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27화 (127/209)

127. 할 일 하러 갑시다

“오, 오오!”

“마력이 돌아왔다!”

전투마법사 중 몇몇이 외쳤다.

공간 전체의 마력을 오염시켜, 마력 운용을 차단하는 엘프란의 술식.

그렇지만 한 순간, 시엘과 이안을 가로막던 엘프란의 술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로 돌아온 거예요? 공녀님도요?”

사람들을 한데 추스린 스텔라가 그렇게 묻자, 시엘 역시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자식이, 이 늙은이가 불쌍하답시고 술식을 푼 건 아닐 테고….”

쯧, 하고 혀를 찬 이안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눈을 잃은 그가 주변 사물을 감지하는 수단은 마력.

엘프란의 술식 덕에, 그는 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으로 전락했었다.

“그렇다면, 설마 클라인 녀석이 정말로…?”

“……!”

이안의 목소리를 들은 시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엘프란의 술식을 해제하는 방법은 단 하나.

술식을 유지하고 있는 엘프란 본인을 처단하는 것뿐이었으니까.

“클라인은 지금 어디에 있죠?”

시엘의 물음에 스텔라는 손가락으로 엘프란이 떨어진 붉은 궁전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순간.

쿠콰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거대한 성의 한 귀퉁이가 터져나갔다.

“유성우?!”

성에서 터져 나온 마력에 이안이 깜짝 놀라 내뱉었다.

방금 저 성을 무너트린 것은 라인란트 공작인 하인켈의 비기인 유성우.

“말도 안 돼. 검로를 재현한다 한들, 저 정도의 마력을 어떻게…!”

그렇게 말하던 이안이 흠칫했다.

마력이 없는 조카놈이 검에 마력을 담는 방법.

그와 함께 장벽으로 떠났던 이안은 그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이런 미친 놈!”

그렇게 외친 이안이 앞서 달려나갔다.

그가 감지한 마력의 양은 일반적인 기사가 운용하는 마력량의 수십 배.

마력도 없는 클라인이 그 힘을 사용했다면,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쿠르르르르르….

“젠장, 역시…!”

아일라시스의 아공간, 붉은 궁전.

이안을 따라 성 내부로 진입한 이들은, 전투가 있었던 중심부의 모습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크, 클라인 공자가…….”

“엘프란을…!”

모두가 실패했다고 생각했었다.

상대는 무한한 힘을 얻은 아일라시스의 대마법사.

반면, 그에 대적하는 것은 마력 한 줌 없는 네크로맨서 한 명뿐.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생각하며, 모두가 희망을 포기한 상황.

그렇지만 결과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대마법사인 엘프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있는 반면.

클라인 공자는 비교적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었다.

“하아…. 하아……!”

물론, ‘비교적’ 멀쩡한 것뿐.

노르드빈트를 지팡이 삼아 서 있는 클라인 역시 정상적인 몸 상태는 아니었다.

“아, 왔습니까?”

이안과 시엘, 그리고 스텔라가 온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클라인의 긴장이 풀렸다.

“………!”

클라인의 몸 상태를 확인한 스텔라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치이이익….

검을 잡은 양 팔은 불에 타 검게 그을렸고, 눈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망할 조카놈이, 무리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아직은 좀 버틸만해요.”

클라인의 상태를 전해 들은 이안이 이를 악물었다.

엘프란의 마력으로 사이클을 돌린데다가, 계속된 전투로 피로가 한계까지 달한 상황.

지금 이렇게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후우-!‘

그렇지만 클라인은 심호흡과 함께 당장이라도 쓰러지려는 몸을 바로잡았다.

승리했으나, 엘프란은 아직 살아있는 상황.

그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의 끝을 봐야 했다.

“크, 크흐흐흐……!”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은 것은 엘프란의 스산한 웃음소리였다.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 괴물이 사람 행세를 하다니, 웃기지도 않는…!”

“지랄하네. 너 지금 자기소개하냐?”

엘프란의 말을 끊으며 클라인이 곧바로 쏘아붙였다.

연장자에 대한 존칭도, 귀족에 대한 예우도 찾아볼 수 없는 경박한 말투.

“실수하는 거다, 클라인…!”

그렇지만 엘프란은 계속해서 입을 열며 발악을 계속했다.

“시엘 라 아일라시스. 저것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감정을 이해 못 하는 광인이다!”

엘프란은 시엘을 저것이라고 불렀다.

“원로원을 몰살한 살인귀! 정치적 기반도 없는 무지렁이! 제힘에 미쳐 날뛰는 통제 불능의 도구!”

자신을 향한 악담이 이어졌지만, 시엘은 그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괴물이 한 가문을, 그것도 제국 3대 공작 가문을 맡아? 영지를 다스려? 웃기는 소리…!”

이를 악문 엘프란이 시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장담하마! 저것이 다스리는 아일라시스는 지옥이 될……!”

그러나 그 순간.

“한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출신이나 근원이 아닌, 그의 선택과 행동일지니.”

클라인의 한 마디가 엘프란의 말을 중간에 가로챘다.

“영지를 지옥으로 만들던, 폭군이 되던, 그걸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시엘이야.”

츠츠츠츠……!

엘프란을 향해 다가가며, 클라인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았다.

유리를 깎아 만든 듯, 투명한 검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바닥에 깔려, 새하얀 연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점점 죽어가는 엘프란의 눈이 클라인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산 자의 눈에서, 망자의 눈으로.

그 몸이 죽음에 가까워져 갈수록, 엘프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

그의 눈에 보이는 클라인의 모습은, 더 이상 열다섯 공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거지.”

검은 머리를 산발한, 스산한 얼굴의 네크로맨서.

단지 그 혼의 기척만으로도, 엘프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가 누구인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 아키몬드.

차가운 눈으로 엘프란을 내려다본 그는 형벌을 선고하듯, 무덤덤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네 영지가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그걸 볼 일은 영영 없다는 거.”

“……!”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클라인의 마기가 그의 혼을 꼼짝없이 옭아맸다.

- 네놈에게 어떤 벌을 줄까 생각해봤다. 고통을 줄지, 영원히 성불할 수 없게 가두어버릴지.

마기를 섞어 발하는 망자의 목소리가 그의 존재를 옥죄이고, 참을 수 없는 한기가 그를 엄습해왔다.

-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

“……?”

이제는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듯, 엘프란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 네놈과 아키몬드 교단의 구더기들에게는 고통도, 참회도, 속죄의 기회조차도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

흔히들 말한다.

죄를 지은 인간은 지옥에 간다고.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내세의 악행을 속죄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건 틀렸다.

지옥이란 그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방어기제일 뿐.

산 자들이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에서 고통 따위가 아니다.

- 그러니 내 너에게 고하니.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존재의 종말이다.

참회의 시간도, 고통조차 허락하지 않는 공허.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클라인은 공포에 떠는 엘프란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희들의 혼을, 완전히 소멸시키겠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느끼지 못한 듯, 클라인은 무심하게 오른손에 쥔 수정검을 휘둘렀다.

벼 이삭을 베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아, 안…!”

스걱-!

그 간단한 움직임과 함께, 엘프란의 존재는 사라졌다.

영혼의 편린조차 남지 않은 완전한 소멸.

그는 더 이상 환원될 일도, 언데드로 되살아날 일도 없었다.

***

빠드드드득-!

시엘이 엘프란의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무너진 붉은 궁전의 잔해를 뭉쳐, 그대로 짓이겨버렸으니까.

파아아아앗-!

먼지 하나 없이 텅 빈 엘프란의 서고.

한가운데에 있던 작은 균열이 빛나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 살았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무신론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신을 찾는 아이러니한 광경.

- 언데드가 되니 이런 장면을 다 보게 되는군.

포탈을 유지하고 있던 앙헬이 신선한 광견에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파아아앗-!

“에이그. 폼이란 폼은 실컷 잡더니, 결국 또 쓰러지냐?!”

“방금까지 서 있던 게 기적이었죠. 전 시체인 줄 알았는데요.”

“스텔라 양, 불길한 말 하지 마세요.”

포탈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클라인 일행의 모습에, 서로를 부둥켜안던 전투마법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엉? 뭘 보냐 너네?”

정확히는 이안이 아니라, 그의 등에 업혀있는 클라인 공자.

“….”

“…….”

잠시 서로 눈빛을 교환한 마법사들은 이윽고, 하나둘씩 자신들의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저흰 전부….”

“뭐야, 난 나오자마자 뒤통수라도 때릴 줄 알았는데.”

그들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이안이 비꼬자, 대표로 나온 대대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무, 뭐라고 사죄를 드려야 할지….”

클라인을 미끼로 써서 엘프란을 잡으려 획책했는데, 역으로 목숨을 구원받다니.

자괴감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과는 됐고, 청취니 심문이니 귀찮게 하지만 말라고.”

“그,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안이 도끼눈을 뜬 채 그렇게 말하자, 대대장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차단당한 자신들을 지키고자, 말 그대로 몸을 불사른 클라인.

그런 클라인의 모습에, 그 또한 느낀 것이 많은 듯 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본국에 왜곡 없이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클라인의 모습을 보며 결심한 듯, 대대장이 그렇게 말했다.

“아키몬드 교단에, 엘프란까지 전부 말하겠다고?”

“예. 부족하다면, 제국 신문과 남부 연합에 직접 제보할 생각입니다.”

“허어….”

그의 말에 이안이 말을 흐렸다.

제국 공작이 아키몬드의 추종자와 협력한 초유의 사태.

그리고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플리시안의 무능.

그는 지금, 그것을 전부 밝히겠다 선언한 것이었다.

“신중하게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것은 시엘이었다.

엘프란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임무는 실패한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

이대로 본국에 돌아간다 한들, 책임을 면하지는 못할 텐데, 거기에 이런 일까지 벌이겠다니.

그렇지만 대대장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저희 목숨을 구해주신 분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죠.”

그렇게 말한 대대장은 병력들을 추슬러 플리시안을 향해 먼저 떠나갔다.

“제국에서 뭐라고 핑계를 댈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구만.”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한 이안은 바닥에 클라인을 눕히려 했다.

- 이리 주게. 내가 받지.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현계했다.

포탈을 넘어 돌아온 순간, 클라인과 앙헬의 연결이 복구된 상황.

리치인 그의 마력으로 급히 영체를 복구한 것이었다.

철컥. 철컥.

레이븐이 축 늘어진 클라인의 몸을 받는 사이.

“음?”

또 한 명의 데스나이트는 어딘가 넋이 나간 듯, 이안의 얼굴을 계속해서 응시하고 있었다.

“…….”

평소의 이안이었다면 ‘이 깡통은 뭐냐?’라며 너스레를 떨었을 터.

그렇지만 이안은 웬일인지, 표정을 구긴 채 이름 모를 데스나이트를 유심히 살폈다.

“이봐, 깡통.”

그가 살핀 것은 데스나이트가 지닌 마력의 파장.

이윽고 이안은 클라인의 고위 언데드 중 최고참인 레이븐을 향해 물었다.

“이 데스나이트는 어디에서 계약한 거냐?”

- 음?

이안의 물음에 레이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클라인의 언데드에 관심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 교국 대성당에 있는 지하 감옥에서 망령이 되어있었네. 혼이 거의 소모된 탓에, 제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친구지.

“……이 녀석이, 교단의 지하 감옥에? 확실한 건가?”

갑자기 진지해진 이안의 목소리에 레이븐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뿌득.

이안의 입에서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종일관 능청스럽던 그가 내보인 분노.

그렇지만 그는 더 뭔가 말하려는 대신, 등을 돌려 마탑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안 님. 갑자기 어디로…?”

“개인적인 일이다. 신경꺼”

갑작스러운 이안의 행동에 시엘이 물었지만, 이안은 그렇게 말할 뿐,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 그래. 또 한 가지.”

그 대신, 이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의 이름은 키예스다. 클라인이 깨어나면 그렇게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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