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18화 (118/209)

118. 거꾸로 솟은 마탑(3)

두두두두-!

아일라시스 가문의 문장이 찍힌 마차가 인적없는 숲길을 달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나도 안다.

야지를 다니는데 마차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지만 시엘의 마법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와! 이 마차 되게 부드러워요!”

두 마리의 말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음에도 말들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전력 질주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라고는 없는 실내.

그 이유는 간단했다.

“중력 마법을 이렇게 활용한다니….”

“신기하죠?”

황망하게 중얼거리며 마차의 밑을 보았다.

땅을 딛고 굴러야 할 마차 바퀴가 공중에 멈춰서 있었다.

하늘에 떠 있으니, 마차를 끄는 말 역시 무게를 느끼지 못할 터.

그 덕분에, 나와 일행이 탄 마차는 울퉁불퉁한 흙길을 미끄러지듯 질주하고 있었다.

“근거지의 보안이 꽤 강하다고 해서요. 이쪽이 더 효율적이죠?”

“그렇죠. 특히 은밀히 침투할 때는 더더욱.”

그냥 마법사와 거점에 자리 잡은 마법사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마탑, 연구실, 아카데미.

시설을 불문하고, 공략 난이도가 세 배 이상은 뛰어버리니까.

공간이동 마법의 좌표를 흩트려 함정으로 인도하는 교란 마법.

마력을 역류시켜 전투 불능에 빠트리는 역장.

밟자마자 폭발하는 룬 함정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내 위치까지.

거점에 침입한 침투자는 마법사가 짜 놓은 장기판 안에서 놀아나는 꼴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거점을 만든 인간은 제국 최고의 마법사. 거기에….’

그렇게 생각하며, 난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장벽 때랑 거의 비슷한 상황인데.’

수천 구의 언데드가 장벽에 들이닥쳤을 때를 생각했다.

침공 일주일 전부터, 근방에 있던 몬스터 서식지는 씨가 말랐었지.

“숲속이 조용하네요. 아직 새벽인데.”

“아무 소리도 없죠. 동물 울음소리나, 새소리 같은 것들도.”

언데드의 재료가 되어, 텅 비어버린 북부의 숲.

마치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듯, 마차가 가로지르는 숲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요새화된 마탑에, 숲을 싹 쓸어서 긁어모은 언데드 군단이라.”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포진이라 생각했겠지.

그렇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내 입장에선,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건 그렇고….”

그렇지만 그 생각도 잠시.

난 손에 든 신문의 내용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일라시스 공작 저택 붕괴.]

[당시 연회 중이던 아일라시스 구성원 태반이 사망. 일부는 치료 중이며….]

[제국 황실 수사국은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어제 발행된 신문.

마법사 가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플리시안의 신문은 연일 이 내용을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가문을 통째로 박살 낼 줄이야.’

하지만 반대로 아일라시스 가문이 그녀에게 보인 태도를 보면 이해가 갔다.

자기 가문 공녀에게 다짜고짜 살상용 마법을 갈겨댔으니까.

‘그리고 그중 한 명은 그 모양 그 꼴이었고 말이지.’

얼굴의 절반이 뭉개진 남자를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가문의 중진들은 떼죽음 당했고, 공작은 해외로 도피했다. 엘프란을 잡는다 한들, 아일라시스 공작가는 이미…….”

더 생각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륙의 정세가 아니라, 곧 있을 전투.

플리시안도 움직이는 마당에, 다른 생각을 할 여우는 없었다.

- 클라인.

마차를 몰던 언데드 리치, 앙헬이 뭔가를 발견한 듯 내게 음성을 보냈다.

- 도착지점에 남자가 한 명 서 있다. 마력을 보니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앙헬의 목소리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괜찮아. 우리 쪽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는 내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하여튼, 시간 하나는 잘 지킨다니까.”

가까워지는 내 마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은, 백발을 뒤로 묶은 맹인 검사.

이안이었다.

***

- 많고 많은 언데드 중에 굳이 날 마부로 써야겠나?

마차가 멈추자마자 마부석에서 내린 앙헬이 피곤한 듯 목 뒤를 주물렀다.

“아니, 영체라서 근육도 없는 놈이, 뭐 피곤하다고 난리야?”

어처구니가 없어 그렇게 말했지만, 앙헬은 계속해서 툴툴댔다.

- 자네가 언데드가 아니라서 잘 모르나 본데, 이 영체라는 것도 엄연히….

피곤함을 느낀다고?

웃기고 있네.

그랬으면 네크로맨서들이 뭐 좋다고 언데드를 만드냐?

그냥 돈 주고 사람 고용하지.

“마력감지 때문에 부른 거니까 토 달지 마.”

그렇게 말하며, 난 앙헬의 소환을 해제했다.

훅-!

바람 소리와 함께 앙헬의 형상이 사라지고, 이안이 내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야 이놈아!”

그리고 이어지는 이안의 딱밤.

딱-!

“아오! 뭡니까?!”

오랜만에 맞아보는 그리운 감각.

…은 개뿔,

이 망할 노친네, 예전보다 두 배는 쎄게 때리고 앉았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늙은이한테 오라 가라 명령질이냐?!”

골이 잔뜩 난 이안이 날 보며 그렇게 쏘아댔다.

합류 예정시간은 정오.

예정대로 이안이 합류했다는 말인즉, 첼레그와 갈론드 두 사람 모두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이걸로 약속은 지켰다.’

저지른 일에 비해 잃은 게 너무 많은 부자.

앞으로의 삶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도와준 보답은 충분히 치렀다.

예정에 없던 갈론드까지 살아남았으니, 이자까지 톡톡히 쳐 준 셈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난 두 사람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라, 망할 조카 놈아!”

“아이, 거 참.”

계속해서 날 추궁하는 이안의 말에 너스레를 떨었다.

“일은 급하고 손이 비는 사람이 삼촌밖에 없는데 어떡합니까?”

진심이었다.

아린은 낙엽을 처리하러 보냈고, 스텔라는 암습이나 잠입에 특화되었지, 집단전에 특화된 게 아니었으니까.

보낸다 한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하여튼, 사람 부려먹는 것하고는….”

입을 비죽 내민 이안이 그렇게 구시렁거리던 것도 잠시.

“이안 라인란트 님, 맞으시죠?”

천천히 걸어간 시엘이 이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마법을 썼는데, 멀쩡하다고?’

예법에 딱 맞는 인사.

힘든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에 기가 질렸다.

“엉? 얘는 또 뭐야?”

그러고 보니, 이안은 시엘을 만난 적이 없었나?

마차 짐칸에서 주섬주섬 무기를 챙기던 난 이안의 질문에 답했다.

“아일라시스 공작이요.”

“……뭐?”

심드렁한 내 표정 때문일까.

내 말을 듣고도 이안은 그걸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직 임시 가주이지만요.”

그러는 사이, 멋쩍게 웃은 시엘이 내 말을 덧붙였다.

아니, 아직도 믿음이 잘 안 가나?

이안은 얼굴을 찡그린 채로, 시엘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필 뿐이었다.

“아일라시스 공작이라면, 이 아이가 시엘 공녀?”

“이름은 어떻게 알고 계시는군요?”

내가 그렇게 이죽거렸지만, 이안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허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 쉰 이안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숙부님?”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얼마 동안 이어졌을까.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안이었다.

“힘의 위계니 뭐니 지껄이더니, 이렇게 끝나는구나.”

“예?”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끝나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안은 옅은 한숨과 함께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이안 라인란트다. 수배범 신세이니, 경칭은 뺀다. 불만 없지?

툭툭 던지는 경박한 말투.

“물론이에요.”

그렇지만 시엘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쿡, 쿡.

물론, 다른 한 사람은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저기, 공자님?”

“말씀하시죠 수녀님.”

이제 슬슬 어색해지는 경칭에, 똑같은 경칭으로 응수해줬다.

“이안 라인란트면, 그, 제국의 공적인…?”

이안을 가리키는 스텔라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다.

“맞는데, 뭔 일 있어요?”

“……!”

내 대답에 당황한 듯, 스텔라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뭐야, 이 녀석이 네 감시원이냐?”

스텔라의 시선을 눈치챈 듯, 이안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신성력은 그 신부 놈이랑 비슷한데, 운용은 정 반대구만?”

“…!”

개리슨의 이름이 나와서일까?

잔뜩 긴장한 스텔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뭐야, 얘 왜 이래?”

이안이 내게 물었지만, 나라고 뭐 알 턱이 있나.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이, 이…!”

“아니, 뭐 대단한 사람 만났다고 그렇게 긴장을….”

스텔라를 보며 이안이 허하게 웃던 그 순간.

애써 입을 연 스텔라의 입에서 이안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2백만 골드 님!”

이름이 아니라.

이안의 현상금이.

….

…….

……….

“………야, 조카야.”

한참 만에 입을 연 이안이 인자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똑 닮은 표정으로 답하자,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말했다.

“저거, 한 대 쥐어박아도 되지?”

물론,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꽁-!

인적없는 숲속에, 청명한 타격음이 울렸다.

둥글고 단단한 소리였다.

***

“그래서, 어땠습니까?”

자기소개도 대충 마무리됐겠다.

이안에게 그렇게 묻자, 그는 거칠게 혀를 차며 마차에 구비 된 술병을 들었다.

“네가 얘기한 것보다 더한 놈들이었다.”

내가 물어본 것은 이안이 상대했던 언데드.

그리고 아키몬드 교단의 전력이었다.

슥, 슥.

양피지에 목탄을 휘갈긴 이안이 대략적인 형상을 그려냈다.

근육질 몸에 금색 족쇄,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룬.

장벽을 습격한 언데드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발전한 개체였다.

“웬만한 기사 하나와 맞먹는 정도였다. 술자는 다섯. 개체도 다섯이었지.”

“제국도 아니고, 일개 사이비 교단이 이런 걸 만든단 말이지요?”

이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장벽을 습격한 언데드들을 떠올렸다.

언데드 같지도 않던 누더기들.

그딴 쓰레기를 만들던 것들이, 몇 개월 만에 이런 언데드를 만들어 낸다고?

불가능하다.

외부에서 기술을 들여온 것이 아니라면.

“찾았어요.”

그러던 중, 할 일을 마친 스텔라가 내게 걸어왔다.

이마에 혹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걸 보니, 이안도 어지간히 짜증이 난 모양이다.

“함정이 조금 성가시긴 했는데, 들키진 않았을 거예요.”

혼을 감지하는 내 술식과는 달리, 마법사의 감지 술식은 마력을 감지한다.

즉, 마력이 아닌 다른 힘은 영향을 안 받거나, 미비하다는 뜻.

신성력을 다루는 스텔라나, 마기를 다루는 내 경우엔, 놈들의 감시망에서 자유롭단 뜻이었다.

“위치는 북동쪽으로 10키로 정도. 근데….”

“근데, 왜요?”

내 물음에 스텔라는 이를 악문 채 천천히 말했다.

“버려진 마탑이라고 들었는데…. 뭔가, 좀 달라요.”

그렇게 말한 스텔라는, 이안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 종이를 건넸다.

“…….”

더럽게 못 그렸네.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건…….”

서툴게 그려진 마탑의 형태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늘로 솟은 게 아니라, 땅밑으로 뻗어있군요.”

그림을 본 시엘이 그렇게 말했다.

나선 모양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마탑.

그렇지만 그들의 거점은, 마치 그 탑을 뒤집어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

자신의 옷깃을 꽉 쥔 스텔라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못 할 짓을 했군.”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가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마탑의 형태를 그렸다.

나선형의 구조로, 땅을 향해 거꾸로 뻗은 마탑.

그 구조는, 크리펠 이단 교화소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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