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슬슬 끝냅시다
“스, 습격을 받았다고?!”
갈론드 학장의 일갈이 응접실을 가득 메웠다.
맨 처음 나와 시엘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할 말 없다고 잡아떼더니.
반쯤 정신이 나간 아들을 보여 주니 이 모양 이 꼴이다.
“이 망할 깡패놈들이, 은혜도 모르고 내 아들을 건드려?! 내 당장…!”
“방금, 은혜라고 하셨습니까?”
노발대발하는 갈론드의 말을 끊자 살집이 가득한 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렇다면, 하늘마탑이 낙엽과 연관되었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군요.”
“그, 그것이……!”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한다면, 첼레그를 중앙청에 데려가 자수시키겠다고 했으니.
“그럼, 아닙니까?”
범인도, 증인도 전부 내 수중에 있다.
시작부터 결판이 난 협상.
갈론드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체념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원하는 것이 뭐요. 클라인 공자.”
그렇게 말한 갈론드가 응접실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간단합니다.”
보존마법으로 시원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과실주.
그것을 한 모금 음미한 난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입을 열었다.
“엘프란 공작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세요.”
“더, 덮어씌우라니…?”
영문을 모른 채 되묻는 갈론드의 말에 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진짜 이놈의 마탑.
다른 건 몰라도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아키몬드 교단과 낙엽을 플리시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존재를 은폐한 것.”
“크…….”
마탑의 장이 범죄조직에 가담한 상황.
알려진다면 하늘마탑의 위신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 모든 일을, 엘프란의 사주였다고 덮어씌우시면 됩니다.”
“……!”
그 말에 갈론드의 눈이 크게 떠졋다.
엘프란은 은둔자 신세에, 나머지는 범죄집단. 이 정도면 없는 죄도 덮어씌울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던 중.
“아니, 안돼! 미친 짓이야!”
고민을 계속하던 갈론드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저었다.
“배신한다면 난 죽은 목숨이요!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잘 알지 않습니까!”
후우.
한숨과 함께 공중에 떠오른 과실주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잘 알죠.”
사람 시체를 기워내서 작품활동 하는 미치광이들.
처음부터 손잡을 생각을 해선 안됐다.
“배신하는 순간, 당신은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겁니다.”
그의 지적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공포심을 부추겼다.
“그래! 헌데, 내가 어떻게 그걸 감내하고 배신을…!”
“당신이 배신하지 않고 버틴다면.”
그렇게 운을 뗀 난 갈론드를 향해 말했다.
“당신과 당신 아들인 첼레그. 둘 다 죽습니다.”
“……!”
말없이 빈 유리잔만 바라보던 갈론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체, 첼레그는 왜…?”
“엘프란의 기술로 마나코어를 이식했죠?”
시엘이 알려준 사실을 입에 담자,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오직 순수한 재능과 지성만이 진리의 문을 열지니.’
프리시안 마법사들의 격언을 떠올렸다.
인위적으로 마력량을 증가시킨다니.
아일라시스와 같은 전투마법사 계파라면 몰라도, 마탑에서 연구하는 마법사들에겐 금기와 같은 행동이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아일라시스 공작가가 정식으로 본국에 수사를 요청할겁니다.”
옆에 앉은 시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표정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선택하십시오. 갈론드 란.”
그렇게 말한 난 그에게 마지막으로 선택지를 제시했다.
“당신의 목숨으로 아들을 살릴지, 아니면 아들과 함께 죽을지.”
어느 쪽이는, 갈론드 자신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선택지.
“크으으으…….”
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얼굴을 찡그린 채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후우….
한숨과 함께, 착 가라앉은 갈론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소. 내 중앙청에 모든 걸 말하리라.”
그렇게 말한 갈론드는 내 얼굴을 보며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니 부디, 아들녀석한테 오늘 같은 일은……!”
잘못된다면 그와 첼레그는 수많은 암살위협을 받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든 해 달라는 거겠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한 난 엄지 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작에 사람을 보내놨거든요.”
***
“그게 사실이야?”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플리시안의 지하수로는 미로와 같았다.
정해진 경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길을 잃고 해메게 되는 구조.
그렇기에 이 수로 깊은 곳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온갖 범죄자들의 소굴로 변질되어 있었다.
“클라인 공자가 연회에?”
그런 지하수로의 한 구석.
암살조직 ‘낙엽’의 수장인 글렉은 정보원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보호 대상과 충돌했습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습….”
“아니아니, 그 애새끼 건은 됐고.”
자신들의 보호 대상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들고 있는 술병을 흔든 글렉이 말했다.
“시엘 공녀와 접촉했다는 거. 정말이냐?”
전에없이 진지한 얼굴을 한 글렉의 목소리에, 남자 또한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텃구만.”
정보원의 말에 그렇게 내뱉은 글렉은 들고 있던 술병을 집어던졌다.
파창-!
“클라인 공자한테 보내던 감시 인원들, 전부 철수시켜. 지금 당장.”
“예, 예?!”
천하의 낙엽이 임무 포기라니.
화들짝 놀란 조직원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미 사전작업에, 위치까지 파악했습니다! 이제 인질만 잡으면 다 끝나는…!”
열띤 목소리의 조직원이 외치던 것도 잠시.
빠악-!
순식간에 코앞에 나타난 글렉의 주먹이 조직원의 얼굴을 강타앴다.
“끄으으으…!”
안면을 정통으로 짓뭉갠 글렉의 주먹.
주저앉은 남자의 코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게 말대꾸한 죄는 이걸로 넘어가 주지. 명령하는 나도 죽을 맛이니까.”
그렇게 말한 글렉은 거친 몸짓으로 나무통에 있던 술병을 깠다.
그 역시 이 결정이 굴욕스러운 듯, 오만상을 찌푸린 상태였다.
크으~!
30도가 넘는 술을 단번에 비운 글렉이 진 술병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시엘 공녀가 왜 플리시안에 찾아온 건지 아냐?”
자신에게만 전해진 극비사항.
글렉은 자신의 앞에 도열한 대원들을 삿대질하며 그것을 말했다.
“심층부 시체닦이들. 걔네가 누구랑 같이 일하는지 알지?”
그렇게 말하자 간부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닦이.
자신들과 공생하는 아키몬드 교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엘프란.”
간부 중 한명이 그렇게 말하자, 푸우, 하고 한숨쉰 글렉이 계속해서 말했다.
“제국 최고의 마법사가, 왜 그 시체닦이놈들과 같이 있을까. 생각해봤어?”
그렇게 묻자, 간부들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가문 내 알력 다툼에서 밀린 겁니까?”
“원로파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는 들었습니다. 아마 그쪽이 시엘 공녀를 앞세워서….”
제국의 정치 구도와 맞물려 이것저것 추론하는 그들이었지만, 글렉은 고개를 저었다.
“시엘 라 아일라시스. 그 여자 때문이야.”
그 말에 간부들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아일라시스 공작이 저 여자를 피해 숨었다는 말입니까?”
글렉은 말없이 낡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렇다면, 그 정보가 정말이었군요.”
“1대1 마법전에서, 시엘 공녀한테 패배했다는 게….”
그들의 말에 글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가 아닌 공포.
사람을 보는 시선이 아닌, 인외의 괴물을 보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가문을 먹자마자 한 일이 뭐였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한 글렉은 제국에서 발행된 오늘자 신문 한 부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아일라시스 공작 저택 붕괴.]
[당시 연회 중이던 아일라시스 구성원 태반이 사망. 일부는 치료 중이며….]
[제국 황실 수사국은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등등, 제국의 신문은 연일 아일라시스에서 일어난 참극을 보도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붕괴사건을 일으킨 게…. 설마?”
불안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은 것은, 글렉과 1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간부였다.
“그래.”
글렉은 쯧, 하고 혀를 찬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친년, 자기 뒤통수를 노리던 원로들을 건물째 생매장시켰다.”
“……!”
“미, 친…….”
믿기지 않는 듯, 간부들이 말을 잃었다.
잔학한 행위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낙엽은 잔학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살인마 집단인데.
그들이 놀란 이유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아일라시스의 구성원들 전부는 전투마법사입니다.”
“그런 인간들을,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글렉은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쓴 흔적도, 술식의 잔상도 남아있지 않은 완전범죄였다.
“그런 괴물이 옆에 붙어있다면, 클라인 공자는 이미 우리 손을 떠난 거다.”
글렉은 그렇게 덧붙이며 말했다.
“작전은 다음 계획으로 이행한다. 성흔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을 노릴 수밖에…!”
거기까지 말한 그 순간.
“에이 뭐야, 괜히 기다렸네.”
이 깊은 지하수로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촤르륵!
촤앙-!
곧바로 가진 무기를 꺼내든 암살자들이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에 모이는 것은 축축한 돌벽과 짙은 그림자뿐.
낯선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방금, 누가 말한…?”
그렇게 조직원 중 한 명이 말을 흐리던 와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은신처로 사용하던 공동의 중앙.
조직원들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신속하게 무기를 내질렀다.
촤촤촥-!
절삭음과 파열음이 뒤섞여, 낯선 형체를 갈가리 찢었다.
“제길, 미행을 붙이고 은신처에 돌아오다니-!”
“어떤 멍청이냐! 지금 당장 모가지를 비틀어…!”
안 그래도 예민하던 글렉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렇지만 그가 길길이 날뛰던 것도 잠시.
“아이참, 도련님이 주신 옷인데, 배리면 어떡해요!”
잔뜩 볼을 부풀린 하녀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그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저거, 뭐야?”
“클라인 공자 옆에 있던…?”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는 것도 잠시.
옷 곳곳에 묻은 독액을 손으로 털어낸 아린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도련님이 여러분한테 전해달래요!”
도련님.
이 여자아이를 보낸 것이, 클라인 라인란트란 뜻이었다.
“원하는 것도 얻었으니, 슬슬 여기서 끝내자고요!”
끝내다니, 뭘?
낙엽의 조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간부 중 한명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두운 공동의 그림자.
넘실거리는 그림자에는 수많은 입과 눈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히히!”
쿠르르르르…!
요동치는 그림자가 공간을 잠식해갔다.
그림자를 향해 미친 듯 무기를 휘둘러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력감뿐이었다.
“그럼, 전할 말도 다 전했으니까!”
할 말을 마친 소녀가 활짝 웃었다.
어느새, 그들이 서 있던 공간은 소녀의 치마에서 흘러나온 그림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잘 먹겠습니다아~!”
소녀의 밝은 외침과 함께, 공동을 가득 메운 그림자가 낙엽을 덮쳤다.