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아키몬드
“아키몬드! 어디로 갔어?!”
북부 왕국 윈터폴의 화창한 오후.
한 무리의 기사생도들이 왕성 연구동 숙소를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도 없다!”
“이런 미친, 마법공학부 전공 서적들! 도둑맞았던 게 전부 여기 있었어?!”
“이건 또 뭐야, 사령술?! 이 미친놈이 진짜…!”
훈련에 한창이어야 할 생도들이 아닌 밤중에 그를 찾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마법부, 의학부, 제례청, 기타 수많은 정부부서들의 민원 때문.
연구에 필요하다면서 책이나 기록물을 훔쳐 가는 아키몬드를 붙잡고자, 기사단은 기어코 생도들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아무리 연구동을 뒤져도 소용없다.
저들이 찾고있는 아키몬드는, 진작에 북부 연구소로 몸을 뺀 뒤였으니까.
“헉… 헉……!”
가쁜 숨소리와 함께 복도를 내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서리 낀 커다란 안경에, 퀭한 눈.
산발한 검은 머리에 후줄근한 로브까지.
누군가 봤다면, 그의 스승과 똑 닮은 꼴이라고 볼멘소리를 할 터였다.
“만들었어요!”
연구동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키몬드가 외치자, 그와 비슷한 몰골을 한 이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만들었다니, 뭘……?”
계속된 철야와 연구과제로 제정신이 아닌 연구자들이 되물었다.
자신 또한 비슷한 몰골이 틀림없었지만, 아키몬드는 자신있는 목소리로 온 연구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윈터폴을 지킬 요새!”
“……뭐?”
잠결에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연구원들이 되묻는 사이.
아키몬드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가운데에 있는 칠판에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여섯 개의 거대한 룬을 중심으로 이어진 거대한 경계.
그 한가운데를 공백으로 둔 뒤, 수많은 술식과 회로가 그 안을 메꾸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이건……!”
외장재에 부여할 마법구조술식, 거대 설화수정을 이용한 보조 동력기관.
그 중심을 지탱하는 기하학적인 문양과 그곳에 새기는 소환문까지.
칠판에 써진 술식, 아니, 설계도면이 점차 형태를 갖춰가자 퀭한 연구원들의 눈에 점차 빛이 돌아왔다.
체념에 가까운 무기력함이 걷히고, 희망이 그 자리를 대신 메꿔갔다.
“설화수정을 통해 용족의 혼 같은 강대한 마력원을 제어하고, 그것을 공명시킨다면….”
“전선 전체를 감싸는 배리어를 만들 수 있어!”
아키몬드의 설계를 본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전율했다.
설화수정을 골자로 건설한 얼음성은, 그 자체로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뿜어대는 언데드가 된다.
“이게 완성된다면, 얼음성 혼자로도 연합군의 마법 세례를 전부 방어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수비병력을 공세로 돌릴 수 있어!”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연구.
아키몬드가 만들어낸 ‘얼음성’은 그렇게 생각하게 할 정도의 파급력을 갖추고 있었다.
- 좋은 때였군 그래?
- …….
그리운 한 때를 보며 감상에 젖어있던 것도 잠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내 의식은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잠시 멀어졌다.
- 네크론.
그의 이름을 부르자, 비로소 내가 앉아있는 곳의 형태가 뚜렷해졌다.
낡고 허름한 극장, 구석탱이에 쳐박힌 싸구려 관객석.
난 그곳에 앉아, 조잡하게 꾸며진 내 인생사를 공연으로 즐기고 있었다.
- 넌 윈터폴을 지키기 위해 얼음성을 만들었어. 그렇지만 이 성은 지금 아키몬드의 요새가 되었지.
- …….
- 사람을 죽이는 언데드를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살인공장이 되었어.
그렇게 말하며 내 옆자리에 앉은 네크론은 나와 싸우던 때의 훤칠한 해골이었다.
- 제아무리 숭고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들, 다루는 자가 바뀌면 그렇게 되는 법이야.
네크론이 아닌, 내가 한 말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 그래도 근 15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니었군 그래?
그렇게 말한 네크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들었다.
- 좋아, 그럼 다음 장면을 보자고.
쿵-!
무대의 막이 내리고, 장막 너머의 배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비쳐보였다.
하나같이 내 기억 속에 있는 낯익은 얼굴들.
그 광경을 보며, 난 확신했다.
이곳은 내 혼에 자리 잡은 기억 속 세계.
이 낡고 허름한 극장 역시,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심상의 일부라는 것을.
파아앗-!
“…….”
밝은 빛이 눈을 감싼 것도 잠시.
눈을 뜬 내 앞엔, 향긋한 차 한잔이 놓여져 있었다.
‘이번엔 내가 무대에 서 보라는 얘긴가.’
악취미라는 생각을 하며 손에 들린 찻잔을 기울였다.
윈터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솔잎을 우려낸 차.
특유의 톡 쏘는 향에 적응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후룩-
그리운 향기를 음미하면서, 난 긴장으로 굳은 머리를 애써 풀어낸다.
끼이익-
곧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이 이곳을 알아챘습니다. 곧 대공세를 시작할 겁니다."
윈터폴의 왕, 레빈.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왕의 말에, 찻잔을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역시, 이 이상 숨기는 것은 무리였나.”
짧은 탄식과 함께 그렇게 말한 것은, 내 맞은편에 앉은 이였다.
덮수룩한 수염을 한 나의 스승.
능청맞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쉼 없이 이어진 전쟁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진행은 어떻습니까?”
“방금 전, 기사단에서 연락이 왔소. 설화수정의 배치가 모두 끝났다고 말이지.”
스승님의 대답에 레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전하단 말이군요.”
선왕의 죽음으로 인해 왕위를 이어받은, 준비되지 않은 윈터폴의 왕.
그렇지만 그는 수년간의 전쟁을 거치며, 일국의 왕에 걸맞는 자질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난세가 영웅을 낳듯, 혼란스러운 전쟁이 이런 군주를 낳은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외곽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출해야겠군요.”
그렇게 말한 레빈이 검을 뽑자, 그를 따라 들어온 기사들의 눈빛에도 비장한 기운이 담겼다.
“별동대를 지휘하겠습니다. 새벽을 틈타 포로수용소를…!”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말을 끊고 말하자, 스승님은 내 말에 맞장구쳤다.
“전선 근처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발견됐소. 감염속도도, 치사율도 너무 이질적인 병이오.”
“연합군이 인위적으로 역병을 푼 겁니다. 충분한…. ‘실험’을 거쳐서요”
그렇게 말하자 몇몇 기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장벽으로 후퇴하십시오, 레빈. 그들의 목숨이 중하다 한들, 왕인 그대에 비견할 바….”
“아니요. 아닙니다.”
스승님의 경고가 뒤를 이었지만, 레빈 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여기서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저들은 북부를 분열시킬 무기를 얻게 됩니다. ‘왕이 목숨이 아까워 그대들을 버렸다.’라고 떠들겠죠.”
윈터폴 왕가를 공적으로 선포한 제국.
내 스승과 나를 이단이라 구정한 교단.
서로 다른 이유인 양 위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북부의 영토, 그리고 동토층 밑에 잠들어있는 ‘그것.’
“제가 도망친다면, 북부인들은 서로에게 총칼을 겨눠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전에 폴와이번에서 내가 했던 말이었다.
전례가 남는 순간, 그것을 기점으로 분열이 시작된다는 격언
어린 나이에 수많은 전장과 전쟁을 거친 그였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사들과 함께 방문을 나서던 왕이 날 돌아보며 말했다.
“전 우리 왕가 역사서에, ‘민초 뒤에 숨은 왕’ 같은 쪽팔리는 이름으로 적히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죠.”
“하아….”
잔뜩 미사여구를 붙혓지만, 결국 귀결되는 것은 그거였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용어.
“왕으로서의…. 명예로군요.”
“예.”
그 생소한 개념을 입에 담는 사이, 왕은 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왕으로써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윈터폴의 마지막 왕, 성왕 레빈.
그는 이 외출 이후, 역병지대에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내게 발견되어, 부패한 육신을 벗어던지고 환원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결국, 윈터폴은 멸망했지.
기억 속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며, 난 그렇게 탄식했다.
- 기억하는 이 하나 없이, 역사속에 잊혀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어.
혹여 이 기억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필사적으로 다른 말을 꺼내려 해봤지만, 불가능했다.
지금 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가 아닌 기억.
보고 느끼고 말하고 있었으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무력함을, 다시 한 번 느껴야 한다니.
성흔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고문의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었다.
***
- 그리고 그 끝이…. 이거로군 그래.
네크론의 말에 내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매일같이 악몽으로 만나는 광경.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 참혹한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부우웅-
시체에 꼬인 파리의 날갯짓 소리와 그 시체더미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나,
그런 날 호위한 채 검을 겨누는, 수백 명의 기사들까지.
“네크로맨서 아키몬드, 네놈이 이 나라의 마지막 생존자다.”
“그래.”
짧은 긍정을 끝으로, 당시의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
세상의 멸망을 막았으나, 그 끝에 돌아온 것은 세상의 냉혹한 배신이었으니.
제국의, 아니,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하하, 하하하…!”
분노를 내보이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난 웃었다.
광대처럼 웃고, 웃고, 또 웃으며.
내 목을 겨누는 제국의 창칼을 향해 절규했다.
“이게, 너희들의 대답이냐?”
“……?”
“땅과 황금을 위해 이 많은 생명을 죽이고도, 아직 부족하다 이 말이지?”
쿠우-!
한데 모여든 마기가 술식의 중앙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북부의 온 대지가 쉴새없이 요동쳤다.
쿠구구구구구….
두터운 얼음을 찢어발기며,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수십 개의 첨탑.
그것들은 이윽고 서로 연결하고, 서로 조립되어 형태를 구축.
거대한 성벽의 모양이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뜻대로 해주마.”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내 수인에 반응하여, 엉망진창으로 뒤틀린 성루와 성벽이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저, 저게 뭐야?!”
끼이이이이-!
뒤틀린 성이 기사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그 안에서 각양각색의 언데드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
“마, 말도 안돼……!”
병진을 갖춘 채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는 언데드의 모습에, 기사들 중 몇몇이 뒷걸음질쳤다.
"너희들이 그리고 날 대륙의 공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래 해주마."
"너희들을 지키려 했던 자들의 손에 멸망을 맞이하려 한다면. 내 그렇게 해주마."
그의 스승과 동료들로 빛어낸 거대한 얼음.
거대한 악으로부터 고향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힘의 근원이 되었으니.
아키몬드는 북부에 쌓인 수정과 얼음을 전부 모아, 얼음성의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그에 화답하여, 구천을 떠도는 모든 북부인들의 혼이 그들의 복수를 위해 일어섰다.
이윽고 수백만 원혼이 병진을 이루어 남쪽을 향해 진격하니.
지평선을 뒤덮은 이것이, 아키몬드의 군세요.
대륙의 두 번째 멸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