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26화 (126/209)

126. 약자의 무기(2)

“아키몬드. 넌 검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오래된 기억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내 조국이 얼음성 밑으로 가라앉기 전.

여느 때와 같이 연구에 몰두해있던 날 향해, 스승님이 물었었다.

“갑자기 뭡니까? 수수께끼?”

“대답이나 해 보거라.”

그렇게 닦달하는 스승을 보며, 짧게 고민한 뒤 말했다.

“손잡이 달린 날붙이요.”

“…네 말대로면 창이나 도끼도 검이 되어버린다만?”

“친척 정도로는 쳐 주죠 뭐. 어차피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기사들 속을 내가 알 턱이 있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당시의 스승님은 표정은 한층 더 떨떠름해졌다.

“…정말이지, 불손하기 짝이 없는 제자로다.”

“암요, 누구 덕에 이렇게 컸는데.”

“하하하!”

내가 일부러 퉁명스레 말하자, 스승님은 피식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말을 말자, 이 버릇없는 놈 같으니.”

그렇게 말한 그는 연구실 한편에 걸려있던 장식용 검을 가져왔다.

장식임에도 불구하고, 시퍼렇게 날이 선 새하얀 검신.

수십 년은 족히 된 물건이었지만, 윈터폴의 기사들은 그 검을 마치 새것처럼 관리해왔다.

“질문을 바꿔보마.”

그렇게 말하는 스승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사도 문학의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검이죠.”

“윈터폴에서 기사를 임명할 때 쓰이는 무기는?”

“검이죠.”

“아이신기오르 제국의 제1 국보는 무엇이냐?”

“그것도…. 검입니다.”

이후로도 몇 가지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검, 검. 그리고 검,

“자, 그렇다면 내 물으마.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검이라는 무기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일까?”

“……?”

그 질문에 난 잠시 미간을 좁혔다.

왕성에서 의뢰한 술식 설계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대낮에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건지 뭔지.

‘아니다. 노친네가 간만에 무게 잡는데, 어울려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한층 더 진지하게 스승님의 질문을 고민해봤지만.

뭐, 네크로맨서가 검에 대해서 뭘 알겠나.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병장기와 비교했을 때, 휴대하기가 가장 용이한 무기라서요?”

“호오.”

뭐야, 맞는 건가?

스승님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자, 난 거기에 추가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보조 무장이죠.”

데스나이트 제작을 위해 기사들의 무장을 분석한 결과였다.

“정답은 아니지만, 조금은 근접했구나.”

“…그럼 정답은 뭔데요?”

애매한 대답에 내가 뚱한 얼굴로 되묻자, 스승님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

이건 또 뭔 소리야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스승님은 자신의 말에 한마디를 더 얹었다.

“대륙에 태동한 지성 있는 종들 중, 가장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물론, 얼토당토않은 헛소리.

그 말을 들은 난 얼굴을 찡그리며 곧바로 반론했다.

“그 약해빠진 인간이, 대륙에 존재했던 이종족들을 전부 밀어버린 건 알고 계시는 겁니까?”

몬스터 뿐만이 아니다.

용, 엘프, 오크와 같이 지성을 갖춘 이종족들까지.

그들 모두와 싸워 대륙을 쟁취한 것이 인간일진대.

“이종족들은 보호구역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고, 몬스터들은 마법사들의 연구재료로 사용됩니다만.”

“네 말이 맞다.”

“그런데 인간이 약하다니, 무슨 헛소리입니까?”

그렇게 말한 나였지만, 이어지는 스승의 말에 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몰락한 이종족들 중, 인간보다 약한 종족이 몇이나 되었느냐?”

“…….”

…스승님의 말대로였다.

플리시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마법의 대가, 엘프.

압도적인 완력과 개체 수로 대륙을 뒤덮은 오크.

반신에 가까운 힘을 지닌 용족까지.

“그들 모두가, 기사들의 검 앞에 쓰러졌지. 내 말이 틀리느냐?”

“…맞습니다.”

입을 비죽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당장 나만 해도, 데스나이트를 설계하려고 한 달 이상을 연구실에 쳐박혀 있었으니까.

네크로맨서로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검의 극한을 추구하는 자들은 인간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그것은 왜일까?”

“만든 놈이 그렇게 설계했나 보죠. 뭐.”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지만, 내 목소리에는 짙은 반감이 묻어있었다.

“아니.”

그렇지만,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은 스승님이 내게 말했다.

“그 이유는, 검이 본질적으로 약자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약자의 무기?”

내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스승님이 장식용 검을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용의 천적이 기사인 이유가 무엇이냐?”

이번엔 이미 알고 있는 질문.

난 곧바로 대답했다.

“마법사와는 달리, 기사가 운용하는 마력을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다.”

고개를 끄덕인 스승님이 설명했다.

“마법의 본질은 정해진 진리를 규명하여 현실을 뒤트는 것. 그리고 용족은 그 진리에 가장 가까운 종족이지.”

인간이 알고 있는 마법을, 용이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인간 마법사들은 모두 용의 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지.

‘쓰기도 전에 디스펠로 날려버리는데, 그걸 어떻게 이겨?’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스승님이 내게 물었다.

“하지만, 기사의 검은 어떻지?”

“읽어낼 수 없었죠.”

정해진 문제의 답을 구하는 것이 마법사라면, 기사는 백지에 자신만의 답을 써 내려가는 자.

그 격언처럼, 기사의 마력은 검술과 초식에 따라 끊임없이 분화하고 변형되었다.

반신인 용의 지성으로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기사의 검은 타고난 힘도, 정답이 정해진 진리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연마하고, 대를 이어 축적해 온 경험의 산물이지.”

“…….”

말을 마친 스승님은 장식용 검을 들어 올려 날 향해 겨누었다.

“힘도, 마력도, 심지어는 지성조차 제대로 타고나지 못한 약자가, 그 피와 생명으로 빚어낸 강철의 비수!”

“으웩.”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스승님의 말에 난 혀를 길게 뺐다.

나보다 적어도 세 배는 넘게 나이 먹은 인간이, 왜 입만 열면 사춘기 애들처럼 변하는지.

“그렇기에 검은 그 상대가 강할수록, 더욱 치명적인 비수가 되어 숨통을 조일 거다.”

스승님이 겨눈 검이 내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심장을 노리는 것처럼, 서늘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전 기사가 아니라 네크로맨서인데요.”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난 그렇게 말하며 내 심장을 겨누고 있는 스승님의 검을 치웠다.

“저한테는 사령술 배우라고 죽어라 쪼아대던 양반이, 이제 와서 갑자기 기사 타령입니까?”

그럼 처음부터 나한테도 검술 좀 알려주던가!

입을 비쭉 내민 채로 툴툴거렸다.

바빠 죽겠는데 하루 종일 기사 타령이나 듣고 있던 탓에 심사가 뒤틀린 모양이다.

“혹시 아느냐? 네가 검을 쥐게 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를 위한 조언이니라.”

“됐습니다! 중앙 기사단 놈들이랑 패싸움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렇게 말한 난 완성된 술식 자료를 챙겨 가방에 갈무리했다.

“기대하십쇼! 이 술식이 완성되면 기사고 교단이고 나발이고, 윈터폴엔 손끝도 못 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은 난, 등을 돌려 연구실 밖으로 내달렸다.

이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모를, 오래된 기억.

윈터폴의 파멸이 시작된, 어느 화창한 봄날의 이야기였다.

***

쿠콰아아앙-!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것도 잠시.

눈앞을 가로막은 아린의 몸체가 열리고, 그 틈을 두 명의 데스나이트가 파고들었다.

“버러지들이!”

수십 개의 화염구가 응집된 거대한 마법.

이미 태양에 가까워진 광채가 다시 한번 두 명의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울-!”

그렇지만, 날 보조하는 존재는 아린뿐만이 아니지.

마력으로 이루어진 아울의 몸이 한순간에 부풀며, 검은 날개가 그 거대한 화염구를 받아냈다.

치이이이익-!

- 삐이이이이이---!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아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아울이 만들어낸 잠깐의 틈.

베르켈의 기사인 레이븐은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이 지닌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다.

- 클라인!

레이븐의 신호에 곧바로 계약문을 작동시켰다.

투화악-!

교단 지하에서 합류한, 의지 없는 데스나이트.

그의 마력 파장을 레이븐의 것과 동조시켜. 그의 동작을 정확히 따라하도록 지시했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을 시도한 기술.

이제 관건은, 저 데스나이트의 역량이 레이븐을 보조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헥토르의 두 배, 아니, 5할만 더 버텨낼 수 있다면!”

그렇게 외치는 사이, 두 데스나이트의 검이 교차하며, 엘프란이 발사한 마법을 후려쳤다.

치이익!

“크으?!”

눈부신 마력광이 사방으로 퍼지는 순간, 부릅뜬 눈이 화끈 달아올랐다.

두 데스나이트의 마력이 얽히는 그 찰나.

내 눈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요동치는 그들의 마력을 잡아내, 미세한 틈새를 조정하고 있었다.

- ……?!

- 몸이, 멋대로?

두 데스나이트에게 당혹감이 떠오른 그 순간.

키이이이잉---!

소용돌이치며 한데 얽힌 마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서로의 위력을 증폭시켰다.

이안과 내가 게리슨에게 사용했던 합격기.

나선격.

투화악-!

사방으로 퍼진 마력광의 중심이 열리고, 그 가운데에 엘프란의 형상이 나타났다.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

“뭐, 뭐야?!”

그렇지만 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 최대 출력의 홍염이다! 파훼는커녕, 근처에 접근하기만 해도……!”

“내가 말했지? 오만방자한 새끼야.”

두 데스나이트의 마력 동조는 성공이다.

엘프란의 마법을 파훼하고, 그의 코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무리하게 돌진을 감행한 대가 또한 컸다.

파창-!

레이븐과 이름 없는 기사의 영체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공격 마법의 중심을 파괴했지만, 남은 열기와 압력만으로도 이들의 몸을 박살 내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이걸로 데스나이트 둘을 소모한 상황.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우우웅-!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눈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이 더해질수록, 날 둘러싼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수차례 이어진 폭격 마법으로 인해, 공간을 자욱하게 메꾼 잔류마력.

날 향해 손을 뻗은 엘프란.

그곳에서 발산되는 불꽃의 움직임과 그 마법의 술식 구조까지 전부.

한번 본 것만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니가 나보다 쎄고 나발이고, 내가 이긴다고-!”

촤륵-!

손에 든 노르드빈트를 뻗었다.

마치 하늘에 핀 구름을 걷어내듯, 공기 중에 흩어진 마력을 검에 담아, 내 몸으로 흐르게 했다.

치이이이이이-!

혈관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몸 전체에 마력이 퍼져나갔다.

공기 중에 흩어진 마력을 갈무리한 노르드빈트는 이제, 내게로 쏘아지는 엘프란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화륵-!

양손으로 잡은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엘프란이 뿜어낸 불꽃에 양팔이 타올랐지만, 검을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키이이이잉-!

내려치는 검에 라인란트의 비기, 유성검의 정수를 담았다.

한 번, 열 번, 스무 번.

엘프란이 뿜어낸 방대한 마력을 전부 내뿜어, 수많은 검격의 정수를 일격에 담았다.

‘검의 본질은 약자의 투쟁일지니.’

기억 속 목소리와 함께, 내리친 검이 눈 부신 빛을 토해냈다.

폴와이번과의 내전에서, 하인켈이 사용했던 최대 위력의 비기, 유성우.

“아, 안돼! 안돼애애애---!”

수십 겹의 방벽을 친 엘프란이었지만, 이제 그는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높이 세운 노르드빈트가 찬연히 빛나고.

그 궤적을 따라 수십, 수백 개의 유성검이 한데 모여 내리꽂혔다.

파아아아앗-!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고, 눈앞의 모든 것이 빛무리에 삼켜졌다.

극도로 압축된 유성검이 수백 회.

콰직-!

금색으로 빛나는 교단의 성물에 기다란 균열이 갔다.

무한한 생명을 공급하는 촉매가 산산이 부서지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엘프란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쿠우우우우우…….

눈을 뜨자, 그곳에 있는 것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붉은 고성의 중앙홀.

“아…. 아아아……!”

그리고 힘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엘프란의 모습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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