념체란, 망자의 영혼 대신 술자의 의지를 담아 만들어내는 언데드입니다.”
대답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념체가 가진 기억은 언데드를 만들었을 당시의 기억 뿐.”
“…….”
그렇지만 난 계속해서 말했다.
“어머니가 스무 살이었을 시절, 전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시기를 생각한다면….”
“하인켈과 만나기도 전이었지.”
그렇게 말한 클레어 공후의 사념체는, 한 발짝 물러선 뒤 두 손을 뒤로 모았다.
“만난 적도 없는 과거의 인간이 어떻게 절 알고, 사념체를 남길 수 있는 거죠?”
클라인.
처음 날 봤을 때, 그녀는 내 이름을 불렀다.
있을 수 없는 일.
“당신은, 아니.”
더 이상 내 얼굴은, 못만난 어머니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모르는 것.
이해를 벗어난 것.
안도감에 앞서, 경계심에 머리탈이 쭈뼛 서는 기문이었다.
“제 어머니는 도대체…. 뭡니까?”
자신을 경계하는 날 보며, 클레어 공후의 사념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였다.
“역시, 언데드엔 빠삭하구나?”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에, 난 잠시 굳은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긴, 아키몬드 앞에 언데드를 내밀었는데, 당연히 알아채겠지.”
“……?!”
이 사념체는,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내 이름, 내 전생, 내 능력까지.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슬슬 윤곽이 잡히지 않아?”
그렇게 말한 사념체는 잠자코 내 대답을 기다렸다.
마치 내가 어떤 말을 할지, 전부 다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설마.”
헬리안의 내전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향후 계획을 설명하던 중, 가문 사람들이 보였던 얼굴을 떠올렸다.
‘전부 알고 있던 건가요, 클라인?’
갑작스러운 프리실라의 질문.
영문을 모른 채 그렇게 되묻자, 프리실라는 날 향해 물었었다.
‘헬리안의 죽음과 지금의 상황을, 전부 다 본 건가요?’
‘그리고 클레어처럼, 앞으로의 일들도…!’
전부 알고 있었다.
전부 다 보았다.
클레어처럼.
기억 속 조각이 맞춰지고, 모호한 추측은 확신으로 변한다.
“북부의 마녀, 클레어 라 유스티아.”
어머니의 이름에 얽힌 불명예스러운 악명.
그것을 되뇐 난, 천천히 내가 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당신에게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출신이나 정신병 같은 문제가 아니었군요.”
어머니의 얼굴을 한 사념체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날 그렇게 부른 건 헬리안이었어.”
헬리안.
본가를 억압하던 가장 두터운 족쇄이자, 한때 라인란트 내정의 중심을 맡았던 여자.
“내 출신이나 소문은, 그 말을 전해들은 다른 귀족들이 멋대로 갖다붙힌 이유.”
말할 수 있을 리 없다.
말한다 한들, 믿을 리도 없다.
“클레어 공후가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그 능력, 정확히는….”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존재했던 퍼즐이, 이제야 제 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베르켈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내가, 왜 기억을 지닌 채 환생했는가.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라인란트의 일원으로.
그것도 다른 때가 아닌, 라인란트가 가장 위험한 시기에.
“미래를 보는 예지의 힘.”
“응. 정답.”
덤덤한 표정으로 답하는 어머니의 사념.
그것을 본 난 맥이 풀린 듯, 허탈하게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그 힘으로 이 모든일을 계획하셨습니다.”
“…….”
“제가 아키몬드의 환생으로 태어나는 것부터, 이 곳에 도착하는 것까지. 전부.”
내 존재는, 의외나 실수, 혹은 변수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통제되어, 끝내 완성된 장기말.
내 환생은, 그녀에 의해 철저히 의도된 것이었다.
***
“거기 정지!”
제국 황성의 중앙 입구.
허름한 로브 차림의 노인이 들어오자, 문을 지키던 근위병들이 창을 얽어 길을 막았다.
“이곳은 황제 폐하께서 거주하지는 궁이다.”
“네놈 같은 추레한 자가 들어올 곳이 아니다. 썩 꺼져라.”
경계심이 뚝뚝 묻어나는 축객령.
그렇지만 로브 차림의 노인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입만 움직여 말했다.
“황실 근위대로군. 문양을 보니 베리드 녀석의 후배인가 보지?”
노인의 그 말에 근위병들이 눈을 이상하게 떴다.
“전 근위대장님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잘 알고말고.”
그렇게 말하며 큭큭 대던 노인은 로브를 걷어 자신의 얼굴을 보였고.
“어, 어어어……?”
노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순간, 의문으로 가득찼던 경비병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로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남부 지역 난민을 학살한 죄로, 내 직접 목을 베었으니 말일세.”
하얗게 선 백발을 뒤로 묶은 노인.
이미 멀어버려 백태가 낀 눈.
“이, 이안…! 라인란트……!”
그 이름을 입에 담은 후에야, 그들은 노인이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노인들이 으레 짚고 다니는 지팡이인 줄만 알았던 그것에선, 이미 시퍼런 칼날이 검광을 내뿜고 있었다.
“비, 비상이다! 기사 학살자가 황궁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근위병이 그렇게 외치려던 순간.
핑-!
검광이 한순간 번뜩이더니, 이안은 아무 말 없이 근위병을 지나쳐 황성 안으로 유유자적 걸어갔다.
“뭐, 뭐야! 우린 아직…!”
검을 휘두르는 기색조차 없이 자신들을 지나쳐가는 이안.
그 모습에 기괴함을 느낀 근위병이 그를 제지하려 손을 뻗은 순간.
파츳-!
“……어?”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팔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붉은 선을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온몸을 두른 붉은 선을 따라, 울긋불긋 핏방울이 솟아오르는 것도 잠시.
쫘아아악-!
황성을 지키던 근위병은 마치 포를 뜬 것처럼, 세로로 잘린 채 황성 바닥에 무너져내렸다.
“으, 으아아아악?!”
“적습! 적습니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르던 것도 잠시.
입구를 감시하던 기사의 비명과 함께, 온 황성에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오, 좋아 좋아. 제국 기사들은 역시 변함없이 빠릿빠릿하단 말이지.”
시시각각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기사들을 보며, 이안은 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은둔자 같기도, 반대로 모든 것을 포기한 광인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 이안 라인란트!”
“네놈이 감히 어디라고 이곳을-!”
황궁 안을 향해 몇 발자국이나 내디뎠을까.
텅 빈 공동과도 같던 황성 입구는 어느새, 수백 명의 기사로 빼곡히 채워졌다.
“여기가 어디냐고?”
수백 명의 기사.
그들이 내뿜는 예기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패도적인 마력.
그것들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이안은 주눅 들거나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산들바람을 쐬듯.
새벽공기를 쐬듯 초연하게, 공허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거짓 황제가 잠들어있는 성이지.”
“무, 뭐라…?!”
“제 자식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영원을 살려 발버둥 치는 괴물이 똬리를 틀은 곳!”
듣는 것만으로도 불경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제국 황성에 유유자적 걸어들어와, 황제를 괴물이라 욕하는 광오.
이안을 둘러싼 기사들은 그 거침없는 모습에 분노가 아닌 공포를 느낀 듯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다! 당장 돌겨……!”
“멈춰라-!”
수백 명의 기사와 이안이 충돌하기 직전.
한 기사의 일갈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데, 이리 늦으면 어떻게 하나.”
입가를 비튼 이안이 그렇게 말하자, 검은 갑옷을 차려입은 노기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군데군데 새겨진 금장, 그리고 용의 문양.
황제의 직속 기사임을 나타내는 영광스러운 상징이었다.
“진 단장.”
이안의 부름에 황제의 기사, 진이 멈춰 섰다.
거인과 같은 거대한 기운을 지닌 남자.
그에 비해, 이안의 모습은 마치 없는 사람인 듯 흐릿해 보였다.
“근위기사단장님. 명령을 주십시오. 한 번에 협공한다면, 저 역적놈의 목을 폐하께……!”
“닥쳐라.”
낮은 한 마디에 뭐라 더 보고하려던 기사가 말을 멈췄다.
“그깟 전공에 미쳐, 이 많은 기사들을 사지로 내몰 셈이냐?”
“……!”
수백 명의 기사가 맹인 검사 한 명을 포위한 상황.
그렇지만 진은, 이안의 검이 닿는 영역을 사지라고 표현했다.
‘이 병력으로도, 저 노인 한 명을 이길 수 없다는 건가……?’
황제의 직속 근위기사단장. 진 클라크.
황성의 기사들은 그가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 기사단, 포위망을 유지한 채 거리를 벌려라.”
허리춤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아 들며, 진은 나지막이 덧붙였다.
“모든 마력을 방어에 집중시켜라.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죽는다.”
“……!”
“………!”
진의 명령에 따라 거리를 벌리는 기사들.
“쯧, 온 김에 수나 좀 줄이려 했는데. 이래선 헛수고였군.”
그 광경을 보며 입맛을 다신 이안이 진에게 말했다.
“천하의 근위기사단장이 부하의 목숨을 신경 쓰다니. 자네도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지?”
“가장 효율이 높은 전술을 취했을 뿐이오.”
“하하, 그래. 자넨 언제나 그랬었지.”
그 말에 피식 웃은 이안은 천천히 마력로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이번엔, 나도 그 효율을 한번 따져 볼 속셈이네.”
“…….”
이를 악문 채 웃는 얼굴을 만들어낸 이안은 진의 얼굴을 쳐다본 채 말했다.
“저 떨거지들 수백 명보다 그대 한 사람의 목이…. 저 지하에 처박힌 황제 놈에게는 더 큰 손해일 것 같거든.”
“……!”
이안의 말이 끝난 순간.
팟-!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모습을 감췄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잠시 후.
카아아앙-!
황성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두 노기사의 검이 맞부딪혔다.
“못다 한 싸움의 결판을 냅시다, 이안 단장!”
“네놈을 죽이고 황제의 골통을 부숴주마, 진 클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