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34화 (134/209)

134. 성흔

투화악-!

커다란 공동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가 요동쳤다.

검게 불타는 화로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폭발.

“……!”

네크로맨서가 아닌 이들에게도 느껴질 만큼, 짙은 마기가 공간을 잠식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 화로를 찾아온 것을 보니, 슬슬 때가 된 모양이구나.

짙은 마기의 중심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자의 목소리.

내가 발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순수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 아키몬드.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연기가 걷히고,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그 모습에, 스텔라가 말을 흐렸다.

“이, 이게…?”

- 후후, 놀라는 것이 당연하지.

연기처럼 흩날리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

어깨에 짊어진 낫이 담고 있는 예기는, 세상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해보였다.

- 보아라! 내가 바로 네크로맨서의 수호성좌! 죽음과 안식을 관장하는 신, ‘네크론’이니라!”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에 스텔라의 눈이 커졌다.

한참동안 말을 고르던 스텔라는 이윽고.

처음 목격한 신, 네크론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작네요.”

그리고 위이어서 내 옆에 나타난 언데드들 역시.

- 작군.

- 엄청 쪼그맣네.

…그렇게 말하며, 하늘에 둥실 떠오른 꼬마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얼굴만한 크기의 조막만한 해골.

마기랑 목소리를 잔뜩 깔아봐야, 저 외형이면 그냥 귀여운 인형 취급이지.

“수호신 치고는 엄청 귀엽네요? 정령 아니에요?”

지긋이 자신을 노려보는 네크론이 신기한 듯, 스텔라가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 신한테 귀엽다가 뭐냐 귀엽다가?!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듯, 네크론이 황급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스텔라가 뿜는 신성력에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겠지.

- 그리고! 원래 나 같은 신격들은 현계하면 다 이꼴이 된단 말이다!

억울하다는 듯 방방 뛰는 네크론을 보니 그간의 긴장이 싹 풀리는 느낌이다.

이 얼빠진 놈이 우리가 다루는 마기의 근원이라니.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광경이다.

“잡담은 그쯤 하고, 슬슬 얘기좀 하지?”

물론, 이 녀석을 대하는 데에는 진작에 도가 텄지만 말이야.

- 말세다 말세. 네크로맨서가 신한테 반말이나 찍찍 싸대고….

그렇게 말한 네크론이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와 퀭한 얼굴이었던 전생과는 달리, 은발에 말끔한 얼굴.

그렇지만 이 녀석에게 보이는 난, 언제나 그렇듯 아키몬드일 뿐이었다.

‘마기를 다루는 자는 육신이 아닌 혼을 보는 법.’

모습이 달라졌다 한들, 그가 나를 보는 시선엔 변화가 없을테…….

- 푸하하하하하하?!

없을…….

- 그 축축한 쭉정이같던 아키몬드가…! 환생하더니 얼굴이…! 뭔, 기집애도 아니고…!

없…….

- 푸하하하-!

“골통 깨버리기 전에 그만 웃어, 망할 해골바가지 새끼야-!“

잠시 잊어버렸었다.

이 새끼는 좋은 말로 해선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는 걸.

- 알았어! 알았…! 푸푸풉-!

아직까지도 날 비웃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지, 네크론은 내 얼굴을 볼때마다 피식거리고 있었다.

하아….

“다 웃었으면 성흔이나 내놔. 시간없어.”

오만불손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자 네크론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 성흔? 갑자기 왜?

이전과 같은 장난스런 말투.

그렇지만 그 한켠에 담긴 서슬퍼런 한기에, 슬그머니 말을 흐리려 했다.

“왜냐니, 그야….”

- 이번에야말로 인간들을 싹 밀어버리려고?

그리고 이어진 네크론의 한 마디에 입이 멎었다.

“…….”

내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는 두 눈구멍.

“아니.”

그것을 응시한 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진작에 접었어. 지금 찾아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야.”

- 다른 이유?

그렇게 중얼거린 네크론의 시선이 내 어깨에 닿았다.

정확히는, 내 어깨에 달린 라인란트 가문의 인장에.

- 다시 태어난 곳이, 라인란트였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베르켈 라인란트가 세운 가문이지. 뭔 놈의 장난인지, 난 그 후손으로 태어났고.”

내 과거에 대한 변호도, 변론도 하지 않았다.

- 호오, 베르켈이라….

내 말을 들은 네크론은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 놈 성격을 생각하면,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을 줄 알았는데.

- 그래, 그런 방법도 있었군…….

네크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 좋아. 성흔을 주지.

“…….”

싱겁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대답에 내 눈이 흐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녀석이 순순히 요구를 받았들이는 데에는, 전부 그에 걸맞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그 전에.

거 봐라.

역시 한 마디를 덧붙히잖아?

- 성흔을 받아들일거면,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봐야지?

……잠깐만 뭐?

시험?

쐐애애애애액-!

네크론의 한 마디를 곱씹을 새도 없이, 노르드빈트를 뽑아 측면에서 들어오는 강권을 박아냈다.

카아앙-!

불꽃이 튀기며 경로를 비틀었지만, 가공할 충격은 아직 남아있는 상태.

몸을 통째로 쳐올리는 힘에 못이겨, 내 몸이 하늘을 날았다.

“키예스! 앙헬-!”

곧바로 데스나이트 중 한 명을 불러 떨어지는 몸을 받아냈다.

그러는 사이, 사각을 커버하기 위해 소환한 언데드 리치가 마탄줄기를 쏘아 이어지는 2격, 3격을 미연에 차단했다.

쿠콰콰콰쾅-!

목표를 향해 작렬하는 수십 줄기의 마탄 세례.

갑작스러운 전투에 화들짝 놀란 듯, 스텔라가 검을 뽑으려 했다.

“뽑지 마요.”

그렇지만 난 손을 들어 그녀의 참전을 막았다.

“클라인…?”

“이건 네크론이 주최한 시험입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스텔라의 물음에 답했다.

“케르시아스의 신도가 함부로 끼어들게 둘 수는 없어요.”

신성교단의 예배당에 언데드를 끌고 들어간다면, 그곳의 성직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와 같은 논리였다.

그들이 그들의 성전과 교리를 중히 여기듯, 네크로맨서인 나 또한 네크론의 시험에 다른 신격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 좋아, 좋아. 마기는 떨어졌어도, 언데드 다루는 폼은 안죽었구만?

스텔라가 뒤로 물러난 것을 확인하자, 흡족하게 웃은 네크론이 앞으로 나섰다.

저벅- 저벅-

방금 전까지 보이던 작은 해골과는 다른, 그의 진짜 모습.

경박한 걸음거리로 걸어오는 네크론의 어깨에는, 거대한 대낫이 걸쳐져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쿵-!

그의 마기를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덩치의 언데드.

방심했던 내게 강권을 내지른, 고위 언데드가 그를 따르고 있었다.

- 크워어어어어-!

최상급 고위 언데드, 섀도우 골렘.

이 미친놈이, 사람을 시험하는데 공성병기를 가져와?

-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내 부름에 반응한 레이븐이 그렇게 말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저 골렘의 모습은 낮이 익었다.

200년 전, 수 개월에 걸쳐 만들어낸 내 최대의 걸작.

아키몬드의 제1심복, 미스릴 골렘 ‘타이탄’.

저 녀석은, 그때의 타이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형이 같다고 해서 성능까지 같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판단을 마친 난 곧바로 내 앞에 있는 두 데스나이트에게 명령을 보냈다.

마력동조 개시.

초식은 찌르기 검법, 트라이던트.

내 지시를 받은 두 데스나이트가 몸을 낮춘 동시에, 그들의 검에 새파란 마력이 서렸다.

우우우웅---!

서로 다른 두 마력의 파장이 공명하는 것과 동시에, 단전에 위치한 데스나이트의 마력로가 출력을 더해갔다.

전투가 거듭될수록, 경험이 누적될수록 정교해지는 그들의 영체.

베르켈과 함께 얼음성을 뚫어낸, 그때 그 기사들을 보는 듯 했다.

투콰앙-!

발돋움 한 번에 지면이 움푹 파이고, 두 기사의 신형이 골렘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위협을 감지한 골렘이 곧바로 팔을 들어 정면을 막았지만, 두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검을 세웠다.

반드시 뚫어야 한다는 사명감일까, 반드시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그것을 판단할 틈도 없이, 동조된 두 데스나이트의 검이 골렘의 몸을 찔러들어갔다.

키이이이이잉-!

마력광이 터져나오는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섀도우 골렘의 특징은 낮은 강도와, 압도적인 회복력.

몸체를 흩어낸 틈을 타 코어를 부숴야 했다.

“앙헬-!”

촤르르륵-!

내 부름에 곧바로 앙헬의 지원마법이 들어왔다.

상처 부위를 지지는 새파란 불꽃과 마력으로 이뤄진 사슬.

눈앞으로 다다른 코어를 향해, 난 내 두 번째 검, 수정검을 휘둘렀다.

스걱-!

유리로 된 투명한 검신이 단단한 골렘의 코어를 가르고, 골렘의 몸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쿵-!

이윽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대낫을 든 네크론.

- 거신을 향해 달려드는 용감한 기사들이라.

그가 감탄하는 사이 생겨난 틈을, 난 놓치지 않았다.

촤르르륵-!

지체없이 발을 놀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목을 향해 수정검을 내질렀다.

설화수정을 깎아 만들어낸, 영혼을 베는 검.

이것이라면, 그에게도 충분한 위협이 될 터였다.

그렇지만 그 순간.

-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구나. 그렇지?

날 향한 한 마디와 함께, 네크론은 자신의 힘을 전부 풀어헤쳤다.

파아아앗-!

전술이나 힘의 상성으로 생각했을 때, 네크로맨서의 천적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혼을 통째로 소멸시키는 신성력.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군세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기사의 마력.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한 천적이 있다.

네크로맨서의 힘을 깡그리 무시하는, 가장 무서운 천적.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네크로맨서였다.

언데드와 술자를 매개하는 마기.

그 마기를 압도당하는 순간, 패배한 네크로맨서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나약한 몸뚱이뿐이었으니까.

쿠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내가 소환한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 네크론이 내뿜은 마기.

거기에 압도당한 계약문이 한 순간 마비되고, 연결이 끊긴 언데드들이 역소환된 것이었다.

쿠당탕-!

“크으-!”

공동 구석으로 곤두박질치는 것과 동시에,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 눈앞에, 네크론의 얼굴이 나타났다.

-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네.

시야를 가득 메운 검은 연기와, 그곳에서 솟아난 거대한 낫.

- 한 가지만 빼고 말이야.

이윽고 말을 마친 네크론은, 한 손에 든 거대한 낫을 내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 그 순간.

서걱-!

사선으로 내려친 그의 낫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통도, 이물감도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크?!”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큰거리는 감각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 마기도 충분하고, 육체도 이 정도면 괜찮아. 성흔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문제는 없어.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날 내려다보며, 네크론이 말했다.

- 그러니 마지막으로, 네 과거를 돌아보고 오거라.

과거.

누구의 과거를 말하는 것일까.

나?

클라인?

- 네 과거, 네 타락을 그 눈으로 보고.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때.

네크론은 본래의 조그만 모습으로 돌아와, 공동 벽에 기대앉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 …이번엔 그때처럼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이 철부지놈아.

침중한 한마디가 뇌리에 새겨지는 것도 모른 채.

내 의식은 점점, 새카만 기억 속으로 가라앉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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