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38화 (138/209)

138. 원래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타닥- 타닥-

초원에 세워진 마차와 그 앞에 피운 모닥불.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와 수풀 속에서 들리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까지.

“와아~”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아린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만년설로 뒤덮힌 북부의 산맥도 장관이었지만, 이런 풍경을 즐길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부우우웅-

…그렇지만, 참 애석하게도.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난 전혀 그런 낭만을 느낄 수 없었다.

“꺄악?! 공자님! 이마에 벌레! 벌레!”

“으어어어?!”

플리시안에서 라인란트로 이어지는 직선 루트.

그 중간지점에 존재하는 초원지대는, 마력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곳이다.

그리고 마력은 단순히 마법의 동력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성장을 촉진시키기도 하지.

그럼 이 초원에서, 그 짙은 마력의 수혜를 누리는 생물은 무엇인가?

벌레들이다.

원래의 열 배는 되는 크기로 부풀어 오른 벌레들!

“아니 그러니까 왜 육포를 구워먹겠다고 오밤중에 난리를 쳐가지고! 아, 앵기지 좀 마요!”

“아아아아! 혼자 도망가지 말고 좀 도와줘요! 전속 신관한테 이러기에요?!”

지가 불러놓고 전속신관 행세냐?

확 짤라버릴까보다!

머리에 주먹만한 거미를 붙인 채 울상짓는 스텔라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아니, 저게 거미라고? 진짜?

무슨 이계에서 부른 소환수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그냥 거미?!

200년 사이에 뭔 일이 일어났던거야?

“이야~ 활기차니 보기 좋네요.”

나와 스텔라가 이리저리 날뛰며 아웅다웅하는 사이.

“역시 애들은 기운이 좋아. 그렇지 에일린?”

“그러게 말이야. 견습기사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데?”

호록-

모닥불에 둘러앉은 론과 에이린은 나긋한 표정으로 잔에 든 차를 기울였다.

“아니, 니들은 왜 그렇게 태연해? 거기도 벌레 천지일 텐ㄷ…….”

사방천지가 벌레로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저렇게 평온한 모습이라니.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라인란트의 기사.

이 정도 벌레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까?

새삼 감탄하며 그렇게 묻는 것도 잠시.

“하하, 안 나오긴요.”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을 다시 한번 보자, 난 그들의 진짜 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미 옷 속에 다섯 마리쯤은 들어갔는걸요? 그렇지?”

“방금 전에 네 얼굴로도 한 마리가 기어가더라고!”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

………

틀렸다.

이 기사놈들, 전부 눈이 죽어있다.

“아아… 얼굴에…. 얼굴에…….”

얼굴을 덮은 거미 때문에 시야마저 차단된 스텔라가 언데드처럼 허우적거리는 사이.

“도면밈, 도면밈.(도련님, 도련님.)”

“응?”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이 녀석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등 뒤를 돌아보자, 아린이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 뭐 먹냐?”

“우움?”

입안에 뭔가를 집어넣고 우물거리는 아린에게 그렇게 묻자.

“간식이요!”

…라는 대답과 함께, 아린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버적! 버적!

안에서 들리는 바삭한 소리가 뭔지는….

음, 그래. 묻지 말자.

들으면 진짜 기절할 것 같다.

“그래서, 왜 부른 건데?”

“아, 맞다!”

내 물음에 아린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날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자요! 도련님 선물!”

“음? 뭔데?”

거리낌 없이 손을 뻗는 아린의 움직임에, 난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건네는 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고.

푸드드드득-!

이제 내 두 손에는.

내 얼굴만한 크기의 날개를 지닌 나방이 두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요정님! 이쁘죠!”

위풍당당하게 외치는 아린의 목소리.

푸득! 푸드득!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더듬이와 전위적이기 짝이 없는 나방의 날갯짓.

그것들을 얼마나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하하, X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난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 수인을 맺었다.

이 망할 놈의 숲이니 초원이니.

다 태워버리던가 해야지.

- 그거 아나? 벌레 잡자고 리치를 부르는 네크로맨서는 내 죽다 죽다 처음 본다네.

계약문에서 튀어나온 앙헬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치이이이익-!

화염마법으로 수풀을 정리하고 반구형의 마력장을 깔자, 우리들을 괴롭히던 벌레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버, 벌레는 이제 없습니까? 진짜로?”

몸 위로 기어오르는 벌레들이 사라지자, 론과 에일린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거미가…. 거미가…….”

얼굴에 들러붙은 거미 때문에 난리를 쳐대던 스텔라는 진이 빠진 채 통나무에 기대어있었고.

“푸우….”

나 역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드디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치, 요정님 되게 이뻤는데. 그치?”

“꾸꾹-!”

벌레들의 진입이 차단되자, 유난히 배가 불러 보이는 두 존재가 입맛을 다셨다.

뭐, 이해는 간다.

신체구조가 올빼미인 아울 입장에선 뭐, 눈앞에 뷔페가 차려진 격이었을 테니.

아린 녀석은 뭐….

입에 들어가면 그게 다 산해진미인 녀석이니까.

마력장 밖으로 뻗어있는 아린의 그림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 이단심문관이 무더기로 밀고 들어와도 다 뚫고 나가던 인간들이, 벌레 때문에 이 지경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레이븐이 말하자, 난 도끼눈을 뜬 채 물었다.

“그러는 너나 베르켈 같은 놈들은 벌레에도 멀쩡했다 이거지?”

그러자 들려온 대답이라는 게.

- 아니? 그 자리에서 죄다 기절했겠지.

…….

- 아마 자네가 부른 게 언데드가 아니라 벌레들이었으면 진작에 이겼을걸?

날 죽인 영웅에 대한 시시콜콜한 정보.

그것을 알면 알수록, 밀려드는 자괴감에 눈이 절로 흐려졌다.

아, X팔.

난 진짜 이런 놈들한테 진 거야?

***

“그래, 클라인이 돌아온단 말이지?”

군용 천막 안.

작전지도를 보고 있던 라인란트 공작, 하인켈은 전령이 가져온 편지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플리시안에서 출발한 지 사흘이 넘었으니, 지금쯤 초원지대에 진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음. 그 정도면 시간에 맞출 수 있겠군.”

그렇게 말한 하인켈이 전령을 물리자, 맞은편에 서 있던 사내가 하인켈에게로 다가왔다.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린 건, 그대의 공이라 할 수 있겠군.”

눈을 가늘게 뜬 하인켈이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부켄하임 백작.”

부켄하임.

헬리안의 몰락 이후, 라인란트 방계의 새로운 일인자로 부상한 귀족의 이름이었다.

“그대가 건넨 정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빨리 내전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오.”

“과찬이십니다, 전하.”

하인켈의 말에 부켄하임 백작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가식도, 음모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헌신.

수많은 작전을 함께했지만, 하인켈은 그의 존재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게 빨리 끝날 내전이 아니었다.’

헬리안의 몰락과 동시에 이뤄진 본가의 공격은 매서웠지만, 방계의 잔존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제국과의 공조로 쌓아 올린 재정과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군사들.

‘적어도 2년. 나이, 3년 정도는 전쟁이 계속되었을 터인데….’

방계를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3년.

제국이 제2, 제3의 헬리안을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제국이 북부를 접수하는 것을 막는다 해도, 이전과 같은 정치적 술수가 계속될 뿐.

시간이 흐르면, 라인란트는 이전과 같은 자리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본가에 합류함으로써, 모든 판도가 뒤집혔다.

방계세력의 중심에 선 부켄하임 백작.

그는 어느 날 남몰래 찾아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본가에게 알려주었다.

방계 세력의 병력배치, 주요 인사들의 이동계획, 보급로와 작전계획.

그리고 그들과 제국 사이에서 오고 간, 그 더러운 거래들까지.

적의 움직임이 눈앞에 훤히 보이고, 명분까지 갖춰진 상황.

그의 변절로 인해, 3년은 버틸 수 있으리라 여긴 방계세력은 수개월 만에 붕괴했다.

이곳은 그 마지막 전장.

아직도 제국의 도움을 울부짖으며 성 안에 웅크린 귀족들을, 라인란트의 기사들이 빈틈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것은 하인켈의 옆에 선 집사장, 버크만이었다.

“방계세력의 일인자인 당신이, 도대체 왜 본가의 첩자를 자처하는 것입니까?”

“…….”

그 말에, 부켄하임은 뜻모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나 또한 궁금하군.”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본가에 협조한다 한들, 그대와 그대의 가문이 진 죄는 용서받을 수 없소.”

고저없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경고하는 동시에, 선을 긋기 위함이었다.

“그대의 가문과 제국 사이에서 벌어지던 뒷거래의 주 내용은, 성혈의 재료 공급.”

“…….”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라인란트의 영지민들이 희생되었지.”

하인켈의 목소리에 점점 노기가 서렸다.

영지민을 가축으로 보는 저들에 대한 증오.

그와 동시에, 이것을 미연에 막지 못한 자신을 향한 환멸이었다.

“인명을 마음대로 유린한 죄. 아무리 공이 크다 한들,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소.”

그렇게 말한 하인켈은 고개를 숙인 부켄하임을 향해 말했다.

“가문의 모든 재산은 몰수될 것이고, 그대를 포함한 부역자들은 전원 처형될 것이오. 그럼에도….”

전쟁이 끝난다면, 자신을 죽이겠다.

그리 말하는 하인켈을 향해, 부켄하임은 더욱 깊히 고개를 숙였다.

“왜 우리에게 협조하지? 왜 본가에게 그렇게까지 충성하는 것이지?”

이 자는 방계, 부켄하임 백작가,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뭉친 방계귀족들을 전부 파멸로 몰고갔다.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전부 넘기면서도, 대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마치 불나방처럼.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본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부켄하임 백작의 대답이 들려왔다.

“배신의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이 보잘것없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지요.”

그렇게 말한 그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막사 밖으로 나갔다.

곧 전투가 시작될 테니, 자신 또한 방계의 기사들을 지휘해야 하니까.

최대한 비효율적이게, 그리고 허술하게.

“제 행동은 모두, 왕의 명령에 의한 것.”

“…왕?”

뜬금없는 한 마디에 버크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국의 귀족이 왕을 입에 담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예. 왕이십니다.”

그렇지만 부켄하임 백작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왕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까.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권좌를 빼앗은 동생의 몸.

그것을 알고도, 그가 뿌리는 황금과 권세를 쫓아 모든 것을 덮어버린 가문.

그리고 그들 전부를 자신의 손으로 파묻어버릴 기회까지.

“왕께서 제게 모든 것을 주었으니, 저 또한 왕의 발아래에, 모든 것을 바쳐야겠지요.”

자신의 한을 풀게 해 준 그의 왕.

망자의 왕에게.

“왕, 이라.”

부켄하임 백작이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던 하인켈의 눈은 침중하기 그지없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혹, 플리시안이 술수를….”

“아니, 그건 아닐 걸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크만이 그렇게 말했지만, 하인켈은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결국, 당신이 말한 대로군.”

그렇게 중얼거린 하인켈은, 상념을 털어낸 뒤 천막 밖으로 나갔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부켄하임 백작가의 성과, 그곳을 바라보던 수많은 기사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전하.”

붉은 수레 기사단의 단장, 듄켈이 그에게 다가왔다.

“전 기사단, 명령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 돌입할 수 있습니다.”

“음.”

그 말에 하인켈은, 자신에게 모여든 기사단장들을 향해 외쳤다.

“전 기사단 돌격 개시! 제국에게 영지민을 팔아넘긴 자들을, 모조리 축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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