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마법전(1)
“이게 뭐죠?”
“포탈이에요.”
스텔라의 질문에 답한 것은 시엘이었다.
“포… 탈?”
그렇지만 스텔라는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포탈? 어디 있는데?”
그런 스텔라와는 달리, 이안은 신기한 것이 어딨냐는 듯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눈 굴려서 뭐합니까?”
“이놈이 삼촌을 놀리는 것도 모자라서 맹인을 놀려? 천벌 받는다 이놈아!”
‘천벌은 무슨. 날 벌한 건 신이 아니라 베르켈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되게 신기하네요. 이 부분만 왜곡된 것처럼….”
“잘 봐두는 게 좋을 거다.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구경거리니까.”
스텔라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안은 못내 아까운 것처럼 보였다.
구경거리라.
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긴 하다.
아공간.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대륙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가공해 만들어내는 ‘전송석’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는 완전히 격리된 공간이었다.
“이것이, 아일라시스 공작에게 전해지는 가문의 비보.”
그렇게 묻는 내 말에 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공간에 형성된 아일라시스 공작가의 영지, ‘붉은 궁전’으로 통하는 포탈이에요.”
붉은 ‘궁전’이란다.
그사이 이름까지 바꿔놨네.
“그럼 엘프란이 가지고 달아났다는 건….”
“그곳으로 향하는 전송석이죠.”
가문의 비보라고 해서 뭔가 했는데, 설마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 역시 마법사 가문이라 그런가,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군.
- 자네 가문도 공작가라며? 라인란트는 이런 거 없나?
있을 턱이 없다.
있다 해도 사용할 수도 없을 테고.
전송석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고위 마법사들뿐이니까.
네크로맨서인 난 왜 전송석을 사용할 수 있었냐고?
당시 내가 거느리던 리치만 다섯이다.
괜히 대륙의 공적이 아니었단 말씀.
“그럼, 엘프란은 이곳으로 도망친 거네요?”
“아뇨, 반대입니다.”
스텔라에게 답한 것은 시엘이었다.
“전송석은 하나. 아공간과 연결된 통로 또한 하나. 도망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란 시엘이 손을 풀었다.
“엘프란은 지금, 제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쿠구구구구….
당장이라도 터질 듯 요동치는 마력.
마탑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도, 그녀의 마력은 강성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와서 죽여보라고.”
엘프란은 시엘과의 마법전에서 패배해 도망친 상황.
이걸 타파하고 공작위를 되찾기 위해선, 다시 한번 시엘과 싸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패배해서 도망친 놈이, 이제 와서 다시 싸우자고? 그것도 자기가 미리 준비해 놓은 공간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안이 말했다.
“대놓고 함정을 판 격인데, 이걸 들어갈 생각이냐?”
“네. 들어갈 거에요.”
이안의 경고가 이어졌지만, 시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엘의 직위는 공작이 아닌 ‘임시 가주’.
엘프란의 숨통을 끊지 않는다면, 그녀는 가문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이다.
- 아아아-!
그러던 와중, 공중에 띄워놨던 밴시로부터 신호가 왔다.
“이제야 나타나시는구만?”
그렇게 비꼰 난 한쪽 눈을 감아 밴시와 시각을 연결했다.
마탑을 향해 달려오는 플리시안 전투마법사 부대.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기세였다.
“참 빨리도 온다. 다 끝나서야 얼굴을 내미는군.”
이안이 그렇게 이죽거렸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반대입니다. 일부러 늦게 온 거죠.”
생명 반응은 전부터 존재했었다.
일부러 기다린 것이겠지.
우리가 교단을 처리하거나, 공멸할 때까지.
파아아앗-!
내가 말하는 사이, 마탑 천장에서 다가온 마력광이 순식간에 우리가 있는 공간을 훑었다.
“감지술식이에요. 여기 있는 게 뭔지도 알아챈 것 같은데요?”
놈들의 목표는 엘프란.
포탈의 존재까지 드러났으니, 놈들은 아마 선수를 치려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으음…….”
팔짱을 낀 이안이 내게 물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플리시안의 군대.
그리고 눈앞에 놓인 포탈까지.
이거 참.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릴 줄은 몰랐는데.
“저쪽에서 걸었던 수작을 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돌려줘요?”
내 말에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을 먼저 포탈로 들여보내서 엘프란의 힘을 소모시키면 되잖아요.”
“허, 그게 말이 쉽지.”
그렇게 말하자, 이안이 내게 물었다.
“저 전투마법사들이 바보는 아닐 것 아니냐? 우리가 먼저 안 들어가면 수상하게 여길 텐데?”
“맞아요. 그래서 먼저 들어갈 겁니다.”
“뭐?”
내 대답에 이안과 스텔라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린 반면.
“아아~!”
마법사인 시엘은 내 의도를 알아챈 듯, 양손을 모은 채 탄성을 내질렀다.
“전이 시점을 조작할 생각이에요?”
“바로 맞췄네요.”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시엘은 계속해서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 전이문의 구조를 다 꿰뚫고 있어야 해요. 지금부터 해석한다고 해도 사흘은 더 걸릴 텐데….”
맞는 말이다.
내가 이 전이문을 처음 본다면 말이지.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렇게 말한 난 마기를 뿜어 계약문을 작동시켰다.
“앙헬.”
내가 부른 것은 언데드 리치, 앙헬.
내 목소리에 푸른 계약문에서 로브를 두른 해골이 솟아났다.
“어떻게 할지는 알고 있지?”
상호계약으로 연결된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는 감정과 머릿속 정보를 일정 부분 공유한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전하자, 앙헬의 앙상한 손가락이 뼈로 된 그의 턱을 두드렸다.
- 이것 참, 실컷 부려먹히는구만.
그렇게 말한 앙헬은 곧바로 전이문에 손을 뻗었다.
우우웅-!
일그러진 전이문에 앙헬의 마력이 더해지고.
이윽고 공중에 뜬 소용돌이의 형태가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갔다.
- 아공간에 들어가 있는 동안엔 자네와 내 연결이 끊어질걸세.
“그렇겠지. 왜, 도망가려고?”
짓궂은 표정으로 내가 묻자, 앙헬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저쪽에선 날 쓸 수 없을 거란 말일세. 리치 없이 괜찮은가 싶어서 말일세.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한 난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을 툭, 하고 건드렸다.
“이래 봬도, 믿는 구석인 없는 건 아니거든.”
마법사의 천적은 지근거리에 다가온 기사.
그 사실을 상기시키자, 앙헬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죠.”
말을 마친 난 곧바로 전이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기대되네요, 클라인!”
목숨 내놓고 싸우러 가는데 뭐가 그렇게 신난 건지.
시엘은 연신 싱글벙글한 채로 내 뒤를 따랐다.
“나 원 참, 정말 안전한 거 맞지?”
내 계획이 미심쩍은 듯, 이안이 툴툴거리며 들어갔고.
“어…… 잘 부탁합니다, 해골 아저씨?”
스텔라의 경우엔 가까이서 보는 언데드가 처음인 듯,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걱정 말고 가시게나, 수녀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와 일행들은 전부 모습을 감췄고.
“이쪽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플리시안의 전투마법사들이 마탑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
“멍청하긴, 정말로 먼저 들어갈 줄이야.”
플리시안 국왕청 소속 전투마법사 2대대장, 멜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전이문을 바라보았다.
“대대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금 전 전투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다간….”
“으음…….”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멜라드의 고심이 깊어졌다.
마탑에 들어찬 네크로맨서의 수는 상상 이상이었다.
시엘 공녀의 마력이 아무리 고강하다 한들,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그렇기에 그는 시엘 공녀 측과 엘프란 측이 서로 공멸할 때까지 기다렸다.
병력 손실 없이 그들 모두를 제압할 수 있다면, 최상의 결과일 테니까.
‘그런데 설마, 클라인 공자의 사령술이 변수가 될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마탑 주위를 빈틈없이 에워싼 소환문.
그곳에서 기어 나오는 수만 구의 언데드가 마탑으로 쏟아지는 광경까지.
‘언데드의 몸체로 찍어눌러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방어술식의 중추를 파괴했다.’
덕분에 시엘 공녀는 아무 견제도 받지 않고 마탑에 돌입해,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식을 깡그리 무시하는 병력 운용.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망자를 다루는 네크로맨서였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거기에 제국의 수배범, 이안 라인란트까지 합세했다.’
습격에서 첼레그를 보호한 의문의 남자.
설마 제국의 기사 학살자였을 줄이야.
그의 존재를 떠올리자, 멜라드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시엘 공녀에 이안, 거기에 네크로맨서와 교단의 수녀까지…. 어쩌면, 정말로 엘프란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최악이었다.
이미 플리시안은 인체실험을 일삼는 네크로맨서 집단을 은폐했다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그런 마당에, 엘프란조차도 확보하지 못한다면?
‘플리시안의 위신은 땅에 떨어진다.’
대륙의 공적인 아키몬드를 추종하는 네크로맨서와 결탁한 마법사.
그런 자들과 거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대륙에 없을 것이다.
“좋아. 돌입한다.”
“대대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휘하 중대장들이 확인하듯 물었지만, 그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성급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엘 공녀가 먼저 들어갔다면, 엘프란이 준비한 함정과 방어술식들 역시 전부 작동했을 테지.”
돌파되었든, 방어를 뚫지 못하고 전멸했든.
거점의 방어가 약해진 지금은 오히려 기회였다.
“아공간 내부에는 전투가 한창일 터. 엘프란과 시엘 공녀 양측 모두 마력을 소모했을 거다.”
고민하는 동안 경과한 시간이 한 시간.
이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전투가 끝났거나 결착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 쪽이 되었건 힘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저 급습하면 될 뿐.
촤앙-!
허리춤에 찬 검을 뽑은 멜라드가 대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전군, 포탈로 진입한다!”
그의 명령에 중대장들이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척! 척! 척!
군화 소리를 맞춘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일그러진 포탈을 향해 들어갔다.
“아공간에 도달하는 즉시 돌입해, 엘프란 공작을 생포한다!”
“방심하지 마라! 남아있는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충분히 방어마법을…!”
중대장들의 당부와 함께, 멜라드는 가장 앞장서 포탈을 향해 들어갔다.
파아아앗-!
시야가 점멸하고, 눈앞이 하얘졌다.
물속을 부유하듯 잠시 떠오른 몸이, 어느 순간 끌어 올려져 땅을 향해 내던져졌다.
탁-!
처음 경험하는 이물감에 균형을 잃을 법도 했지만, 그는 훈련받은 군인.
안정적으로 착지한 그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아일라시스의 진짜 영지….”
은하수로 뒤덮인 하늘.
지평선까지 쭉 뻗은 평야 한가운데에 우뚝 선, 붉은 성채.
태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 공간에선 한 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투의 흔적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주변을 확인한 멜라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함께 전이된 병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의 흔적이 없다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성 내부.
그곳을 돌입하려면….
“전군! 재정렬 후 요새로 돌격…!‘
그러나, 그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
- 어떻게 된 거냐, 너흰 시엘이 아니잖아?!
오만한 목소리가 멜라드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뭐, 뭐라?”
화들짝 놀란 그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위에 뜬 채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엘프란.
그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던 본래의 모습이 아닌, 30대 시절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온 채였다.
아니, 지금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엘프란의 상태.
“왜, 왜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렇게 말하던 순간.
- 시엘 년에게 복수하기 위해 전부 준비했더니, 이런 버러지들이 찾아올 줄이야……!
우우우웅-!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한 엘프란의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 거대한 불덩이가 생성되었다.
마법사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 마법, 화염구.
그렇지만 그 크기가 기존의 것보다 수십 배는 더 컸다.
“대, 대대장님?!”
“방어술식이 작동합니다! 이것들 전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작동한 줄 알았던 수많은 함정, 방어술식, 구속주문.
그 모든 것들이 멀쩡한 채로, 자신과 부대원들을 노리고 있었다.
“저, 전원 전투준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주어진 상황은 명확했다.
자신들은 지금, 만전의 상태인 엘프란을 상대로, 마법전을 벌여야 했다.
“엘프란을 잡아라-!”
“버러지들이, 감히 내 계획을 어그러뜨려?! 전부 죽여버리겠다!”
각자의 일갈과 함께, 온갖 마법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았다.
이어지는 것은 수많은 폭음.
엘프란 아일라시스와 플리시안 전투마법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