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20화 (120/209)

120. 가문의 비보(2)

“젠장, 이게 다 뭐야?!”

“언데드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셀 수도…!”

“교주님-!”

시엘의 마법이 엘프란의 방어술식을 박살낸 뒤.

마탑 심층부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으며 생각했다.

언데드의 격?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병기?

구덩이 속에서 바둥거리는 머저리들을 보니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언데드가 예전보다 쓸만해진 건 내 인정하지.”

밴시의 눈이 잡아낸 언데드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폴와이번에서 확보한 도플갱어의 잔해를 연구한 탓일까?

마력 회로도 안정적이고 근육 형태나 골밀도도 잘 잡혀있어, 만듦새가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봤자, 억지로 복속시킨 원령으로 만든 것.”

언데드가 내뿜는 힘의 원천은 중심부가 되는 혼.

몸체에 정착시킨 영혼의 의지에 달린다.

반혼술로 끄집어내, 낙인으로 의지를 지운 혼 따위.

아무리 질 좋은 육체를 준비한다 한들,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

- 키이이이-!

- 크웍?! 크워어어어-!

3미터의 거구가 떨어지는 스켈레톤을 쳐냈다.

콰직-!

강권에 맞은 스텔레톤의 영체가 산산조각났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젠장, 끝이 없잖아?!”

“팔 하나가 잘려나갔다! 어서 복구를…!”

“저걸 어떻게 뚫고 가란 말이야?!”

둘을 쳐낸다면 넷이.

다섯을 쳐낸다면 열이.

그들의 열 배에 달하는 수의 언데드가 대응할 새도 없이 언데드들을 파묻어버렸으니까.

- 아아아아아-!

“찾았다.”

그러는 사이.

공중에 띄워둔 밴시의 눈이 한 곳에 뭉쳐있는 네크로맨서의 무리를 포착했다.

한가운데에 서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노인.

이전에 보았던, 아키몬드 교단의 교주라는 놈이었다.

“…….”

평정을 잃지 않은 듯 보이지만, 날 바라보는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마탑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니, 저 녀석도 슬슬 열이 오르겠지.

“저, 저 건방진 놈이…!”

“우리의 지식을 집대성한 걸작을, 감히 이 따위 하급 언데드로 농락하려 들어?!”

전투에서 작품 타령이나 하고있네.

병신 같은 새끼들.

차갑게 비웃으며 손을 뻗었다.

- 창을 세워 대열을 갖춰라. 방패를 들어 저들을 틀어막아라.

내가 발한 망자의 목소리에 최하층으로 떨어진 스켈레톤들이 몸을 일으켰다.

- 키이이-!

촤르르륵-!

대열을 갖춘 채, 방패를 엮어 벽을 형성한 스켈레톤들.

이것으로 저들이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얕은 수를 쓰는군. 클라인 공자.”

스산하게 내뱉은 교주가 그런 스켈레톤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튀어나온 다섯 구의 언데드.

다른 것들과는 달리, 덩치가 두 배는 되어보이는 놈들이었다.

“하급 언데드를 아무리 밀어넣어 봐야, 내가 만들어낸 ‘브루트’에 비하면…!”

“내가 미쳤다고 하급 언데드만 보냈겠냐?”

나불대는 교주의 말을 끊으며 아래를 향해 망자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 앙헬.

그의 이름을 부르자, 언데드 대열 사이에서 집채만한 불덩이가 솟아올랐다.

“화, 화염구?!”

“마법사라니, 말도 안돼! 시엘 공녀는 저 위에……!”

경악한 네크로맨서들이 그렇게 외치자, 대열 위로 한 구의 언데드가 솟아올랐다.

- 다짜고짜 아래로 던져버리다니, 신입한테 너무 궂은 일을 시키는 것 아닌가?

짧은 농담과 함께 떠오른 것은 연기처럼 흩날리는 검은 로브를 두른 해골.

“저, 저건……!”

“언데드 리치…!”

양손에 각각 화염구와 마력탄을 시전 중인 앙헬의 모습에, 네크로맨서들이 전율했다.

뭐, 이해는 간다.

아키몬드 사변 이후, 대륙에서 발견된 치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으니까 말이지.

채챙-!

앙헬을 호위하는 열 구의 듀라한이 검을 뽑고, 대열을 갖춘 스켈레톤들이 발소리를 맞췄다.

척! 척! 척!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망자의 군대.

네크로맨서들의 눈에 잠시 공포의 빛이 서렸지만, 교주는 그것을 보며 재밌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클레어의 아들이라 할만하지!”

“뭐?”

그의 말에 내가 의문을 표하는 것도 잠시.

“가라! 가서 저것들을 전부 부숴버려라!”

교주가 손을 뻗자, 다섯 구의 브루트들이 대열을 향해 돌진했다.

쿠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하늘로 비산하는 스켈레톤.

그것을 신호로, 앙헬과 네크로맨서들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렇게 성장한 거냐?”

마탑 최하층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이안이 내게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해골 수십에 기사 한 명이 전부였었는데, 어느새…….”

벙찐 채 그렇게 반응하는 이안이었지만, 난 별 감흥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성장이었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옛 힘을 되찾는 것 뿐이니까.

이안은 저리 경악하고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글쎄.

성장이 느려 답답할 지경이었다.

“놀랍죠? 저도 가끔은 제 재능이 놀랍습니다.”

“풉-!”

그런 내심을 숨기며 그렇게 말하자, 옆에 선 스텔라가 웃음소리를 냈다.

“…넌 어떻게 된 놈이 겸손이란 걸 모르냐?”

내 너스레가 통한 것일까.

헛웃음을 흘린 이안이 그렇게 쏘아붙혔지만, 난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어디 가서 사령술 잘한다고 뻗대지도 못하는데, 나라도 이렇게 칭찬해줘야죠. 안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사이.

상층에 남아있던 네크로맨서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본대의 움직임이 막혔습니다! 이대로라면 놈들이 아래로…!”

“뭘 하고 있는 거냐?! 클라인 공자를 잡아!”

최하층에 위치한 본대가 발이 묶인 상황.

구심점을 잃은 진형에선 규율이나 전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놈은 가진 언데드를 모두 보냈다! 돌진해서 술자를 죽이면…!”

그나마 정신을 차린 한 명이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 순간.

“스텔라.”

스걱-!

새하얀 빛과 함께, 네크로맨서 중 한 명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어, 어어?!”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단검으로 네크로맨서의 목을 날린 것은 스텔라였다.

“술자를 죽이면 된다는 거, 너희들한테도 통용되는 말이거든?”

그렇게 말하는 사이, 스텔라는 벽과 천장을 차올리며 네크로맨서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런, 미친?!”

“수녀 한 명을 못 잡고 뭐 하는 거야?! 막……!”

스걱-!

평소에 보이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스텔라는 묵묵히 단검을 휘둘렀다.

전열을 틀어막던 언데드를 통째로 무시한 채, 고속으로 파고드는 전법.

네크로맨서한텐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본대와 합류할 생각을 했어야지. 멍청이들.”

지휘를 맡아야 할 교주가 사라지니 이 꼴이다.

혼자서는 제대로 판단도 못하는 멍청이들.

짧은 경멸과 함께 허리춤에 찬 노르드빈트를 뽑았다.

크워어어억-!

지척에 다가온 거대한 언데드, 브루트.

놈의 주먹이 코앞에 다다른 순간, 난 몸 안쪽으로 파고들어 브루트의 팔을 찢어발겼다.

쫘아악-!

근육의 결을 따라 신체 부위를 여덟 갈래로 가르는 검술, 피안화(彼岸花).

마력이 없다 한들, 뼈와 근육으로 이뤄진 육신을 베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제길, 네크로맨서가 검을 쓰다니…!”

“허둥대지 마라. 브루트는 우리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이야!”

자신만만한 네크로맨서의 말처럼, 브루트라는 이 언데드는 생각한 것 이상의 물건이었다.

- 크워어억-!

꾸득, 꾸드드드….

관절과 뼈가 뒤틀리며, 갈기갈기 찢어진 팔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체로 만든 언데드라고는 믿기지 않는 재생력.

폴와이번 내전 당시의 헬리안을 보는 것 같았다.

“역시, 그냥 검은 안 통하네.”

그렇게 말하자, 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마력검은 어떠려나?”

웃음기가 가득한 이안의 목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부신 마력광이 브루트의 시야를 뒤덮었다.

쿠콰콰콰쾅-!

수직으로 내리꽂힌 검격이 브루트의 거구를 양단했다.

치이이이익-!

“에잉, 죽진 않는구만?”

이안의 검이 지나간 절단면이 끓어올랐지만, 재생을 멈추지는 못했다.

‘마력으로도 죽일 수 없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지.’

그렇게 생각한 난 두 번째 검, 수정검을 뽑아 휘둘렀다.

스걱-!

유리와 비슷한 강도.

휘두르는 궤적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약하디약한 칼날.

그렇지만 그 검에 맞은 브루트는 그 자리에서 몸을 떨었다.

투명한 검날이 향하는 것은 생명이 아닌 망령.

육신이 아닌, 혼을 베어내는 검이다.

“끄어어어-!”

쿵-!

혼을 잃은 브루트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파스스스스…….

재생도, 부활도 없이 바스러지는 몸체.

그것을 본 네크로맨서들의 얼굴에 공포감이 서렸다.

“어, 어어……!”

“브루트의 재생이…!”

촤륵-!

곧바로 수정검을 갈무리한 뒤, 네크로맨서들에게 파고들었다.

내가 오른쪽, 스텔라는 왼쪽.

서걱-!

단검과 노르드빈트가 동시에 빛나고, 두 네크로맨서의 목이 동시에 하늘을 날았다.

“이걸로 상층은 정리된 것 같은데….”

“아래쪽이 문제에요.”

난간에 기대 아래쪽을 본 스텔라가 그렇게 말했다.

- 크워어어어-!

- 키아아아악-!

내가 있는 상층으로 기어오는 수많은 키메라, 그리고 브루트들.

최하층에 있는 본대를 제하더라도, 수백 구는 족히 되어보이는 숫자였다.

“저것들이 전부….”

“몬스터의 육신에 인간의 혼을 집어넣은 것들이죠.”

네 다리로 기어오는 머리 셋 달린 괴물.

육중한 족쇄를 찬 채로 달려오는 브루트.

지옥에서 꺼내온 것이 아닐까 싶은 흉흉한 광경이었다.

- 클라인.

그렇지만 그 순간.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레이븐의 목소리에,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영영 못찾는 줄 알았잖아.”

그렇게 말한 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시엘-!”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마탑 천장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우우웅-!

마탑의 존재를 숨기고, 침입자를 교란하고, 공격 마법으로부터 방어하는 엘프란의 방어 마법진.

레이븐이 찾고 있던 것은, 그 술식의 핵이었다.

파창-!

유리창이 깨지듯, 조각난 마법진이 땅으로 무너져내렸다.

레이븐의 검이 술식에 마력을 공급하던 중추석을 박살 낸 것이었다.

- 숙이세요. 전부.

거꾸로 솟은 마탑 전체에 울려 퍼지는 시엘의 미성(美聲).

나와 이안, 스텔라가 몸을 낮춘 그 순간.

“……야, 이 미친.”

쿠우우우우우우-!

거대한 바위 수십 개가 하늘 위에 체공해있었다.

“압축.”

짧은 언령과 함께, 하늘에 떠오른 시엘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꾸드드드드득-!

마치 쥐어짜듯 뒤틀린 바위들이 원뿔 형태로 일그러졌다.

나선을 그리며 점점 얇아진 그것은, 이윽고 수십 개의 거대한 창으로 변해있었다.

“최종 압축 완료. 가속 개시.”

우우웅-!

압축된 찬들이 위아래로 쉴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동으로 인해 형성된 고주파가 온 공간을 뒤덮었다.

그녀의 마력에 온 세상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끼아아아아-!

이윽고, 땅을 향해 뻗은 그녀의 손가락이 시위를 당기듯 올라갔다.

“중력시(重力矢), 전탄 발사.”

그렇게 내뱉은 그녀가 주먹 쥔 손을 놓는 순간.

콰르르릉-!

온 마탑이 폭발할 듯 흔들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 크워어어억-!

- 끼익! 끼이이이-!

나와 일행을 향해 기어오르던 각양각색의 언데드들도.

“끄, 끄아아악?!”

“도망쳐! 다, 다들 도망쳐--!”

아직 도착하지 못한 네크로맨서들도.

- 이야~ 이건 무슨.

- …우리 때는 왜 이런 마법사가 없었을까 싶네.

……심지어 내가 소환해둔 언데드들까지도.

쿠르르르….

폭음이 잦아들자, 난 온몸을 뒤덮은 먼지를 털어내며 마탑을 둘러보았다.

“시엘 공녀가 어떻게 아일라시스의 원로들을 작살 냈는가 싶었는데, 이제 납득이 가는구만.”

“우, 우와아….”

이안의 논평과 스텔라의 감탄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난 마탑.

“아, 아아악…!”

“살려줘…. 제발…!”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는, 잔해에 파묻힌 네크로맨서들의 신음 소리들 뿐이었다.

“아니, 하나가 더 있군.”

그렇지만 내 시선은 그들이 아닌, 마탑 최심부에 한구석을 향해있었다.

마탑의 다른 구조물과는 달리,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이뤄진 기다란 문.

시엘의 폭격에서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저 문 뒤에는.

엘프란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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