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19화 (119/209)

119. 가문의 비보(1)

731번 실험시설, ‘거꾸로 선 마탑.’

상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실험과는 달리, 맨 아래층인 생활 시설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에, 호화로운 카펫과 장식.

네크로맨서의 실험실이라기보단, 귀족가의 별장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무능한 것들-!”

파창-!

엘프란이 집어던진 유리병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안에 들어있던 붉은 액체가 바닥을 물들였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도대체… 도대체 왜 들킨 거야?!”

미친 듯이 소리치는 엘프란의 시선 끝에는, 한 무리의 네크로맨서들이 있었다.

아키몬드 교단.

200년 전 대전을 일으킨 네크로맨서, 아키몬드를 추종하는 머저리들이었다.

“들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더니, 이렇게 일을 그르쳐?!”

쿠웅-!

“크으?!”

“무슨 마력이……!”

노발대발하는 엘프란의 마력에 몇몇 네크로맨서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흉흉한 마력.

패배하고, 다쳐서 쇠퇴했으나, 그는 여전히 대륙 최고 수준의 마법사였다.

“우리한테 추궁해도 소용없는 짓이오. 엘프란.”

네크로맨서 무리 중, 한 남자가 짐짓 점잖은 어투로 앞에 나섰다.

“우릴 은폐하는 것은 ‘낙엽’의 일. 우린 그대와 함께 이곳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그럼 그 시궁창 쥐새끼들은 어디로 갔느냔 말이야!”

엘프란의 일갈에 남자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뭐가 대륙 최고의 정보조직이냐,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자신들도 속이 터질 지경이다.

플리시안에 겨우 자리 잡은 ‘낙엽’의 본부.

그렇지만 갑자기, 우두머리인 글렉을 포함한 모든 조직원들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소규모 지부와 정보원 몇 명뿐.

설상가상으로, 남은 조직원들마저도 ‘클라인 공자를 조심해라’라는 말만 남긴 채 대부분 잠적해버린 뒤였다.

‘전멸한 것은 그렇다 쳐도, 누가 그랬는지조차 알 수 없다니….’

말 그대로 조직 하나가 통째로 증발한 상황.

엘프란은 그 사실이 불안한 듯, 계속해서 손톱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아직 아니란 말이다…. 아직…. 아직……!”

곳곳에 널브러진 연구자료들과 시약, 그리고 샘플.

그들을 향해 역정을 내면서도, 엘프란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마법전에서 패배했다지만….’

엘프란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달리 없다.

그 또한 시엘이 찾아왔음을 눈치챈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하의 아일라시스 공작이 이렇게 겁을 집어먹은 꼴이라니….”

“제국 최고의 마법사라는 칭호가 거짓말 같군.”

그렇게 네크로맨서들끼리 수군거리던 그때였다.

“하하, 이것 참. 일이 급하게 돌아가는군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남자는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팔리만, 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호감형 외모.

행상과도 같은 차림을 한 이 남자는, 교단의 추기경이었다.

“팔리만!”

엘프란 역시 그를 눈치챈 듯, 곧바로 팔리만에게 다가갔다.

“어찌 되었나! 재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급박한 엘프란의 말에 답하며, 팔리만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말뚝.

일반적인 나무나 쇠가 아닌, 금으로 만들어진 말뚝이었다.

“하하하…! 굉장해. 이 정도 마력이라면, 이번에야말로 그 가증스러운 년을…!”

기하학적인 문양이 한가득 새겨진 말뚝.

“좋아, 이제 이걸 기준으로 구술식을 구축한다면….”

그것을 받아든 엘프란은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불안정하지는 않았는데.

팔리만.

저자가 엘프란에게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자, 그럼 여러분들도 분발해주셔야겠습니다.”

남자의 생각이 계속되던 사이.

티 없이 깔끔한 수도복을 툭툭 턴 팔리만이 남자를 돌아보았다.

“엘프란 공작 전하께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팔리만의 말에, 남자는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약속대로, 클라인 공자의 시신은 우리가 갖겠소. 이의는 없겠지?”

팔리만의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물론이지요.”

***

쿵-!

호화로운 장식과 방은 전부 엘프란을 위한 것.

두터운 철문을 열자, 마탑의 본래 모습이 나타났다.

크워어어어-!

끼에에에……!

키릭! 키리릭!?

낡은 돌바닥 사이로 흐르는 진득한 피.

곳곳에 눌어붙은 살점.

짐승과 사람의 것이 뒤섞인 괴성까지.

지옥도라고 해도 될 처참한 광경을 걸으면서도, 네크로맨서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다.

“저런 것이 공작이라니, 제국의 마법사들이 어떨지 눈에 선하구나.”

“크크큭….”

선두에 선 등이 굽은 노인이 그렇게 말하자, 뒤따르는 네크로맨서들에게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군.’

그렇지만 단 한 사람.

노인의 옆에 선 남자, 다이크만은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첼레그의 암살에 실패한 이상, 플리시안 역시 우리의 존재를 알았을 터.’

지식에 미쳐 제 앞날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존재가 들통났음에도, 교단의 네크로맨서들은 다음 실험을 고민하기 바빠 보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지금은 엘프란을 버리고 몸을 빼야 하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미치광이들.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교주님.”

다이크는 노인의 귓가에 대고 말을 걸었다.

외부에서 감지한 다섯 명의 생명 반응에 대한 것이었다.

“시엘 공녀에 클라인 공자라….”

“그리고 추가로, 이안 라인란트까지 함께입니다. 이건….”

그렇게 말을 이으려 했지만, 노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넘겼다.

“위험하니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냐?”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허어…….”

클라인의 침입을 막는다 한들, 그다음에 찾아올 것은 플리시안의 전투마법사 부대.

다이크의 말에 교주라 불린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노인은 판단을 그르쳤다.

“위험한 상황이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에게 있어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말하는 교주의 표정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이 기회를 이용한다면, 클라인 공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게 아니냐?”

아키몬드 교단의 최대 목표는 클라인 공자.

정확히는, 그가 사용하는 사령술이다.

“이번에야말로, 그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되찾아야 한다.”

그 말에 노인의 바로 옆에 선 남자가 주먹을 쥐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마음을 굳힌 그는 머릿속에 정리해 둔 다음 계획을 실행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전투로 양측 모두가 약화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이크는 자신의 안주머니에 감춰진 인장을 어루만졌다.

‘양측 네크로맨서를 전부 죽이고, 본국으로 귀환해야겠어.’

제국군의 명으로 이 사이비 종교에 가담한 지 수십 년.

이 지긋지긋한 이중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

“긴장되는 모양이구나, 다이크.”

그런 다이크의 속을 눈치채지 못한 듯, 노인은 다이크의 등을 두드렸다.

“송구스럽습니다. 교주님.”

“아니다. 그럴 법도 하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교주는 여느 노인과 다름없는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다이크는 알고 있었다.

저 교주는 이 광기로 가득 찬 집단을 이끄는 장본인.

클라인 공자 이상으로 위험한 자였으니까.

“망자의 성서가 코앞에 있는데, 어떤 네크로맨서가 긴장을 감출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교주의 목소리 또한 희열감에 젖어있었다.

“…….”

‘망자의 성서.’

아키몬드가 직접 저술했다 전해지는 사령술의 비기가 담긴 책.

아키몬드 교단이 클라인 공자를.

아니, 정확히는 그의 생모인 클레어 공후를 쫓았던 이유였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소리구나.”

다이크의 말에 교주는 코웃음 쳤지만, 다이크는 반론을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찾아온 기회.

계획에는 신중을 기해야 했으니까.

“클레어 공후를 처단했을 때도 책은 없었고, 당시 공자는 신생아였습니다. 헌데….”

“그렇다면 공자는 어째서 사령술을 쓰고 있느냐?”

다이크의 말을 끊은 교주가 말했다.

“기사 가문인 라인란트의 일원이 어떻게 사령술을, 그것도 우리조차 알지 못하는 형태로 습득한단 말이냐?”

그렇게 중얼거린 교주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클레어, 그 가증스러운 년이 제 피붙이에게 주입한 것이다.”

클레어 라 유스티아.

교단의 비서를 가지고 도망친 가증스러운 여자.

“아키몬드 님의 사령술을, 그분의 원수인 라인란트에게 넘겼단 말이다…!”

쿠구구구구…….

엘프란이 그랬듯, 흉흉한 기운이 어두운 감옥을 울렸다.

마력이 아닌, 마기로 인한 것.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에 다이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다들 준비하거라.”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에 네크로맨서들이 주먹을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저 가증스러운 클레어의 자식을…!”

그렇게 외치며 언데드를 부르려던 순간.

쿵---!

천장에서 들리는 굉음과 함께, 보초를 서던 네크로맨서의 일갈이 들려왔다.

“적습-! 적습이다-!”

“?!”

어처구니가 없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힘이 고강하다한들, 요새화된 마탑을 정면으로 침범하려 하다니?

‘정신이 나간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교주를 따르던 네크로맨서들이 각자의 계약문을 가동시켰다.

- 크워어어어-!

- 키이이이이-!

그들의 각인에 의해 철창 밖으로 뛰쳐나오는 언데드들.

지금까지의 시체 덩어리와는 차원이 다른, 체계적으로 생산된 우수한 소체들이었다.

“기사의 힘에 버금가는 언데드가 4천. 이 정도면 웬만한 왕국이라 할지라도…!”

적의 수는 다섯.

클라인 공자가 언데드를 다룰 수 있다 한들, 한 명의 술자로는 수백 구가 한계일 터였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

시작하기도 전에, 이 싸움은 자신들의 승리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 수적 우위는 지랄. 4천 구로 누구 코에 붙이려고?

특유의 경박한 한마디와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쿠쿠쿠쿠쿠쿠……!

낡은 돌바닥이 부르르 떨리고, 벽에 매달린 횃불들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클라인 공자, 어떻게!”

“시엘 공녀가 있다고 했지 않나! 아마 그쪽에서 수작을 벌인 것일 테지!”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쪽에 시엘이 있다면, 이쪽에는 엘프란이 있다!”

“해일이라도 밀어닥치지 않는 한, 이곳을 침범할 수는 없지!”

그렇게 주절거리던 네크로맨서 한 명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언데드를 풀어라! 클라인 공자를 잡아서…!”

원통형으로 뚫려있어, 햇빛을 들여오는 천장.

“……뭐야.”

그렇지만 하늘을 올려다본 네크로맨서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벌써 밤인가? 왜 이렇게 어둡지?”

새카맸다.

낮이라면 구름이, 밤이라면 별빛이 보여야 할 천장이.

아무런 빛도 비추지 않은 채, 시커먼 기운만을 내뿜고 있었다.

쿠쿠쿠쿠쿠……!

그 이질적인 광경에 의아해하는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은 점점 그들을 향해 가까위지고 있었다.

“자, 잠깐만.”

“저것들……. 설마……?”

그것이 가까워질수록, 저릿하게 다가오는 익숙한 기운.

이윽고 검은 기운의 형태가 자세히 드러나자, 네크로맨서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창백해졌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무슨…!”

그것이 무엇인지.

이 마탑 안으로 쏟아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 키이이익-!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은, 언데드였다.

그들의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최하급 언데드.

스켈레톤.

모두 합쳐 약 4만에 달하는 해골 병사들이, 마치 해일처럼 그들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 물량전을 걸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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