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25화 (125/209)

125. 약자의 무기 (1)

“크으!”

엘프란은 내 손에 들린 지팡이, 브류나크를 본 순간 곧바로 내게 손을 뻗었다.

그 또한 제국에서 제일가는 마법사.

한번 본 순간, 이 물건이 자신에게 위험하단 것을 눈치챈 것이겠지.

크워어어어어-!

시뻘건 불로 만들어진 용의 형상이 날 향해 내리꽂혔다.

치이이이익-!

공기를 태우며 연기와 열을 내뿜는 거대한 화마.

마치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인 듯, 용의 형상이 날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었다.

“얼려라.”

파츳-!

지팡이의 중심부에 있는 보석을 향해 말하자, 브류나크가 홀연히 떠올랐다.

그곳에서 터져 나온 새하얀 연기.

하지만 그것이 다 퍼지기도 전에, 엘프란이 쏜 불의 용이 내 전신을 덮어버렸다.

쿠콰아아앙-!

“클라인!?”

“이런 미친, 저 마법을 정면으로!”

시엘과 이안이 당황한 듯 목소리를 냈다.

날 향해 내리꽂힌 마법은 엘프란이 내뿜은 최대 위력의 화염 마법.

그 위명에 걸맞듯,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은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투화악-!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용의 형상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억눌려있던 냉기가 터져 나왔다.

사방을 뒤덮은 붉은 화염.

하지만 그 불꽃은 등불에 밀려나는 어둠처럼, 하늘에 떠오른 브류나크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못했다.

저벅, 저벅.

상처 하나 없이 엘프란이 만들어낸 불길 속을 걸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지만, 내 머리칼에는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끓어오르는 땅을 밟고 걸으면서도, 내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이 나왔다.

“뭐, 라고……!”

자신의 일격이 먹히지 않은 것을 보자, 엘프란의 얼굴이 속절없이 일그러졌다.

“다친 데 없죠?”

그렇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난 내 등 뒤에 선 스텔라에게 물었다.

“다칠 것 같아요. 동상 걸릴 것 같아요! 겁나 추워요!”

음.

말하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네.

일행의 안전을 확인한 난 하늘에 떠 있는 엘프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부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거슬렸는데.”

내 시선에서 봤을 때, 마치 그가 내 손바닥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구도.

난 일부러 그를 감싸듯 주먹을 쥐며 말했다.

“작작 하고 내려와, 이 오만한 새끼야.”

“……!”

파아아아앗-!

내 동작을 감지한 브류나크가 한층 더 빛을 더해갔다.

“하, 그래봤자 결국 지팡이 하나일 뿐. 내가 다루는 이 성물에 비하면……!”

불안을 털어내듯, 애써 웃어 보인 엘프란이 다음 마법을 캐스팅하려던 그 순간.

쿠우-!

“크윽?!”

자신을 잡아끄는 미지의 힘에, 엘프란이 순간 균형을 잃었다.

“뭐야, 갑자기 뭐가 날…!”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살핀 엘프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저게, 뭐야?”

공중에 떠오른 세 개의 얼음 기둥.

그곳에서 뻗어 나온 새하얀 선이, 그의 머리 위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아까 말했잖아. 너 같은 놈 잡으려고 준비한 물건이라고.”

정확히는 엘프란 같은 마법사가 아니라, 그가 심장에 꽃은 황금 말뚝을 가리킨 것이었다.

“웃기지 마라, 이 말뚝의 존재는 교단의 기밀…!”

“인체 혹은 마력 회로에 이식함으로써, 그에 걸맞은 힘을 제공하는 촉매.”

내 입에서 말뚝에 대한 정보가 술술 흘러나오자, 엘프란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 어떻게……?”

“기밀은 개뿔, 교단이 그런 걸 만든 게 한두 번인 줄 알아?”

그렇게 말하는 내 눈이 한층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200년 전엔 개나 소나 심장에 처박고 다녔었는데.’

200년 전, 북부를 침공한 제국과 교국의 군세.

교단의 성물을 사용해 강화한 기사들에 의해, 북부의 방어선은 속절없이 무너졌었다.

이미 위성국가로 전락하여 제국의 눈치를 보던 플리시안도, 그간 협력해왔던 다른 국가들도 등을 돌린 상황.

세상에서 고립된 우리들은 그들에게 대항하고자 그 성물을 역설계해, 그 힘을 끌어내리고자 했다.

이 손에 들린 성장은 그 연구의 결과.

내 스승과 내 선배들이 빚어낸, 제국과 교단을 향한 비수 중 하나였다.

키이이잉-!

형태를 갖춘 술식이 하얗게 빛났다.

성장의 중심에 저장되어있던 마력은 성물과 반대되는 파장을 내뿜어, 그와 성물 사이의 연결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 끌어내려라.

내 한마디와 함께, 술식을 구축하던 세 개의 기둥이 일제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쿠콰콰콰콰아앙-!

엘프란의 위치는 성채 위.

위에서 내려오는 술식에 완전히 깔려버린 엘프란은, 그대로 얼음 기둥과 함께 성에 처박혀, 파편 속으로 파묻혔다.

쿠르르르…….

하늘 위를 날던 마법사가 속절없이 추락하는 광경.

그것을 본 스텔라가 주먹을 꽉 쥐며 내게 물었다.

“이걸로 해치운 거 맞죠?”

“아, 그렇게 말하면 꼭 살아오던데.”

그렇지만 난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며, 엘프란이 떨어진 정면을 응시했다.

쿠콰아앙-!

폭음과 함께 무너진 성의 파편들이 흩어졌다.

“어, 진짜 살아났네.”

“거 봐요. 옆에서 쓸데없이 바람 넣지 말라니까.”

그 중심부에서 노쇠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엘프란이었다.

“크으으으으……!”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곧게 선 엘프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저건…….”

“성장이 할 일을 다 한 겁니다. 말뚝은 이제 작동 안 할거에요.”

성물의 힘으로 증폭시킨 생명력과 마력.

제 것이 아닌 모든 힘이 허공으로 흩어져, 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아니, 원래대로는 아니지.’

늙은 몸을 억지로 활성화시켜 얻어낸 힘.

그 반동으로 인해, 엘프란의 얼굴은 한층 더 수척해졌다.

마치 지난 내전에서, 헬리안이 그러했듯.

노쇠한 노인의 몸이었지만, 방금 전보다는 훨씬 나은 얼굴이었다.

“네놈이……!”

“아까보단 훨 낫구만 뭐.”

그렇게 말하는 사이, 엘프란은 뿌득 이를 갈아붙이며 무너진 성의 잔해 속에서 걸어나왔다.

“에, 엘프란이 원래대로…!”

“제길, 마법만 쓸 수 있었어도……!”

엘프란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렇지만 플리시안의 전투마법사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미 계속된 전투로 인해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

몸 상태가 멀쩡한 것은 기껏해야 나 아니면 신성력을 쓰는 스텔라 정도겠지.

“후우-!”

그 또한 그것을 알고 있는 듯, 엘프란이 한숨과 함께 분노를 삼켰다.

“좋다.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내 인정하지.”

마지못해 그렇게 말한 엘프란이 허리를 펴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렇지만 이미 시엘도, 기사 학살자도 힘을 다한 상황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지?”

늙고 노쇠했으나, 그는 아일라시스의 장을 맡았던 자.

성물을 무력화했지만, 이쪽도 최대 전력을 잃었다.

“그러게. 이 개고생을 했는데, 돌고 돌아 원점이야.”

상대는 여전히 제국 공작에 걸맞은 힘을 지닌 마법사.

그에 반해, 이쪽은 마력 한 줌 없는 반쪽짜리 기사 겸 네크로맨서에, 수녀 한 명이 전부.

스릉-!

그렇지만 난 도망칠 궁리를 하는 대신, 허리춤에 찬 노르드빈트를 뽑았다.

“2대 1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건가? 가소롭기 짝이 없는…!”

“뭔소리야? 1대 1인데.”

엘프란의 말을 가로막은 내 한마디에, 그의 표정이 더욱 괴상해졌다.

“지금, 뭐라고 했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엘프란이 재차 되물었다.

“마력도 없는 반쪽짜리가, 아일라시스의 공작인 이 나와 1대1을 벌이겠다?”

쿠웅-!

분노에 의해 기운을 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거대한 마력이 단숨에 공단을 짓눌렀다.

“아일라시스 공작? 말은 좀 똑바로 하지?”

그렇지만 난 겁먹지 않은 채, 추가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 공작이잖아? 제 딸한테 개박살 나서 여기까지 도망이나 친.”

“………!”

내 말에 엘프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좋아, 도발 성공.’

이걸로 엘프란의 주의는 온전히 내게 집중될 것이다.

“스텔라?”

그녀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 영애와 이백…. 이안 님 맞죠?”

“……이왕이면 저 부대 대장도요. 빚을 만들어둬야 합니다.”

내 말을 이해한 스텔라가 곧바로 몸을 뺐다.

산산이 무너진 붉은 거성의 공터.

이제 이곳에 남은 것은 나와 엘프란, 두 사람뿐이었다.

쿠오오오오…!

곧바로 소환문을 열어, 두 기의 데스나이트를 불러냈다.

베르켈의 첫 번째 기사, 레이븐.

그리고 대성당 지하에서 만난, 이름 없는 기사.

촤륵-!

그림자로 된 검 두 자루가 일제히 엘프란을 겨눴다.

- 아린, 아울.

확인하듯 이름을 부르자, 그림자에서 즉각 반응이 왔다.

이들이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전력.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가지고 제국 최고의 마법사를 죽이는 것이었다.

“곱게 죽지는 못할 줄 알아라. 클라인 라인란트.”

화륵-!

엘프란의 등 뒤로 불타는 마법진이 떠올랐다.

톱니바퀴처럼 얽혀 회전하는 마법진과, 그사이에 선 늙은 마법사.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뜨거운 불덩이들이, 마법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작전은?

- 별거 없어. 돌입해서, 이걸로 죽인다.

허리춤에 찬 수정검을 보이자, 레이븐이 어깨를 으쓱였다.

- 뭐, 베르켈 녀석에 비하면 훨씬 나은 계획이군.

그 말과 함께, 날 포함한 세 명의 검사가 동시에 엘프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버러지들이-!”

곧바로 엘프란의 등 뒤에 생성된 불덩이들이 날 향했다.

얼핏 봐선 초급 화염 마법인 화염구와 다름없는 단출한 형상.

그렇게만 난 코앞에 다다른 그 불꽃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쿠콰아아아앙-!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불덩이가 폭발했다.

공간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폭발.

성벽을 까부술 때 사용하는 공성 마법, 트레뷰셋(Trebuchet)이었다.

야 이 미친.

저건 마법사 세 명이 같이 사용하는 마법이잖아.

저걸 난사한다고?”

- 그 성장이라는 물건, 제대로 작동한 게 맞기는 한 건가?

“진짜 빡치는 게, 한 치 오차도 없이 작동했다. 저건 그냥 저 새끼가 X나 쎈 거야.”

이미 우릴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가 십 수 개.

더 불평할 겨를도 없었다.

저것 중 하나만 맞아도 내 몸이고 영체고 통째로 박살 날 테니까.

쿠콰아아앙-!

코앞까지 다다른 불덩이 하나가 폭발했다.

“하! 어떠냐! 이걸로…!”

바닥이 통째로 녹아내리는 열량.

명중했다고 생각한 듯, 엘프란이 주먹을 꽉 쥐었지만 어림도 없다.

“아린!”

실명을 피하고자 눈을 가린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림자로 이어진 이형의 몸체.

이빨과 눈이 가득한 그녀의 몸이 엘프란의 마법을 받아냈다.

- 도련님! 저 잘했죠!

칭찬을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나중에 과자나 왕창 사 먹여야지.

“크으……!”

예속되는 이변에 엘프란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맨 먼저 정면에 도달한 것은 레이븐.

그는 지체없이 그를 향해 그림자 검을 휘둘렀다.

투콰앙-!

엘프란의 마력장과 레이븐의 검이 부딪히며, 공간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데스나이트! 이딴 장난감으로…!”

카앙-!

레이븐의 마력이 재차 마력장을 공격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촤륵-!

그러는 사이, 이름 없는 기사가 엘프란의 뒤를 잡았다.

- 좋아, 두 방향을 동시에 제압하고, 그 틈을 노린다!

독백임과 동시에, 휘하 언데드들에게 보내는 지령.

내 명령을 알아챈 레이븐이 곧바로 놈의 주의를 돌리고자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나약한 미물들이, 같잖은 발악을-!”

엘프란의 일갈과 함께, 그를 중심으로 한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쿠콰아아아앙-!

충격을 이기지 못한 데스나이트들이 하늘을 날았다.

“이런 씨……!”

거의 접근했다 싶더니 이 꼴인가.

역시, 정공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상대다.

그렇다면, 남은 수는 한 가지.

도박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다.

“마력도 없는 약한 자가, 잘도 여기까지 날 몰아붙였구나.”

그의 등 뒤에 떠오른 수십 개의 불덩이가 한곳으로 모였다.

타고난 눈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압축된 마법.

“그렇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니가 나보다 쎈 건 자알~ 알겠는데.”

후우.

심호흡을 한 뒤, 그를 향해 말했다.

“그게 내가 널 이기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아.”

“……하!”

엘프란의 대답은 차가운 비웃음.

“지금 네 꼴을 보고도 그 따위 허세를 부리는거냐?!”

그는 내게 마법을 겨눈 채로 외쳤다.

“다 죽어가는 언데드들에, 검 한 자루! 그걸로 이 나를 이기겠다고?! 제국 최고의 마법사인 이 나를?!”

한 자루 아닌데.

두 자룬데.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 이긴다.”

“……!”

“베르켈도 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오래 전, 얼음성 중심부에서의 결전을 떠올렸다.

다 쓰러져가는 기사 열둘에, 마력이 바닥난 마법사 둘.

갑옷은 다 부서져 가고, 그 또한 전투의 후유증으로 쇠약해진 상황.

그렇지만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내 군세를 뚫고, 내 앞에 섰다.

고고히 나와 마주한 채, 검 한 자루만으로 승리했단 말이다.

“내 이름은 클라인 라인란트.”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등을 보며 생각했었다.

“대륙의 영웅, 베르켈 라인란트의 자손이다.”

언제고, 그와 같은 자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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