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44화 (144/209)

144. 누굴 만나?

장벽 외부의 숲속.

공터에 모여있는 동족들의 무리를 보자, 코볼트 대족장의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르르르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그는 지금 웃고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자신의 숙원이, 오늘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

캬아아악-!

힘으로 복속시켜 끌어모은 동족의 수, 약 4천.

지난번 침공 때의 세 배는 되는 수였다.

“키이익-!”

그가 고함을 치자, 분기탱천한 동족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본보기로 건방진 한 놈을 죽여 피를 뿌리니, 동족들의 전의가 하늘을 찌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흥분한 동족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번엔 가능하다고.

이 정도라면, 이번에야말로 저 지긋지긋한 인간 놈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판단을 마친 그가, 진격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벌린 순간.

푹-!

시커먼 쿼렐이, 벌려진 그의 입 정중앙에 처박혔다.

“크, 크륵…?!”

입이 꿰뚫렸다는 고통과 절망감에 앞서, 그의 눈이 띈 것은 의문이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습격?

그럴 리 없다.

인간 놈들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침공을 막기에도 급급한 상황일 텐데…!

철컥. 철컥.

그렇게 영문을 모르고 있던 족장의 등 뒤로, 스산한 기척이 느껴졌다.

“키익?!”

비슷한 기척을 느낀 다른 코볼트들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시커먼 그림자가 있었다.

- 키이이이….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검은 해골, 스켈레톤.

언데드였다.

“키, 키익?! 키이이익-!”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코볼트들이 진저리를 쳤다.

그들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저 언데드가 아닌, 언데드라는 존재가 각인한 기억.

이곳에 도달하기 전 겪었던, 끔찍한 참상에 대한 기억이었다.

군락을 습격한 기괴한 형상의 괴물.

어린 동족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그들의 몸을 붙여 불어나던 신체.

그리고 그들의 손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압도적인 공포.

털썩-!

족장의 얼굴이 꿰뚫린 것을 시작으로, 수만 발의 화살 세례가 들이닥쳤다.

두두두두두-!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수백의 기병대가 그들의 병진을 휘저었다.

기 뒤로 이어진 것은 철저한 유린.

4천 명의 코볼트 군단이 전멸하는 데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크워억?!”

같은 시각, 북서부 삼림지대.

인간 마을에서 잡아 온 ‘먹이’로 배를 채우던 오크들은, 자신들의 앞에 다다른 존재를 보며 공포에 몸을 떨었다.

- 아무리 언데드라도 그렇지, 일주일 내내 휴식 한번 없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앞으로 나선 것을, 그림자를 로브처럼 두른 해골.

야생화한 스켈레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상이었지만, 무기를 쥔 오크들의 손은 쉴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쿠우우우….

공포의 근원은, 그가 내뿜어대는 압도적인 마력.

그리고 그것을 감싸듯 스멀스멀 올라오는, 짙은 죽음의 기운 때문이었다.

- 그나마 이런 놈들을 상대하니 편하군.

그 말과 함께 언데드 리치, 앙헬은 한 손을 들었다.

쿠오오오오-!

그의 손 위로 떠오른 것은 거대한 불덩이.

화염 마법의 기초 술식인 화염구를 삼중으로 중첩시켜, 크기와 위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크, 크워어……?!”

물론, 그것만이라면 대응할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다.

적은 한 명인 데 반해, 이쪽은 수천 명.

다 함께 달려든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툭.

그렇지만 하늘에 떠오른 불덩이의 수를 본 순간.

오크들은 전의를 잃은 채, 들고 있던 무기를 땅에 떨어트렸다.

- 빨리 사라져라. 너희들 말고도 정리할 것들이 많아.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앙헬은 하늘을 향해 뻗은 팔을 내렸고.

쿠콰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오크 군락지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 저쪽은 난리인 모양이군. 수가 많으니 당연한가?

- …….

또 같은 시각, 동쪽 삼림.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는 키예스를 보며, 레이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합이 잘 맞는 것은 좋다만, 아직도 입을 열지 않는다니.

그다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클라인의 영체 구축은 빈틈이 없었다.

망자의 몸이 느끼는 특유의 이질감을 제외한다면, 마치 살아생전의 몸을 다시 얻었다 착각할 정도로.

그런 정밀한 복원에도 불구하고, 저 기사의 영혼은 완전히 다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망가졌다는 뜻이다.

- 도대체 교단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것인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젓는 순간.

- 음?

요지부동이었던 키예스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교단이 아니다.

- …뭐라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어눌한 발음.

그렇지만 이 말 없는 기사가 한 말에, 레이븐은 헛숨을 들이켰다.

- 제국, 황제.

- 허어…….

이토록 고통받았으면서도.

이토록 닳고 무너졌음에도, 자신의 원수를 기억하고 있다니.

놀라운 집념.

아니, 집념을 넘어선 광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돌아가서 보고할 내용이 하나 더 생겼군.”

그렇게 중얼거린 레이븐은 상념을 걷어낸 채, 허리춤에 채워진 검을 뽑았다.

촤앙-!

그림자로 이뤄진 검은 검신.

그의 동작에 맞춰, 키예스 역시 검을 뽑아,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거대한 형체를 마주했다.

쿵-!

“크워어어어어어-!”

숲의 폭군, 오우거.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근육 덩어리들이, 그들을 향해 집채만 한 곤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피잉-!

“크워어억?!”

짧은 파공음과 함께, 지척에 다다른 오우거의 곤봉이 산산조각 났다.

곤봉을 든 팔과 검로 사이에 존재하던 머리 역시도.

쿵-!

“크어어! 크워어어억--!”

선두에 선 개체가 쓰러지자, 이상을 느낀 다른 개체들이 주춤했다.

그들이 숲의 폭군이라 불린 이유는, 단순무식한 힘이 아닌 지성.

강자를 피하고 약자를 포식하는 영리함 때문이었으니까.

쿵-!

곧바로 등을 돌린 오우거들이 양옆으로 흩어졌다.

- 이 나이에 술래잡기라니, 오래 죽고 볼 일이군.

- …….

농담은 받아주지 않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인 레이븐은, 오우거 무리가 도망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 자네가 저쪽을 맡게. 먼저 다 잡은 쪽이 이기는걸로 말이지.

레이븐의 그 말이 끝난 순간.

투화악-!

두 데스나이트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다.

- 뭐야, 생각보다 승부사 기질이 있군 그래?!

한쪽에서 그렇게 말하는 레이븐이 있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저 깡통은 죽어서 입만 되살아났나.”

밴시가 잡아낸 레이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래부터 저렇게 말이 많은 놈이었던가?

아닌데?

“이, 이게 무슨….”

내가 그러고 있던 사이.

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자, 두 외삼촌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네가 저것들을 다 다루는 거냐? 수만 명은 되어 보이는 저걸?”

“만 명 정도 더 있습니다. 마을 쪽으로 못 가도록 포위 중이죠.”

그렇게 말하며 난 밴시와 연결된 영혼 지도를 펼쳤다.

혼의 파장을 구분하여 언데드, 사람, 몬스터를 구분한 지도.

“허, 이런 미친….”

숲을 감싼 포위망과 그 안에서 몬스터를 소탕 중인 언데드들을 확인하자, 자이프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냥 마구잡이로 잡는 것이 아니다. 진형을 갖추고, 철저하게 효율 중시로 운영되고 있어.”

“전열에 선 보병들이 아직까지 지치질 않는다니, 언데드란 게 이렇게까지 강했던 거요?”

숲을 청소해나가는 언데드를 보며 말을 얹는 두 외삼촌들.

그들이 놀란 것은 단순히 언데드의 수 때문이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진형.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통제.

끝을 모르는 망자의 체력까지.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아키몬드가 만들어낸 언데드 군단은 대륙 최강을 자부할 만큼의 체계와 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대륙의 절반을 밀었던 거고.

“어떻습니까?”

그들의 반응을 확인한 난, 모닥불에 육포를 익히며 말했다.

“중무장한 언데드 정병 4만, 기병대 5백, 데스나이트, 거기에 리치까지.”

내가 숲으로 돌격시킨 언데드들을 읊은 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정도면 저와 본가를 인정해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두 외삼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표정을 굳힌 채, 날 바라보는 두 사람.

그렇지만 곧이어.

“흐하! 흐하하하하-!”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왼쪽에 선 자이프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러면 내 인정한다! 우리 조카가 아주 큰 사람이 됐어! 으하하하하-!”

아픈 이가 빠진 듯 개운한 표정.

오랫동안 변경을 괴롭혀오던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 그 또한 한 시름을 놓은 것이다.

“기사단은 라인란트의 가장 큰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지.”

그렇게 말한 테린은 진중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우수한 기사들이 많은 대신에 정병의 수가 적으니,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이길 수 없으니까.”

예리한 지적이었다.

헬리안이 일으킨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부족한 일반병을 폴와이번이 보강했기 때문.

라인란트만으로 그들과 정면 대결을 벌인다면, 수적 우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데 네가 그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했구나.”

그렇게 말한 것은 테린은 영혼 지도에 떠오른 병력들을 보았다.

“먹지 않고, 지치지 않고, 죽지도 않는 군대가 4만.”

“…….”

“심지어 술자 한 명만을 잠입시키면, 어디서든 병력을 전개할 수 있다니.”

“꼭 그렇게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약점 없는 군대는 있을 수 없다.

그런 게 있었으면 200년 전에 내가 실패를 안 했겠지.

“술자인 제가 죽는 순간, 이 언데드들은 전부 사라집니다. 견고해 보이지만 역린처럼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거죠.”

물론, 지금은 검을 쓰니 훨씬 보강된 것은 사실이지만.

술자 한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이곳에 야영지를 만든 게 그것 때문이냐?”

그렇게 말한 테린은 야영지 아래에 깔린 숲을 눈에 담았다.

“고지대를 선점해 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숲에 난 나무 때문에 널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딱히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닙니다.”

그런 염두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본 목적은 그게 아니다.

그냥 전망이 좋아서지.

그렇게 얼마나 더 고민이 이어졌을까.

“좋다. 나도 인정하마.”

그렇게 말한 테린은 날 보며 말했다.

“곧 있을 토호들의 총회에서, 유스티아 가문은 라인란트를 지지하겠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아군 하나는 확보.

지방의 토호를 설득하는 첫걸음을 뗀 셈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 또한 건네줘야겠구나.”

“……?”

그렇게 말한 테린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내 손에 들린 것은 두 개의 방울.

그것을 가만히 보던 테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네게 건네라 하셨던 물건이다.”

“크란츠 백…. 외할아버지께서요?”

그렇게 되묻자, 테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가지고, 장벽 너머에 있는 설산 정상으로 가거라.”

멀찍이 보이는 익숙한 모양의 산.

자세히 보니, 저 산은 기억 속 한 지역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검의…. 영묘….’

베르켈의 검, 노르드빈트를 얻었던 곳.

그곳을 가리킨 테린은, 한참 만에 내게 말했다.

“그곳에 가면…. 클레어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잠깐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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