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가문의 비보(3)
투둑. 투두둑.
시엘의 폭격으로 산산이 무너진 마탑.
한 층이 통째로 날아간 탓인지, 곧바로 최하층으로 향하는 경사로가 형성되었다.
툭.
“어이쿠!”
물론, 말이 좋아 경사로지.
돌무더기로 이뤄진 울퉁불퉁한 길에 이안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어이구, 이거 참. 맹인한테는 길이 좀 안 좋구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잘 다니시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일까?
“앗, 잠시만요!”
공중에 부양해있는 시엘이 곧바로 내려와 경사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꾸드드드드…!
중력 마법으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정리하자, 나선형으로 이어진 평평한 경사로가 완성되었다.
“자, 잠깐…!”
“우린 아직 여기에…!”
잔해 속에 파묻힌 아키몬드 교단의 네크로맨서들이 뭐라 중얼거렸지만.
으직!
시엘이 한층 무게를 더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죄송해요, 이안 님. 너무 급해서….”
“아니, 뭐…….”
정말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시엘의 모습에 이안이 답지 않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야, 조카놈아.”
“듣고 있습니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시엘을 곁눈질하며 이안이 내게 귓속말했다.
“쟤가 진짜로 네 약혼녀라고?”
“놀랍죠? 저도 가끔 믿기지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고 싶지 않은 거지.
이안에게 유난히 공손한 저 태도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설마, 시엘이 지금 저렇게 내숭 떠는 게….
“예비 시댁 식구라서 챙기는 거겠죠.”
“쿨럭-!”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지금 뭐, 뭐라고….”
“그냥 그렇게 보여서요.”
심드렁한 스텔라의 말에 소름이 절로 돋았다.
“클라인! 이쪽이에요!”
밝은 표정으로 내게 외치는 시엘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언제 내가 말했었던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실력 좋은 장의사가, 다 파놓은 무덤에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하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허허허.”
헛웃음과 함께 말을 흐린 이안이 내 주변을 살폈다.
내 뒤에서 따라오는 스텔라.
그림자 속에서 대기 중인 아린.
그리고 앞장서 가고 있는 시엘까지.
“넌 어떻게 된 놈이, 주변에 정상인 한 명이 없냐?”
“…방금 자기소개하신 거 맞죠?”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그렇게 말했다.
뚫린 입이라고 참 잘도 내뱉는구만?
일행 중 비정상이기로는 손에 꼽는 양반이!
- 정상인이 없다는 점에선 동감이지만, 특히 저쪽은 궤가 달라.
‘넌 왜 나와서 아픈 데 불질이야?’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앙헬에게 쏘아붙였다.
이안이 이죽거리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이젠 언데드놈들까지 난리라니.
- 저 시엘이라는 여인의 마력회로.
그렇게 말한 앙헬이 내 쪽을 슬쩍 돌아봤다.
‘…….’
장난스러운 어투였던 방금전과는 다른 진지한 말투.
앞장서서 걷는 시엘을 향한 내 표정 또한 굳어있었다.
- 사람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앙헬의 지적에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의 마력이 아무리 고강하다 한들, 마법사 한 명의 마력.
가문의 원로들을 전부 몰살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낼 수는 없다.
그녀가 지닌 힘의 원천은 마력의 양이 아닌 성질.
중력조작이라는 성질을 지닌, 그녀의 마력 회로였다.
- 그녀가 쓰는 마법은 별을 움직이는 원초의 힘.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야.
리치의 몸을 하고 있으나, 앙헬은 아이신기오르의 궁정 마법사.
시엘의 마력 회로를 확인한 그는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중력조작.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용들뿐이었지.’
그의 말을 받은 난 최하층에 위치한 기다란 문을 보았다.
엘프란 아일라시스.
제국과 마법 학계가 그에게 붙인 이명, 조정자.
그 이명에 걸맞게, 그는 마력 회로 이론의 권위자였다.
흔하디흔한 범재였던 첼레그의 마력을, 동세대 마법사들 중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시엘이 왜 엘프란을 못 죽여 안달인지, 슬슬 알 것 같구만.’
이안이 그랬었나?
주변 사람들 중 정상인이 없다고.
근데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말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았다.
귀족이고 악당이고, 황제고 뭐고.
대륙에 정상인이 하나도 없다고.
***
“젠장,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야, 놀랍네. 나도 비슷한 생각 하고 있거든.”
최하층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한 일은 살아남은 네크로맨서들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콱-!
“으극-?!”
검손잡이로 비척거리는 네크로맨서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살아있는 인간의 혼을 감지하는 밴시.
그리고 지천에 깔린 스켈레톤들까지.
십수 명의 네크로맨서가 내 앞으로 끌려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좋아, 대가리들은 아직 숨이 붙어있군.”
그렇게 말한 난 네크로맨서 중 한 명을 찾아 끄집어냈다.
“교, 교주님!”
“크으으…!”
방금 전까지 내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교단의 교주.
그의 멱살을 잡아 올리자,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이분은…!”
“너희 구더기 새끼들의 수장이겠지. 다 알아.”
그렇게 말한 난 교주라는 늙은이와 얼굴을 마주했다.
“흐, 흐흐흐……!”
백태가 낀 두 눈에, 검게 죽은 피부.
깡마른 몸 곳곳에 가득한 흉터와 문신.
그것을 알아본 내 눈이 가늘어졌다.
“절반 정도는 시체로군.”
그의 몸에서 원래 제 것이었던 것을 찾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장기, 뼈.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이 자는, 사령술로 남의 신체를 이어붙여 수명을 늘려 온 것이었다.
“꼬락서니를 보니, 제명의 두 배는 넘게 살았을 것 같은데.”
“크흐흐흐…. 잘 알아봤군.”
스산하게 웃은 교주가 텅 빈 동공을 내게 향했다.
“클라인 라인란트. 북방의 마녀가 낳은 저주받은 씨앗…!”
“…….”
역시.
방금 전 내뱉은 말도 그렇고, 지금 내게 보이는 태도도 그렇고.
이 녀석은 날 알고 있는 인간이다.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온 줄도 모르는 멍청한…!”
“이 새끼는 뭔데 초면에 욕질이야?”
역시 이 버러지들은 말로 하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며 교주의 몸을 집어 던졌다.
“끄아악?!”
떨어진 곳이 잘못된 건가?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별 감흥은 일지 않았다.
뒤지려면 뒤지라지.
“크, 크흐흐흐-!”
고통에 못이겨 비명을 지르면서도, 교주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용없다!”
그렇게 말문을 연 교주는 하얗게 죽은 눈을 내게 고정한 채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우릴 고문한다 한들,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할……!”
“알아낼 생각 없어. 그냥 화풀이야.”
그런 그의 말을 끊은 뒤,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한번 얼굴이나 좀 볼 생각이었고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난, 바닥에 쓰러진 교주를 향해 망자의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 자, 이제 잘 봐라. 내가 누구인지.
그렇게 말하자, 교주의 눈이 무심코 내 얼굴을 향했다.
“……어?”
눈앞에서 대면한 내 모습.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몇 번 더 눈을 깜빡인 교주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아아아……!”
“쯧.”
이윽고 들려오는 것은 탄성.
환희에 찬 그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들끓었다.
‘반혼술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반푼이들이라 한들, 이놈들 또한 마기를 다루는 네크로맨서.’
그리고 마기를 받아들인 자의 눈은, 대상의 형상이 아닌 영혼을 보는 법이지.
“아, 아키……!”
- 닥쳐라.
내 이름을 부르려던 교주의 입이 틀어막혔다.
저놈이 내 존재에 감동을 하던, 경외를 느끼던 아무 감흥도 없다.
그저 불쾌할 뿐.
“꺽, 꺼어억…?”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교주는 당황한 듯 목을 부여잡았다.
- 내가 굳이 네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별 것 아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난 교주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 내 이름을 팔아먹는 버러지가 당췌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들여다본 것뿐이지.
버러지.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내가 자신을 그렇게 칭하자, 교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 이름을 팔다니요! 아닙니다! 저흰 당신의 부활을 위해……!”
- 닥치라고 했다.
울분에 차 탄원하려는 그의 말을 끊었다.
굳이 힘을 써 입을 틀어막을 필요도 없었다.
이미 심장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공간을 남김없이 장악한 뒤였으니까.
- 시체를 기워 소꿉장난이나 쳐대던 것들이, 아키몬드 교단? 날 부활시켜?
“흐, 흐으으……!”
뇌리에 꽂히는 망자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산산이 조각냈다.
극심한 공포에 교주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 너희들은 그저, 제 욕심을 위해 내 이름을 이용한 벌레들이요, 구제할 길 없는 쓰레기들이다. 죽은 내 악명을 파먹고 창궐한 구더기들이다.
더 할 말은 없었다.
경멸과 함께 일어선 뒤, 레이븐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들은 내 행동의 결과.
자신의 허물은 자기가 직접 치우는 것이 세상의 섭리였으니까.
- 따로 심문할 필요는 없는 건가?
“없어.”
레이븐의 물음에 짧게 답한 난 심장에서 마기를 끌어 올렸다.
“이놈들의 혼과 시체를 파헤치면 되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이븐은 곧바로 네크로맨서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기대할까 싶어 말해두겠는데.”
“……!”
이미 정신이 붕괴된 교주를 제외한, 다른 네크로맨서들에게 말했다.
“너희 버러지들은…. 죽은 뒤에 안식을 누릴 생각 따윈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무, 무슨……?”
네크로맨서라 불러주고 싶지도 않은 삼류.
마기로 그들의 혼을 제압했다.
“어, 어어……!”
“끄, 끄으으……?”
영혼을 제압당한 순간, 그들 역시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겁먹은 표정을 짓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 아키몬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마.”
온몸을 떨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을 내려다보며 고했다.
“너희들에게는 잠깐의 평온도, 조금의 안식도 허하지 않을 것이라고.”
“………!”
네크로맨서이기에.
그중에서도 나, 아키몬드이기에 내릴 수 있는 형벌이었다.
- 육체의 죽음은 한순간이나, 영혼은 영원히 얽매여 고통받을지니.
그렇게 운을 뗀 나는, 날 올려다보는 교단의 네크로맨서들에게 고했다.
이미 죽어 파묻혀있는, 수많은 네크로맨서들의 혼들에게 말했다.
- 너희들의 혼은, 썩은 시체에 얽매여 영원히 환원되지 못하리라.
“아, 안……!”
스걱-!
검광이 번뜩이고, 남아있던 네크로맨서들의 머리가 일제히 하늘을 날았다.
참회할 시간도, 기회도 주지 않았다.
툭.
장벽에서부터 날 따라붙었던 아키몬드 교단의 최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초라한 결말이었다.
- 이걸로 목적은 달성한 건가?
일을 마친 레이븐이 그렇게 물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나가 더 있지.”
그렇지만 내 시선은 그들이 아닌, 마탑 최심부에 한구석을 향해있었다.
마탑의 다른 구조물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이뤄진 기다란 문.
“압축.”
꾸드드드드득…!
시엘의 한 마디와 함께 문이 통째로 우그러졌다.
이윽고 시엘이 손을 휘두르자, 굳건해 보였던 철문은 쓰레기처럼 구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건 또 뭐야.”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어지럽게 널브러진 실험기구와 시약, 그리고 마법 이론서들.
인기척 없는 엘프란의 방을 본 난 눈살을 찌푸렸다.
고오오오…….
엘프란의 방 한가운데에 떠오른 소용돌이.
주변 공간이 일그러져, 마치 그곳만이 다른 세상인 듯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난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걸 누가 가져갔을가 했는데, 여기 있었군 그래?”
방 가운데에 떠오른 것은 포탈.
생전의 내가 사용하던 무구가 잠들어있는 아공간, ‘붉은 거성’으로 향하는 전송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