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23화 (123/209)

123. 마법전(2)

파아아앗-!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것도 잠시.

나와 일행들은 포탈의 목적지, ‘붉은 궁전’에 도착했다.

쿵!

“아윽?!”

“에구구?”

포탈을 탈 때 느껴지는 기묘한 부유감.

그것을 느낀 것이 처음인 듯, 이안과 스텔라는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난 어떻냐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전생에 수도 없이 드나든 포탈인데 이런 초짜들처럼 넘어질 리가…!

쿵.

……

………

그래, 이제 생각났다.

나 전생에서도 이거 탈 때마다 넘어졌었지.

“에이, 씨. 모양 빠지게….”

넘어진 부분을 툭툭 털고 일어나 오랜만에 찾아온 아공간의 전경을 둘러봤다.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땅덩이와 그 가운데에 자리한 붉은 벽돌의 성.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붉은 거성’과 똑 같은 구조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도처에 널려있는 전투마법사들의 시체들.

그걸 제외하면 성의 외관 정도일까?

“뭔 놈의 장식을 저리 으리으리하게 했놨어?”

눈에 띄게 번쩍거리는 성채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동상에 장식에.

그리고 무슨 정원이라도 된 것 마냥 정갈하게 꾸며둔 바닥까지.

“우, 우와아….”

“놀라운 규모로군. 아일라시스가 왜 명가인지 알 것 같은데.”

뒤에 선 두 사람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여기 원래 창고였거든.

쿠콰아아앙-!

그러던 사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성의 한 귀퉁이가 터져나갔다.

폭심지에서 용솟음치는 불꽃.

화염마법으로 일어난 폭발이었다.

- 허, 제국 공작이라는 말이 허명은 아닌 모양이군.

내 눈을 통해 전장을 둘러본 레이븐이 말했다.

- 전투가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힘이 남아있어.

“거의 1대 600으로 마법을 주고받았는데 말이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한들,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다.

한 명의 개인이 혼자서 군대를 상대하는 경우는 손에 꼽기 마련.

하인켈과 델라인이 그랬듯, 엘프란 역시 제국 3대 공작이라는 힘에 걸맞는 위명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중대, 잔존 인원 확인해라…! 남은 이들은…!”

“젠장, 무슨 마력이…!”

물론, 거기에 맞서는 전투마법사들 역시 쉽게 밀리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미 부대의 3할에 달하는 인원이 시체로 변한 상황.

통상적인 전투부대였다면 전멸 판정을 받아야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음, 아주 좋아.

이 정도는 해 줘야 이용해먹은 보람이 있지.

- 시엘.

그렇게 나 혼자 뿌듯해있던 사이.

성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얕은 수를 쓰는구나. 이 따위 잡것들로 날 소모시키려 하다니.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거대한 음성.

사람이 아니라, 마치 이 공간을 관장하는 신이라도 되는 근엄한 목소리였다.

‘아니, 내가 한건데.’

내가 속으로 그렇게 말하던 순간.

투화악-!

폭발로 일어난 시뻘건 불길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났다.

금장과 온갖 룬으로 장식된 붉은 로브.

아일라시스 마법사들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 가문의 중진들과 원로들을 학살한 것도 모자라, 신성한 마법전에 외부인을 끌어들이기까지 해?!

그렇게 말한 엘프란이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 내려왔다.

공중에 떠있는 인간이 어떻게 걸어서 내려오냐고?

보는 나도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있는 건가?

“음?”

엘프란의 모습을 확인하던 내 눈이 좁아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엘프란의 손에, 누군가가 붙잡혀있었다.

“끄으으……!”

플리시안 전투마법사의 제복을 갖춘 남자.

밴시의 눈으로 보았던, 전투마법사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 예전처럼 속절없이 당하지 않을 것이다 시엘. 이번에야 말로 숨통을 끊어주지!

그 말과 함께, 엘프란은 들고 있던 지휘관의 몸을 공중으로 내던져버렸다.

몸무게가 상당할 텐데, 그걸 한 손으로 던져버리네.

마법사들은 태반이 힘없는 샌님인 줄 알았는데.

쿵-!

“크, 크아악?!”

“오, 뭐야. 아직 살아있네?”

신체 강화일까, 아니면 마력장이 남아있던 것일까.

그 높은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지휘관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몸 상태를 보니, 반쯤 시체짝인 것 같지만.

“클라인, 공자…?”

“그쪽은 플리시안에서 나온 사람일 테고 말이지.”

내가 사지 멀쩡한 상태로 나타난 것에 놀란 듯,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된 거요, 분명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

“먼저 도착해서, 엘프란의 힘을 뺐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렇지?”

“……!”

정곡을 찔린 건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기선제압은 이쯤 하고, 슬슬 구슬려볼까?’

협상의 기본은 상대와 동등한 위치, 혹은 우위에 서는 것.

1차 조건을 만족한 난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뭐, 굳이 비겁하니 뭐니 토를 달 생각은 없어.”

“…….”

“내가 내 목적에 충실했듯이, 당신은 플리시안의 국익을 위해 행동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유일한 차이는 포탈에 대한 정보뿐이지.

마지막 한 마디를 삼킨 뒤,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원하는 게 뭐요.”

마지못해 내뱉은 한마디에 기분이 절로 즐거워졌다.

“별로 어려운 건 아니야. 공동전선을 펴자는 거지.”

물론, 지휘권은 내가 잡고.

그렇게 말하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제안했어야지! 우린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단 말이…!”

“제안했으면 들어줄 생각은 있었고?”

이거 봐라. 또 말 없어지는 거.

니들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뭐라 한들, 당신의 제안은 들을 가치가 없소. 플리시안의 전투마법사 부대를, 제국의 귀족이 지휘하겠다니.”

“그래? 그럼 됐어.”

그렇게 말한 난 검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말했다.

“그럼 입막음으로 다 죽여버려야지.”

“무, 뭐라……?”

거침없는 내 한마디에 지휘관의 눈이 커졌다.

“내 입장에선 손해 볼 거 없어. 죽은 너희들 시체를 되살리면 될 일이니까 말이지.”

“자, 잠깐……!”

태연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지휘관의 얼굴은 아예 새파래졌다.

‘뭐, 수틀리면 정말로 그럴 생각이지만.’

포탈 입구는 맘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전멸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오지 뭐.

협박해서 장기말로 써먹는 거다.

“선택해, 여기서 패장으로 죽을 건지, 협력해서 같이 엘프란 모가지를 따던지.”

“……!”

포탈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 또한 그것을 깨달은 듯, 지휘관은 고개를 푹 숙였다.

“따르겠소. 클라인 공자.”

좋아.

계획대로.

이 맛에 정치질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뿌듯해하고 있을 무렵.

쿠콰아아앙-!

등 뒤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얘긴 다 끝났냐?”

날 향해 날아온 엘프란의 불덩이.

이안의 마력검이 그것을 쳐낸 것이었다.

- 이안 라인란트, 더러운 변절자가 감히…!

“더럽기는 피차 마찬가지지. 안 그렇소, 엘프란?”

공작 칭호를 붙이지 않은 호칭에 엘프란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 저런 자와 손을 잡다니! 시엘, 정녕 얼마나 더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해야…!

“먹칠이라니, 누가 할 소리를.”

잔뜩 화가 난 엘프란과는 달리 시엘의 태도는 차분했다.

“마법전의 결과를 인정 못 하고 외국으로 달아난 버러지가, 어느 안전이라고 가문의 명예를 들먹이는 겁니까?”

- ……!

이야~ 말하는 것 좀 보게.

핵심을 꿰뚫는 한마디에 엘프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심지어, 그 모습은 또 뭔가요?”

30대 시절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온 엘프란.

그 모습을 본 시엘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뒤 말했다

“그렇게 혐오하던 네크로맨서에 기대, 어떻게든 힘을 키워보겠다 발악하는 꼴이라니….”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시엘은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마지막으로 말했다.

“참, 애절하기 짝이 없군요. 아버지.”

- ………!

시엘이 보인 것은 명백한 비웃음.

그 말을 듣자, 엘프란의 입에서 뿌득,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진 듯했다.

- 시엘-!

엘프란의 주변에 수십 개의 불덩이가 생성되었다.

마법사들이 으레 공격 마법으로 쓰던 화염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농도.

아일라시스 마법사들의 포격 마법 중 하나인, ‘홍염’이었다.

“…….”

하늘에 떠오른 불덩이의 열기가 이곳까지 전해졌다.

그렇지만 그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엘은 아무런 동요 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르르르……!

시엘이 손을 들자, 그녀 주변의 땅이 지반 째 들어 올려졌다.

엘프란의 홍염에 맞춰 생성되는 수십 발의 중력시(重力矢)

끼아아아아아아-!

압축된 돌덩이가 뒤틀리는 소리는 마치 이 세계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서로를 응시한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던 두 사람은 이윽고.

투화악-!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 각자의 마법을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쿠오오오---!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물들고, 그 뒤에 나타난 것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공간이었다.

극한으로 압축된 물리력과 거기에 맞서는 압도적인 열.

딛고 있는 땅이 쉴새 없이 진동하며 온 세상을 비명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으, 으아악?!”

“대장님! 버틸 수가…! 크아악?!”

부딪힌 마법의 여파를 막는 와중에 전투마법사 몇 명이 하늘을 날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는 상황.

난 곧바로 마기를 뿜어 부를 수 있는 언데드를 전부 불러냈다.

- 크아아아-!

- 키이이이-!

이전 전투 때 소모한 탓에, 부를 수 있는 병력은 만 구가 한계.

난 공간을 빼곡하게 메운 스켈레톤들의 양팔에 대방패를 장비시켰다.

“전투마법사 부대를 최대한 지킨다. 무슨 말인지 알지?”

- 키이이-!

내 지시를 받은 스켈레톤들이 곧바로 전투마법사들과 합류했다.

쿠콰아앙-!

폭발에서 튀어나온 파편, 잔류마력, 그리고 간간이 이어지는 엘프란의 광범위 폭격.

내 스켈레톤들은 그 재앙과도 같은 힘에서, 몸을 던져 전투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후, 훌륭하군. 이거라면…!”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

난 애써 몸을 일으킨 지휘관을 향해 지시했다.

“전투마법사단은 시엘을 지원한다. 구속 술식이든 뭐든 좋으니, 최대한 산개해서 엘프란의 움직임을 막아.”

“알겠소.”

내 말을 들은 지휘관은 곧바로 남은 병력을 집결시켜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삼촌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돌입해서 엘프란의 흐름을 끊어주세요. 전투마법사들이 놈을 묶을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늙은이 부려먹는 솜씨가 예술이구만 그래?”

이안 역시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그런 전, 왔던 길로 돌아가서 밥이나 먹으면 되나요?”

이윽고 날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스텔라였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쪽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할 일이요? 제가요?”

내 말에 스텔라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전투가 한창인 공중을 바라보았다.

“전 저기에 꼈다간 그대로 사라질 텐데요.”

“뭐, 맞는 말이죠.”

하인켈의 버금가는 병사에, 중력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에, 전투마법사 수백.

전투라기보단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러니 그쪽은 저와 함께 성채 내부로 들어갈 겁니다.”

“성채 내부요?”

스텔라가 되묻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쉴새 없이 마법을 난사하는 엘프란.

그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저 괴물을 잡으려면, 성 지하에서 뭘 좀 가져와야 할 것 같거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