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명가의 네크로맨서-117화 (117/209)

117. 거꾸로 솟은 마탑(2)

“헉…! 허억……!”

어두운 골목길.

자신을 쫓는 수십 명의 그림자들을 피하면서도, 첼레그의 숨은 점점 가빠졌다.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젊고 재능있는 마법사인 자신.

마탑주인 아버지.

눈 앞에 펼쳐진 탄탄대로.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자신은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으니까.

- 크워어어억-!

쿠콰아아앙-!

괴성과 함께 폭발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 투화악-!

연기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비대한 근육질의 괴인이었다.

절그럭…! 절그럭…!

검게 죽은 피부에 채워진 금빛 족쇄.

그곳에서 빛나는 붉은 술식은, 망자의 혼을 정착시키는 각인이었다.

언데드.

지금,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은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이미 가진 마법을 전부 퍼부어봤다.

온 마력을 모아,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퍼부었단 말이다.

- 크르르르…!

그렇지만 소용없었다.

5위계의 마법을 맞고도 흠집 몇 가닥이 돋았을 뿐.

수십 명의 괴인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계속해서 그를 쫓고 있었다.

“아, 아아…!”

이윽고 도망치던 그가 모퉁이를 돈 순간.

눈앞을 가로막은 괴인들을 보자, 첼레그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돌았다.

“첼레그 란. 배신자의 아들.”

분에 찬 목소리와 함께 검은 로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변장한 어설픈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흉흉한 귀기.

언데드 이전에 살기만으로도 다리가 벌벌 떨려올 정도였다.

“네놈들의 배신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아들놈을 죽여 아비 앞에 그 목을 내걸어주마.”

살벌한 위협과 함께 검은 로브들이 손을 뻗었다.

“죽여라. 목을 제외하곤 전부 먹어도 된다.”

- 크워어어억-!

주인의 허가가 떨어져 기쁜 듯, 괴인들은 가슴을 쿵쿵 치며 괴성을 질렀다.

털썩!

마력도, 도망칠 힘도 남아있지 않는 상황.

첼레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누가…! 아무나 제발 나 좀…!”

이것이 힘을 얻고자 거래해선 안 될 자들에게 손을 뻗은 결과.

그 대가를 직면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크워어억-!

저항을 포기한 첼레그를 향해 괴인들이 달려들던 그 순간.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맡기나 했더니, 이런 철부지나 지키라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낯선 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지!?”

“누구냐! 어디에서…!”

남자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한 듯, 네크로맨서들이 다급히 목표를 변경하려 했다.

그렇지만 남자의 검은, 그들의 움직임보다 훨씬 빨랐다.

“고개 숙여라, 철부지 놈아.”

낯선 목소리에 첼레그가 머리를 감싸 쥔 순간.

키이이이이잉-!

눈부신 마력광이 눈앞을 하얗게 물들었다.

“크아악?!”

“플리시안의 기사가 아니다. 이건, 설마…!”

흠집투성이의 낡은 검이 허공을 긋자, 얇디얇은 선이 추적자들의 몸을 가로로 그었다.

콰자자작-!

파열음과 함께 검은 핏물이 비산했다.

“히, 히익……!”

네크로맨서, 괴인.

그를 둘러싼 모든 괴이한 것들이, 가로로 두 동강난 채 대로변을 물들였다.

“곧 사람이 올 테니, 넌 그들을 따라가라. 중앙청이라면 이놈들도 널 못 건드려.”

차원이 다른 강함.

그것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첼레그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일 뿐이었다.

“다, 당신은…. 누, 누구….”

그렇지만 은인의 이름은 알아야 하는 법.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갈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로브 사이로 흘러나온 백발은, 그가 나이 지긋한 노인이랑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클라인 공자 놈이 보낸 수배범이올시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이안 라인란트.

애매모호한 소개와 함께, 그는 곧바로 몸을 날려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쪽이다!”

“젠장, 벌써 일을 저지른 건가?!”

“첼레그를 찾아라! 어서!”

이안이 모습을 감추자, 곧바로 중앙청 소속의 기사들이 달려왔다.

“좋아, 살아있어!”

“완전히 넋이 나갔는데, 어떻게 된 거지?”

마탑장의 아들이라는 지위는 사라진 상황.

기사들은 첼레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 일으키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생명에 지장은 없군. 중앙청으로 연행한다.”

지휘관의 휘장을 찬 기사가 그렇게 말하자, 기사들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하긴, 아들을 보면 갈론드 마탑장도 입을….”

그렇게 말하자 앞장선 기사단장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쿵-!

들고 있는 창대로 바닥을 찧자, 말을 꺼낸 기사들이 퍼뜩 정신 차렸다.

“네크로맨서의 기술에 손을 댄 자다!”

“흡……!”

그는 플리시안에 몇 없는 단장급 기사.

그의 일갈에, 기사는 곧바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쯧-!”

옛적부터 불러온 호칭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

이번 한 번만 넘어간다는 불호령과 함께, 기사단장은 휘하 기사들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잘 들어라. 갈론드 란과 그 가문은 이제 마탑장도, 마탑의 일원 도 아니다!”

마탑의 법도를 속이고, 부정한 힘을 쌓아 진리의 이름을 더럽힌 자.

소식을 접한 기사들이 갖는 적개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 번만 더 말실수한다면, 주의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알겠나?!”

“예, 예-!”

기사단장의 호통에 곧바로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곧 실전인 마당에, 더 나무랄 수는 없겠지.

생각을 마친 기사단장은 서둘러 중앙청으로 향했다.

‘아키몬드 교단의 위치를 알아내서, 먼저 엘프란을 확보해야 한다.’

시엘 공녀의 압박에 밀려, 그들을 배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들보다 먼저 엘프란을 확보해야 하는 법.

“심문 준비하고, 전투마법사단에 지원 요청한다.”

발에 오르는 그의 몸짓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가용한 병력들을 전부 데려오라고 전해!”

이 시간에도 정보를 얻은 시엘 공녀는 그들의 본거지를 향하고 있을 터.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

시엘(Ciel.)

뜻을 풀이하자면, ‘여자.’

성의 없는 이름에서 보듯, 자신의 출생은 탄생이 아닌 생산이었고.

자신을 부르는 말은 이름이 아닌 단순한 분류였다.

“쯧, 이 아이는 실패로군.”

일곱 살의 자신을 검사한 아버지, 엘프란이 남긴 말이었다.

“회로가 기형이군요. 심장은 물론, 뇌에 이어진 부분까지.”

자신을 낳은 어머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타고난 마력의 양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곳.

재능과 힘 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장소.

아일라시스 공작가의 법칙은 굳건했다.

그러니 제국의 3대 공작으로써 이 땅에 군림할 수 있었겠지.

“정략결혼으로 써먹어 보려 했더니, 그것도 영 시원치 않았으니.”

마력을 타고나지 못한 가치 없는 무지렁이.

어떻게든 정략결혼으로라도 써먹어 보려 했지만, 라인란트 공작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이었다.

‘잘못 만들어진 결함품끼리 오순도순 잘 사나 구경이나 하려 했건만.’

그 차가운 비웃음과 함께, 시엘은 버려졌다.

직책은 공녀였지만 대우는 하녀 이하.

힘이 없다면 자식조차 이리 만들 것이라는, 엘프란 공작의 의지표명이기도 했다.

“이 멍청한 년이, 이것 하나 제대로 못 해?!”

짜악-!

따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어린 시엘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후줄근한 하녀복 차림에,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

이전의 그녀는 울지도, 싫은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하녀장의 구타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멍청한 년이, 멍청한 년이, 멍청한 년이…!”

학대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일까?

조금 달랐다.

그녀가 가지고 태어난 기형은, 마력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정신은 인형과 같은 무감정.

시엘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에게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시엘의 눈에 빛이 돌았다.

얼마 전, 처음으로 만난 한 아이의 모습.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 클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디긴 어디야!’

자신의 손을 잡아끌었던 그의 손.

처음으로 느꼈던 만족감.

결함품에 불과한 자신을 충족시켰던, 단 하나의 존재.

‘놀러 간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차올랐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무관심.

비공감.

권태.

그렇지만 시엘은 그에게만큼은.

자신의 약혼자에게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마치, 세상이 자신에게 운명이라고 말하는 듯,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솟아난 것이다.

“다시 만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시엘은 손을 뻗어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 멍청한 여자를 보며 느낀 것은 혐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녕, 하녀장님.”

시엘의 한 마디와 함께, 그녀를 향해 뻗은 손에서 빛이 일었고.

빠각-!

하녀장의 팔뚝이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

“아, 아아아아악?!”

하녀장의 단말마가 온 저택에 울려 퍼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작작 좀 하십시오 하녀장님. 아무리 그래도 공작님의 핏줄인데, 이러면 어디 무도회에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 줄 알고 다가온 병사들.

그렇지만 뒤늦게 현장을 확인하자, 그들의 얼굴에선 일제히 핏기가 싸악 가셨다.

“이, 미친……!”

“…저, 전하께 연락드려라! 마법사들을 불러! 어서!”

비명 소리가 들린 곳에 서 있던 것은 한 명.

온몸을 하녀장의 피로 도배한 채, 무구한 표정으로 서 있던 시엘이었다.

“호오, 이것 참….”

엘프란은 턱을 쓰다듬으며, 시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쓸모인 줄 알았던 딸이 남몰래 이 정도의 마력을 축적하고 있었을 줄이야.

심지어, 날때부터 기형이었던 회로를, 이 정도까지 복구하다니.

“허, 이것 참.”

시엘의 모습을 본 엘프란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남몰래 마력을 감추는 주도면밀함과 스스로의 회로를 재구축하는 집념.

감정이 결여되어,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까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정신병자였겠지만, 아일라시스의 마법사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자질이었다.

“쓰레기도 가끔씩은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듯, 엘프란은 시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스스로 네 가치를 증명했으니, 내 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마.”

엘프란의 말에 시엘의 시선이 돌아갔다.

가족이 아닌, 타인을 보는듯한 눈.

아일라시스의 마법사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뭔데요?”

역시, 관심을 보인다.

“내가 비밀리에 실험 중인 물건이 있다. 제국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옛 마법이 깃든 유물이지.”

그렇게 운을 뗀 엘프란이 시엘을 향해 말했다.

“난 언젠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인데, 아직 미흡한 상태여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던 엘프란은 시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여, 네게 그 유물의 사본을 이식해 볼 생각이다.”

검증되지 않은 마법 무구의 실험체가 되어라.

흡족하게 웃은 엘프란은 시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공작가의 일원으로 대우해주마.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면….”

그렇게 말을 흐린 엘프란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넌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다. 어떠냐?”

마법사의 설명이라기엔 너무나도 모호한 말.

그렇지만 시엘은 개의치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본인의 동의가 나오자, 엘프란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식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폐사한 제자가 스물.

슬슬 쓸만한 지원자를 찾지 못하던 찰나에, 이렇게 흥미로운 소재가 굴러떨어졌으니까.

“본디 약자란. 강자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양분인 법.”

아일라시스의 저변에 깔린 선민의식의 기원.

“내 지켜보도록 하마.”

그것을 입에 담으며 엘프란은 시엘을 향해 말했다.

“네가 양분이 될지, 아니면 상상치도 못한 포식자가 될지.”

그 말과 함께 엘프란은 시엘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약자는 양분. 강자를 위한 양분.’

아버지의 말을 되뇌며, 아직 어린 시엘은 엘프란의 등을 쫓았다.

제국 최강의 마법사.

끝을 모르는 마력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자.

그렇지만, 시엘이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나 경외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엘프란, 당신은 내 양분이야.’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기대감에 가득 찬 웃음.

저자의 모든 걸 빼앗고, 그 자리에 당당히 설 그날에 대한 기대였다.

‘그리고, 널 먹어치운 다음에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의 빈 자리를 채워준, 그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