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왜 믿나?
터벅. 터벅.
낮게 가라앉은 탁한 공기를 가르며,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시커먼 지하실에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법의.
곳곳에 낭자한 핏자국에 어울리지 않는, 금실로 수놓은 갈레로.
희생자들의 비명과 비탄에 어울리지 않는, 티 없이 순수한 얼굴.
쿠르르르르….
그가 다가서자, 거대한 철문이 입을 벌렸다.
국경지대의 요새에나 있을 법한 육중한 문.
이 역시 고고한 제국 황성의 지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만스러운 물건이었다.
“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문 너머로 들어서자, 검은 로브를 두른 이들이 그를 반겼다.
어깨에 달린 제국의 인장과 황제가 직접 임명한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붉은 케이프.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었다.
“팔리만 추기경님.”
이름을 부르자, 팔리만은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의 인사에 화답했다.
“폐하께서는 안에 계시는지요?”
“아…….”
팔리만을 응대한 네크로맨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음습한 자신들과 대조되는 너무나도 선량한 목소리.
그 이질적인 모습에 잠시 착각할 뻔한 것이다.
마치 지금 자신들이 지금껏 저지른 모든 행위가, 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말도 안 되는 실험이, 선행이라도 되는 양 느껴진 것이었다.
“폐하께선 심부에 계십니다.”
“!”
그러나 그것도 잠시.
등 뒤로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리자, 말을 흐리던 네크로맨서가 화들짝 놀랐다.
“진 단장님.”
투구에 가려진 얼굴을 보며 팔리만이 말했다.
화려한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기사의 이름은, 진 클라크.
황제의 기사이자, 유일한 심복이었다.
“오,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단장님, 저흰….”
방금까지 팔리만과 이야기하던 네크로맨서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피하려는 순간이었다.
“커억?!”
진의 거대한 손이 네크로맨서의 목을 부여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우악스러운 손에 잡힌 목은 이미 파랗게 죽어가고, 그에 따라 네크로맨서의 얼굴 또한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어, 어째서……!”
영문을 모르는 네크로맨서가 그렇게 말하자, 진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의 뜻을 의심한 죄다.”
그 말이 끝난 직후.
우드득-!
소름끼치는 파열음과 함께, 네크로맨서는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절명했다.
도살장의 돼지를 죽이듯,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살해.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시체는 불태워라. 중앙청에 새 인력을 신청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을 더듬지도, 공포에 떠는 기색도 보이면 안 된다.
동요하는 순간 죽는다. 의심하는 순간 죽는다.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은, 그런 이들이었다.
“하하, 역시 대단하십니다.”
눈앞에서 사람의 목이 꺾이고, 시체가 널브러지는 광경.
그것을 전부 보면서도, 팔리만은 특유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공포에 떨기는커녕, 오히려 이 광경을 바랬다는 듯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
그런 팔리만을 본 진이 눈을 흘겼지만, 그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자신은 계속된 연구로 지친 네크로맨서들에게 기강을 불어넣었을 뿐.
“이쪽으로.”
지하실의 정 중앙에 마련된 지하 통로를 가리키며, 진이 말했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이번에 전달 드린 물건은 어떠하셨는지요?”
지하로, 또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끝없이 내려가는 길을 걸으며, 팔리만이 물었다.
“폐하께서 굉장히 흡족해하셨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진의 목소리는 사람을 죽일 때도, 자신에게 말할 때도 변함없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 그곳에서 흘러넘치는 마력과 투기.
반백 년의 세월 동안 황제를 보필해왔음에도, 노기사의 등에선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추기경님 덕분에 계획이 한층 더 빨라졌다고 하셨지요.”
“하하, 과한 말씀이십니다.”
감정 없는 진의 말에 팔리만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근위기사인 그는, 자신의 의지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황제의 말.
그는 황제의 입이요, 황제의 팔다리요, 황제의 검이었다.
“모두 제국의…. 폐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키몬드 교단과 엘프란의 연합.
그것을 뒤에서 주도한 것은 제국의 네크로맨서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엘프란의 시체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반쪽짜리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팔리만을 보며, 진은 지나가는 말로 툭 내뱉었다.
“헌데 한 가지, 모난 돌이 튀어나온 듯합니다.”
“…….”
모난 돌.
말인즉, 예상하지 못한 변수.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팔리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북부…. 라인란트 공작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팔리만은 일부러 잘못된 추론을 이어갔다.
“확실히, 기묘한 일입니다. 내전을 시작으로 방계 세력을 빠르게 정리하고, 점점 예전의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지요.”
그렇게 시작한 팔리만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추론이 아니라, 라인란트의 성장을 찬미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
그들을 언급하자, 진의 얼굴에 미세한 불쾌감이 일었다.
“계속 그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혹 200년 전처럼….”
“라인란트는.”
더 이어지려던 팔리만의 말이 도중에 멈췄다.
“라인란트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했다.
“이미 빛바랜 지 오래되어, 나약해진 영웅의 후예 따위. 올라온다 한들 하등 쓸모없죠.”
“……실례.”
그렇게 말하면서도, 팔리만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이것 참, 재밌는 일이지 않은가.’
그가 ‘계획’을 진행하면서 본 진은,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는 기사였다.
자존도, 의지도, 흥미도, 욕망도 없이.
그저 황제의 명령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계와도 같은 인간.
헌데 그런 남자가, 단순히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감정을 내보이다니.
‘혐오? 적의? 아니지….’
인간의 감정 변화와 반응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오락거리 중 하나.
팔리만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심리를 읽어냈다.
‘굳이 따지자면… 열등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진은 방금 자신이 보인 추태를 무마하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폐하께서 신경 쓰고 계신 것은 라인란트 공작가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나온 한 사람이지요.”
한 사람.
그 말에 팔리만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의외라는 표정을 연출해 보였다.
“클라인 공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자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진을 감싼 투기가 잠시 일렁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래.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진과 팔리만이 동시에 몸을 숙였다.
“황제 폐하.”
제국 황제, 페트리우스.
대륙 최고의 권력을 한 몸에 지닌, 지고의 일인자.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여간 기이한 게 아니야.”
색깔 없는 법의에, 고동나무로 만든 지팡이.
그 존재가 품고 있는 드높은 권위와는 반대로, 황제가 입은 옷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군왕의 모습이라기보단, 햇볕을 쐬러 나온 은둔자와 같은 모습.
“제국도, 교단도. 그 어린 것을 죽이고자 수없이 꾀를 썼는데, 아직도 살아있지 않은가?”
마치 오래된 추억을 회상하듯, 고개를 위로 올린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치 그 옛날…. 북부 왕국의 인간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북부 왕국, 윈터폴.
제국과 교국의 치부와도 같은 이름.
이제는 소수의 역사학자들만이 존재를 유추하는 오래된 역사였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한층 더 고개를 깊이 숙인 팔리만이 그렇게 말했다.
무심한 듯 먼 곳을 보고 있지만, 그는 이 상황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있었다.
계획을 위해서라면, 계속해서 비위를 맞춰야겠지.
“어찌 된 연유인지는 대충 들었느니라. 감시를 맡은 수녀가 변절했다지.”
“…….”
황제의 말에 팔리만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플리시안 외곽에서 이루어진 이단심문소의 기습.
벌써 그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정보가 누설되었다는 것까지 알아내다니.
‘제국 정보부. 마냥 얕볼 수는 없겠는데.’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팔리만은 침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제 불찰입니다. 계파는 다르나, 교단을 위하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하여 맡겼습니다만….”
이 또한 당황을 가장한 연출이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엔 아니었다.
‘설마, 화로에 도달할 때까지 살아남을 줄이야.’
플리시안을 벗어났을 때 스텔라를 죽일 계획이었다.
제자이자 딸이었던 여인의 시체를 그의 앞에 내밀어, 상하 관계를 명확히 하려 했다.
‘정말이지…. 뜻대로 되지 않는군.’
모든 계획을 일그러트린 원흉을 생각하자, 팔리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성법기를 다루는 대행자를 마음대로 다룬다는 실리와 오랜 친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개인적 욕망.
그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위를 바라보던 황제의 시선이 팔리만을 향했다.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믿나?”
자신에게 부복한 팔리만을 향한 황금색 눈.
그곳에는 단출한 외관으로는 가릴 수 없는 야만과 야망이 담겨져 있었다.
“적이라 한들 고귀할 것이다? 방향은 다르되 대의는 같을 것이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말한 황제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쉽게 믿고, 안일하게 씨앗을 남겨두느냔 말이냐.”
계속해서 내뱉는 황제의 말에서, 팔리만은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조소, 멸시, 그 기저에 잠겨있는 분노.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까지.
“그따위 안일한 믿음 때문에, 남겨진 자들은 이리도 불안에 떨고 있거늘.”
잠시 얼굴을 찡그린 황제가 그렇게 말했을 때.
쿠우-!
근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공간을 무겁게 짓눌렀다.
“……!”
압박을 느낀 진의 주먹이 힘을 더해가고, 땅을 짚은 팔리만의 양팔이 부르르 떨렸다.
존재의 근원을 압도하는 힘.
최측근인 진을 제외하곤 그 편린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황제의 권능이었다.
“계획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자신의 등으로 전해지는 어마어마한 압박을 견디면서도, 팔리만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둔하게, 비굴하게, 천박하게.
그는 그렇게 땅에 엎드려, 황제의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후욱-!
그리고 어느 순간, 온 공간을 짓누르던 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황제의 목소리 역시 평소와 같아졌다.
방금 전까지의 압박이 마치 꿈이었던 듯, 주변의 풍경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교단에서 사람을 여럿 보냈지만, 너만큼 우수한 자는 보지 못했으니 말이지.”
힘으로 압도한 뒤 이어지는 간단한 치하.
황제의 의도는 단순했다.
‘기어오를 생각 말고, 위아래를 분명히 하라는 말인가.’
입가가 비틀리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 담았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
황제의 그 말은 진심일 것이다.
교화소와 마탑이 모두 무너졌지만, 그것은 교단의 손해일 뿐.
황제의 손해가 아니었으니까.
“그대가 교단과 나 사이에서 뭘 꾸미고 있는지는 내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다만….”
그렇게 말한 황제는 자신의 등 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대한 헝체를 보며 말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내 손에 들어올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