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45화 (145/209)

145. 아들!

- 아주 자알~ 놀고 있었군 그래? 우린 일주일 내내 굴렀는데 말이지.

야영지로 돌아온 앙헬의 볼멘소리에 난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 대 아이신기오르의 궁정마법사가 언데드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이젠 식모 노릇까지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비꼬는 앙헬이었지만, 야영지에서 일어난 내 몰골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도 죽을 맛이었어. 하지도 못하는 술을 퍼먹어대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정말이었다.

외삼촌들끼리 마시라고 가져온 술이었는데, 설마 그걸 나까지 마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직까지도 골통이 올려 죽을 맛이다.

“몬스터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렇게 묻자, 앙헬은 포기한 듯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 처리했네. 지시한 대로 혼들도 수집했고.

“잘했어…! 끄으으응-!”

앙헬의 말을 들으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뿌득! 빠득!

기지개를 켤 때마다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역시 야영은 놀이로도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침대가 최고지.

암, 그렇고 말고.

“이걸로 재료는 얼추 다 모았구만. 언데드도 소모했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장난조였던 앙헬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언데드를 돌격시킨 건가?

“당연하지. 아니면 내가 뭐 자원봉사라도 했을까 봐?”

내가 모든 언데드들을 몬스터 토벌에 투입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랜 전투로 인해 지치거나, 생전의 업을 이룬 혼들.

그들은 이전에 헥토르가 그러했듯, 적절한 시기에 환원시키는 것이 좋으니까.

네크로맨서에게 있어서도, 계약문에서 힘써온 망자에게도 말이지.

- 골수도 모자라서 영혼까지 빨아먹는 건 그대가 유일할걸세.

“그럼, 유일하지.”

앙헬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난 다음 말을 이어갔다.

“이제 제대로 된 네크로맨서는 나밖에 없는데 말이야.”

- 맞는 말이긴 하군.

제국과의 전쟁.

진행 중인 계획이 성공한다면, 제국의 수적 우위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갖춰야 할 것은 다수의 하급 언데드가 아닌, 소수의 고위 언데드.

전성기의 내가 그랬듯,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군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베르켈과 결전을 벌였던 그때처럼.

“그리고 이게, 그 첫 단추고 말이지.”

앙헬이 건넨 푸른 구체를 살피니 입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한데 모여 응축된 몬스터들의 혼.

순도도 높고 혼합도 다양한 것이, 좋은 골렘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여기서 만들 생각인가?

“아니, 이런 건 천천히 공들여서 만들어야지.”

레어메탈도 공수해 와야할 테고.

옆에서 튀어나온 레이븐의 말에 그렇게 답하며, 난 몬스터들의 혼을 심장에 갈무리했다.

이걸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야 할지.

벌써부터 저택에 돌아가는 게 기대될 정도였다.

“물론, 이게 뭔지를 알아낸 다음 얘기지만.”

테린이 내게 건넨 방울.

품속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헌데, 정말로 만날 수 있는 건가?

“모르지.”

레이븐의 물음에는 나 또한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크란츠 변경백이 노망이 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지역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나 또한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네크로맨서인 나이기에,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다는 테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망자의 혼이 이승에 남는다면, 그는 대체로 자신의 무덤에 머문다.’

시신의 유무와는 상관없다.

혼이란 자고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에 머무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내 어머니, 클레어 공후의 묘는….’

내 어머니, 클레어 라 유스티아 공후의 묘.

라인란트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던 오두막을 떠올렸다.

‘그건…. 현세를 떠도는 망자의 묘가 아니야.’

자연에 덮여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

이승에 혼이 남아있는 자의 무덤이라면, 그런 기운을 풍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혼은 틀림없이 환원됐어.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를 만난다는 건지….’

네크로맨서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무슨 말인지 자세히 물어보려고 해도….

“그래서 말이야…. 그때 클레어 녀석이 뭐라고 했냐면…. 딸꾹?!”

방울을 건넨 장본인은 이미 저 지경이 됐으니, 그것도 요원하다.

대사를 보면 자이프가 말하는 것 같지?

아쉽게도 아니다.

“클레어어…. 왜 우릴 버려두고 그리 떠난 게냐아아….”

“크어어어어…….”

자이프는 진작에 텐트 안에서 곯아떨어진 상태.

술에 잔뜩 취한 채 횡설수설하는 남자는 진중한 이미지였던 테린이었다.

‘그 목석같은 인간이 저렇게 망가질 정도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일주일 동안 정든 야영지를 나섰다.

- 가는 건가?

“가야지. 거기에 기회가 있는데.”

내 눈을 알고.

내 힘을 알고.

그리고 나, 클라인 라인란트의 출생을 알 기회.

불확실하다고 해도, 놓칠 수는 없었다.

부스럭-!

야영지를 나서는 순간, 슬슬 조용해진 두 외삼촌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크.”

여기 오는 것도 반대했는데, 혼자 북쪽으로 가면 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나보다 이곳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니, 편지 한 장만 남겨두면 알아서들 가겠지.

“클레어어…. 다음엔, 다음엔 꼭 널 지켜…. 크으으으….”

잠꼬대로까지 그때를 곱씹는 외삼촌들.

그들을 만나면서, 난 적어도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었다.

“크어어어어어-!”

내 어머니 클레어 공후는 정말이지.

어지간히도 귀한 딸이었다는 사실을.

***

팍-! 팍-!

그 옛날.

이름 없는 뒷골목에서 처음 윈터폴에 왔을 때.

수도 하이델베르그에 도착한 순간부터, 환생한 지금까지.

이 푸근한 북부 땅에서 단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

“아오-! 씨!”

오르막.

이놈의 오르막!

이 망할 놈의 오르막!

어떻게 된 게 지역 전체를 통틀어서 완만한 산이 하나가 없냐고!

- 소리치면 오히려 힘만 더 빠진다네.

“니 목소리를 들으니 한층 더 힘이 빠지는 기분인데.”

테린이 일러준 산의 모양은 이전에 가 봤던 검의 영묘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거지.

검의 영묘는 북부 기사가 되기 위한 시험장소.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사람 발길이 닿는다.

흐릿하긴 하지만 길도 있고.

과거에 시험을 쳤던 자들이 썼던 야영지.

곳곳에 위치한 기사들의 숙소까지.

“후우-!”

그렇지만 이곳은 변경인 북부에서 변경.

그 변경에서 한층 더 변경으로 빠진 장벽.

그 장벽 너머의 외딴 숲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으로 가는 와중은 물론이요, 산 입구에 도착해서도 제대로 된 길 따위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 호흡 정리하게. 공기가 희박해서 그렇게 숨 쉬면 체력 소모만 더 커질 테니까.

“시끄, 시끄러워….”

어제 내뱉은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순례길을 다니며 체력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자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고꾸라질 줄이야.

“푸우-!”

중간에 쉬어봤자 체력만 더 빠질 뿐.

그렇게 생각한 난, 기어고 정상에 올라서야 지친 몸을 앉힐 수 있었다.

“내가 씨, 한 번만 더 산 타겠다고 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난 자리에 걸터앉아 물주머니를 기울였다.

아, 진짜 돌겠네.

물통에 물도 다 얼었다.

빌어먹을.

- 하여튼 이 친구, 어제까지 체력 늘었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내내 옆에서 말을 얹던 레이븐이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숨차고 다리아파 죽겠는데, 데스나이트까지 옆에서 조잘거리네.

지는 언데드라 안 지친다 이거지?

“그러는 넌 수다가 훨씬 늘었고.”

- 하하, 그렇게 생각하나?

내 투덜거림에 레이븐이 허하게 웃었다.

-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군.

“뭐?”

자기 혼자 생각에 몰두한 녀석에게 묻자, 레이븐은 내 맞은편에 현계해 털썩 주저앉았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겨울산과 그 테두리를 이루는 대장벽.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북부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 새삼 깨달았다네. 베르켈 녀석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까지 오래 입을 연 적은 없었어.

“다른 기사들이랑도?”

베르켈과 함께 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자, 난 무심코 되물었다.

날 죽인 영웅놈의 이야기라니.

흥미가 돋은 난 배낭에서 건량을 꺼내 들며 녀석의 말을 받았다.

- 내가 워낙에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었거든. 베르켈이야 뭐, 불알친구였으니 상관없었고.

“야, 그렇다고 동고동락하는 인간들한테 말 한마디 안 하는 건 아니지.”

- 그랬나?

그렇게 말한 레이븐은 갑자기 물꼬가 트인 듯, 옛날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 모닥불도 없이 동굴에서 부대끼고 자는데, 침낭 안으로 웬 뱀이 들어왔거든.

“내가 풀었어. 오는 길에 물려서 뒤지라고. 그 뱀 어떻게 했나?”

- 베르켈이 먹었다네. 맛은 별로라고 하던데

대륙을 구한 영웅의 일대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질구질한 모험담부터.

- 레인이랑 기드온이 사귄다고 말하니까, 갑자기 마법사 한 명이 미쳐 날뛰지 뭔가? 아칸의 수제자인가 뭔가였는데 갑자기 왜 그런 건지….

“야 이 눈치 없는 새끼, 그 마법사가 레인인가 뭔가 하는 기사를 좋아한 거잖아.”

- 어, 그런 거였던 건가?! 200년 만에 진실을 아는군!

하나도 알고 싶지 않았던 아키몬드 원정대 내부의 치정 관계까지.

- 다시 생각해보니, 얼음성에 다다르는 동안 별의별 일이 다 있었군.

“그러게.”

듣는 지루하지는 않았기에, 난 잠자코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200년 전의 숙적이, 한 자리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광경이라니.

“그리고 지금은, 그 고생 끝에 처단한 숙적과 한 자리에 걸터앉아서 옛날얘기나 하고 있고 말이야.”

이어지는 내 한 마디에 레이븐의 시선이 날 향했다.

투구로 가려진 데스나이트의 얼굴에서는 이렇다 할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나와 싸우기 직전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텐데 말이야. 안 그래?”

짓궂은 얼굴을 한 채 레이븐에게 말하자, 그는 풉,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 그 반대일세.

“…반대?”

내가 되묻자, 레이븐은 가만히 내 얼굴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 이곳으로 자네를 인도하기 위해, 우린 얼음성을 향해 원정을 나선 것이니 말이야.

………뭐?

딸랑-

내가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품속에 들어있는 방울에서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뭐야, 이게 왜 지 혼자 울려?”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방울을 꺼낸 순간.

“음! 쪼끔 늦긴 했는데, 이 정도면 아직 괜찮겠다.”

정상에 걸터앉은 내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맑고 청아한 여인의 미성.

그렇지만 난 본능적으로,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 것 같았다.

딸랑-

“……….”

손에 들린 방울이 울리는 것을 느끼며,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야. 아니지, 우리 처음 만난 거였었나?”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이 겨울바람을 맞아 찰랑였다.

도무지 이 겨울산에는 맞지 않는 얇은 드레스가 퍼져 완만한 물결을 그렸다.

맑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푸르고 투명한 눈.

저 눈은, 내 것과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 당신이….”

갓난아이 시절, 내 방에 걸려있던 그림 속 얼굴.

하지만 훨씬 밝고, 활기차 보이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어서 와! 아들!”

클레어 라 유스티아.

죽은 내 친어머니가, 날 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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