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동쪽 끝으로(3)
투두두두두-!
“도련님! 정면입니다!”
숲길을 질주하는 위에서 론이 외치자마자, 난 수인을 맺던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앙헬-!”
내 지시를 받은 앙헬의 마력탄이 나무 사이사이를 훑었다.
탐색과 견제를 겸한 공격.
뒤이어 숲속에서 오랜만에 보는 면상들이 우수수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 발견. 성지에 도착하기 전에 말살하라.”
“돌겠네. 진짜, 수도에서 벗어나자마자 이 꼴이냐?!”
이마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박아놓은 미친 대머리들.
교단에서 급파한 이단심문관들이 타고 있던 말에서 뛰어올라 마차를 향해 내리꽂혔다.
- 바람 잘 날이 없군그래!
쿠콰아앙-!
레이븐의 검이 날아오는 심판관들을 쳐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으직-!
땅에 떨어진 충격으로 목뼈가 부러졌음이 분명할진대.
검은 수도복 차림의 심판관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움직이지 않는 몸을 비척거리고 있었다.
“잡아라, 잡아라. 클라인 공자를…….”
“미친새끼들.”
날 쫓아온 저 이단심문관들에게 한 말이 아니라, 저들을 만들어낸 교단에게 한 말이었다.
시체로 만든 언데드도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을 저렇게까지 개조하는 놈들.
누가 미친놈이고 누가 정상인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 불이나 마탄으로 물러설 놈들이 아니군.
화염구에 피부가 불타고, 마탄에 몸이 꿰뚫려도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삼판관들.
그것을 본 앙헬은 뼈로 된 손을 미려하게 움직여 사용하는 주문을 변경했다.
파지지지직-!
전격계 마법, 그물 번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번개가 심판관들의 몸을 마비시켰다.
그렇게 심판관들이 무방비로 노출된 순간.
“지금이야, 날려!”
난 나란히 선 두 데스나이트, 레이븐과 키예스에게 명령했다.
마력을 동조시킨 두 기사의 검이 번개로 마비된 심판관들의 몸을 일제히 양단했다.
칼날처럼 벼려낸 검기를 넓게 날리는 기술, 호라이즌(Horizon)이었다.
키이이이이잉-!
새하얀 마력광과 함께 검기가 퍼져나갔다.
빛으로 된 초승달이 반원형으로 퍼져나가는 형상.
울컥-!
눈부신 빛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간 후 시간이 지나자, 무표정한 그들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허리가 완전히 갈라진 이단심문관들의 몸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후두두둑-!
마력 동조 성공.
엘프란과 싸워 본 경험 때문인지, 이번엔 몸의 피로도 적고 두 데스나이트들의 영체 소모도 크지 않았다.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더 쓸 수 있겠군.’
리치의 마법과 두 데스나이트의 합격기를 통한 돌파력.
무장을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스켈레톤이 수만에, 고위 언데드 기병대까지.
모르긴 몰라도, 이제 중소규모 공성전 정도는 혼자 수행할 수 있을 정도.
눈부신 성장이었지만, 정작 내 표정은 조금 떨떠름했다.
‘힘은 쑥쑥 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몸이 문제로군.’
마기와 언데드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아키몬드 시절의 경험과 마기 제어능력.
그리고 영혼과 대화하던 경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 몸.
일 년에 한 살씩 정직하게 커가는 이 몸이 문제였다.
‘이미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기의 한계점까지 왔어. 이 이상 언데드를 늘리려 한다면….’
지금 내 몸 상태를 비유하자면, 한계까지 차오른 물풍선과 같다.
어마어마한 물을 담고 있지만, 바늘로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리는 불안한 상태.
이 이상 마기를 늘리려 한다면, 스스로 언데드가 되어버리겠지.
“우, 우와아…!”
“우리가 쓰면 그냥 평범한 횡 베기 기술인데….”
그렇게 내 고민이 깊어져 가던 찰나.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내지른 기술을 본 기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시간 없잖아! 지금이야!”
“아! 예-!”
내 한마디에 마부석에 앉은 기사 론이 퍼뜩 정신 차렸다.
‘뭐, 놀라는 것도 당연하지.’
라인란트 검술의 기본기 중 하나인 횡 베기, 호라이즌.
기술적 완성도와 안정성은 높지만, 원래라면 그만큼 위력이 떨어지는 기술이다.
일반적인 기사들이 사용한다면 검의 절삭력을 높이거나, 사거리를 늘리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그렇지만 단장급 기사의 마력을 그것도 파장을 맞물려 동조시킨다면?
방금 본 것처럼, 완전히 다른 기술이 된다.
서로 동조된 검이 뿜어내는 위력은 합이 아닌 제곱.
두 기사의 합격기로 시전한다면, 아무리 작은 기술이라 해도 놀라울 만큼 위력적인 기술로 변모하는 것이다.
- …자네는 네크로맨서일 텐데, 검술 이론도 연구했었나?
‘아는게 당연하지.’
넌지시 묻는 앙헬의 질문에 내 표정이 대판 일그러졌다.
‘베르켈이랑 그 기사놈들이 이걸로 내 방어선을 작살 냈으니까.’
- 아아….
지금은 내가 쓰는 쪽이니 별말 안 하겠지만, 그땐 정말이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망할 놈의 합격기 때문에, 수십 겹으로 세워놓은 방어선이 속절없이 뚫려버렸으니까!
아니, 진짜 말이 안 됐었다니까?
칼로 미스릴 골렘 배때기를 쑤시는데, 그게 뚫린다고!
그거 만드느라 두 달은 넘게 뺑이쳤는데!
“이럇-!”
내 의미 없는 상념이 지속되던 사이.
마차를 몰던 두 마리 말이 속도를 더하고, 탄력을 받은 마차가 빠르게 숲을 벗어났다.
촤아악-!
“도련님-!”
우거진 숲을 통과하고 햇살이 쏟아지자, 마차를 몰던 론이 내게 소리쳤다.
눈앞에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나고, 저 멀리에는 해안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했네.”
사방이 탁 트인 넓은 들판 한가운데.
그곳에 세워진 낡은 신전을 보자, 내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짙어졌다.
저곳이, 플리시안 극동부에 위치한 교단의 성지.
‘원초의 화로’였다.
***
“하하하! 고생 많았다 짜식들!”
그 사이 정이라도 들어버린 것일까?
호탕하게 웃은 론이 한나절 동안 쉬지 않고 달린 말들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푸르륵-!
가쁜 숨을 고르는 말들의 투레질 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도 마차에서 피곤에 찌든 몸을 내렸다.
성지에 입장하는 것이 허락된 것은 순례자와 성직자들뿐.
이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은 나와 스텔라 뿐이었다.
- 교단 놈들이 발등에 불이 붙은 모양이군. 이렇게 노골적으로 습격해올 줄이야.
기사들과 헤어져 들판을 걷던 중.
방금 전까지 추격전이 한참이던 숲을 보며 레이븐이 말했다.
감시에, 암살 사주에, 이제는 직접 습격까지.
교단의 행동은 사전에 계획되었다기보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지간히 놀랐겠지. 진짜로 성지까지 도착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교단의 계획대로라면, 난 플리시안에 도착하지도 못한 채 사막에서 죽어야 했다.
테레인 백작의 기병대에게 붙잡혀, 그들 사이의 거래에 이용되었을 테지.
바꿔 말하면, 내가 사막을 벗어난 시점에서, 이 일은 교단의 손을 떠났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텔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스텔라와 아린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이단심문소 인간들, 진짜 살벌하네요.”
“대머리 빡빡이 아저씨들! 되게 이상했어요!”
이단심문관한테 대머리 빡빡이라.
시체짝으로 널브러진 놈들한테 이 말을 들려줬어야 했는데.
“교국에서는 만난 적 없습니까?”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스텔라에게 묻자, 스텔라는 고개를 저었다.
“만난 적은 있지만, 저런 이상한 행색은 아니었어요. 하는 일도 평범한 치안 유지였고.”
“제 식구는 건들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교국 인간들은 자신들이 외국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른다는 건가.
놀라운 정보통제력에 감탄하는 동시에, 난 스텔라에게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스텔라가 아니었으면 수도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맞아요! 스텔라 언니 최고!”
아린이 거들자 스텔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지만, 그것도 잠시.
“근데, 신성교단 수녀님이 교단의 계획을 막 발설해도 되는 겁니까?”
그렇게 묻는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은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감시하라고 보내놨는데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여행만 다니고.”
“윽.”
“심지어 이번엔 아예 습격계획을 통째로 적한테 갖다 바치기까지.”
“으으…….”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는 스텔라를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거, 몸 성히 교국에 돌아갈 생각은 버려야겠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텔라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오른손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는 행동.
내색하지는 않아도 그녀 역시 자신의 행동이 어지간히도 불안한 듯했다.
“왜 이렇게까지 절 돕는 겁니까?”
“…….”
내 물음에 스텔라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제가 왜 교단에 들어왔는지, 아세요?”
“수입이 안정적이어서?”
아무 고민 없이 즉답했다.
‘정답!’이라고 말하려던 스텔라가 잠시 뾰로통한 눈으로 날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곧 말을 이어갔다.
“억울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예요.”
“억울한….”
그렇게 말을 흐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목에 나 있는 흉터였다.
크리펠 이단교화소에 수감 된 실험체.
그들의 목에 예외 없이 감겨있던 구속구의 흔적.
“그리고 제가 보기엔, 공자님은 억울한 사람 같아요.”
“……?”
내가 대답할 말을 찾기 전에, 스텔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교단에선 맨날 그래요. 네크로맨서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모욕하고, 혼을 속박하는 악당이라고.”
“…….”
“그리고 공자님은, 그런 네크로맨서들 중에서도 최악인 악당의 환생이라고.”
이 시대에 네크로맨서랍시고 활개치는 놈들을 생각한다면, 구구절절 맞는 소리인데.
그런 생각을 뒤로한 채 스텔라의 말을 기다렸다.
“근데, 직접 보니까 좀…. 다르네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죽은 사람들을 돌려보내 주고, 언데드들이랑 농담 따먹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조종하는 게 아니라, 어울리는 느낌이잖아요?”
스텔라의 말에 앙헬과 레이븐이 고개를 끄덕였고, 내 표정은 언짢아졌다.
수평적인 관계고 나발이고, 그런 게 아니지.
‘그냥 얘네들이 말을 안 들어 처먹는 건데.’
“그리고 그에 반해…. 교단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구요.”
“…….”
그 말에 내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제가 교단을 배신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지.”
“반대라고요?”
“네, 이것 봐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가 품속에서 비수 몇 개를 꺼내 보였다.
“이건…….”
“이번에 들이닥친 이단심문관들. 공자님뿐만 아니라 저도 노리고 있었어요.”
방어에 집중한 사이, 마차 내부의 인원을 살해하기 위해 발사한 비수.
그들의 목표는 나뿐만이 아닌, 스텔라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제가 배신한 게 아니라, 교국이 절 배신한 셈이죠.”
어떤 의도였는지는 짐작이 간다.
스텔라를 죽인 뒤, 내 소행으로 위장해 개리슨과 날 충돌하게 만들 생각이겠지.
계획한 이는 보나 마나 팔리만, 그 기생오래비일 테고.
“그래도, 이걸로 상황이 달라지겠죠.”
그렇게 말한 스텔라가 성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흔은 주신 케르시아스의 인증. 초승달 섬에서 그걸 가지고 가면, 교단에서도 공자님을….”
“글쎄다? 그게 그렇게 쉬울지 모르겠구나.”
스텔라의 말을 끊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촤앙-!
신전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
곧바로 표정을 굳힌 스텔라가 검을 빼 들었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붉은 장발을 휘날리는 갈색 로브 차림의 남자.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은 잘 만들어진 조각품을 연상케 했다.
“이 녀석은 있지도 않은 신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부르고자 온 것일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말한 남자는 내 얼굴을 응시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으냐? 클라인…. 아니지.”
참으로 치명적인, 한 가지 사실과 함께.
“아키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